2월에 본 책과 영화.

제대로 읽은 책이 별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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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무려 스물세 개의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그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은 플래처 박사(베티 버클리) 뿐이었지만, 그나마 그녀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케빈의 안에 있는 변태스럽고 폭력적인 자아인 데니스가 여성 자아인 페트리샤, 그리고 9세 소년의 자아인 헤드윅 등과 의기투합해 케빈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폭주가 시작된다. 그는 쇼핑몰에서 세 명의 소녀를 납치해 감금해 놓고 괴롭히기 시작했고, 나머지 인격들은 플래처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데니스에 의해 막히고 만다.

     ‘데니스 패거리가 나머지 인격들을 억압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비스트라는 존재를 알게 된 플래처 박사.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짐작한 플래처 박사는 비스트가 그저 폭력적 인격들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지하 깊은 곳에서 패거리들의 음모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 파국이 일어나고..


 

 

2. 감상평 。。。。。。。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 계속해서 변하는 다양한 인격들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특히 후반으로 가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극도로 달라지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의 모습은 그냥 멍하니 쳐다보게 만든다.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제임스 맥어보이라는 인물 자체였으니까.

 

     ​영화가 가진 나머지 하나의 매력은 다중인격이라는 소재에서 나오는데, 이 소재를 표현해 내는데도 맥어보이의 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까 뭐 말 다했다.(특히 구두에 롱스커트를 입고 나오는 장면은 압권.)

     물론 단순히 연기자만의 힘만 보이는 건 아니다. 감독은 자주 인물들의 얼굴을 매우 가까이서 비추는데, 그럴 때마다 화면은 불안감으로 가득 찬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상황과 캐릭터, 그리고 암시로 이런 긴장감을 불러올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주인공의 다중인격과 세 소녀의 납치, 감금이 아주 매끄럽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데니스 패거리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 설정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꼭 이런 식으로 그려져야 했을까? 힘없는 소녀들을 납치한 이유도 별 공감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들을 괴롭히는 모습은 끝까지 좀 불편했다.

     여기에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이 부분이 좀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고통에 대한 뜬금없는 찬사부터 재빠른 포기와 수긍이나, 어렸을 때 읽었던 괴기소설에나 나올법한 열린 마감도 그렇고. 이건 뭐 나쁜 놈이 처벌받지 않고 도망간다는 내용이 너무 현실적인 결론이 되어버린 시대인지라.. 이쪽이 너무 익숙해 보인다. (난 권선징악적 결론을 원한다고!)

 

      소재 자체로 충분히 충격적이었던 영화

.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이런 다중인격자들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이미 보고 있다. 청문회에 나와서는 자기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거짓말로 끝까지 버티는 이들, 특히 자신은 단 한 번도 부정한 재물을 모으거나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는 어떤 분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 사람의 이 인격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근데 정말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인격 분열을 가진 양반을 그 자리에 계속 놔두는 건 위험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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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이같이 되어야 한다.

대개의 아이들은 일상의 경험들을 싫증내지 않는다.

톨킨과 루이스는 아이들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사물을 보는 참된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들도 이야기의 세계에 잠김으로써

세계에 대한 참신한 느낌과 경이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콜린 듀리에즈, 루이스와 톨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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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 톨킨, 루이스, 롤링의 환상 세계와 기독교 살림지식총서 47
송태현 지음 / 살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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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살림지식총서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얇은 문고판 서적으로 내는 기획의 일환. 이 책은 판타지 문학을 다루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C. S. 루이스를 다루는 꼭지가 하나 들어가 있는 덕분에 내 눈에 띄게 되었다.


      저자는 사실주의 문학에 비해 판타지 문학을 낮춰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으며, 둘은 취향과 기질, 문학관과 관련된 문제이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8) 이어서 본격적으로 톨킨, 루이스, 롤링의 생애와 작품(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시리즈)을 간략히 훑어간다.

     책의 말미에는 이 번창해가는 판타지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주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춰보는 장이 하나 붙어 있다. 일부에서 지나친 적대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톨킨과 루이스가 그랬듯, 판타지 문학은 기독교적으로도 충분히 긍정적 함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방향.

 

 

2. 감상평 。。。。。。。

    이 작은 책을 구입한 건, 앞서 썼듯이 C. S. 루이스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자체는 일종의 문학이론에 관한 내용인지라, 물론 나야 이 책을 루이스 컬렉션 책장에 꽂아놓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루이스에 관한 책은 아니다. 책 하나를 책 하나를 어디에 꽂아둘지를 놓고도 늘 명쾌하게 판단이 안 되는 게 세상인데, 요즘은 사람의 사상과 생각을 무 자르듯 갈라놓을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몰아세우는 인간들이 왜 이리 많은지...

 

     책 말미의 판타지 문학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한 기독교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톨킨이나 루이스라는 인물 자체가 기독교적 배경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이 얇다 보니 개설서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는 못한다. 뭐 이 기획 자체가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빠른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거니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좀 더 전문적인 책들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루이스와 톨킨의 생애와 둘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관해서는 홍성사에서 낸 루이스와 톨킨이라는 책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나니아 연대기와 관련해서는 매우 다양한 해설서들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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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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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 소설들을 모은 작품집. 최근 개봉했던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신의 영역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탑을 쌓아 올라가던 어떤 사람들이 만난 충격적인 세계의 실상을 다룬 바빌론의 탑’, 약물의 도움으로 일반인들이 이룰 수 없는 초고도화 된 지성을 갖게 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 이해’,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적 원리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발견을 한 어떤 수학자의 고뇌(‘영으로 나누면’), 물건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특정한 속성을 갖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일흔두 글자’), 인간을 초월해버린 메타인간들(아마 인공지능)이 생산해 낸 과학기술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세를 다룬 인류 과학의 진화’, 상시로 출연하는 천사들과 그들이 일으키는 기적과 재앙에 관한 지옥은 신의 부재’, 그리고 사람의 얼굴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는 능력을 제한시키는 장치를 의무화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양측의 주장을 인터뷰식으로 다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가 있다.

 

 

2. 감상평 。。。。。。。

 

     ​재미있다. 작가는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한 두 개의 설정이 다른, 하지만 또 그 세계 안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어 냈고, 우선 이런 설정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올라가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는 탑과 그 탑의 중간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선하지 않은가? 점토로 인형을 만들고 거기에 그에 맞는 이름을 적어 넣으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세계나, 천사들이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세상도 그렇고.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작가다보니, 작품들 전반에 걸쳐서 이런 소재들이 자주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작품을 훨씬 더 그럴싸하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된다. 그가 과학 소설(Science Fiction)를 전문 영역으로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던 듯. 언뜻 이게 뭔 소리야 싶으면서도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들이 뭔가 재미있게 시작하지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끝난다는 느낌이 든다. 앞서 언급한 영화(컨택트)를 보면서도 좀 후반부에 급하게 마무리 짓는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건 원작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물론 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감독의 각색으로 어색해진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다분히 중단편이라는 형식상의 한계 때문에 생기는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일종의 허무주의혹은 ()목적성에 관한 신봉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루이스가 외계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 면에서 잘 드러나는데, 비단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보인다. 하늘의 창을 깨뜨리고 그 위로 올라간 채굴자가 마주한 상황, 수학의 궁극에 놓여 있는 모순적 진실을 발견한 학자가 느낀 감정, 인간을 초월한 기술적 발전을 보는 관점 등등

 

     ​개인적으로는 이런 면 때문에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스토리를 넘어서, 깊은 감흥까지 이르지는 못했던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이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 때문이니까. 틀렸다기 보다는 다른 거다.

 

 

     ​하지만 역시 기발함은 높이 살 수밖에 없다.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짜릿함을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다. 이 작가가 좀 더 긴 작품들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베르나르가 최근 몇 년 동안 질질 늘여 쓴 책들을 보면서 워낙에 실망을 했던지라 차라리 이렇게 길지는 않아도 임팩트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써 주는 게 더 나을지도.. 곧 두 번째 단편집이 출간된다던데, 그것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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