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고양이 - 고양이에게 배우는 라이프 테크닉
이주희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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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작가가, 그 고양이들과의 동거를 통해 깨달은 사실들을 사진과 함께 차분하게 풀어 놓은 에세이집이다. 각각 성격이 다른 고양이들과 벌이는 에피소드들은 재미가 있고, 그 가운데서 우연히 깨닫게 되는 세상의 이치는 자못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것들이다.

 

 

2. 감상평 。。。。。。。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일이다. 하나의 생명과 동반자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비단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도 해도 위대한 모험이다. 물론 동물과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종종 그들이 지나쳐 보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무엇인가에게 그렇게 과도한 집중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녀석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하며,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지에 관해 듣게 된다.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녀석들에게 완전히 빠져버린다. 이 책의 작가처럼. 그런데 어디 꼭 고양이여야만 할까. 생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이로움을 볼 수만 있다면, 염소나 나비 한 마리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는 에세이다.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는 고양이의 사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고양이를 통한 작가의 깨달음에 모두 공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작가 자신도 그런 걸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 모두가 애초부터 헛된 소리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깨달음이 담겨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가지 진리는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말이 통하지 않는 제멋대로인 녀석들을 설득하거나 훈련시키려 하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바라보라는 것. 그런데 이게 어디 고양이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일들이 그렇게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지 않던가.(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순응주의로까지 나가는 건 오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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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 C.S.루이스가 말하는
웨인 마틴데일 지음, 이규원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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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제목처럼 C. S. 루이스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천국지옥에 관한 서술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천국, 지옥, 연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마지막 부분인 연옥은 사실 루이스의 여러 작품들 중에도 그다지 깊이 서술되고 있지 않은 지라, 아주 짧게만 언급되는 수준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제목처럼) 천국과 지옥에 관한 것.

     루이스의 작품은 크게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뉘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천국과 지옥)는 그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반에 걸쳐 펼쳐져 있다. 저자는 먼저 논픽션 작품들에 서술되어 있는 루이스의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단순히 이렇다 저렇다 하는 식으로 설명하는 식이 아니라, 우선 일반적으로 이 주제들에 관해 사람들이 하는 잘못된 생각(오해)들을 제시한 후, 루이스의 문장들을 통해 오해를 교정하는 문답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좀 더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역시 루이스의 소설(픽션)들에서 그려내는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이쪽이 분량도 더 길고, 서술도 더 재미있다. 물론 이 부분은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루이스의 작품들을 먼저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더욱 실감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2. 감상평 。。。。。。。

     천국과 지옥이라는 주제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다. 단테의 신곡은 중세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체계적인 시로써 보여준 대작이었는데, 오늘날에도 다양한 목적으로 그와 비슷한 작업을 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수십 명이 넘는다.(심지어 자기가 천국이나 지옥을 직접 보고 왔다는 식의 책도 수두룩..) 하지만 대개는 그냥 어디선가 보고 들은 평범한 이미지들을 억지로 짜 맞춘 것에 불과해서, 읽어도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졸작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주제를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글로 써 온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C. S. 루이스다. 물론 천국과 지옥이라는 주제는 일반적인 서술로 충분히 다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이고, 따라서 루이스 역시 특단의 방법을 사용했으니 바로 상징적 언어.(사실 이건 성경의 저자들도 했던 고민이고, 그들의 선택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루이스에게는 이 고급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언뜻 언뜻 드러나는 천국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해변의 모래밭을 걷다가 군데군데에서 오래된 고대 금화를 발견하는 느낌이랄까.

     이 책은 그런 루이스가 일부러 살짝 감춰둔 보물들을 상당히 많이 찾아낸 저자가, 발견한 금화를 연대순으로 늘어놓고, 계통을 밝혀 설명해 둔 일종의 책 지도이다. 독자는 저자가 그려 놓은 지도 속 길을 따라감으로써, 루이스의 작품 속 더욱 깊은 곳으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혹 너무 빨리 지나가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숨겨진 장소들로도 안내받을 수 있다.

 

     다양한 루이스 연구서들을 읽고 있다. 뭐 우선은 팬심으로 읽는 책들이기에 대부분 호의적인 감정으로 보고 있지만, 본편이 워낙에 흥미롭고 방대한지라 아무리 연구서를 잘 썼다고 하더라도 그 본래의 내용을 충분히담아내기는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루이스의 책들에서 한 가지 주제를 뽑아, 그것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시도도 괜찮은 것 같다. 다양한 주제를 한 번에 모두 다룰 때보다 훨씬 깊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천국에 관한 루이스의 설명은 황홀하다. 다양한 이유로 루이스를 좋아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단연 천국에 관한 표현력은 깊고 매력적이다. 루이스 팬이라면 아주 좋아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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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윤리는 대체로 고립된 영웅적 자아,

곧 이른바 홀로 서서 결단하고 선택하는 합리적 개인이라는

계몽주의의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윤리가 목표로 삼는 것은 

개인을 그가 속한 전통과 부모, 이야기들, 공동체, 역사에게서 독립시키는 것이요

그렇게 해서 그가 홀로 결단하고 선택하고 외톨이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는 이런 윤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 까닭은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 외의 다른 공동체에 적당히 거리를 둔 노동자들이요,

그 기업에 기꺼이 순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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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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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사회주의자인 저자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용되는 각종 용어들에 담긴 왜곡을 드러내기 위해 쓴 책이다. 사전 형식으로 구성되어, 각 항목마다 한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설명이 소개되어 있는 식이다.

 

​2. 감상평 。。。。。。。


      책 제목과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소개하는 정의는 기존의 것과 사뭇 달라서 다분히 삐딱하고, 공격적이다. 책 전체에 걸쳐서 반복되는 내용은, 국가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과 사회주의적 제도에 대한 열렬한 희망적 기대다.

     이런 비판적 시각은 정치, 경제적인 측면을 다룰 때에 빛을 발한다. 예컨대 저자는 참된 경제민주화경제의 주체가 자본가에서 노동자로 바뀌어야 가능하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 (그 정의상) 자연을 더 많이 파괴하고 인간을 착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경제활성화보다는 경제안정화가 우선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 이런 시각을 사회적인 차원으로 옮겨도 제법 눈에 들어오는 항목들이 있다. 이를테면 신용이라는 단어에 대해 저자는 이런 설명을 붙인다.

 

신용은 본래 사람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것은 총체적 인격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이 말은 단지 돈 지급 능력을 이르는 말로 굳어졌다. 인격과 신용이 분리된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항목들이 많다보니 저자 역시 저자는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고 여기는 듯한데, 이를테면 인륜이란 국가의 전쟁에 개인을 동원하는 논리이고, 천륜은 가족부양의무제처럼 국가에게 의무를 면제해주는 논리라는 식. 비슷한 논리로 도덕이니, 관용이니, 정의니 하는 단어들을 아무 것도 아는 것으로 만드는데 열심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딱히 치밀한 논리나 근거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 그냥 한 부분을 잡아서 비트는 식인데,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 독백으로만 보인다. 여기에 일단 싫은 단어들을 까는 식이기에, 저자의 설명들 사이에 상호충돌도 일부 보인다. 전반적으로 국가같은 힘을 소유한 조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아예 부정하면서), 또 일부항목에는 국가에 어떤 책임을 지우는 듯도 하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사전류를 보는 느낌도 살짝 들지만, 그보다는 재미도, 감동도 적다. 날카로움만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오래된 이념주의자들의 오만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밖에..

 

     ​뭐 모든 항목을 정성껏 읽을 필요까지는 없고, 적당히 넘기면서 눈에 들어오는 항목들에 집중하면 충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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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점령하라 시위를 말하다
노엄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수이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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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지난 2011년 미국 월스트리스에서 벌어졌던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에 관해 언급한 노암 촘스키의 연설, 강연, 문답들을 모은 책. 각각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루어진 담화들이라 내용은 서로 비슷한 것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촘스키는 이 점령하라운동이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졌던 정의롭지 못한 문제의 결과로 발생한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이 기간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탐욕스러운 산업이 크게 융성했고, 1% vs 99%로 상징되는 빈부격차가 극도로 벌어지면서, 이전의 중산층이 몰락하게 되었다.

     촘스키는 이런 종류의 시위가 좀 더 미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인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후 이 운동은 정부에 큰 영향까지 끼치지는 못했고,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결국 트럼프라는 희대의 망나니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했으니...

 

 

2. 감상평 。。。。。。。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는, 촘스키가 이 점령하라운동을 분석한 책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 보니, 그런 분석보다는 응원과 격려가 좀 더 부각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면 판단 미스.

 

     ‘점령하라운동은 이전의 여러 시위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시위를 조직하는 지도부도 없었고,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매체들이 큰 힘을 발휘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전 협의 없이 공동의 구호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운동은 촘스키의 바람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일찍 사그라졌다. 사람들은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어떻게 그것을 사회변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생각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소수의 기득권자들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지만, 그 목소리가 충분히 합쳐지지 못한 채 산발적인 구호를 내뱉는 것에 그치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법이다. 빈부격차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없고, 온갖 종류의 특권에 둘러싸인 이들은 점점 그들의 성벽을 더 높이 쌓고 있다.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이 점점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뭐 사실 이 상황에 대해 촘스키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답이 있지는 않았을 터. 그래도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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