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의 순전한 교육 - 시민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교양
마크 파이크 지음, 송은정 옮김 / IVP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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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제목을 보면 책의 내용이 충분히 짐작된다. C. S. 루이스가 쓴 다양한 책들로부터, ‘교육에 관한 그의 사상을 뽑아 정리하는 내용이다.

     루이스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생들을 덕()을 갖춘 인간으로 길러내는 데 있다고 본다. ‘가치중립적인 진리(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여기는 듯한 주류 교육계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부분. 사실 루이스는 진리가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아가 루이스는 윤리에 영적차원이 있음을 지적하고, 영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루이스는 교육에 관한 정부의 통제권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기본적으로 부모에게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지에 관한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이는 특정한 사상이 공교육과정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입장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루이스는 당대의(그리고 아마도 오늘날의) 주류 교육과정에 내포된 관점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도 교사나 학교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적절한 자질이 무엇인지, 교육과정에 꼭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들이 어떤 것인지 등, 교육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된다. 

 

2. 감상평 。。。。。。。

     루이스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나와 있는데, 전기류나 특정한 작품(나니아 연대기)을 설명한 책을 제외하면, 대개는 그의 사상 전반을 다루려고 하다 보니 충분히 깊은 연구까지 이르지 못하곤 해왔다. 물론 루이스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 같은 루이스팬에겐 아쉬운 부분인 것도 사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이런 식으로 그의 사상 중 한 가지를 중점으로 주제를 연구해 놓은 책에 좀 더 호감이 간다.

 

 

     ​루이스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탁월한. 중세 영문학에 대한 그의 연구업적도 훌륭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멘토가 되어 세밀한 지도를 하는 데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이었다. 평생을 두고 그는 자신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비공식적인 가르침에도 부지런했다. 이 책은 루이스의 그런 교육자적 면모, 나아가 그의 교육철학을 효과적으로 정리해 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내가 교육에 관해 갖고 있던 생각과 루이스의 생각 사이의 차이점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자연히 그런 부분들은 좀 더 세심하게 살피게 되는데, 결과는 번번이 내 쪽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마무리 되곤 했다. 예컨대 공교육을 강조하는 추세에 교육과정에 대한 국가권력의 지나친 개입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지 못했었다. , 교육과 관련해 의심을 품고는 있었지만, 적절한 반대 논리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던 경우는 루이스의 논리를 통해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런 책을 읽는 시간은 유익하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에 둔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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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이 생기지 않는 것은

인맥을 만들려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남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실적을

당신이 아직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 주변에서는 당신과 알고 지내봤자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 고도 도키오, 나쁜 습관 정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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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라.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험 삼아서라도 한번 해 보라.
텔레비전을 끄고 페이스북을 로그아웃하고
음악을 끄고 게임기의 전원을 뽑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라.

- 카일 아이들먼, 오늘, 제자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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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인간과 함께 리플리컨트라고 불리는 복제인간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까운 미래. 편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리플리컨트를 만들었다가 자의식을 갖게 된 그들의 반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인류는, 새로운 종류의 (순종적인) 리플리컨트를 만들어 남아 있는 옛 모델들을 제거하고 있다. 이른바 블레이드 러너들이 그 사냥꾼들이다.

     주인공 K는 그런 블레이드 러너 중 하나다. 어느 날 한 리플리컨트를 퇴역’(이라고 쓰고 살해라고 부른다)시키던 중 이상한 증거를 발견한다. 생식이 불가능한 그들에게서 아이가 태어난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경찰에선 K에게 아이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한편 리플리컨트를 제작한 회사에서는 더 완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자신이 그 아이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 K.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채로, 이제는 쫓기는 대상이 된 K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더 큰 진실을 발견한다.

 

 

 

2. 감상평 。。。。 。。。

     영화가 무척이나 길다. 대충 거의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상영 시간. 이 긴 시간 동안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

 

     영화 속 인간들은 자신들의 삶을 좀 더 쉽게 만들기 위해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그만큼 인간들의 삶은 더 행복해지고, 세상은 좀 더 밝은 곳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웬걸 영화 속 분위기는 한없이 침울하고 어둡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 속 세계의 날씨를 자주 비나 눈이 내리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뭐든지 만들어 냈지만, 정작 마주한 것은 디스토피아였던 것.

     단지 날씨만이 아니다. 영화 속 인간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리플리컨트들이 자신들에게 도리어 위협이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두려움을 안고 있다. 일부러 그들을 찾아다니며 살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영화 속 동료 경찰들이 K를 보며 과장되게 깔보고 무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시는 종종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발달된 기술로 도시는 거대해졌지만, 그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건 거대한 광고 이미지들, 즉 허상들뿐이다. 가장 기초적인 안정감의 근원인 가정조차,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생각해 보면 그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인간들이 리플리컨트를 만든 배경에는 탐욕이기심이 깔려 있었다. 그들에게 리플리컨트는 그저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이 자꾸만 리플리컨트를 무시하려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이 인간이 아니어야, 마음껏 착취할 수 있으니까.

     철저하게 탐욕 위에 세워진 사회는, 당장에는 이익이 되는 것 같으나 결국 그 구성원들을 타락시키기 마련이다. 타락한 세상의, 타락한 사람들이 누리는 타락한 즐거움. 그 끝 맛이 씁쓸한 것도 당연한 일.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여기에 전편의 주인공 해리슨 포드를 정확히 같은 역할로 다시 등장시킨 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그 둘을 연결시키기도 하는) 이런 수법은 참 좋다. 물론 다시 등장한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영화를 그만큼 흥미롭게 만들었는지는 미지수지만.

     무엇보다 꽤나 느린 전개가 답답하다. 뭐 그렇게 늘어난 시간이 의미 있는 장면이나 내용으로 채워졌더라면 상관없을 텐데, 이건 뭐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그냥 늘어진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드니...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경찰조직이 아니라 복제인간 제작회사라는 점은 주인공이 하고 있는 투쟁의 의미를 좀 불분명하게 만든다. 사실 제도권에 대항하는 반란자라는 쪽이 훨씬 선명했을 텐데, 거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니안더 월레스라는 캐릭터와 주인공은 정확히 반대되는 가치를 지향하는 게 아니었던지라 뭔가 좀 불분명해졌다.

 

     워낙에 길고, 여러 떡밥들이 던져졌던지라(일부는 충분히 회수가 되지 않은 것 같기도), 보고 싶은 대로 다양한 생각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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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기본이 안 된 사회에 기본을 만드는 소득 지금+여기 5
오준호 지음 / 개마고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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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1장에서는 기본소득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정리하고, 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지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2장에서는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가장 주요한 이유인 개인의 나태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반대 증거를 제시하는 부분이다. 영국과 캐나다, 미국 등의 일부 지역과 계층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꽤나 긍정적인 결론을 얻었다는 것.

     3장은 기본소득에 대한 또 다른 반대인 윤리적 문제에 대항하는 부분이다. 오직 노동의 대가로 소득을 얻는 것만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전통적으로 지배계급에 의해 조작된 윤리이며, 나아가 급격한 발달로 이전과 같은 안정된 일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노동윤리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앞서 2장과 3장에서 기본소득 제도에 관한 방어적 변화를 꾀했다면, 4장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기본소득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부분이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공유자원에 관한 것인데, 땅과 공기 같이 누구 하나가 독점적 권한을 주장할 수 없는 공유자원에서 나오는 이익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에 사용되는 재원 문제로 이어지는데, 사실 이 부분은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증세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만 제시되고 있다.

 

 

2. 감상평 。。。。。。。

     대학에 다닐 때 논문작성법을 배우면서 들었던 말이 있다. 논문을 쓰려면 최소한 두 가지 중 한 가지 조건은 갖춰야 한다는 것. 하나는 그것을 읽기 전 생각지 못했던 내용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아주 잘 정리해서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

     ‘읽을 만한 책의 조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그 중 두 번째 조건을 안정적으로 만족시키면서, 첫 번째 조건도 일부 채워주고 있으니까. 책은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어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기본소득)에 대한 적당한 수준의 이해를 충분히 돕는다. 학술적인 수준의 책은 아니지만, 교양서적으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할 것 같다.

 

     기본소득의 개념은 흥미롭다. 국가에서 누구에게나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 줌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복지 제도라..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책에 나온 것처럼 일정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굳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을 포기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송파 세 모녀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돈이 안 된다고 일찌감치 포기를 종용받는 수많은 꿈들이 실현되는 일들이 좀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좋은 제도가 왜 아직 시행되지 않는 걸까? 수혜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서? 사실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충분한 돈만 있다면 몇 명이 놀든 무슨 상관일까. 그렇다, 문제는 돈이다.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마련 방법. 책에서는 일부 부유층 증세와 불로소득과 공유자원에 대한 세금부과 등을 대안으로 꼽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산유국들이 아닌 이상 공유자원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해서 큰돈이 들어올 리 만무하고, 부유층 증세는 저항이 만만찮을 것 같다.

     그리고 앞서 사실 윤리적인 문제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물론 책에서는 기본소득이 도입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당장 나태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실험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실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일정 기간 동안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아무래도 기한 없이 주어질 때보다 돈의 사용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제도를 늘 선한 방식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와 비슷한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유토피아를 세상에 건설하려는 노력은 하나같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난 그게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 문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국가적 실험의 실패는. 그들이 인류의 선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데 있었다.

     물론 개별적인 관계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사람을 신뢰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체라는 이름의 모호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면 인류는 그다지 선한 존재가 아니다. 설사 악한 이들이 절대 다수가 아니라도, 대개 그렇게 집요하고 끈질기게 사익을 추구하거나 공동체의 연대를 깨뜨리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올라가곤 한다는 게 또 문제. 흰색에는 검은색이 조금만 섞이더라도 처음의 자기 색을 충분히 유지할 수가 없는 거니까.

 

     어쩌면 이런 제도는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해서는 적절히 작동되기 어려운 게 아닐까도 싶다. 적어도 받은 돈을 매번 술과 도박으로 탕진하는 이들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적 연대가 기능할 수 있는. 하지만 그냥 버려지기엔 너무 매력적인 제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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