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30년 전 중남미의 작은 나라 아이티에서 만난 세 친구, 폴 파머, 김용, 오필리아 달. 열악한 의료 체계와 치료 대신 예방에만 치중하는(여기에는 열악한 의료 환경부터, 저개발 국가 사람들의 낮은 의식수준까지 온갖 이유가 붙여졌지만, 실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국제구호기구의 정책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을 설립하기로 한다.

 

     ​하버드 의대에서 공부하는 동안도 매주 목요일이면 아이티로 날아가 환자들을 돌볼 정도의 열정으로 진료소를 세우고, 환자들의 이웃을 교육시켜 치료의 도우미로 만드는 전략으로 아이티의 작은 마을 캉주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그들. ‘파트너스 인 헬스라는 이름의 구호단체가 그렇게 시작된다.

     아이티를 시작으로, 페루, 아프리카의 르완다 등, 세계의 저개발국가들에 사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헌신은 마침내 국제사회의 완고함을 무너뜨리고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 낸다. 파트너스 인 헬스는 10개국으로 확산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고, 창립 멤머 중 하나인 김용은 세계은행 총재에 오른다.

 

 

 

2. 감상평 。。。。 。。。

      의욕으로 가득 찬 빈 손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냈는가를 아주 담백하게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파한다. 하지만 대개는 그 뿐, 그 자리를 벗어나면 다시 일상의 문제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한다. 당장의 일이 바빠서, 불쌍하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막막한 일을 실제로 해내고 말았다. 일은 여건이 되지 않아서 못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명확한 비전과 열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이들의 정의감만이 아니라, 그런 열정 쪽이 좀 더 강한 인상에 남는다.

 

 

 

     실화를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보니, 일반 상업영화와 같은 과장된 악역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는 굳이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악역들이 있었으니..

 

     ​영화 속에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이들의 치료를 막는 것은, 놀랍게도 (의료)당국과 질병퇴치를 위해 구성된 국제 기구, 그리고 저명한 학자들과 저널들이었다. 그들은 르완다의 소녀들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는 일을 사치로 비난하고, 다제내성균에 감염된 결핵환자들의 치료를 방해한다. 이유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그런 저개발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그런 비싼 치료를 하는 것은 지속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주장에 일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놀랐다. 돈의 유무에 따라 누구는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고, 또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 저주스러운 논리는 누가 내 머릿속에 집어 넣어둔 걸까.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제약회사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본주의가 만든 괴물들이다. 문제는 이런 괴물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너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생각할 꺼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그런지, 극장 한 관 전체를 빌린 듯, 혼자 앉아 마음대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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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1-14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보고 왔는데.....상영관 전체 저 포함 3명의 관람객.... 많이 알리고 싶은 작품인데 말이지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노란가방 2017-11-14 21:23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흥행성적이 좋을 수는 없을 다큐멘터리 영화.. ㅠㅠ
반갑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울 2017-12-2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구입한 책 서평을 쓰라는 메일을 받고 등록된 리뷰가 있길래 들어왔다가
쓰라는 평은 안쓰고 님의 영화평까지 보게되었네요.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더랍니다.
WHO의 규정에 화가 나기도 했구요.
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하고 환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건위원(?)을 파견하는 부분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생겼더랩니다.
찾고 찾으니 찾아졌던 방법, 약의 특허가 소멸되어서 저렴하게 약을 만들 수 있었을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김용이 세계은행 총재가 되어 HIV치료에 도움을 주게될때
하나님의 도우심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을 넘어선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되었답니다.
좋은 영화, 좋은 리뷰 감사해요.

노란가방 2017-12-22 22:39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뜻을 품고, 장애를 헤쳐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기도 하는구나 싶었던 영화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셨다니 궁금하네요.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회를 급진적이고 영원히 새로운상태로 지켜 나가는 힘은

교회로 하여금 사회적 논쟁거리들과 관련해

좌파와 하나 되게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이 알지 못하는 예수를 교회가 아는 데서 온다.

-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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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큰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미모의 여가수 유나(이하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임태산 회장(최민식). 하지만 그의 결혼을 하나밖에 없는 딸 미라(이수경)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밤, 미라의 전화를 받고 나간 유나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검찰은 태산의 딸 미라를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 날의 일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하는 미라. 태산은 유수의 법률사무소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변호사 최희정(박신혜)을 미라의 변호인으로 선임한다. 하지만 그가 정말 모든 일을 희정에게만 맡겨두었을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물밑에서의 작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 감상평 。。。。 。。。

 

     ​영화의 핵심이 스토리 자체에 있기에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면 길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후반부의 반전을 보고 나면 앞서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전형적인 반전물.

 

     ​사실 처음에는 임태산 회장의 돈과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무마하려는 권력형 비리를 다루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있는 대로 과시적인 소비를 하는데다, 입만 열만 돈을 외치는 그였으니까. 하지만 정작 영화는 법정을 중심으로 (정확히는 법정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머리싸움이 주였다.

 

     처음부터 기억을 애매하게 가져가는 게 중요했기에, 유나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희미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관객의 주의를 충격적인 장면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이어지는 공방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공방이 처음부터 약간 허술하게만 느껴진다. 뭔가 엄청난 일을 할 것 같은 임태산이 그저 재판정 방청석에 앉아 풋내기 변호사가 하는 일을 응원만 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하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의 눈빛 하나, 동작 하나, 말 한 마디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런 관객의 눈을 임태산 역의 최민식은 그대로 받아내면서 긴장을 이어간다. 어느 정도 연기 내공이 갖춰져 있어야 보여줄 수 있는 솜씨. 다만 그 주변에 서 있는 배우들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어버리는 부작용(?)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우연히 같은 상영관 안에 있던 어떤 아주머니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게 됐다. 아마도 딸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내내 얼마나 큰 소리로 영화 줄거리를 훑는지. 아직 영화를 안 봤던 사람이 거기 타고 있었다면 완전 스포 테러 당했을.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그 아주머니가 영화의 후반부를 전혀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옆에 있던 딸이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해주었는데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더라. 같은 영화를 저렇게 다른 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구나 싶으면서, ‘선택적 기억의 무서움을 살짝 실감.

 

 

     머리싸움, 큰 그림, 반전, 이런 맛을 좋아한다면 즐겁게 볼 수 있을 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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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그래"가 안 되는 이유
시오마치 코나 지음, 우민정 옮김, 유키 유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1. 요약 。。。。。。。

 

     ​끊임없는 야근과 스트레스, 과로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노동현실은 우리나 일본이나 큰 차이가 없나보다. 이 책은 그렇게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일하다가 극단적인 상황자살이나 질병, 과로사까지에 몰리게 된 이들을 위한 조언을 만화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사람이 너무 힘든 지경에 이르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고, 결국 극단적 상황에 치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런 상황에 이르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 사실 이미 1장에서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내용은 다 제시되고 있다.

     이후 장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징후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조건에 맞추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아직 괜찮아라고 생각할 때 판단하지 않으면 판단 그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들을 들면서 좀 더 버텨야 하는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이유들이라는 것도 대개는 관성이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요구들,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한 우려 같은 것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서 만들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결단이라는 것.

     물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다른 데에 간다고 딱히 나아질 것도 없으니, 자신의 경력과 평판을 위해서 라는 이유들은 나름 무게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위해서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다면,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잠시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고, 뒷담화를 듣더라도, 그 사람이 내 인생에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책임이나 성실이라는 덕목에 대한 집착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덕목들은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들이다. 관계설정이 심각하게 잘못된 상황에서, 한편만 일방적으로 책임과 성실, 신뢰를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결과적으로 애초에 원하는 유익한 결과를 내기 어려울뿐더러, 그저 자기만족으로 그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에서 이렇게 말해주어도, 막상 그 상황에 빠져버린 사람은 혼자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미 괜찮지 않은 상황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 들어가기 전, 수시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혼자가 쉽지 않으면 작은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어조가 부드러워서 마음이 간다. 비슷한 내용을 강력한 사회비판적 어조를 가지고 전달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뭔가 대단한 비판이나 분석을 하기 보다는, 철저하게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좀 더 치중한다. 평범하디 평범한 만화와 함께. 사실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식의 접근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당장 내 주변만 하더라도 거의 매일 같이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그 외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면서. 진작에 이 책을 알았다면, 한 권씩 선물해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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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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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주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인간을 너무 단순화해버린 데 있다고 본다. 소위 경제적 인간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세우고, 그런 인간들로 가득한 세상을 분석해 이론을 만들었다는 것. 잘못된 모델을 가지고 예측을 했다면 그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저자는 소위 경제적 결정이 낳은 각종 실패들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인간의 특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정확한 계산을 통한 예측에 근거해 결정을 하는 것인데, 통상 이런 특징들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렇게 경제적 인간의 범주에서 여성들이 제외되면서, 여성들이 해 왔던 여러 일들도 함께 경제적 예측에서 빠져버리게 되었다. 이는 단지 예측의 신뢰도에만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다시 경제 영역 전반에서 여성의 역할을 더욱 무시하는 재 강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저자는 경제학이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봐야 한다’(285)고 주장한다. 이 관계에 기초한 경제학에서는 경제적 인간대신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인간’(285)이 그 기본 요소이다. 그렇게 할 때 경제활동의 목표가 비로소 소유에서 편안함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런 경제학은 현재의 그것과 달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

 

 

2. 감상평 。。。。。。。

     현대의 경제학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의 절반 가까이가 굶주리고 있음에도 그 반대쪽에는 한 줌도 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부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이미 태초에 자본이 있었다는 식의 돈에 대한 숭배로 변질되어 버린 자본주의, 그보다 좀 더 큰 개념으로써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 책 이전에도 충분히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이 가지는 독특함은, 그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비판에 페미니즘적 성격을 가미했다는 점이다. 물론 기존의 주류 경제학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주장 역시 이미 많긴 하지만, 무게 중심이 약간 다른 느낌이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문제를 중심에 두고 경제학을 곁들인 것이 아니라, 기존 경제학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비판하면서 그 중 하나가 여성문제라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래서 중간 중간 나오는 여성문제 부분을 아예 빼고 읽어도, 충분히 전체 전개에 무리가 없을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문제 부분이 영 거슬리는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가 일할 때 그의 뒷바라지는 누가 해주었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경제적 기여 부분을 아주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사실, 사랑, 신뢰, 희생, 같은 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을 계속 남겨두고 싶다면, 그런 것들을 위해 헌신하는 행위에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엔 딱히 반대할 논리가 없다.(물론 이 때의 보상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어떻게 보면 이 책에 담긴 생각 역시 실제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말 모든 문제가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걸까. , 저자가 책 속에서 제기한 경제학에서의 여성 문제에 대한 대안이 어떤 건지 살짝 모호하다. 여성들이 그 동안 해 왔던 일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또 다른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건지
 

     ​전자의 경우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호의에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하고(ex. 이스라엘의 보육원 사례), 후자라면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그 일들을 어떻게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는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경제사상 비판서지만, 흥미로운 인문학적 통찰들이 몇 가지 눈에 들어온다. 경제학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끼는 방법에 대한 과학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나(20), ‘애초부터 경제학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살피는 학문이었다(22)는 지적은 특히 인상적이다. 확실히 오랫동안 언론사에서 일해 온 경력이 글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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