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북측 1호가 개성공단을 방문하던 날 쿠데타가 일어나고, 모종의 임무를 맡고 현장에 있었던 전직 정찰총국 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총상을 입은 1호를 데리고 남측으로 몸을 피한다. ‘1의 생사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정통성을 획득(혹은 조작)하지 못한 쿠데타 세력은 결국 남측과 미국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고, 이에 미국과 남한 정부 또한 정면 대결을 시사 하면서 상황은 극도의 불안정으로 치닫는다.

 

     임기 말 대통령의 (땜빵) 외교안보수석을 하고 있던 곽철우(곽도원)는 우연찮게 엄철우의 행적을 쫓게 되고, 1호를 카드로 한반도에서 벌어질 전쟁을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한반도를 두고, 중국과 미국, 그리고 보수와 진보 세력 간의 치열한 다툼 속에서 과연 전쟁이 막아질 것인가. , 쿠데타는 도대체 누가 일으킨 건가.

 

 

 

 

2. 감상평 。。。。 。。。

     얼마 전부터 동명의 웹툰이 다음웹툰에 연재되기 시작해서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드디어 개봉을 했다.(웹툰 상으로는 아직 북한 1호가 남쪽으로 내려오지도 못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려올지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배경으로 치열하게 벌어지는 머리싸움, 정치적 포지션에 따른 다른 입장들, 그리고 주변국들의 서로 다른 셈법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적절한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최첨단 무기들(사실 이 부분은 아직 퀄리티가 좀 아쉽다)까지 더해져있으니 오락영화로 선택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 영화를 그냥 즐기고 잊어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감독이 매우 꼼꼼하게 현실을 반영해 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복식이나 무기 같은 고증 면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한반도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해당사자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움직일지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돋보인다

 

     예를 들면, 보수정부의 대통령은 북한의 급변상황을 이용해 전격적으로 공세적인 무력사용을 하려고 하고(여기엔 다분히 정치적 이익을 고려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그런 보수정부를 지원하는 듯하다가 북한이 정말로 핵무기사용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이전과 같은 적극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중국은 어떤 쪽이든 이기고 남는 쪽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북한 내부 또한 다양한 입장들로 나뉘어 부딪힌다.

 

     ​영화는 이런 복잡한 입장들을 하나하나 살펴 가면서 보는 맛이 있다. 물론 그러는 동안 두 주인공은 지속적으로 위기과 곤혹스러운 상황들을 마주해야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만 영화의 중후반 북한의 특수공작원들이 병원을 습격하는 장면은 좀 과장된 면이 많았고, 결말부는 조금 더 뭔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감독은 거창하게 민족애라든지, 통일의 당위성 같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쟁의 위기가 민족애로 극복되겠는가. 대신 가족을 떠올리고, 자신과 비슷한 파트너(어쩌면 친구)를 떠올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떠올린다. 어쩌면 이런 부분을 통해 작품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 불안한 상황을 해소시킬 수 있는 비결은 진정성 있는 만남에서 나올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한 대사처럼, 우리는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에 의해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심지어 선거를 앞두고 북측에 비밀리 접촉해 남쪽을 향해 총격을 가해달라고 요청한 덜 떨어진 정치세력까지 있었으니 뭐 말 다했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왔기에 분명 생각하는 길 자체가 다르게 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말과 돼지에게 대화를 신청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조건 벽을 쌓고 상대를 향해 고함만 치는 건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

 

 

     곽도원의 연기력이 폭발한다. 파트너였던 정우성도 그 못지않고. 볼만 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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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노란가방 2017-12-22 22:37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다시 달인리스트에 오르셨네요.
저는 딱히 교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좋은 글도 많지 않은데
그냥 물량(?)으로 매번 턱걸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행복한 사전
이시이 유야 감독, 오다기리 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1995년 일본의 한 출판사. 몇 년 째 변변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사전편찬부에서 갑자기 결원이 발생했고, 그 자리에 영업에는 영 소질이 없는 영업부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가 옮겨 온다.

 

     사람들 앞에서는 제대로 말도 못하는 마지메의 유일한 취미는 퇴근 후 하숙집 자신의 방에 들어와 책을 보는 것. 그런 그가 사전제작의 묘미에 조금씩 빠져 들어간다. 쉴 새 없이 단어들을 채집하고, 그것을 통해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전을 만들어 가는 일에서 주인공 마지메도 점차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한다. 마치 사전을 완성하면 그 자신도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될 것처럼 매달리는 마지메.

 

     그리고 그 즈음 10년 넘게 하숙을 하던 주인집 할머니의 손녀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가 나타났으니.. 다른 사람과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는 마지메에게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맡겨진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풀이.

사전의 완성과 사랑의 완성은 과연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

 

     사전 제작이라는 상상치도 못한 소재를 가지고 영화까지 만들어 냈다. 정말 일본영화의 소재라는 건 다양하기도 하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뭔가 의미를 이끌어내는 식의 전개는 상당히 익숙한 구조이긴 하지만, 그게 또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개성을 발하니...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수십 만 개의 단어와 그 의미를 풀어서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뭔가를 보존하려는 사명감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학문적 열정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감독은 사전을 소통을 위한 도구로 정의한다. 영화 속 사전의 이름인 대도해도 큰 바다를 건너는 배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넓은 틈을 메우고 연결시켜주겠다는 포부를 가리킨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의미부여랄까.

 

     영화의 구조로 보면, 사전을 만들어 가는 일과 카구야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마지메의 도전이 병렬구조를 이루면서 앞서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사전을 만드는 일 =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일이다. 카구야와 마지메 커플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전 제작에 함께 참여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두터워지는 에피소드도 덧붙여놓고 있다.

 

 

 

 

     생각해 볼만한 부분 중 하나는 사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 영화 속 시간으로도 족히 14년이나 걸린 이 작업은, 현대의 말을 많이 담아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얼마나 기능할까 싶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예컨대 구리다와 같은 시중언어가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사전에 수록될 만큼 의미 있는 단어일까. 영화 속 마지메가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여고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집한 각종 축약어들은 15년 뒤에도 사용되고 있을까.

 

      말이라는 게 10년이면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텐데,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은 현대어 사전15년 뒤에도 현대어일지 모르겠다. 뭐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애초에 시도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21세기에 일본에 가겠다고 판옥선을 만들 필요는 없는 거니까.

 

 

     얼마 전에 사무실 책장을 정리하다가 몇 권이나 되는 사전류를 모두 내다 버렸다. 사실 웬만한 건 휴대폰 검색으로 금세 그 의미가 나오는데다, 보다 자세한 어의도 지면의 제약이 없는 웹 쪽이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사전제작은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이제 이 쪽은 거의 사양산업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익숙한 무엇이 사라진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뭐 그게 또 시대의 변화라면 따라가는 수밖에.

 

     그저 나이를 먹는다고 다 말을 제대로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고 사용하는 건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만약 영화 속 시간이 계속 흐른다고 한다면, ‘대도해는 다시 10년이 흐른 오늘엔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 궁금하다. 마지메와 그의 동료들은 또 다른 종이사전을 출판하기 위해 단어를 채집하고 있을까? 아니면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을 찾아냈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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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재밌게 봤어요.
대단하죠? 사전 편찬이란 작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없으라는 법 없는데 암튼 소재가 특이한 것 같아요.
저 남자 주인공 딱 사전 편찬하기 좋게 생겼죠.ㅋ

성탄절 주간이라 바쁘겠어요.
모쪼록 성도들과 함께 뜻깊은 성탄 보내시고,
한해 마무리 잘 하십시오.
저는 지난 여름 노란가방님 교회 가 볼 수 있었다는 게
올해를 보내면서 기억에 남는 좋은 일이 됐어요.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하구요,
내년에도 힘차게 뛰시는 복된 한 해 되기 바랍니다.
바라는 소망도 다 이루시고.^^

노란가방 2017-12-20 14:53   좋아요 0 | URL
일본 영화의 소재라는 게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싶었던 생각이 많이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ㅎㅎㅎ

네.. 지금 연말에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어서, 사 놓은 책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 있네요..ㅋㅋ (근데 이게 연말이라 바쁜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행복한 2018년 되시길 빕니다~
 
오독 - 문학 비평의 실험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22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일반적으로 어떤 작품이 좋고 나쁨은 소수의 평론가들에 좌우되곤 한다. 그들이 어떤 책을 좋다고 말하면 좋은 책이고, ‘나쁘다고 말하면 나쁜 책이 되는 셈이다. 이 때 좋은 책을 읽는 사람은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이고, ‘나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수준이 낮은) 독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정한 책으로의 쏠림이 유행처럼 일어나게 된다. 특히 요즘 같으면 방송에 나와서 누가 좋다고 한 마디를 하면 단번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이왕이면 좋은 책을 보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실제로는 막상 읽어봐도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잘 와 닿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대체 그분들은 뭘 보고 어떤 책의 좋음과 나쁨을 평가하는 건가.

 

      루이스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대표적인 부분은, 소위 평론가들의 비평 기준이라는 것이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이다. 특정한 양식을 잘 따랐는지,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지, (혹은 그냥 자신과 친하든지) 하는 것들은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준이 적절치 못하니 어제는 혹평을 받았던 작가들이 내일은 호평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일들도 쉽게 발견되곤 한다.

 

     이에 루이스는 독자들이 작품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그 책이 좋은 책인지를 평가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어떤 책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넓혀주는 경험을 유발시킨다면, 그 작품은 좋은 문학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존의 비평이 마치 삼각형의 산()처럼 소수의 비평가들의 평가가 일반 독자들을 지배하는 식이라면, 루이스가 제시하는 방식은 깔때기 모양()처럼, 많은 독자들의 독서형태를 통해 좋은 책을 더듬어 가는 식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으로 작품에 다가가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온전히 경험해 보기 전에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제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품은 유명인 한 명이 추천한다고 해서, 저명한 인사가 한 마디 더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출판사 입장에서는 아찔한 일일지도.) 루이스는 차라리 비평을 십 년이나 이십 년 정도 끊어 볼 것을 제안하기까지 한다(162). 이런 차원에서 이 책은 좋은 비평을 제안하는 책이면서, 좋은 독서의 방식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2. 감상평 。。。。。。。

 

     전에 동문선에서 문학비평에서의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을, 홍성사에서 새로 번역해 냈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아마도 판권 시효가 다 되어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듯하다. 물론 이건 법적 절차가 그랬다는 것이고, 이미 나온 책을 다시 번역해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유가(혹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럼, C. S. 루이스의 책 아닌가!)

 

     번역을 새로 하면서 이해도도 확실히 높아졌다. 같은 문장도 이렇게 다르게 번역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같은 책에 관해 내가 앞서 남긴 감상평을 다시 읽어 보니, 책의 내용에 대한 요약에서부터 좀 많이 다르다. (물론 이건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내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서 요약의 말미에도 남겼듯, 이 책은 비평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서법에 관한 책이기도 한 것 같다. 루이스는 반복해서 마음을 열고 어떤 작품을 받아들여야만 그것이 정말로 좋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그의 시대에도 전문적인 비평가들의 의견만 취하면서 정작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해 본 바가 전혀 없는 이들이 많았던 듯하다. 심지어 문학 전공자 안에서도 말이다.

 

     왠지.. 대입을 준비한다고 온갖 명작 요약집을 손에 들고 사는(혹은 그런 핵심요약 강의를 수강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오버랩 된다. 그렇게 나쁜 독서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에는 좋은 책을 좋은 방식으로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어쩌면 우리나라 독서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누군가의 추천, 전문가의 소개, 설명이 없이는 스스로 독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비단 독서만이 아니라 생활 속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결정권을 전문가들에게 넘겨버리는 게으름을 보이곤 한다. 다분히 조작된 이런 사고의 결과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권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둔 것 뿐.

 

     얼마 전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평범한 일반인들을 모아 공론화위원회를 만들고 결정을 내렸던 적이 있다. 그 때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선 이들이 입에 달고 다녔던 비난 중 하나가 그런 일을 왜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일반인들이 판단하느냐는 것이었다

 

     학생 시절부터 무슨 교수니, 무슨 비평가니 하는 사람의 말만 달달 외우며 살아온 이들에게 인이 박힌 사고다. 모두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공업화시대에야 나름 기능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과연 그런 식으로 판단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비전이나 희망이 있긴 한 걸까. 하물며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이 즈음에 말이다.

 

 

     책을 잘 읽는 것, 나아가 좋은 책을 좋은 방식으로 읽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길인 것 같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좋은) 독서는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을 게다. 그건 단순히 지식을 뇌에 저장하는 작업 이상의 행위니까

 

     책은 많이 보지만, 그 안으로 좀처럼 깊이 들어가지도, 책이 열어주는 새로운 시야나 비전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 아니 그냥 책을 (제대로) 읽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먹은 사람에게도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아주 좋은 조언이 될 것 같다. (물론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기독교 변증가로서의 루이스에게만 익숙한 독자에게는, 잠시 루이스와 함께 그의 강의실 나들이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을 줄만한 책이다. 영문학자 루이스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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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1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플이 추천 소개하는 책들(‘추천 마법사‘),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되는 책들은 거의 비슷해요. 어떤 분은 알라딘 책 소개를 복사해서 붙여넣는데, 책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게으름이라고 생각해요. 신간도서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 없이 신간 소개를 하는 알라디너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분들을 통해 책 정보를 접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어요. 인지도 높은 알라디너의 리뷰나 책 소개글만 찾아보면 책을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어요. 이 책을 비판하는 다른 알라디너, 독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리뷰도 있는데, 그런 글들은 ‘화제의 서재글‘에 노출되지 않는 편입니다.

노란가방 2017-12-19 10:46   좋아요 0 | URL
방송이며 언론이며 책 이야기가 나오면서 독서인구가 늘고 있는 것 같긴 한데(제 주변만 봐도), 문학적인 책읽기가 잘 되고 있는 건 아닌 듯 합니다.
즐거움으로써 책 읽기가 아니라 임무로서의 책 읽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요.

책도 안 읽고 어떻게 신간 소개를 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ㅋ
왜 굳이 그렇게 하는지도.. 뭔가 이익이 있는 걸까요..

‘이 책을 비판하는 리뷰‘라는 부분에서 ‘이 책‘은 ˝오독˝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읽어보려고 했는데 알라딘에 리뷰는 제 것까지 두 개밖에 없어서..
동의하지 않더라도 타당한 반론이나 비판을 잘 접하는 건 중요한 일인 듯합니다.

cyrus 2017-12-19 12:15   좋아요 0 | URL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도서가 포함된 ‘페이퍼’가 좋아요 수 다섯 개 이상 받으면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됩니다. 아무래도 이런 글들이 책을 사려는 고객들의 눈에 잘 들어옵니다. 고객들은 신간도서를 구입하면 ‘땡스투 적립금’을 누릅니다. 책 구매자는 ‘땡스투 적립금’을 받지 못하지만, ‘구매에 도움 되는 글을 쓴 작성자’는 적립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간도서 위주로 소개된 페이퍼는 ‘땡스투 적립금’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문제는 신간도서 페이퍼의 내용이 빈약해요. 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알라딘 책 소개 내용을 버젓이 복사해서 인용하는 페이퍼가 많습니다. 원래 알라딘 글쓰기 법 규정상 알라딘 책 소개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것도 ‘무단 도용’입니다. 그런데 알라딘의 제재는 소극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페이퍼가 많아져야 책 구매율이 오르거든요.

‘이 책을 비판하는 리뷰’에서 ‘이 책’은 신간도서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쓴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읽는 이에게 혼동을 주는 표현을 썼군요. ^^;;

노란가방 2017-12-19 15:51   좋아요 0 | URL
땡스투 적립금을 노리기 위한 작전이었던 건가요.
그거 권당 얼마 들어오지도 않던데
엄청 누르면 또 쏠쏠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저는 책을 많이 사서 마일리지를 쌓는 쪽을.)

책 소개글을 옮겨 적는 거야.. 출판사 입장에서는 홍보가 될테니 적극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건 이해가 되네요. 어찌됐건 노출이 많이 되어야 팔리는 책도 늘어날 테니까요.
다만 말씀하신 것 같은 빈약한 내용의 글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추천글에 올라가도록 하는 건, 알라딘의 시스템 문제인 것 같네요. 그러다 보면 점점 추천글 자체에 대한 주목도도 낮아질텐데 말이에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은 어디서나 발견되는군요!
 
나를 찾아줘 : 일반판
데이빗 핀처 감독, 벤 애플렉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한 모임에서 처음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진 닉과 에이미. 얼마 후 결혼에 성공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완벽한 이상형을 발견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5년 후,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 아침. 닉은 동생 도나가 운영하는 술집에 무거운 표정으로 와 앉는다. 결혼기념일에.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이유도 모르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완벽한 짝일 것 같았던 두 사람 사이에 드리운 그림자..

     얼마 후 집에 돌아온 닉은, 아내 에이미가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된다. 아내의 실종신고에 따라 곧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들. 수사가 진행되면서 영화는 에이미가 쓴 일기장을 근거로 둘 사이의 지난 이야기들을 묘사한다. 그 곳에는 실직과 함께 변해버린 닉과 그 모습에 실망하고 두려워하는 에이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시간 반짜리 영화에는 대 반전이 있었으니...

   

 

 

2. 감상평 。。。。 。。。

     본격 결혼에 회의가 들게 만드는 영화. 서로에게서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커플이 점점 상대에게 실망을 느끼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아내의 실종사건이라는 스릴러로 풀어내는 감독의 방식이 신선하기는 했다. 사실 그냥 평범한 가정불화와 감정싸움으로 지루하게 그려질 수도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 매우 강렬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성공한다. 물론 여기에는 극중 에이미의 대담한 계획이 중심에 있었으니..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무엇이 이 커플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단순한 성격차이, 결혼 전에 몰랐던 상대의 본성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사람 사이의 문제는 정말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부터도 커지긴 하니까. 그런데 감독은 문제의 시작지점에 실직이라는 요소를 배치한다. 두 사람 사이의 약한 고리에 균열을 일으키는 경제적 문제. 영화 속에서는 가볍게 두세 차례에 걸쳐 언급될 뿐이지만, 어쩌면 그 문제는 생각보다 컸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두 사람은 2000년대 중후반에 만나 결혼을 한다. 그리고 2007년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극심한 불황으로 몰아넣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빚더미에 몰렸고, 직장을 잃었다. 아마도 이 즈음 닉과 에이미도 직장을 잃고 경제적 문제를 겪게 된 듯하고,(에이미의 부모는 출판사와의 문제 때문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된다) 두 사람이 닉의 고향집으로 돌아온 이유도 어쩌면 그것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사태 이후로 수많은 가정들이 깨지고, 사회 전반의 연대의식도 약화되어 버렸다.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가 확산되면서 전반적인 노동의 질은 악화되었고, 작아져버린 파이를 서로 더 차지하기 위해 비슷한 이들끼리 싸우는 일도 빈번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워졌다고 해서 늘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시기는 좀 더 단단히 서로 힘을 합치고 버텨나가는 게 답이다. 죽자고 서로를 공격하고 빼앗으려 하다보면 결국 모두가 함께 망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 아니던가.

     하지만 영화 속 에이미와 닉은 불행히도 후자를 택해버렸다. 닉은 에이미를 속이고, 에이미는 닉에게 복수하기 위해 엄청난 계획을 꾸미지만, 그 마저 끊임없이 속으면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이 끔찍한 일을 경험하면서도, 영화 속 두 사람은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는 허무한 대사를 읊조릴 뿐이다.

 

     분명 영화 속 등장하는 싸움은 평범치 않다.(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 있는 사건들 못지않게,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 역시 과장되어 있긴 마찬가지다. 싸움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방식은 존재한다. 결혼은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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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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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종교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종교가 마치 만 악의 근원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정말 종교만 없어지면 그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질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봤자 종교적인 악을 비종교적인 악으로 대체하는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53) 실제로 우리는 스탈린과 모택동, 크메르 정권 등 20세기 가장 압제적인 체제가 무신론을 기초로 해 있음을 보아오지 않았던가.(52)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책에서 저자가 꼽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소비주의와 사명주의다. 전자는 신을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태도이고, 후자는 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함으로써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저자는 기독교가 담고 있는 핵심은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에 있다고 단언한다.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신을 갈망하는 것에서, 그분과의 관계 자체에서 누리는 안정감과 채워짐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vs 소비주의) 이런 삶은 특정한 삶의 형태로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에 모든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vs 사명주의) 

 

 

2. 감상평 。。。。。。。

 

     물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무엇을 대체재로 삼으려 해왔으니까. 눈이 밝은 이들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질을 정확히 지적해 내곤 했다. 꼭 이 책에 나온 소비주의와 사명주의가 아니더라도, 교회 안에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세상의 흔적이 적지 않다.

 

     저자는 사람들이 종교를 이런 식으로 변질시키는 주된 동인을 삶을 안전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꼽는데, 아주 인상적인 지적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란 그렇게 삶을 통제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모아온 과정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강렬한 욕망은 모든 것을(종교마저)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하지만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기아문제와 환경오염, 빈부격차와 차별이다)

 

     애초부터 통제가 안 되는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요컨대 엉뚱한 데서 해결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데나 열심히 땅을 판다고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애쓴다고 해서 늘 답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그분이 등장한다. 그분은 우리의 방식대로 일하시지 않지만, 그분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참된 위안과 안정감을 부여해 주신다. 그분 곁에 왔던 사람들이 그것들을 얻었고, 그분 자신은 죽음마저 흔들지 못할 완벽한 신뢰와 안정감을 누리셨다. 그분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다만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삶을 맡길 때, 원하던 것을 (어쩌면 미처 원하지도 못했던 것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의 모든 양상을 다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핵심 중 일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 가치를 딱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는 책.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다. 루이스가 말했듯, 좋은 책은 몇 번을 읽어도 좋은 법이니까. 주변에 권해줘도 좋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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