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에 본 책과 영화


영화 몇 편 본 걸 빼면 딱히 본 게 없는..

3월엔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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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아프리카의 최빈국 와칸다 왕국. 하지만 그 왕국엔 비밀이 있었으니.. 비브라늄이라는 강도도 높고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광물이 잔뜩 매장되어 있었던 것. 오래 전부터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놀라운 수준의 과학문명을 건설했지만, 외부세계와 차단한 채 최빈국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런 앙큼한..)

 

      시리즈 전편의 테러로 유엔 연설 중이었던 와칸다의 왕이 사망하면서 그 아들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동시에 검은 영웅 블랙 팬서의 자리도 이어받게 된다. 비브라늄을 훔쳐낸 범죄자를 쫓다가 부산까지 왔다 간 와찰라의 뒤를 따라, 그의 왕위를 위협하는 경쟁자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나타난다.

 

     와칸다의 왕위를 두고 벌이는 양측의 대립.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블랙 팬서와 그의 나라 이야기. (아래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일부 담겨 있으니 주의)

 

 

 

 

2. 감상평 。。。。。。。

 

     우리나라에서 꽤나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마블사의 영웅 시리즈의 최신판. 경쟁사라 할 수 있는 DC가 요새 좀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전하고 있다면, 마블 쪽은 전반적으로 가벼운 터치에, 시시껄렁한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캐릭터들이 포진되어 있는 오락성 강한 작품들을 내놓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오히려 DC 쪽에 가까운 분위기랄까 뭐 그런 게 느껴진다. 사실 영화 속에 다른 히어로들도 나오지 않아서 그냥 배트맨, 슈퍼맨과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와칸다의 새 왕이자 블랙 팬서가 된 티찰라는 영화 내내 혼자 고민에 빠져 있다. 그 주요 원인은 티찰라의 아버지이자 선왕이 급진적 흑인해방운동에 빠져 비브라늄을 빼돌려 흑인들을 무장시키려고 했던 동생을 죽이고, 그의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남겨졌던 어린 아이가 자라서, 이제 티찰라의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돌아오게 된 것. 분명 왕위의 경쟁자이지만, 쉽게 그를 내치지 못하는 건 이런 충격과 그에 따른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티찰라가 충격을 받은 포인트가, 살인(혹은 처형)이 아니라 아동유기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삼촌을 죽인 행위가 아닌 사촌을 버려두고 온 부분을 따지고 항의하며, 자신의 책임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아프리카적 사고라기보다는 미국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헛웃음이 났다.(물론 아동유기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식 개인주의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히 아동을 방치한 것은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성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아프리카-아시아적 사고에서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희생은 어느 정도 감수되어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극중 와칸다 왕국은 전형적인 아프리카 국가이고, 티찰라 역시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하는 고민은 미국인으로서 하는 고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어색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겉모습과 속 내용 사이의 괴리는 비단 이런 부분만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흥미 포인트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정말 영화 속 부산 시장의 모습은 정말 꼭 우리나라의 어느 동네의 모습인 것처럼 실감이 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촬영한 건 아니고, 세트였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전국 그 어느 지방 못지않게 농익은 사투리를 쓰는 게 어울릴 것 같은 그 장면에서, 티찰라 일행을 만난 상인 아주머니의 대사는 우리말을 겨우 읽어내는 외국인의 발음이었다는 점은 얼마나 아쉬운가. 교포 2, 3세나 배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난 그 장면에서 얼굴은 사람 같은데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만 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공들여 쌓은 세트가 대사처리로 무너진 달까.

 

 

 

 

     인종차별, 흑인해방이라는 의미를 영화 속에 넣으려고 했던 것 자체는 좋다. 다만 그게 적절한 설정 속에서 나오는 의미였는가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블랙 팬서의 첫 단독 영화에서, 티찰라의 성장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면, 배경인 아프리카의 정서를 좀 더 연구해야 했지 않을까.

 

     ​난 아직도 티찰라가 정당한 대결에서 패배하고도 승복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무장봉기를 통해 왕위를 빼앗은 이야기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가 싶다. 산 속에 사는 늑대부족의 족장에게 찾아서가 티찰라의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외부자에게 왕위가 빼앗겼으니 차라리 네가 가서 왕이 되어라’. 이건 외부인 혐오는 아닐까? 심지어 그 외부인의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와칸다 사람인데. (티찰라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다 발생한 논리적 모순이다)

 

 

     여러 모로 부족한 설정이 눈에 많이 띄었던 영화. 그냥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게 이 시리즈엔 더 잘 어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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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지음,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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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고고학의 발전으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 이야기들과 유사한 인근 문명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의 기록이 그런 인근 지역의 신화들에서 파생된, 혹은 표절된 아류기록이라고 본다는 것. (이 책에 의하면 심지어 후대에 기록된 인근 기록이 이전에 기록된 성서의 기록의 원조라고까지..)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본다. 물론 성서의 기록자들이 인근의 신화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들의 기록에 인근 문화의 요소들이 일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그건 성서 기록자들의 기록들과 인근 기록들의 차이점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성서의 기록자들이 의도적으로 외부의 이야기와 표현들을 가져왔으며, 이는 성서의 하나님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 안에서 이방의 신들은 의도적으로 약화되어 있고, 인근 문화에서 그들의 신에게 돌려지던 능력과 영광은 성경 속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논쟁신학적 목적이라는 것.

 

     책의 주요 내용의 대부분은 이른바 창조 이야기부터 홍수 기사, 요셉,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 등 다양한 이야기 등을 통해 논쟁신학이 어떤 식으로 실제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2. 감상평 。。。。。。。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서와 인근 고대 문명의 신화, 기록들 사이의 유사성을 두고 주로 성경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던 논의에, 일종의 전환지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양측의 공통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점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하고 있고, 이는 막연히 사상의 진화론적 전제를 고수하면서 별다른 증거도 없이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했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좀 더 학문적으로 보인다.

 

     다만 책이 뭘 말하려는지 주제 파악은 일찌감치 끝났는데, 정작 본문에 들어가서도 앞서의 설명했던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물론 앞서의 주장을 실제 본문들 가운데서 입증하기 위해 예를 제시하는 부분이기에, 주제의 반복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주제의 발전을 보여주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 만한 내용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꼭 완성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방의 신화가 이스라엘의 사실이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덧. 번역은 대체로 괜찮게 되었는데 88페이지 표의 가장 마지막 단의 표현이 거슬린다. “야웨가 노아를 축복한다는 문장인데, ‘축복복을 빈다는 뜻이다. 비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소원을 듣고 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야웨가 그보다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빌어서 노아에게 내리도록 한다는 뜻인데, 이건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영어의 bless를 번역할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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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건방진 캥거루에 관한 고찰
마크 우베 클링 지음, 채민정 옮김, 안병현 그림 / 윌컴퍼니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어느 날 옆집에 캥거루가 이사 왔다. 애완용 캥거루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캥거루가. 이 무슨 말이 안 되는 소린가 싶겠지만, 뭐 소설인데 어떤가. 처음엔 인사를, 그리고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빌리기 위해, 나중엔 아예 자기 짐을 싸 들고 넘어온 캥거루와의 동거가 그렇게 시작된다.

 

     이사까지 온 캥거루니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 소설은 그렇게 화자인 나 우베 클링(이 소설의 작가 이름이기도 하다)과 캥거루 사이의 지치지 않는 논쟁 섞인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꽤나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의회니 공식적 권위 체계 또한 부정하는(이쯤 되면 거의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 캥거루의 신랄한 조롱과 풍자가 소설을 가득 채운다.

 

 

2. 감상평 。。。。。。。

 

     초반부터 약간은 어이없는 설정이 만들어지면서,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일지 제법 궁금해졌다. 말하는 캥거루가 옆집에 이사 오다니. 사실 소설은 캥거루와 나의 대화를 통해 현대 독일사회를 감싸고 있는 여러 가지 견고한 껍질들을 벗겨 내거나 균열을 만들어 내는 게 소설의 주요 내용

 

     독일에선 제법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라지만, 이게 얼마나 우리 상황에도 울림을 일으킬 수 있을까 싶은 부분은 있다. 독일 사회와 우리 사회의 차이가 제법 나기도 하고, 캥거루가 사용하는 식의 공격적 논법이 썩 설득력이나 진정성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냥 걸리는 건 다 까고 보다는 모두까지 정신은 자칫 자기모순, 자기부정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작품 속 캥거루도 몇 번 그런 지점에 이르지만 그 때마다 대충 펀치를 날리며 얼버무린다.

 

 

     책 속 문장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시끄러움, 번잡함이 귀와 머리를 어지럽힌다. 조롱은 마음대로지만 남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거니까. 딱히 인상적이지 못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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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늘 참고 양보하는 게 삶이였던 택배기사 건우(강동원). 어느 날 학창시절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온다. 아무 의심 없이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건우에게, 친구가 말한다. 어서 도망가라고. 잡히지 말고 살라고. 그 순간 인근의 유력 대선후보가 탄 차량이 폭발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건우를 쫓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른 채로 도망치기 시작한 건우. 친구의 옛 동료였다는 민씨(김의성)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도망은 다니고 있지만, 사방에서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와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무엇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천성이 선해 의심할 줄 몰랐던 건우로서는 가장 괴롭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를 이런 위기에 빠뜨리는 걸까. 이 거대한 음모에서 건우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답답한 표정이 짜증났다 

 

 

2. 감상평 。。。。 。。。

 

     동명의 일본 영화를 몇 해 전 본 적이 있다. 사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일부러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역시 리메이크 작품이었다. 제법 여러 작품들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사카이 마사토가 주인공 역을 맡았었는데, 연기력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캐릭터의 문제였는지(역시 주인공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의심하지 않고, 당하면서도 원망조차 못하는 답답한 캐릭터다) 시종일관 억울하면서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만 짓다가 끝난 느낌이었다.

 

 

이것이 일본판 주인공 사카이 마사토의 억울한 표정

(위의 강동원의 표정과 비교해보자)

 

     그런데 이 리메이크작의 주인공 강동원도 딱 사카이 마사토의 표정과 연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 이런. 주인공이 이렇게 어수룩한 표정만 반복하고 있으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답답함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답답함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이젠 화가 나기도 하고.

 

      물론 일본 작품보다 강동원의 추격전이 좀 더 익사이팅 했다는 건 인정한다. 일본의 그것은 웬 추격전 중에 경치 감상까지 들어가는 어이없는 장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적어도 그런 식의 여유부리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물론 영화 군데군데 굳이 회상 장면을 우겨 넣으면서 긴장을 떨어뜨리는 장면들이 수두룩하긴 하지만, 뭐 찰나의 순간에도 수없는 생각이 떠오르는 게 사람이니까, 영화의 구성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있어도 그 부분이 영 사실성을 떨어뜨린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친구들은 왜 그렇게 강력하게 건우를 믿었을까 

 

 

      다만 영화의 방향성이 애매하다는 건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 사실 이 영화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시작해, 결국엔 친구의 이야기로 끝난다. 근데 이 둘이 이런 식으로 어울리기도 하는 게 맞나? 내가 보기엔 음모라기엔 좀 더 치밀한 설명이 필요했고, 향수라기엔 친구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거의 완벽한 수준의 증거조작이 이루어지고, 옛 친구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보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 이토록 순진무구하게 의심 없이 믿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오랜만에 만났으면서도 강한 신뢰로 묶여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사실 애초부터 음모 쪽은 중심이 아니었으니)

 

 

     극 초반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윤계상이나, 화사한 미오의 한효주, 간만에 주인공 편에 서서 매력을 발휘한 김의성 같은 주변 인물이 훨씬 더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잘 생긴 강동원이라고 해도, 이렇게 어색한 표정만 반복하고 있으면 매력이 반감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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