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영상에서는 칼뱅주의와 정치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 

■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정치관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특히 이즈음 한국교회의 상황과도 많이 연결되는 것 같았던 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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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 2장 읽기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주제입니다.

개혁주의, 칼뱅주의 참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교회가 개혁주의적으로 운영되는지에도 그런 관심을 두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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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어질.


영화는 범죄 추적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는 우상(강하늘)의 방송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장을 빼 입고, 조금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마치 전문 프로파일러처럼 방송을 하지만, 영화 내내 그의 진짜 스펙이라든지, 자격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밝혀진 바가 없다. 사실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게 다들 그런 식이긴 하지만.


최근 발생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방송을 시작한 우상은, 나름 여러 조사들 끝에 조금씩 범인의 활동 범위를 특정해 나가고 있었는데, 여기에 함께 했던 여성 스트리머 한 명이 갑자기 납치가 되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 제한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여성을 살해하겠다는 연쇄살인범. 우상은 그를 쫓기 위해 카메라를 켜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는데, 감독은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우상의 방송 화면으로 채운다.


덕분에 영상은 꽤나 흔들리는 느낌이다. 실제로 흔들렸는지, 시종일관 여기저기 들쑤시며 뛰어다니는 덕분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어질어질하다. 내용도 허술하고, 범행의 동기랄 것도 허접하고, 범인과 주인공이 얼굴을 마주하는 데도 별다른 긴장감 따위는 없다. 애초에 일개 스트리머가 연쇄살인범을 금세 추적할 수 있는데, 경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범인을 추격하면서도 실시간 방송을 끄지 않고 있는 건 상대방에게 내 패를 다 까고 자기를 두겠다는 건데, 이쯤 되면 그냥 멍청한 거다.





선정성.


영화 속 스트리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튜버나, 틱토커 기타 등등..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히 경쟁도 심해지고, 서로 더 눈에 띄기 위한 소재와 영상을 꾸며대는 데 집중한다. 여기에 영화 속 우상이 활동하는 플랫폼에서는 최고 추천을 받은 스트리머에게는 50%에 달하는 플랫폼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이런 흐름을 강화시킨다. 점점 선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그렇게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영상일수록, 이야기의 맥락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승전-노출이라든지, 이른바 사이버래카라고 불리는 무차별 무지성 폭로 콘텐츠 같은 것들이 범람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예 작정하고 협박 같은 범죄까지 저지르는 이들이 있으니..


뭐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나 쓰레기들이 쌓일 수밖에 없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온라인 공간에 쌓이는 이런 쓰레기들은 종종 사람들까지 위협하니 더 문제다(아, 오프라인 공간의 쓰레기도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건 마찬가지인가). 다만 영화 속에는 이런 문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 자체도 그런 선정성에만 집중하는 느낌이니까.





솔직히 이야기 하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강하늘은 나름 젊은 배우치고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워낙 캐릭터 자체가 허접하고, 허세로 가득 차 있는, 좀처럼 몰입하기 어려웠던 지라 연기력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조연이나 주조연급 배우들도 얼굴이 그리 익지 않아서인지 연기가 훌륭하다는 느낌도 별로 없고. 이쯤 되면 솔직히 그냥 시간 때우기 용, 혹은 콘텐츠 목록 늘리기용 영상물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주제 의식 자체가 삐뚤어져 있거나, 혐오감을 주는 지경까지는 아니다. 그냥 평범에 지루함이 조금 섞인 수준. 뭐 일단 재생해 놓고 다른 일을 하는 식으로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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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나를 도와주기 전에는 신학서적을 읽어도 말짱 헛일이었다.

성경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 권의 문학작품이 나의 상상력을 일깨운 다음에야

내 마음은 이성보다 더 큰 맥락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교가 옳다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논리적 증거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논리적 증거가 아니라 보는 눈이 필요했다.

나는 문학이 변화를 가져오는 방식,

즉 이야기와 이미지와 상징으로 변화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복음의 단순한 진리들을 볼 수 있었다.


오스 기니스, 『고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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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등급도 장애인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를 반영하지 못하듯

질병의 이름 역시 환자가 겪는 고통의 크기를 정해 주지 않는다.

질병과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자세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동반될 때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질병과 장애를 등급으로 예단하려는 오만은 위험하다.

- 황승택, 『다시 말해 줄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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