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저자의 책을 대여섯 권 읽어보면, 이제 그 저자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확실히 잡히곤 한다. 앞으로 그 저자가 쓴 책을 계속 찾아볼지, 아니면 이제 그만 보는 게 나을지. 나에게 이 책의 저자인 후스토 곤잘레스는 믿고 봐도 좋은 교회사 관련 저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 읽고 말게 아니라 구입해서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봐야할 책을 내 주는 인물이다.
곤잘레스의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좋은 정리다. 교회사라는 방대한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콕 집어내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학술 연구자들은 좀 더 방대한 배경자료들이 필요하겠지만, 나 같은 일반 독자에게 그런 것까지는 필요 없으니까.(필립 샤프의 방대한 전집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이유다.)
또, 이런 자료들을 그저 늘어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읽기 쉽게 풀어놓는 재주도 가진 작가다. 여기엔 과도한 찬탄이나 탄성이 들리지 않고, 역사가로서 가능한 객관적인(물론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객관성 따위는 없다) 서술을 담담하게 해 나간다는 점도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게 해 주는 부분이다.
이 책은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에 관한 내용이다. 제목이 좀 딱딱해서, 또 교리라는 것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왠지 무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다. 물론 이 책이 무슨 무협지나 SF소설처럼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에,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꽤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쓰였다.
이 책의 특징은 연대기적 서술을 하면서도 동시에 주제별로 통시적인 관찰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열한 가지의 신학 주제들을 배치하는 데, 그 순서가 교회의 역사에서 그 주제를 다룬 순서를 따른다. 이건 어떤 신학 논의가 등장하게 된 이유와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각각의 주제들을 서술하면서는 단지 그것이 처음 나왔을 때의 논의만이 아니라 중세, 근대, 현대의 논의까지를 아울러 설명현서, 주제에 대한 좀 더 복합적인 이해를 돕는다.
기본적으로 이런 구성만으로도 어느 정도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이게 말은 쉽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니까. 2천 년 기독교 신학의 전반적인 흐름에 관해 폭과 깊이를 두루 갖춘 괜찮은 교양서적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이 2천 년이라는 역사와 전통 위에 서 있지만,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기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 온갖 허접하고 허술한 진술과 스스로는 기발하다고 우쭐대나 실은 이미 이단적이라고 밝혀진 얄팍한 사고들이다. 또, 현재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진술들이 신학 역사에서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몇몇 인물들로 소급될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게 절대적인 진리인 양 착각하기도 하고.
또, 저자는 교리란 우리가 절대적으로 지키고 따라야 할 무엇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야구 경기의 파울선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선을 넘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는 무효타인 거고, 그 안에 있어야 유효한, 하지만 일단 그 라인 안에만 있으면 수없이 다양한 상황들을 얼마든지 용납해 낼 수 있는 그런 선이 교리라는 말이다. C. S. 루이스가 말했던 “난간”과도 비슷한 설명이다.
교리는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교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신학자들의 욕심, 혹은 방식 때문일 것 같다. 곤잘레스가 자주 쓰고 있는 문장 가운데 하나가 “교리는 예배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애초에 교리가 단순한 지적 토론으로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또, 교리는 예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교리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인도해주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교리가 아닐 수 있다.
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리를 좀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그 유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시작은 익숙지 않아서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첫 발을 떼지 않으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법이니, 조금은 참고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 작업에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아쉽게도 일찌감치 절판되었다. 혹 아직 중고로 구할 수 있을 때 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대기업의 말단 주임이 내놓은 멋있는 아이디어는
수많은 회의를 거쳐 임원 단계까지 가면
사족이 붙어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되고 만다.
창의력을 가진 인재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하다.
- 이상직, 『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중에서
이 책의 긴 제목(“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만든 특유의 세계관, 굳이 말하자면 ‘베르베르 유니버스’를 알아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단숨에 유명작가로 만들어준 『개미』 속 등장하는 괴짜 박사인 에드몽 웰즈가 썼다고 설정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나중에 작가는 실제로 같은 이름의 책을 내기도 했다)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저자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된 고양이라는 설정이 더해져서 이 책이 나왔다.
우선 진짜 작가인 베르베르 자신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도 하고, 최근 작품인 『고양이』에서 그 생태를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던지라, 그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 주요 사건들이 실려 있고, 2부에서는 고양이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신화적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던 고대와, 터부시되었던 중세를 거쳐 반려동물로 받아지게 된 르네상스 시기 이후, 그리고 우주선에 타기까지 했던 현대의 이야기를 쭉 훑어가는 1부는 재미있었다. 이 서술이 고양이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설정도 재미를 조금은 더해주고.
다만 2부는 정말 말 그대로 “백과사전”을 넘기면 나올 만한, 평이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간 여러 장의 컬러 도판이 그나마 눈을 즐겁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몇 개의 항목은 그냥 양을 늘리려는 속셈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같기도 하다.
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은 아니고, 그냥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팬심으로 볼 만한, 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게 볼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이렇게 출판사는 책을 또 한 권 파는데 성공하고....)
아~ 아이유~
솔직히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의 팔할은 아이유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아이유가 예쁘고 밝게, 그리고 연기가 영 못 봐줄 정도만 아니라면 충분히 이런 영화를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쪽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첫 등장부터 털털 발랄한 모습으로 나온 아이유는 시종일관 그 텐션을 유지하면서 영화 끝까지 활약한다. 생계형 PD 소민 역으로 어떻게든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했던 상황에서, 상대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귀여운 억지까지 부리면서.
상대역인 박서준과의 티격태격도 재미있고, 그렇다고 둘 사이에 어설픈 로맨스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각자 결국 원하는 것을 얻고, 꿈을 향해 조금 더 나아가게 되었다는 내용도 나쁘지 않다. 뭐 다 아니라도 그냥 아이유가 예쁘게 나왔다면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홈리스 월드컵.
영화는 홈리스들을 위한 국제축구경기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 이런 대회가 존재하고, 영화 초반에도 이게 실제 대회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는 멘트가 나온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나 사건은 전적으로 창작이라는 말이 덧붙여지지만.
홈리스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 “빅 이슈”도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한다. 영화 속 그림처럼 주요 지하철 역사 입구에서 빨간색 조끼를 입고 판매하는 판매원에게 몇 번인가 구입한 적도 있다. 다만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선 팔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어서 만날 때만 구입할 수 있었다. 내용은 뭐 특별한 건 없고, 표지모델로 연예인들 화보가 들어있는데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건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굉장한 위기를 초래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나머지 시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른 무엇을 하기 어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홈리스들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도, 그들 안에 있는 이런 근본적인 불안과 무력감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홈리스들에게 축구경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그건 홈리스들에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목표의식을 줌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말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그들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일원이라는 걸 상기할 수 있는 기회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짜임새가...
배우도 좋고, 의미도 있다. 다만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는 상당히 헐겁다. 뭘 말하고 그리려는 지는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하고, 그저 훈련과 경기에 참여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나열되기만 한 느낌이다. 주인인 아이유와 박서준에게 꽤나 집중되어서 나머지 인물들은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난 것 같기도 하고.
여기에 다양한 종류의 신파코드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갔다는 점도 지적될 만한 부분 같다. 물론 홈리스라는 거의 사회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캐릭터들인지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겠다는 점은 수긍이 가지만, 이렇게까지 그걸 늘어놓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좀 부담스럽다.
또, 영화 중후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축구경기 장면에서도, 스포츠 특유의 역동성과 긴박감을 잘 그려낸 것 같지도 않다. 이야기로 풀려나와야 할 부분은 그저 캐스터의 중계 멘트로 다 때운 느낌이고, 실제로도 전문적인 선수들이 아닌 이상 무슨 멋진 드라마가 나오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만들지 못할 건 아니지 않던가.(예능프로그램인 “골때녀”를 보라)
결론은... 영화의 짜임새,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별로, 하지만 실제 사건에 대한 환기라면 의미가 있고, 팬심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았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