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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수사학
패트리샤 로버츠-밀러 지음, 김선 옮김 / 힐데와소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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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 신간 코너에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어서 데리고 왔다. 이 책은 특히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선동 작업이 어떤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런 저질 선동에 넘어가는지, 선동가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책의 판형 자체가 작기도 하고, 페이지도 겨우 140페이지 정도라(그런데 가격도 14,000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선동가들은 공통적으로 사안에 관한 정밀한 합리적 접근을 거부하고, 대신 정체성 정치에 집중한다. 쉽게 말하면, 문제가 무엇인지보다 누가 이 주장을 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우리 편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 편이 하는 말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식이다. 흔히 이런 종류의 정체성 정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확산되면서 함께 퍼져나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선동가들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다 있어왔다.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에서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 응원 페이지에 이상한 결과가 있었다. 분명 우리나라 페이지인데도 우리를 응원하는 것보다 중국팀을 응원하는 비율이 90% 가까이 나왔던 것. 알고 보니 해당 페이지는 로그인이 없이도 얼마든지 응원 버튼을 누를 수 있었고(대부분의 스포츠 응원 페이지가 그렇다. 나도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응원버튼을 마음 내키는 대로 누르곤 한다), 두 개의 외국 서버에서 자동클릭을 하는 프로그램을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뭐 여기까지는 별 시답잖은 것들이네 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축구 응원버튼을 누가 더 많이 눌렀는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하지만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측 인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그 포털 사이트에서 여론조작이 행해지고 있다면서 무슨 대단한 범죄라도 저지른 양 수사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정확히 선동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여론조작과 스포츠 응원 버튼 사이에는 어떤 개연성도 없다.(당연히 의혹을 제기한 선동가들도 당연히 근거를 대지 못했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선동 멘트만 반복할 뿐) 양쪽의 매커니즘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우리 동네 편의점에 불이 났으니 옆 동네에 있는 카페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무슨 말이냐고? 난들 이해가 되겠냐고.





사실 더 이해가 되지 않은 이런 선동가들의 말을 철썩 같이 신뢰, 아니 신봉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책의 내용 중에는 이와 관련한 부분도 보인다. 자신의 지도자가 기이한 언행을 보일수록 그에게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생기고(보통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일까지 하다니 역시 대단해!?)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권력을 넘겨줌으로써 오히려 스스로 더 강해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도자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정확성을 기하거나, 논리적 함의나 결과에 대해 인정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거나,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이 지도자가 가진 권력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라고까지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독재사회라고 부르고, 북한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같은 나라들에서 그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그리고 꽤나 가까운 곳에서도)


당연히 이런 사회는 큰 문제를 안게 된다. 건전한 비판과 반대가 허용되지 않는 조직이나 사회는 발전의 동기도, 의욕도 생길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 이렇게 선동가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면 이제 선동에 동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배신자 소리를 듣거나 의심을 사게 될 테니까.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분명 미국과 러시아의 상황을 깊이 인식하면서 이 책을 써 내려간 것 같다. 구체적으로 트럼프나 부시 부자, 그리고 푸틴 같은. 그런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게 그냥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로 쉽게 여겨지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 책의 제목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어순은 바뀌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민주주의는 어렵고, 선동은 쉽다. 선동은 다른 편의 사람들과 숙의를 해 가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보다 그들을 공격하면서 느끼는 쾌감을 더 즐거워할 때 발생한다. 당연히 이런 분위기에서 민주주의는 성숙할 수 없다. 민주주의란 단순히 다수결이 아니니까.


물론 역사를 보면 한 나라의 정치 발전은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르락내리락, 발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크게 보면 서서히 발전해 오긴 했다. 하지만 얼마든 급격한 후퇴를 할 수도 있는 법이라.... 최근 온라인을 뒤덮고 있는 온갖 혐오의 선동 글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한숨만 나온다. 이미 특정한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너무 멀리, 그리고 깊숙이 전이되어버린 상태인 것 같아서 말이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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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보고 놀라운 감동을 받습니다.

천재적인 음악가의 연주를 들으며 환희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 경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경험이 거짓이나 허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 강영안, 우종학,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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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1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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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 취미 중 하나는 집에 있는 책들을 아무 거나 집어서 읽는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린이용 백과사전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며 놀았고, 어느 집이나 한 질쯤 있는 동화 전집이나, 조금 커서는 청소년용 학습백과사전을 마찬가지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며 놀곤 했다.


그러다가 종종 내가 읽으라고 둔 책은 아닌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경로로 집에 들어온 녀석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부모님이 집에서 책을 즐겨 보시는 편이 아니셨으니, 집에 오고 가던 사람 중 누군가가(삼촌이었나?) 놓고 간 것으로 추정된다. 10대에는 그런 책들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곤 했다. 그 중에 일명 민담집들이 있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옛날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데, 유머러스하고, 조금은 야하고(선정적인 건 아니다), 뭐 대단할 건 없는 편한 이야기들이었다. 대체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따라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길게 시작하는 건,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지만) 바로 이 책이 꼭 그런 민담집과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정확히 작가가 누구인지가 밝혀져 있는 이야기라는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황의 역전에서 오는 해학과 옅은 선정성, 좋은 글솜씨가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모두 여덟 편의 짧은 중단편 소설들이 모여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어서 서로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다. 전체적으로 똑똑한 체 하는 주인공이 나중에 한 방 뒤통수를 맞는다는 플롯이지만, 일종의 인과응보적인 결론은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틀이니까. 그건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고, 나이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시대적 배경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이야기마다 꽤나 다르다. 어느 시골 마을부터 호화로운 유람선 위, 그리고 도시의 한 구석까지.


여기서 책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건, 뒤에 이 책을 손에 들 사람에게 실례일 듯하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반전을 보는 게 이 책을 보는 맛일 테니까. 기회가 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볼 만하다. 잠시의 여유를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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