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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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이번 권에서는 드디어 삼두정치가 결성되는 장면이 나온다. 전직 법무관 신분으로 히스파니아 속주 총독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방해로 당시 로마 남자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영예인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 선거에 출마한다.(늘 상식을 깨뜨리는 카이사르다.)


그렇게 수석 집정관에 당선되었지만, 하필 그의 동료가 카이사르가 하는 모든 일을 방해하겠다는 작심으로 나선 비블루스였다. 그리고 이제 카이사르의 반대편에는 모든 면에서 원로원 계급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나선 보니파라는 정치적 파벌이 있었다. 애초에 집정관 당선이 자신의 정치 인생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카이사르로서는 더 큰 한 발을 내딛기 위해 이런 상황을 타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여기서 삼두정치가 등장한다.


당대 최고의 군사적 업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태생적 한계 때문에 원로원파로부터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던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전쟁에서 싸운 병사들에게 배분할 땅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또 새롭게 얻은 동방속주의 세금 징수업무에 나섰다가 큰 손해를 보게 된 기사계급은 크라수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크라수스 역시 원로원의 반대로 막혀 있었다. 카이사르는 이 두 사람과 손을 잡고 현직 집정관의 힘으로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던 갈리아 정복을 위한 합법적 지위를 얻어낸다.






마침 유튜브 채널에 카이사르 시기를 다룬 로마인 이야기 읽기 영상을 올리는 중이라 같은 시기를 어떻게 다르게 써 내려가는지 비교하며 보는 맛이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경우 삼두가 결성되자마자 모든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고 보니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처럼 서술을 하지만, 콜린 매컬로는 삼두 결성 이후에도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로마의 정치상황을 묘사한다. 아무래도 이쪽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갖는 글의 여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에 비해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사 전체를 써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꽉 막힌 로마의 정치 상황을 한참 읽다 보면, 카이사르가 이런 뭐 하나 되는 일없는 체제를 뒤엎어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가 실감나게 와 닿는다. 겨우 1년 밖에 안 되는 집정관 임기를 오로지 동료 집정관인 카이사르가 하는 일을 막기 위해 쓰는 행태는,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도 그대로 오버랩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런 행동의 배경에는 원로원 계급이라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철저하게 보호하겠다는 속셈이 있었으니...


결국 정치가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만 치달으면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평민들의 이익만을 위해 나섰던 포퓰리스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국가 정치는 좀 더 큰 공동체를 위해 운영되어야 하지만, 요새는 소위 정체성 정치의 일환으로 소수그룹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만이 정당하고 옳은 일인 양 착각하는 정치인들이 참 많다.





애초에 선거로 뽑힌 정치인들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그래서 그런지 밥 먹고 하는 일이 온통 이런 고민뿐이었던 고대 철학자들 중에 의외로 민주정을 혐오하던 이들이 적지 않다) 또, 소위 표계산이 쉬운 소선거구제 아래서는, 어떻게 하든 상대 후보보다 1표만 더 받으면 이길 수 있으니, 진영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기편에 더 강한 방식으로 소구하려는 정치인들이 나오기 더 쉬운 것 같기도 하다. 선거가 충성투표 쟁, 정체성 전투의 현장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물론 그렇다고 카이사르의 삼두정치 같은 해결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삼두정치란 실력자들의 야합이었고, 폼페이우스나 크라수스는 결국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으니까. 만약 그 중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카이사르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에 몰입하는 인물이었다면 로마의 상황은 훨씬 더 안 좋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카이사르가 만들어 낸 1인 중심의 체제에는, 그 1인의 자질에 너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이제 카이사르는 갈리아로 떠났다. 그 유명한 갈리아 전쟁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풀려나올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그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이 몇 권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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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는 우주와 자신에 관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러나 과학이나 기독교는 각자 가진 것보다 더 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각각은 우리 삶의 일부를 밝혀주지만, 전부는 아니다.

과학은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으며,

기독교는 자연의 기초물리상수의 가치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둘을 합쳐 생각한다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서로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리처드 도킨스, C. S. 루이스 그리고 삶의 의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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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신학 -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성경적 지침
폴 스티븐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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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리스천 창업가들과 교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스타트업 대표들과 함께 독서모임도 시작했는데, 그 모임에서 읽을 책을 찾던 중에 전부터 눈여겨보던 폴 스티븐슨이라는 저자를 선택했다. 사실 잘은 알지 못했었고,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 한 구절을 적어둔 게 있었는데, 그걸 기회로 이 책을 만나게 됐다.


일터 신학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크게 보면 일과 직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관한 내용이지만, 좀 더 좁게 들어가면 사업가들에게 주는 조언으로 채워져 있다. 그야말로 이번 모임에 딱 맞는 책이었던 것.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인 1부에는 “의미”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비즈니스라는 영역에 담긴 기독교적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는 여전히 교계에 남아있는 성속 이원론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사업이야말로 가난한 자에게 다음 끼니를 제공할뿐더러 새로운 부를 창출하게 함으로써 가난을 극복하게 돕는 최상의 장기 전략”이라고 말한다(25).


저자는 사업은 더 거룩한 어떤 일을 지원하기 위핸 도구적 가치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사업 그 자체가(일을 만들고, 고객을 상대하고,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등의 그 모든 제반 업무가) 하나의 거룩한 일, 나아가 소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점에서 저자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오래된 기독교 전통에 맞닿아 있다.


후반부에는 “동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제 사업이라는 영역을 기독교적으로 해 낼 수 있는지, 여기에 필요한 영적 조언들이 담겨 있는 부분으로 느껴졌다. 때문에 신학적인(또 성경적인) 접근이 자주 보인다.


저자는 사업이라는 영역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기에 정기적으로 잠시 뒤로 물러나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진실함과 창조성, 거룩함을 드러내는 사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제안한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책에서 하는 말이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올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온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타락으로 인해 훼손된 원래의 창조 목적을 회복하는 것을 주요 과업으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종류의 신성한 일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다시 사람들에게 일깨워주었고.


물론 최근에는 목사와 선교사가 하는 일이 가장 거룩하고, 교회의 제단에서 하는 일만이 신성하고 하는 식의 극단적인 이원론을 고수하는 신자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바른 신학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오히려 거룩의 영역을 지워버리는 세속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나타난 결과인 경우가 좀 더 흔하다. 결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둘은 전혀 다른 매커니즘이다.


맨 처음 말했던 모임에서 함께 교제할 기회를 누리면서, “사업의 영역에서 신앙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있구나,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팔팔한(?) 분들이” 하는 놀라움이 컸다. 그들이 신앙과 일터를 통합하는 관점에 얼마나 갈급해 있는지도 와 닿았고. 이 책은 바로 그런 독자들에게 꽤나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좋은 신학적 바탕 위에 비즈니스라는 영역을 훌륭히 녹여냈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일터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는 경험도 여기에 한 몫을 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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