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중학교 학생인 숀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반에서 잘 나가는 학생이자 친구들이나 담임선생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고레나가 일당의 괴롭힘은 교묘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숀이 그들 무리의 일원으로 함께 노는 것으로만 보인다.
어떻게 해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숀은 자신의 일기장에 절망스러운 심경을 차곡차곡 적기 시작한다. 소설은 숀의 일기장을 읽어가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그의 아버지와 생계를 위해 퇴근 후에도 사장의 가정부 노릇까지 해야 하는 엄마의 무신경함, 그리고 무능한 담임까지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숀은 웬 돌을 하나 가져와서는(‘오이네프기프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공물을 바치며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죽여 달라고 빌기 시작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로 고레나가가 죽어버렸다! 또 다른 일당인 안도도, 숀을 의심하며 추궁해 온 동급생 고우다도, 그리고 끝내 담임인 구노까지. 과연 이 연쇄 사망은 돌덩이에게 빈 덕분일까?
작품을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다. 처음에는 당연히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들과 이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주변의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또 어느 정도 읽다 보면 그런 상황에 순응하면서 본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일기장에 주변 사람들만 저주하는 주인공 숀에 대한 짜증이 몰려온다. 본격적으로 숀의 주변 인물들이 죽기 시작하면서는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커진다. 하나의 작품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역시 저자의 필력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회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또 기묘한 사망이 잇달아 벌어지고 범인을 추적해 간다는 면에서는 스릴러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돌덩이 신까지 등장하니 때때로 미스터리 장르가 살짝 묻어있기도 하고.
물론 이야기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인(신비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성격이었지만, 또 이야기 전체를 두고 보면 약간 구성이 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 경찰이 아무리 어설프다고 해도 이 정도의 정교하지 않은 트릭을 간파하지 못할까? 물론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에서 경찰들의 영향력과 능력은 많이 축소되어 있긴 하지만.
결말의 반전 요소까지 포함해서 전체를 두고 보면 꽤 재미있게 읽었다. 대중 소설에서 드러나는 일본인 작가들의 필력은 확실히 인정할 만하다. 또, 결말부에서 변주를 주긴 했으나, 작품 초반에 꽤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서술되는 학교폭력에 관한 묘사들은, 점점 흉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와도 연결 지어서 읽어볼 만한 부분이었다.
평소엔 모든 사람이 그 모순을 키우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일조해놓고
막상 자신이 피해자가 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경우에 한해서
울분을 터뜨리며 이 사회에 정의가 있느냐고 묻는 일은
그 얼마나 흔한가.
- 강준만, 『바벨탑 공화국』 중에서
한 동네 전체를 파헤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재개발. 이 과정에서 그 동네에 있던 교회 건물들 역시 함께 철거되곤 한다. 물론 토지와 보상금을 받기는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많은 교우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공간을 상실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공사에 들어가면서 다양한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교회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대토와 보상금은 거의 늘 불충분하게 느껴지는 수준이고)
이 책은 그런 공사장의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작가가 목회하고 있는 한 교회가 재개발에 얽혀 이런저런 불편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감사로 넘어가는 모습들, 그리고 실제 목회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들, 오랜 교회 사역을 하면서 익혀 온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사실 요새는 뭔가 큰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유행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저 문제를 잘 견뎌내는 것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큰 소동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교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라면 역시 앞에서 언급된 재개발과 교회 건축 정도랄까.
물론 교회 안의 다양한 성도들이 겪는 문제들을 품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대외적으로 무슨 큰 충돌이 있는 게 아니라도, 그 많은 사람들을 품고,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며, 함께 신앙으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일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목회자에게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살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그래도 조금은 편한 소리는 아닌가 하는 인상은 든다. 책 속에는 그렇게 완성된 새 교회 건물 사진도 보이는데, 퍽 규모가 있게 지어졌다. 이 정도 규모의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한다면, 그래도 나름 꽤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상황은 아닐까 싶다. (물론 앞에도 언급했지만, 실제 사람들과 얽혀 살아내는 건 어디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덕분에 큰 염려나 걱정 같은 건 읽으면서 들지 않았다. 그냥 편안하게 읽히는 느낌.
책 제목인 “이중 감동”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밝혀졌다. 책 초반에 실려 있는 에피소드에 나오는 단어인데, 재개발 건축 보상금 중 일부를 저개발국가에 병원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고 싶다는 감동을 하나님께 받고, 이를 교인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기꺼이 동의해 주어 또 감동을 받았다는 말. 두 개의 감동은 조금은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결국 우리말로는 같으니까, 이를 “이중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기발하다.
“삶에 밑줄을 그어야 하는데 책에만 밑줄을 그으며 산다”는, 약간은 자조적이면서 반성하는 문장이 있다. 읽다가 뜨끔했다. 솔로몬이 말했던 것처럼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할 뿐일 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삶에 녹아들어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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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돌아온 책방 멘토링.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김문규 교수가 여러분의 고민을 함께 고민해 드립니다.
이번에는 양평에서 지역살리기와 생태적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한 예비창업자님과의 대화를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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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잊어버린 오래된 단어를 끄집어낸다. 그 주인공은 ‘죄’, 그리고 ‘참회’ 같은 용어다. 어느 순간 우리의 예배 자리에서, 설교의 원고에서 이 단어들은 사라져버렸다. 대신 요새 자주 사용하는 대체용어는 ‘질병’이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고, 이는 지지와 보호, 그리고 치료가 필요한 증상일 뿐이다. 교회는 병원이고, 오늘날 병원에서 죄라는 개념은 필요 없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아무리 죄라는 용어를 지우려고 애써도, 실제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죄는 우리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린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과의 관계도.
저자는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죄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서의 회개(참회)의 가치와 효력에 관한 내용들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모두가 피하고자 하는 ‘죄’라는 용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시 우리의 논의 테이블 중앙으로 끌어내는 능력이다.
성공회 배경의 여성 사제이자 신학교수이기에 교파적 특성이라고(다른 교파와의 차이가 있는) 볼 수 있는 포인트도 몇 개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책 말미에 나오는 ‘보속’의 개념과 기능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들에서는 이 개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책에도 나오듯 그것이 구원에 있어서 자기 의가 들어갈 여지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보속이 “부패에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이건 온갖 경건해 보이는 다른 일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문제다), 이것이 단순히 ‘죄의 고백-용서’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설명이 갖는 약점(지나치게 이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바람에 우리 삶에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으로 본다. 그것은 죄에 대한 처벌이나,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내가 일으킨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져야 할 책임을 정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한 번 고민해 볼 만한 지점이 아닐까.
신학적 관점과 사회학적 관점, 그리고 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 관한 지식이 멋진 문장과 잘 짜인 구성으로 펼쳐진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문장들에는 깊이가 있고, 너무 빨리 끝나는 것 같다는 느낌도 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당장 저자의 다른 책은 어떤 게 나와 있는지를 찾아봤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