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헨리 나우웬 외 지음, 김성녀 옮김 / IVP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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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시대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 중 하나는,

우리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으나

그것에 반응하는 비율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 요약 ]

 

        인간은 과연 긍휼을 베풀기를 좋아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기꺼이 긍휼을 베풀기 좋아하는 부류에 넣지만, 왜 여전히 이 세상은 폭력과 분열, 외로움, 상처로 찢겨지고 있는가. 헨리 나우웬은 긍휼이란 상대방과 함께 고통받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이런 의미를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긍휼이란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긍휼이야말로 우리가 온전히 회복해야할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긍휼을 통해 우리의 인간성이 충만한 데까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먼저 서술한다.(1부) 하나님이야말로 진정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기꺼이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분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자신을 비우시고 우리 곁에 오셨다. 예수님의 이 낮아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제자이다. 그리스도를 본받게 되면 우리는 이제 경쟁적인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긍휼을 베풀며 살 수 있게 된다.

 

        2부에서는 긍휼이 실제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긍휼은 자신의 약점을 기꺼이 내보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긍휼을 가진 사람은 자발적으로 ‘안정’으로부터 ‘불안정’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들은 결코 ‘평범한 한 사람’으로 적당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긍휼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3부) 이 훈련은 인내와 기도, 그리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들은 조급함에서 벗어나 충만한 시간을 살아가게 되며, 기도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린다. 또, 악에 대해 정면으로 싸워나가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 감상 ]

 

        언제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헨리 나우웬의 책. 이번 책에서 그는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악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원리들의 무미건조한 나열들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우웬의 책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그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실제적인 고통과 불의, 슬픔의 원인을 고민한다. 그가 내리고 있는 진단은 사람들이 긍휼이란 것을 베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긍휼을 갖도록 해야만 한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성직자로서, 헨리 나우웬은 사람의 원래 모습에서는 도무지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너무 경쟁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에서 배울 것을 요청한다. 그래야만 이 상황에 반전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직접 살고 있는 헨리 나우웬이기에,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부분을 읽더라도 쉽게 저자를 추궁할 수 없다. 사실 그들이 갖는 불만이란, 그의 말이 지키기에 너무 어렵다거나,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상을 갖는 사람에게 무의식적인 경외감을 품기 마련이다. 이번 책도 거의 비슷하리라. 헨리 나우웬은 아예 사람들에게 경쟁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긍휼의 삶으로 들어올 것을 초청하고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우웬이 제시하는 길과 이상들은 - 그의 사고의 근본인 성경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 이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들과는 거의, 아니 정반대에 서 있다. 나 역시 경쟁적인 삶의 태도로 살아왔고, 내가 나의 삶을 계획하기를 원했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진정한 긍휼의 자리로 가기 위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멀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받기 위해, 지금의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더 낮은 자리로 움직이는 것. 책을 일고 난 뒤 머릿속은 고민들로 가득 찬다. 결국은 내가 나가야 할 자리가 그 곳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그 자리를 향해 발을 내딛을지도 모르겠다.

 

         헨리 나우웬의 다른 책보다, 약간 문장들이 깔끔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번역자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아닌데, 어딘가 사람을 쭉 빨아들이는 면이 좀 부족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은, 약한 자와 함께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불의와 싸우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칫 소위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들의 오류 - 인간의 현실상태 개선을 구원과 동일시하는 -에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물론 저자는 이 부분을 옳게 분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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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노크소리 믿음의 글들 193
클레이본 카슨 외 지음, 심영우 옮김 / 홍성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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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 교회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은

교회는 국가의 주인도 시녀도 아닌 국가의 양심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국가의 안내자이자 비평자가 되어야지

결코 국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지자의 열정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도덕적?영적 권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낱 사교 단체로 전락하고 말 게 뻔합니다.


 

 [요약]

 

        흑인인권운동가(흑인으로서 인권운동을 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흑인을 위한 인권운동을 했다는 의미일까. 아마 둘 다 해당할 듯)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요한 설교들을 편집해 놓은 책이다. 전에 읽었던 ‘마틴 루터 킹’이라는 책이 그의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한 ‘연설들’을 주로 모아 놓았다면, 이 책은 그의 ‘목사’로서의 면보가 부각되는 ‘설교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 감상 ]

 

        채 마흔 살이 되기도 전에 암살을 당한 젊은 목사.(서른아홉에 암살당함)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설교에서 느껴지는 힘은 그의 나이를 잊어버리도록 만든다. 비록 책으로만 읽을 수 있었지만, 읽는 내내 킹 목사의 외치는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 했다. 어떻게 이렇게 힘이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이런 설교를 할 수 있을까.

 

        성경의 이야기를 단순히 ‘그 이야기’로만 건조하게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늘, 나의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킹 목사의 놀라운 솜씨가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설교’라고 하지만, 그의 설교에는 사회적은 관심이 배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의 내용은 그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그의 설교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세대가 반드시 회개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악인들의 신랄한 말과 폭력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주위에 앉아 때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선인들의 무시무시한 침묵과 무관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국가 권력의 협박 앞에서도 성경의 진리에 입각한 메시지를 담담하게 선포하는 용기. 매력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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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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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갈증은 일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요약]

 

        꿈 많은 브라질 소녀 하나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몇 번의 풋사랑에서 실패를 했던 마리아는, 그 문제들을 잘 정리해줄 좋은 조언자를 만나지 못한 채 보냈고, 그 결과 사랑에 관한 한 자신을 옭아매는 소녀로 자란다.

 

        19살이 되던 해, 마리아는 휴가 차 갔던 해변에서 한 외국인을 만난다. 그는 스위스의 클럽에서 브라질 식의 삼바 댄스를 출 댄서를 구하던 중이었다. 마리아는 그의 눈에 띄어 스위스로의 여행을 떠난다. 얼마 간 그 곳에서 댄서 생활을 하던 마리아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무단으로 결근을 했고, 가게에서 쫓겨나게 된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마리아. 그녀는 모델이 될 꿈을 품고, 자신의 사진을 여러 곳에 보낸다. 몇 달이 지나서야 온 전화. 하지만 전화의 내용은 그녀가 기대하던 내용과는 달랐다. 전화의 상대는 그녀와의 하룻밤을 사려는 남자였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할까? 마리아는 고민을 하지만, 1000프랑이라는 거금의 돈을, 그녀는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리아는 몸을 파는 여자로 살아간다.

 

        코파카바나라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마리아. 그녀는 하루에 세 명의 남자에게 몸을 파는 대가로 900프랑의 돈을 번다. 수많은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오직 돈을 벌어 고향에서 농장을 가꿀 생각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리아에게, 어느 날 랄프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랄프는 화가였다. 마리아에게서 ‘빛’을 발견한 그는, 급격히 마리아에게 빠져든다. 처음에는 경계를 취했던 마리아도, 조금씩 랄프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진정한 정신적 사랑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으로부터 ‘분리’ 시켰던 마리아도 마침내 랄프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감상]

 

        다시 읽게 된 파울로 코엘료. 이번 책은 섹스에 관한 책이었다.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성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자연히 이 책에 ‘19금’이라는 등급표시를 붙이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리라. 왜 사람들은 성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한 책에는 제약을 가하는 걸까? 아마도 코엘료는 충분히 이런 질문을 할만한 사람이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성(性)에는 성(聖)적인 부분도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인 ‘11분’이란, 파울로 코엘료가 생각하는 성행위의 지속시간이다. 고작 11분. 사람들은 그 11분을 위해 결혼을 하고, 직장에 나가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저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좀 억울하다고 생각한 걸까? 저자는 이 11분에 좀 더 성스러운 의미를 집어넣고 싶어 한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신적합일의 상징으로서의 성창(聖娼)을 인용하며, 성행위에 좀 더 신비로운 무엇인가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코엘료의 재능은 이런 주장을 매우 감미로운 어휘들을 사용해, 독자에게 부드럽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 부드러움을 통해 기존의 가치체계(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적’인)의 허위와 가식을 공격한다. 코엘료는 ‘다빈치 코드’ 식의 ‘무식한’ 때려 부수기 식의 공격법을 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더 위험해 보인다. 코엘료는 ‘혼동시키기’라는 방법으로 독자의 사고를 뒤흔든다.

 

        상대적으로 성적인 부분에서 개방적인 유럽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성에 대한 관념이 책 전체에 걸쳐 매우 자유롭게 써져 있다. 반복은 이상함을 평범함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법. 책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주인공의 매춘행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독자들에게 덜 이상하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고통과 아픔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못한다. 무서운 힘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최근에 나온 ‘오 자히르’라는 책에 나온 것과 거의 유사하다. 인물들의 처지와 이름이 달라졌지만, 소재는 달라졌지만 핵심부에 이르러서 두 작품은 매우 유사한 느낌이다. 여기에 코엘료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한 ‘연금술사’라는 작품에서 말하는 것도 크게 보면 거의 같은 맥락이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처음의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There is nothing noble, in his no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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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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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다고? 자네가? 자네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나?

지리멸렬한 인생과 직장, 그걸 자네는 자유라고 부르는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래.

 

 [요약]

 

        출장을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다. 갑자기 생긴 문제로 비행기는 연착되었고, 남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하나 꺼내들었지만, 남자의 독서는 또 다른 한 남자에 의해 중지되고 만다. 자신의 이름을 텍스토르 텍셀이라고 소개하며 귀찮게 말을 걸어오는 불청객. 불의의 '습격'을 받은 인물의 이름은 제롬이었다.

 

        반기지 않는 제롬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텍셀. 제롬은 귀찮은 등에 같은 그를 피하고자 이런저런 수를 쓰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의 말을 듣기로 한다. 이어지는 텍셀의 이야기는 그 자신에 관한 것. 놀랍게도 텍셀은 자신이 저지른 강간과 살인에 관한 범행들을 털어 놓는다. 이 남자 지금 뭘 하는거지?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머릿속이 가득 찬 듯한 텍셀의 아전인수식의 해석을 듣는 독자들까지도 불편한 심기가 머리 끝까지 차오를 즈음, 텍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피해자가 제롬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책의 내용은 급속도로 빨라지며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운터 펀치. 역시 아멜리 노통브였다.

  

[감상]

 

        책의 초반부는 매우 지루하게 진행된다. 독자는 제롬의 입장이 되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텍셀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더구나 그가 떠들어 대는 말 하나하나가 역겨울 정도로 자기 중심적이라는 점은 이런 느낌을 점차 강화시킨다.  '도대체 이 사람 뭔가. 얼른 사라져버리기를.' 나도 그 독자들 중의 한 명이 되어 이렇게 되뇌이고 있었다.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까지 이런 상태가 변하지 않자 어쩌면 내가 이번에는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책의 초중반에 등장하는 텍셀의 '과장된' 자기본위적인 사고와 언행들은,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과장'된 것이었다. 이어지는 충격과 엄청난 반전. 역시 아멜리 노통브였다. 방심하던 중에 이전에 읽었던 '살인자의 건강법'과 같은 수준의 예리한 칼날에 베이고 말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완승.

 

        책에 등장하는 반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면, 내가 느낌 감정의 일부라도 전해질 수 있겠지만, 사실 그건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싶다. 이 서평을 읽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한 감동을 전해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행위일테니, 반전은 직접 책을 읽고 느껴보기를 바란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책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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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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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앙테크리스타에게 사랑이란 오로지 반사적인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사랑은 자기로부터 떠나 자기를 향해 되돌아오는 화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사정거리인 셈이다.

그렇게 작디 작은 영역 안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 요약 ] 

        생전 친구라는 것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만 같은, 아니 그게 사실인 소심하고 내향적인 주인공 블랑슈. 어느 날 학교에서 퀸카로 이름 높은 크리스타가 그녀에게 웃음을 던진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 블랑슈는 자신도 모르는 새 그 웃음 한 번으로 크리스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그녀의 결정적인 실수인 것을.

 

        크리스타는 모든 면에 있어서 블랑슈와는 반대처럼 보였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했고, 사랑스러웠으며, 적절한 애교와 처신법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인기도 많았다. 어느 날 이른 오전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 크리스타를 만난 블랑슈는 그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그녀가 먼 동부에 살고 있다는 것과 학교에 오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2시간이나 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 화요일 수업을 위해 월요일 저녁에 크리스타가 자신의 집에 와서 자도 괜찮다는 두 번째 치명적인 실수였다.

 

         크리스타가 블랑슈의 집에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부터, 블랑슈의 파멸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부모님마저 크리스타에게 반해버렸고, 크리스타는 블랑슈의 방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블랑슈의 부모들은 크리스타에게 아예 주중에 자신의 집에서 살아도 좋다는 말까지 해 버리고 만다! 블랑슈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공간까지도 크리스타에게 뺏겨버리고 만다.

         함께 살면서 블랑슈는 크리스타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애에 빠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크리스타의 이중적 생활은 점점 블랑슈를 참을 수 없는 어려움으로 몰아넣지만, 이런 그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블랑슈는 이제 크리스타를 앙테크리스타(Antechrista)라고 부른다.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프랑스어 여성형이다.

 

        한없이 침울함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이 상황에서, 블랑슈는 마침내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심한다. 크리스타가 그녀에게 한없이 관대하게 대하는 블랑슈의 부모님을 블랑슈 앞에서 욕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그리고 크리스타의 비밀을 알게 된 블랑슈는 이를 자신의 부모에게 말하고, 처음에는 잘 믿으려 하지 않았던 부모들도 크리스타의 오만하고도 뻔뻔스러운 대응 앞에 결국 크리스타를 버리게 된다.

 

        소설은 아직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크리스타는 자신의 타고난 매력과 말솜씨를 무기로 블랑슈와 그녀의 가족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켜버린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러나 블랑슈는 그런 크리스타의 도발에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그 곳에서 크리스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도리어 그녀의 자기애를 만족시켜주는 결과이니까.

 

        결국 크리스타는 블랑슈에게 지고 만다. 그리고 어느 샌가 블랑슈는 무언가 한 단계 더 성숙해져 있었다.


 

[ 감상 ]

        대단한 심리묘사. 아멜리 노통브의 솜씨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갑자기 블랑슈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버린 너무나도 매력적인 적 크리스타를 대하는 블랑슈의 심리 묘사는 일급 수준이었다. 이전에 ‘오후 네 시’라는 작품에서 매일 오후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는 집주인의 심리를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예리하게 묘사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녹슬지 않은 솜씨를 발휘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질 만큼, 소설은 긴장도를 유지하면서 내용 전개가 이어진다. 이를 위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과 배경들에 대한 설명들 위주로 서술이 매우 절제된 채 이루어진다. 주로 주인공인 블랑슈의 심리적 상태가 서술의 대상이다. 지나치게 퍼지지 않기 때문에 글이 산만해지지 않고 집중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나도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다만 이야기의 끝이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약점이라면 약점. 긴장감이 그냥 그대로 유지된 채 끝나버리는 모습이다. 사실 독자로서는 내용에서 한껏 고조된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이런 식의 열린 결말은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하면서 저마다의 결론에 대한 해석을 유도한다. 뭐 그런 효과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 두껍지 않다. 1시간이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1시간 동안의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력 추천.

 

[ 종합평가 ]

 

난이도

★★★☆☆ 3.0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흥미도

★★★★☆ 4.0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글솜씨

★★★★☆ 4.5

탁월한 심리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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