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케이블 TV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제목은 '동물들의 장수 방법'과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수 십 분을 봤는데도 제목 조차 기억을 못하다니..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 미디어가

인간의 감성은 자극할런지 모르지만,

지성적인 면을 함양하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증거일까.

 

 

아무튼,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래사는 동물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동물들은 어째서 오래 사는가,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오래 사는 동물들에게서

인간이 오래사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그 프로그램의 주제다.

 
 

 
만물의 영장이니, 진화의 최후 단계니 하면서

마음 내키는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하루에도 수 종의 생명체를 멸종시키는 인간이

이제는 오래 살아보겠다고 동물에게서 배우겠단다.

그 전에 이제까지 동물들에게 행한 죄들을

공개적으로 겸허하게 고백하는 의식이라도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프로그램의 내용은 한 가지 내용으로 모아졌다.

바로 '느리게 사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동물들의 수명이 길다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에서 발견한 거북이 한 마리가

아직까지도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무려 170살이 넘게.

 

  

만약 사람이 그 거북이처럼 천천히 산다면

거북이처럼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얼마나 산뜻한(?) 주장인가.

과연 인간의 지성이란 시간이 갈 수록 발전하는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해 보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과연 그런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마 그 자신도 거북이처럼 느리게 기어다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자기 수하에 있는 부하직원들이 그렇게 느릿느릿 일을 한다면,

아마 가장 먼저 화를 내지 않을까.

프로그램의 내용에 따르면

그건 부하직원들의 수명을 깎아내는 강요인데도 불구하고..

 

  

물론,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소망 중 하나를

비웃으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다보니,

그 내용이나, 과정에는

충분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니

괜히 비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런다.

그냥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수명에 만족하고 살면 안 될까.

얼마나 더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더 가치있게 사느냐에

더 많이 집중하면 안 될까.

 

  

어떻게 해야 오래 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사들이 시키는 대로 좋은 음식을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면

'건강하게'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 자신이 일년 중 상당 시간을 어딘가 고장난 상태로 보내고 있으니,

과연 오래 살 수 있을지 그다지 자신 없다.

사실 오래 사는 것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 일일까.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사는 법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보다 많이 사는 법에 대해서는

나도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오래'가 아니라 '많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사는 법.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사실 우리는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너무나 많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지나쳐버린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가에 어떤 꽃이 어떤 모양으로 피었는지,

매일 드나드는 건물의 숨겨진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이런 것들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너무 '바쁘니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고 지나친 것을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하루 24시간 중

다른 사람은 5개 밖에 보거나 듣었는데,

나는 10개, 15개를 보고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작가 한 사람이 없다는 건 참 불행한 일이다.

또, 즐겨 찾아가는 나만의 장소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언젠가는 삶에 대한 이런 작은 관심들이

쓰러져버릴 것 같은 어려움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익숙한 지지대 같은 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사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언제나 너무 바쁘게만 살던 내가

이런 '관심'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대학교 4학년 때가 되어서였다.

그제서야 학교 가는 길 돌담에 핀 개나리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빗방울이 공기를 가르며 내는 소리가 어떤 건지,

잔디밭에 앉아서 햇살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를 깨달았다.

대상을 '즐기는 법'을 그제서야 알았다.

뭐가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관심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

내가 하는 일, 내 앞에 있는 사람, 나와 접촉하는 모든 것들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들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

그렇게 하나 둘 즐기는 것을 몸에 익히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5월인데....

비가 제법 많이 쏟아진다.

바쁘게 하던 일을 한 10분 쯤 쉬면서,

비를 즐기기에 딱 좋은 날.

비 오는 날이란 거..

생각만큼 우울하거나 그렇지만은 않다.

꼭 비가 내리는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빗소리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음량으로

좋은 음악을 듣거나,

빗소리를 들으며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도

비를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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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우유에 콘푸로스트,
 
점심은 옆에 있는 수송대대에서 어어 먹거나 대충.. 굶기도 하고,

저녁엔 라면..

 


나 이렇게 살아요.. ㅡㅜ

 라면에 김치도 없이... 김치가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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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감정을 분리시킬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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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짐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더 튼튼한 허리를 달라고 기도하라.

- 어느 형제

 
Don't pray for lighter burdens,

but for stronger backs.

- An unknown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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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한문으로 쓰면 '誤解'라고 쓴다.

그릇될 '오'에, 풀 '해'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오해란 '잘못 풀어냈다'는 뜻이다.







무엇을 잘못 풀어낸 것일까?

아마도 오해를 하게 된 대상이 지닌

본래의 사실이나 의미, 의도를 잘못 풀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많은 오해를 하게 된다.

어떤 질병에 대해 오해를 해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두 배, 세 배 힘들게 만들기도 하고,

특정한 사건의 전후관계에 대한 오해를 해서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에이즈나 한센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오해가

전자의 예가 될 것이고,

실미도라는 영화로 인해 졸지에 범죄자들로 몰린

- 하지만 사실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 납치된 -

젊은이들이 후자의 예가 될 것이다.






사람에 대한 오해도 매우 자주 일어난다.

아니,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오해의 종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한 오해'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관계라고 하더라도,

한 순간의 오해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의처증, 의붓증으로 불리는 배우자에 대한 의심은

오해가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닫게 만드는 예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오해라는 것을 할까?

오해의 원인을 안다면,

그것이 가져오는 해악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오해란......

자신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물어보지도 않고

완전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그런 오만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해란,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왜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그렇다고 믿어버리는 것일까?

그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구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전에 그런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정보,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면서,

자신의 판단이 정확할 것으로 강하게 믿어버리는 태도.

그것이 오해이다.

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물론 어떤 오해는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가지고 내렸을 수도 있다.

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란 대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해는 오만함의 범주에서 예외로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해는 그런 오만함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 오만함으로 시작했기에

오해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나오기 쉽다.

그의 해명(대개는 변명으로 받아들인다)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상대에게 받아들일것을 요구한다.





오해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시간이 갈 수록 오해에 대한 신념이 점점 굳어져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느낌'의 영역에 속해있었던 것에 불과했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은 것이 되어버린다.





왜 그렇게 될까?

사람의 말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말은 사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해 버리고 나면,

그 말로 인해 그 사람의 생각, 행동까지 달라지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한 말에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맞춰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암시라고나 할까.






그걸 자기암시라고 부르던, 말의 힘이라고 부르던 간에,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오해에 빠진 사람들은

스스로 그 오해에서 빠져나오기가 매우 힘들다.

때문에 오해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 번 빠져버리고 나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간단한 얘기지만

오해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서로간의 충분한 의사소통이야말로 오해를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 새로운 것도 없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현실세계에서는

이 방법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상대에 대한 선입관이 방해를 하고,

때로는 자존심이 이 방법을 취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한다.

역시 '각각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는 대개의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보다는,

그 얘기에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줄까를

더 공들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내가 생각해 낸 말이 아니라 『인간성에 관한 풍자 511』이라는 책에 나온 말이다.)

당연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확히 듣지 못하고,

충분한 의사소통 따위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자기 중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선입관도,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도 갖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한 번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냥 잘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는 나의 조언에서 해답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갖고 잘 들어주는 내 모습에서 용기를 얻고

돌아가서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꺼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들어보자.





결국 오해란,

내가 얼마나 상대방의 입장에 서고자 노력했느냐에 따라

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나'를 내려놓고, '너'가 되어 보는 것.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상대의 생각까지도 내가 대신 판단하려는 오만함을 놓을 때,

오해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거라면.... 나도 아직 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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