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 A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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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최후의 1인에게 10억을 주겠다는 내용의 한 인터넷 방송국의 서바이벌 이벤트에 참여한 참가자들. 직업도, 성격도, 나이도 다른 그들이 도착한 곳은 호주의 광활한 사막으로 둘러싸인 어떤 숲 속. 무엇인가 흥미로운 게임이 진행되나 싶었지만, 곧 그들은 이 게임에서의 탈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고 경악한다.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을 진짜 서바이벌 게임으로 몰아넣는 장 PD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보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서히 게임의 룰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장 PD의 사연은 이 모든 게임의 이유로 제시되지만...

 



 

2. 감상평 。。。。。。。

 

     살인 게임의 설계자가 연속된 미션을 부여하고, 참가자들은 그 미션에 참가하다가 하나 둘 죽어간다는 기본 개념은 이미 잘 알려진 ‘쏘우’ 시리즈에서 본 구조이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내용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영화 ‘10억’에서는 그 ‘어디선 가 들어 본 듯한 것 이상의 무엇’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신민아가 정면에 등장했다는 것 정도?

     한 사람씩 죽어가는 과정도 전혀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미션이 공개될 때마다 그 결과가 예상될 정도로 평이한 스토리였다.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 뭔가를 담아내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단순히 반전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극 중간 중간에 힌트를 제공하는 식의 전개는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 반전의 내용조차 설득력이 없다!!

 


 
 

     신민아라는 배우는 참 여러 가지로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느낌이 드는 배우다. 하드웨어적인 면은 참 타고 났는데, 그렇다고 연기력이 요즘 나오는 어설픈 배우처럼 아예 C급도 아닌데(물론 아직 A급 연기를 펼친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유독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좀 가볍다는(혹은 깊이가 좀 덜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시나리오나 감독의 연출력의 문제라고 돌릴 수도 있겠지만, 반복해서 그런 영화들만 찍는 상황은 그녀 자신도 완전히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 않을까.

     서바이벌 게임과 연쇄적 살인(혹은 죽음)이라는 긴장감을 주는 소재에 호주의 광활한 사막과 숲이라는 좋은 무대는 이 영화를 단순히 즐기기 위해 보는 데에는 쓸 만한 영화라는 데 손을 들어 주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주저된다. 여름 한 철을 겨냥해 만든 한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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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 Closer to Heav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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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종우와, 장례지도사라는 꺼려지는 직업으로 인해 두 번이나 이혼을 당한 지수가 만난 곳은 종우 어머니의 장례식장이었다. 그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프러포즈를 받은 지수는 점차 종우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렇게 슬픈 결말이 예정되는 사랑은 시작되었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불태우는 거라고, 현실에 충실하면 된다고 그렇게 시작한 사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악화되어 가는 종우의 병세는 둘 사이를 서서히 갈라놓는다.

 




2. 감상평 。。。。。。。

 

     영화 개봉 전부터 김명민의 엄청난 체중 감량으로 기대감을 갖게 했던 영화다. 스틸 컷을 통해 보인 배우 김명민의 모습은 배우라는 직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장인(匠人)을 떠올리도록 만들었고, 직접 스크린 속에서 확인한 그의 모습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하지원도 모처럼 열연을 펼쳤다. 여기에 예상치 못했던 브아걸 가인의 썩 괜찮은 연기력을 비롯한 조연들의 적절한 뒷받침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적어도 연기력의 부족으로 인한 어색함을 느끼지는 못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영화의 주젠데.. 감독은 ‘불치의 병’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사랑’이라는 소재를 함께 엮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가지 주제가 다른 주제를 덮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인데, 여기에서 감독은 첫 번째 주제(김명민의 연기력)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작 영화 속에서는 두 번째 주제(김명민과 하지원의 관계)를 조금 더 강조하는 언밸런스함을 보여준다. 때문에 일부 관객들에게는 김명민의 연기에 좀 더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감독의 연출에 불만족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새끼가 장기자랑에 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비슷한, 김명민이라는 배우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진한 감동을 주려고 애를 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요즘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 가족이 함께 손잡고 들어가기에는, 감독이 수시로 벗겨대는 하지원의 몸매나 김명민과의 베드신은 좀 민망하다.

     올 가을 얼마나 많은 관객이 찾을 지 기대되는 영화. 영화는 나중에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제대로 만들어졌다. 또, 배우들이 직접 부른 OST 곡들은 영화를 지켜보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검은 수트를 입고 나오는 하지원의 모습이 참 예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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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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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로마의 최고권력자가 되기 위한 카이사르의 여정이 계속 이어진다. 갈리아 정복을 어렵사리 마치고 명성과 함께 힘까지도 손에 넣은 카이사르를 로마의 지배층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빛나는 별이 되어 버리면 집단지도체제인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이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 오랜 시간 카이사르파에 의해 눌렸던 그들은 마침내 삼두정치의 또 다른 한 머리인 폼페이우스를 그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 카이사르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국법을 어기고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들이닥쳤고, 이 전격적인 쿠데타에 폼페이우스를 비롯한 공화정파에 속한 의원들은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폼페이우스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동부 그리스지역으로 건너가 병력을 모으고 카이사르와의 일전을 벌이지만, 파르살로스 평원에서의 회전에서 대패를 하고 만다. 이후 이집트로 가서 다시 한 번 대결을 펼치려고 했던 폼페이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암살을 당하고, 카이사르는 로마 세계의 제일인자로 등극한다.


승리자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로마의 정체(政體)를 바꾸기 위한 여러 개혁들에 착수하지만, 파르티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정적들에 의해 암살을 당하게 되고 다시 한 번 로마는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카이사르의 부하 중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가졌던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명했던 옥타비아누스 사이의 또 다른 내전이 이어지고, 마침내 안토니우스를 제압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세계의 새로운 일인자가 된다.



2. 감상평 。。。。。。。


카이사르는 과연 개인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과 관련시켰는가?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이 점에 대해 전혀 의문을 던지지 않지만, 카이사르에 대한 숭배적인 묘사는 오히려 서술의 신뢰도에 대한 저항감만을 북돋을 뿐이었다. 물론 카이사르가 결국 승리자가 되었기에 결과를 근거로 그에 대한 후한 평가를 하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아직 내전이 다 마무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두세 달을 ‘휴가’로 보낸 것까지 ‘천재의 탁월한 자기 제어’라고 칭송하는 건(213) 좀 낯 뜨겁지 않은가.


카이사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가 암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정확히 어떤 것을 가리켰는지에 관해 그저 후세의 추측만을 남길 수 있었다. 종신 독재관에 취임해 사실상의 황제가 되고 난 뒤 그의 판단이나 결정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카이사르가 생각했던 제정으로의 정체 변경이 당시 로마 사회가 앓고 있었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해결책인가 하는 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이전의 서술을 통해 볼 때, 당시 로마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 불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적인 로마인들의 성향으로 인한 순혈주의가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토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구조와 사회 구성원의 비중의 변화로 인한 사회 구조의 문제다. 정체를 바꾸는 것은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뿐이지,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물론 권력의 정점에 문제의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해법을 가지고 있는 이가 오른다면 문제의 해결에 힘을 쏟을 수 있겠지만, 결국 군주제의 가장 큰 약점은 늘 바른 의지와 능력을 가진 군주가 연속적으로 왕위에 오를 수 없고, 반대의 경우인 군주가 오르더라도 그를 실각시킬만한 방법이 힘의 행사 이외에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권력의 집중은 인(人)의 장막 안에 고립된 군주로 인해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끼칠 수 있다.


백번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카이사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런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하더라도, 그의 해결책은 자신에 대해 대단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 권력자가 된 후에도, 모든 것을 손에 쥐게 된 그 때에도 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만이 그토록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겠지만, 너무나 일찍 죽어버렸으니 누구도 결과는 알 수 없을 터.


‘로마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로마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야심찬 계획은, 카이사르를 다룬 두 권의 책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다. 물론 격동의 시기이긴 했지만, ‘시민들’은 ‘병사들’로 전락해 버렸고, 그들의 삶은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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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일시정지 - 과학 선생들의 현대 과학 다시 보기 양철북 청소년 교양 7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 양철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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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고 있는 현대의 과학기술은 과연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걸까? 과학이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걸까?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는 과학이 과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 그것이 인간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잠시 멈춰 살펴보자는 것이 이 책의 기획 목적이다.

     과학문명이 가져 온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들, 과학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동물들과 인간이라는 현실, 첨단의 과학 기술이 인체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나노 기술과 유전자 조작 식품들에 관한 이야기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재미있는 주제들이 담겨 있다. 현직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저자들은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 주고 있다.

 

2. 감상평 。。。。。。。

     내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과학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과학 기술이 바꾸어 놓을 미래에 관한 유토피아적 모습만을 잔뜩 써 놓은 책들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막상 그 책들이 예상했던 시기가 가까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다지 낙원으로 변해가는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늘어나고, 그 주요한 역할을 과학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단 로봇들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담긴 식의 방식이 아니라도,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고 잡아 주지 않는다면 과학은 언제라도 파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역습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 비해 뒤늦게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한 가지 중요한 축이었던 서양의 과학기술에 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과학적인 것은 사실’이라는 명제를 일종의 공리로 삼고, 여기에 ‘사실이란 가치중립적인 것’이라는 공식을 더해 온전한 과학 중심의(좀 더 정확히는 과학연구의 주체로 생각되는 인간 이성중심의) 세계관을 건설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과학중심의 세계관은 거침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애초에 그 영역이었던 자연의 질서 혹은 법칙을 넘어 인간 사회의 운영에까지도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과학이 인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과학 자체가 가진 힘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선량한 방식으로 이용하고자 노력했던 선진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문제는 과학에 담겨야 하는 그런 가치들이 사라지고 대신 눈앞의 이득과 이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이라는 모임 명은 이 책이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들의 집합임을 알려준다. 온 나라 전체가 미친 듯이 효율과 성장이라는 가치만을 따라 달리고, 여기에 ‘가치중립적인 과학’이라는 가상적 개념이 더해지면서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균열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생명이라는 ‘가치가 담긴 과학’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정도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딱 맞도록 쉽게 쓴 저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대개 이 정도면 일반 성인들에게도 무난히 읽힐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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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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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쓴다. 

이것은 부도덕한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

 

 

1. 요약 。。。。。。。

     실천윤리학자인 저자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부’를 제안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것 중 매우 일부만(약 5%) 기부를 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 이후에도 기부자는 이전과 같은 삶을 유지하는 데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기부에 관한 실제적인 연구와 발표를 지속해 온 저자답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적인 기부문화를 권장하기 위해 기부자와 기부 액수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것을 제안하며, 나아가 소득 정도에 따른 실제적인 기부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2. 감상평 。。。。。。。

     과학문명의 발전과 자유로운 무역,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계몽주의자들 - (경제적) 자유주의자들 -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틀렸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세 가지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선택을 이어나가다보면 최적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론임이 드러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수정액’을 여기저기 칠해가며 보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허영심을 적당히 만족시켜 주면서(현실을 인정하면서) 현실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라는 전략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부를 늘리기 위한 실제적인 방식에 관한 연구도 철저하게 이전의 ‘문제를 만들어 낸 생각들’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저자의 한계가 발견된다.

     저자의 인간 이해는 여전히 진화론에 입각한 발전주의적 견해에 머물러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은 그것이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먼 지역에 사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자기 집에 있는 아이에게 더 많은 비용을 들이고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종족번식의 본능에 더 이롭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이해는 곧 그런 방식이 옳은 것이라는 가치판단까지 더해준다. 문제는 이 견해는, 왜 그러면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본성에 충실한 선택을 바꿔야만 하는가에 대해 딱히 대답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 생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바꾸고 불리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같은 방식으로 강간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그것 자체에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진화론적 윤리학에서는 실제로 등장한다)

     이런 난점을 저자도 인식했기에,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전혀 다른 ‘감성적 논법’을 사용해서 청자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모두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이 출근 시간에 조금 늦는 것 같은 약간의 손해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논법의 연장선상에서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아이를 구하는 데 적은 비용이면 되는데도 사치품을 구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설득적인 논법이긴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다른 말로는 충분히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니 말이다.(만약 그랬다면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었을 테고) 요컨대 저자의 전제와 주장 사이에는 일종의 ‘도약’이 필요한데, 저자는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눈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인간관이 필요할 듯하다.)

 

     이런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장려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태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태도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결코 기계론적 인간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 숭고한 행위가 온갖 악한 행위들 사이에서도 오늘까지 인류를 지속시킨 주된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왜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릴 때에야 사회 환원 운운 하며 생색을 낼 줄은 알지만, 그렇게 내 놓은 돈으로 무슨무슨 장학회를 만들어 친인척을 이사장으로 앉혀 놓고 거기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은 여전히 누리는, 눈 가리기 식이기 일쑤인 모습을 우리는 좀 더 많이 봐왔으니까.

 

     우리나라도 책임 있는 부(富)에 관한 논의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못한 것 같다. 언젠간 이런 것들이 상식이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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