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전당포 귀신이라고 불리는 차태식은 아픈 과거를 품은 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아저씨다. 친구들로부터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소미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자신에게 늘 툴툴대면서도 신경을 써주는 전당포의 아저씨를 의지하게 됐다. 그렇게 20년의 나이차가 나는 친구 관계는, 소미 엄마가 마약 조직에 연루되면서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어린 친구를 구하기 위한 아저씨의 활약이 시작된다. 쭈욱. 

 
  


 

 

2. 감상평 。。。。。。。

 

     영화 상영 시간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찌르고, 자르고, 쑤시는 장면으로 도배한 이 지나치리만큼 단조로운 이야기 구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감독은 여러 소재들을 가져다 붙인다. 일단 동네 아저씨와 어린 아이라는 묘한 관계 설정에,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게임 캐릭터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사람들을 죽여 나가는 주인공에, 그를 쫓아다니지만 늘 뒷북만 치며 실제로 의미 있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어설픈 형사들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딱히 극의 완성도를 높여주지는 못한 것 같고, 영화 홍보글에 등장하는 ‘이중의 추격’으로 인한 긴장감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원빈에게만 의지하고 있었고, 이번 영화에서도 전작 마더처럼 딱히 많은 대사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폼만 잡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원빈을 따라 영화도 과장된 총소리와 칼소리(?)로만 점철되어 있다. 액션은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 여전히 주연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부족해 보인다. 소미 역의 김새론 역시 어린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썩 나쁘지 않은 정도였을 뿐, 극찬할 만한 연기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릴 영화.

     영화는 스릴러나 액션이라기보다는 그냥 쏘우 시리즈 같은 하드코어물로 보인다. 쉴 새 없이 썰고, 자르고, 쑤시는데 그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감독이 영화 속 장기를 척출해 팔아넘기는 ‘통나무 장사’치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영화 속의 과장된 칼질과 흩날리는 핏방울들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 역겨울 정도다. 호쾌한 액션?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원색적으로 그리는 걸 보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딱히 볼 생각도 없지만), 최근 개봉한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는 이 영화보다 더 하다는 소문이다. 그 영화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가 미칠 사회적 파장들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새롭게 시도하는 것에 대해 지금은 사회가 돌연변이를 보듯 불편해하는 것 같다’며 자신은 ‘익숙한 것만 찾는 것’이 싫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이 무슨 헛소리인지.. ‘새로운 것 = 좋은 것, 예술적인 것’이라는 얼토당토 하지 않는 공식을 들이밀고서는 ‘건강한 형태로 활발한 담론이 이뤄지는 것은 얼마든지 납득하지만 그 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무지막지한 독선적 결론을 멋대로 짓는 모습을 보면, 예술가들이 점점 현실의 권력자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목조르기 놀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유행해서 뉴스에도 나오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말의 따르면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극단에 치우친 예술가들은 그런 목조르기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 내부의 잔악성을 자극해 일종의 쾌락을 느끼도록 한다는 건데, 언젠가 그게 자기 목을 찌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도대체 안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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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상품권 2만원 주네요..

예전엔 5만원씩 주다가, 1만원으로 바뀌었고, 이젠 2만원을 주는 듯.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인데

딱히 별 얘기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주제를 함께 썼더니

그게 어필을 좀 했나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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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그의 마음 속 비밀을 캐내 경쟁기업에 팔며 살아가는 코브.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집을 떠나 전전하고 있는 그에게, 사이토라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의 제안은 한 기업가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로 하여금 물려받은 회사를 분할하고자 하는 생각을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한 번의 꿈으로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기에, 코브는 꿈의 꿈, 나아가 꿈의 꿈속에 다시 꿈을 꾸게 만들어 대상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에게 생각을 주입하려 한다. 이를 위해 꿈속의 세계를 설계할 젊은 건축학도 아리아드네를 영입하고, 다시 한 번 그의 팀이 모여 작업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영화는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나아가 영화 자체의 주요 줄거리가 일종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내용인 것을 보면 융의 이론도 일정 부분 가미된 것 같다. 감독은 나름 이론적 근거는 마련되었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영화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꿈 안으로 동시에 의식을 갖은 채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그 은색 상자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설명을 안 한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영화는 꿈과 과학을 연결시키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표현한다. 모든 것을 과학이라는 오븐에 넣어 익혀야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현대인들의 신경증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논리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을까? 한참 어떤 일에 쫓기고 있다가 문득 이게 꿈이구나 하는 인식을 한 후에는 이제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변하는 그런.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짜릿한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때 꾸게 되는) 꿈은 꿈과 (내가 원하는) 꿈이 같은 글자로 표기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절묘한 조화다. 어쩌면 옛날에는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었을지도..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 모든 이들이 꿈꾸는 일을 화면으로나마 현실화시켰다는 점이다.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으니 멋지지 않은가. 꿈속으로 들어간다는 상상은 감독의 독창적인 창안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만큼 그것을 생생하게 현실화시킨 것은 없었으니, 그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길 만하다.



 

     감독의 연출력은 괜찮은 편이다. 등장인물들은 잔뜩 등장시켜놓고서는 정작 영화 속에서는 그저 병풍처럼 말도 못하고 서 있도록 만드는 감독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 영화의 나름 주조연들이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도록 연출되고 있다. 주된 스토리에 주인공 개인의 보조 스토리도 적절하게 어우러져있고, 영화 속 창조된 꿈의 세상도 꽤나 탄탄해 보인다.

     다만 꿈의 꿈의 꿈이라는 복잡한 스토리는 잠시 딴 생각을 한 사람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만큼 어려움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눈 부릅뜨고 제대로 봐야 한다는 소리. 극의 긴박감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너무 잦은 차원의 변화가 확실히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벅차도록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찌르고, 자르고, 상처내고, 죽이는 영화만 쏟아져 나오는 올 여름 극장가에서, 그나마 볼만한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를 보고 한 번쯤 주제토론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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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사랑 믿음의 글들 226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무조건적 헌신을 

인간적 사랑에 바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될 것입니다.

 

1. 요약 。。。。。。。

 

     C. S. 루이스가 말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스트로게와 필리아, 에로스와 아가페라는 그리스식의 네 가지 사랑의 구분 개념을 차용해, 이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 낸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루이스만의 독특한 문체가 잘 드러난다.

 



2. 감상평 。。。。。。。

 

     우리나라 사람들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느낌을 묘사하기 위한 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리스인들도 그 못지않게 어떤 개념에 대한 많은 분화된 어휘들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네 가지 구분이다. 우리말로는 육친에 대한 사랑(스트로게)과 친구에 대한 사랑(필리아), 이성에 대한 사랑(에로스)과 무조건적 사랑(아가페) 등으로 흔히 구분하지만, 이 단어들에 관한 그런 단정적인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감정을 누가 그렇게 칼로 베듯 예리하게 나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마다 구별해서 사용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사실 사랑에 대한 그리스식의 구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많다. 자칫 이 책도 그런 뻔한 책 가운데 하나가 될 법도 싶었지만, 역시나 C. S. 루이스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런 식의 방향으로 책의 전개를 끌고 가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사전적인 정의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대한 기독교적 내용을 재구성해나간다.(루이스가 말하는 애정과 우정, 에로스와 자비가 그리스의 사랑 구분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당연히 저자가 쓴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사랑에 대한 네 가지 구분을 해 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네 가지가 각각 어떻게 작용해 나가며, 또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흔히 하는 오해인) 사랑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파괴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 사랑의 부작용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랑의 서열을 세우려는 부질없는 시도(이를 테면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보다는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가 더 우월한 것이라는 식의)에서 벗어났다는 점도 포함되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글의 내용이 현학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부분이다. 복잡한 내용을 대중을 적절한 예와 비유 등을 사용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명쾌하게 정리해 내는 것이 루이스의 장점일진대, 그런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빛나는 통찰력들(사랑이 최고로 고양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설명이 그 한 예)은 그런 약점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득점을 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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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자꾸 고라니가 들어와서 뜯어 먹어서요...;;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혹시 한글을 모르는 고라니가 있을까봐

 

그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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