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우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결합시키는 것은 없다.

-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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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 안으로 심리학이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있는 것에 경계를 표한다. 이를 위해 심리학은 그것이 마치 ‘과학’인 양 위장해 거부감을 줄이려고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신앙행위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심리학에 깔린 기본적인 전제들을 분석하고, 그것이 어떻게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교훈들과 배치되는 지를 지적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실제로 심리학적 전제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기독교회의 모습을 로버트 슐러나 조엘 오스틴과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제시한다.

 



2. 감상평 。。。。。。。

 

     심리학이나 신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해 교회 문화에 익숙하고, 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하며 ‘상품을 팔리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저자는 교회에서 마치 시장처럼 상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은 당연히 상품의 좋은 점을 광고하고, 약점은 숨기기 마련. 저자는 복음의 상품화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 책을 썼다.

 

     저자가 그 첫 번째 원인으로 이 책에서 지목하는 것은 심리학이다. 물론 저자가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책에 등장하는 소개가 심리학의 전 분야를 망라하거나 모든 종류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건 ‘근본에 관한 문제’이기에 그런 것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프로이트나 융이 창안한 심리학의 근본과 전혀 다른 근원에서 시작한 제3의 심리학 이론이 있다면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심리학이 전혀 상반되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정신의 영역을 측정하고 나아가 조정하고 바꿀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기계적 이해와(프로이트),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정신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로 인한 오해(융)가 그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심리학 자체가 안고 있는 종교적 성격에 대해서도 옳게 진단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것은 자연주의 종교와 같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심리학의 전제들을 살펴보면 범신론(汎神論 : 우주를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것을 신으로 보는 교리)이나, 범심론(汎心論 : 개별적인 심리적 존재들이 모여 실재를 이룬다고 주장하는 철학 이론), 혹은 물활론(物活論 : 모든 물질은 그 자체로 살아 있거나 세계영혼의 작용에 참여함으로써 살아 있다고 보는 철학체계)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그러한 전제들이 기독교의 설명(여기서 ‘기독교’는 개혁주의 기독교를 말한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차이가 본질적인 영역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심리학의 무분별한 기독교회로의 유입에 경계를 하고 제동을 걸려는 저자의 시도는 꼭 필요한 지적이었다. 여기세 실제로 그러한 시도를 해 변질을 시킨 이들을 예시한 점도 좋았다. 사실 이런 식의 좀 직설적인 지적이 한국교회에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말이란 게 하다 보면 지나치기 쉽고, 지나치면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도 나올 수 있는 법이다. 특별히 자기 사랑과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저자는 심리학의 인간관을 성경의 인간관과 비교해 비판하기 위해 ‘자기사랑 = 죄’라는 공식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과연 성경은 인간을 그렇게 무가치한 존재로 판단하고 있는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창조한 존재로, 나아가 온 세상을 그분을 대신해 다스리는 존재로(심지어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이 임무는 취소되지 않는다)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럼 예수님은 왜 그런 무가치한 존재를 위해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가 되셨을까?
 

     물론 기본적인 전제(죄악 중에 태어난 인간)는 동의하지만, 이런 식의 이해는 루터 이후 유구히 흘러내려온 인죄론과 구원론에 대한 지나친(창조나 성화와 같은 다른 중요한 교리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강조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분은 인간을 가치 있게 만드셨고, 또 가치 있게 만드실 것이다. 이 점은 저작에게 좀 더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투박한 느낌이 드는 글이다. 하지만 매끄럽고 잘 다듬어졌지만 허술한 체계와 허황된 내용을 담고 있는 여느 책보다 훨씬 더 읽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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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내가 당부하는 거예요.

 아픔은 쉽사리 중독되는 강력한 마약이니

그것에 습관을 들이지 말라고.

···········

아픔은 본모습을 드러낼 때는 무섭지만,

희생과 체념으로, 또는 비겁함으로 치장을 하면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이오.


파울로 코엘료, 『11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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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짱은 내친구 - School Days with a Pi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일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학년 초 담임선생님이 작은 돼지 한 마리를 교탁 위에 올려놓고, 1년 간 잘 키워서 졸업할 때 함께 나누어 먹자고 제안을 한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집을 만들고 씻기고, 잔반을 얻어다 먹이고, 배설물을 치운다. 그리고 새끼 돼지에게 예쁜 이름도 붙여 준다. P짱.

 

     하지만 시간은 점점 지나고, 2학기가 되어 졸업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이미 정이 들어버린 P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벌인다. 모두들 P짱을 좋아했지만, 결론은 좀처럼 일치되지 않았다. 애초에 계획한 대로 식육센터로 보내 먹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P짱을 좀 더 키울 것인가. 유치하게만 보이던 아이들이 자신들이 ‘생명’을 다루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한 단계 더 성숙해가고 있었다.


 

2. 감상평 。。。。。。。

 

     소금과 같은 일부 광물질을 제외하고는, 사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한 때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영화는 자기들이 직접 애정을 담아 기른 돼지를 잡아먹을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아이들의 말을 통해 이 잊기 쉬운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는 과연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을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희생한 대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짐승만도 못한, 아니 짐승들도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만은 않지만.)

 

     개인적으로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키우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며칠 키우던 병아리가 전부였으니까.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소요되는 많은 것들은 둘째 문제이고, 무엇보다도 그 녀석이 죽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다. 이별이 두려워서 사랑을 못하고 있는 꼴이다.

 

     영화는 사랑과 이별이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 생각 해 보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란 없는 거니까. 얼마 전 읽었던 C. S. 루이스의 책에 나온 말처럼, 관계의 시작은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심지어 당연한 일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보내줄 때도 처음 만날 때만큼 충분히 ‘잘’ 해 내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다. 영화는 잘 보내주는 것이라는 주제와 생명의 소중함을 잘 엮어 내고 있다.

 

 

     아이들과 돼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영화는 결코 유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느 가벼운 오락/연예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컨대 ‘죽이는 건 생명을 빼앗는 것이지만, 먹는 건 생명을 이어받는 일’이라고 말하는 영화 속 한 아이의 말의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다. 때로 어른들도 어린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는 법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감동이 더욱 짙어진다. 실제 이야기가 영화처럼 아름답고 깨끗하지만은 않았겠지만, 실제의 선생님도 참 대단한 교육을 시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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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갈증은 일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 파울로 코엘료,『11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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