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이 거리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아오이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실제로 만난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 츠지 히토나리, 『냉정과 열정 사이 Blu』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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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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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줄거리 。。。。。。。                   

 

     간만에 나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각각의 이야기에는 ‘있을 법한 미래’나 ‘있을 법한 과거’와 같은 부제들이 붙어 있는데, 확실히 과거보다는 미래편이 더 많다. 역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는 미래가 좀 더 어울리는 시간적 무대이기 때문일까. 단편집답게 특정한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소재들이 자유롭게 등장한다. 형식적으로는 전에 나왔던 『나무』라는 책과도 비슷하고, 『개미』나 이후에 이어지는 저자의 작품들에 언뜻 단편적으로 등장했던 아이디어들도 눈에 띈다.

 

 

2. 감상평 。。。。。。。                  

 

     전작을 하도 질질 끌어선지 짤막한 이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저자의 타이핑이 날렵하게 느껴진다. 단편이다 보니 너무 많은 걸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기발한 착상과 아이디어가 마음껏 날개를 달고 돌아다니게 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 했던 작가의 초기 글쓰기(『개미』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의)로 잠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베르나르의 상상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괜찮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단편집이라는 형식 자체는 베르나르의 독자들이라면 딱히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무』나, 『백과사전』도 비슷한 형식을 띄고 있으니까. 하지만 주제와 분위기라는 면에 있어서 이 작품은 전작들보다 더 어둡고 자조적이며, 비관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초기의 탐구주제였던 인간과 인간의 가능성 등에 대한 기대는 점점 줄어들고, 인간의 악덕과 구제불능적인 면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인다. 사실 뭐 이런 경향이야 단지 이 책만의 느낌은 아니고, 이미 저자의 앞선 작품들(『파피용』이나 『신』등)에서도 언뜻 비춰지는 것이긴 하지만.

 

     어느덧 저자가 너무 많은 걸 고민하고, 너무 많은 것을 예측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인기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이라고나 할까. 이래선 조만간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식의 자포자기적 혼잣말을 시작하지나 않을까 살짝 걱정될 정도다. 독자들(나도 포함된)은 좀 더 밝은 저자의 재치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와중에서도 ‘당신 마음에 들 겁니다’와 ‘상표 전쟁’은 단연 추천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이와 비슷한 착상은 움베르토 에코에게서도 읽은 기억이 들지만, 베르나르는 작가답게 적당한 비꼬기와 유머를 더해 훨씬 더 실감나게 주제를 그려낸다. 물론 이 이야기들도 충분히 유쾌하기만 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비틀기는 읽는 맛을 더해주는 수준이다.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무난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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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색깔 있는 것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은,

 색깔 있는 것의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폭력이다.

 

- 김융희, 『검은 천사 하얀 악마』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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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영상 호소력은 시청자들을 속일 수 있다.

시청자들이 대대적인 이미지 공세를 받으면서,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 면밀히 따져 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 퀀틴 슐츠, 『거듭난 텔레비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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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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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로마인 이야기 열한 번째 책의 부제는 ‘종말의 시작’이다. 족히 백년이 넘게 지중해 전역을 지배해왔던 로마 제국에도 드디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균열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그동안은 꾸준히 잘 치료할 수 있었다면, 이제부터 발생하는 균열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불행히도 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들이 나타나지 못했다.


이번 책의 주요인물은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이자 철인(哲人)황제라고도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아우렐리우스의 무능한 아들인 콤모두스가 살해된 뒤 3년간의 내전을 끝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시오노 나나미는 그를 ‘군인황제’라고 부른다)다.


언뜻 성격이 전혀 달라 보이는 이 두 명의 황제(한 명은 철학자, 또 한 명은 군인)는 이 시기 로마에 영향을 주고 있던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한 가지는 이민족들의 발흥이었고, 다른 하나는 로마 사람들의 공공의식의 약화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강화였다. 첫 번째 문제는 제국의 방위선의 균열을 초래해 군사적 문제를 일으켰고, 두 번째 문제는 너도나도 황제를 자칭해 국가적 자원(인적, 물적)을 소진시키는 내전을 발생시켰다. 여기에 두 황제 모두 자질이 부족한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주면서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시간을 낭비시키고 말았다. 바야흐로 제국 몰락의 전조가 시작된 것이다.



2. 감상평 。。。。。。。


‘종말의 시작’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부제를 달긴 했지만, 사실 딱히 이번 책은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는 내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로마 제국의 몰락이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콤모두스의 막장 행보 때문이라면 그에 대한 비난을 실컷 퍼붓는 것으로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고작 십 수 년을 황제 자리에 있었던 한 사람 때문에 수백 년을 버텨온, 그것도 유럽 전역을 통치할 정도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던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국 몰락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었고, 게다가 ‘종말의 시작’인 이 시점에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책에 힘이 빠질 수밖에.


이 시기 로마는 이전과는 다른 적을 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로마가 과거 도시국가 시절에도 그랬듯이, 그들이 마주 싸운 적은 늘 달랐다. 이탈리아 반도 북부의 에트루리아인, 중부의 삼니움족, 남부의 그리스계 사람들은 모두 달랐고, 카르타고와 한니발을 상대할 때가 또 달랐다. 수도 로마를 중심으로 한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에 이어서 갈리아 지방이 주 전장이 되었고, 다시 제국의 정체(政體)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었다. 대충만 훑어봐도 이 정도다.


문제는 이 시기를 통치했던 황제들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적절히 대응하지도 못했다는 데 있다. 사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폐렴도 시작은 감기증상인 경우가 다반사다. 아우렐리우스는 치세의 대부분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문제를 수습하는 데 급급했고, 세베루스 역시 눈앞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진 못했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이나 초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 아니다. 적어도 수백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한두 명의 영웅들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중요한 일들을 창안하고 결정했던 인물들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로마의 전성기에는 그런 인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면 이 시기에는 그런 인물들이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재는 인재를 길러낼 만한 환경이 갖춰졌을 때 더 많이 배출되기 마련인데, 이 시기 로마는 과거 같은 확장주의적 정책을 펼 수 없었기에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이었다. 이래서는 똑같이 일을 해도 방대한 이상보다는 개인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출세의 방편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팽창주의를 펴야 할 텐데, 그건 애초부터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이유 등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상유지는 수동적이며 보수적인 자세와 태도를 낳고, 이런 태도는 강력한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저항을 하다가 몰락하고 만다. 결국 한 개인처럼 국가 역시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는 법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야기를 이렇게 맺으면, 그래서 범인은 누구도 아니었다는 식의 허무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기록된 것만 해도 족히 5천 년은 되어가는 인류 역사에서 어떤 강한 나라도 몇 천 년, 아니 몇 백 년을 지속한 예도 드문 것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말이 종종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고작해서 수십 년을 살기에도 급급한 인간이니 너무 멀리까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것이 속은 편할지도 모르지만.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 낸 가장 크고 웅대한 조직인 국가도 이럴진대, 그보다 훨씬 작고 덜 조직적인 여러 공동체들과 인간 개인은 어떠하겠는가. 그런데도 자신이 속한 당파가 영원히 갈 것처럼 제멋대로 지껄이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자칭 ‘지도자들’을 보면 한숨부터 절로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로마 제국은 이렇게 서서히 물에 녹는 각설탕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후의 내용들도 이 책처럼 흥미진진하기보다는 의무감에 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재미가 없다. 저자가 사랑하는 로마인들의 몰락을 그리는 것이 유쾌할 리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재미가 없으니 유익을 얻기에도 쉽지 않다. 역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종종 튀어나오는 저자의 통찰력도 없고, 대개 앞에서 나온 내용들의 반복일 뿐이다. 뭐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읽었다면 끝까지 읽으려고 하겠지만, 암튼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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