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 작품을 가지고 뭔가를 하느라 바쁜 나머지

그것이 우리에게 작용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 안에서

점점 더 우리 자신만 만나게 됩니다.


- C. S. 루이스, 『오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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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대규모 재난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혼란에 빠지고, 몇몇은 희생되면서 남은 사람들은 가까스로 고생을 하며 결국 구조된다. 뭐 재난영화라는 게 대체로 이런 패턴을 따르긴 하지만...


주인공 차정원(이선균)은 청와대에서 일하는 비서관으로, 딸의 유학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던 중 갑자기 발생한 사고로 다리 위에서 고립되어 버린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꽤나 높은 공직자가 여기 고립된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게 이 영화의 차별점인데,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안보실장의 직속인지라, 그냥 다 쓸어버리는 식의 해결책을 위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주요한 장치.


하지만 단지 그것 말고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주인공이 딸과 함께 위기에 빠지는 그림은 “부산행”에서도 봤던 장면이고, 좁은 열차 안에서 좀비떼의 습격을 받는 것이나 앞뒤가 막힌 다리 위에서 유전자 조작 군견들의 습격을 받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 물론 사실상 거의 소망이 없이 끝났던 부산행과는 달리, 결국 생존자들이 구조가 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압되는 게 차이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결말도 익히 봐 왔던 것이긴 하다.





재난 영화의 성공 공식은 뭘까.


역시나 이런 재난 영화의 포인트는 화려한 볼거리에 있지 않나 싶다. 뭔가 펑펑 터져나가고, 무너지고, 사방에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가 어려운 위기 속에 주인공을 몰아넣고,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보자 하는 식이다.


이런 판에 다리 위라는 공간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다리를 어떻게든 폭발시키려고 유조차가 뒤집어지고 터지는 장면을 넣기도 했고, 유전자 조작 군견들을 대거 쏟아 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중 교통사고 정도로 그런 큰 그림이 그려질까 싶기도 하고,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기 위해 삽입한 “유전자 조작 군견”의 부작용이라는 것도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여기에 또 흔하디흔한, 권력 최상층부의 은폐 공작이라는 소재가 끝내 등장하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자기 라인에서 충성을 다하는 주인공을 구해줄 것처럼 하던 안보실장(김태우)은 자신이 승인한 프로젝트가 실패해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결국 자신의 수하인 차정원을 버리고자 한다.


하지만 애초에 안보실장이라는 캐릭터가 빌런으로서 충분히 묘사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막판에 갑자기 모든 책임을 몰아넣는 게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초점이 주인공 일행의 생존을 위한 투쟁인지(그러기엔 액션이 약하다), 위험한 실험을 비밀리에 추진한 정부와 권력자에 대한 규탄인지(전화 몇 통으로 묘사하는 게 전부다), 그것도 아니면 인간을 위협하게 된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적 견해인지(애초에 노트북만 두들길 뿐이다) 모호하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부재.


사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을 쓰게 되는 부분은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누구도 (심지어 주인공을 포함해서) 감정 이입을 할 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선 당장 주인공 격인 차정원은 자기가 모시는 안보실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지극히 편파적인 정책 결정을 내리도록 궤변을 늘어놓는 인물이다. 물론 사고를 겪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지기는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무슨 공익을 위한 각성이나 윤리적 개선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모시던 상사가 자기를 버렸다는 배신감에 대한 반발이었다.


주인공의 딸 역시, 대책 없이 여기저기를 산책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캐릭터이다. 예의가 없어서 짜증이 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금 다리가 끊기고 눈앞에서 수십 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는데, 거기가 어디라도 저리 태연하게 돌아다니나 싶은 캐릭터.


실험의 책임자이면서 결국 개들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일을 크게 벌린 양박사(김희원) 캐릭터부터는 짜증 유발자에 가깝다. 외골수의 연구자라는 캐릭터를 잡았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시종일관 책임감은 하나도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은 또 엄청 낸다.


그리고 꽤나 비중 있는 역으로 영화 내내 잔뜩 등장하는 견인차 기사 조박(주지훈)은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전체 스토리로부터 붕 떠 있는 캐릭터다. 쉴 새 없이 농담과 가벼운 말들을 쏟아내는 모습은 귀가 아프게 만들 뿐,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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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사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카미야 도시유키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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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책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를 시대 순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고대의, 아직 책이라는 형태로 묶이기 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문자를 쓰고 소통했는지부터, 두루마리 형태의 권자본에서 오늘날 보는 것과 유사한 책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여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필사자들의 작업, 책을 읽는 방식(음독과 묵독), 고전에 대한 애착이 나타나면서 등장한 위작자와 복제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책의 다양한 변형 등을 총망라한다.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간 학술서 보다는 책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놓은 교양서에 가깝다. 하지만 중세영문학과 서지학이라는 저자의 전공을 생각해 보면, 이런 주제들이 단순히 흥밋거리 정도로 가볍게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 탄탄한, 그리고 종종 관련 주제에 관한 개인적 경험까지 언급되는 설명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주제에 대한 저자의 애착이 눈에 띄는 책이다. 예컨대 저자는 AD 100년 경 당시 브리타니아라고 불렸던 잉글랜드의 하드리아누스 방벽에서 근무하던 로마 군인이 쓴 편지 가운데서 베르길리우스의 시 일부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정확히는, 비가 내리는 영국의 어느 오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만끽하면서”. 지하철 역까지 우산도 안 쓰고 걸어갔다고 써있다.) 사실 이건 오늘날에도 꽤나 특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일이긴 하다.


저자의 서술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표현들이 자주 보인다. 이런 책을 읽는 건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분야를 대중에게 알 쉽게 소개하는 작업은,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아닌가 싶은데, 진짜 전문가라면 이런 의무마저도 즐거움으로 바꿔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충분히 즐겁게 손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우엔 새벽 광역버스 안 그리 밝지 않은 조명 아래서도 전혀 졸지 않고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었다.


책 말미에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이와나미 시리즈)가 여든다섯 권 소개되어 있는데, 웬걸, 하나하나가 구미를 당기게 하는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딱 이 정도의 난이도와 내용이라면 쉬어가는 책으로 언제든 골라 들어봄직 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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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 : 디텐션
존쉬 감독, 왕정 외 출연 / 인조인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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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계엄령.


종종 영화를 통해 우리는 잘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새롭게 눈에 열리게 된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호러게임을 원작으로 두고 만든 영화라고는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대만의 슬픈 역사가 깔려있어서 이를 모르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정도다.


1945년, 아시아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일제가 패망한 후 중국 대륙에서는 본격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 시작된다. 초반의 막강한 우세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공산당에 밀리던 국민당은 1948년 즈음이 되면 진지하게 대륙에서 쫓겨날 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1949년 결국 타이완섬으로 철수를 하게 된다. 이른바 국부전대다.


그런데 사실 타이완섬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 대륙에서 밀려난 국민당 계열의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지배층을 형성한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안 그래도 쫓겨 온 터라 정치적 위기에 몰릴 것을 우려한 국민당은 계엄령을 발령해 일체의 반정부활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다.


결국 계엄령이란 시민들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이 기간 단순히 정치적 활동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는데, 이때 대륙에서 온 문화를 강제하면서 토착 원주민 언어나 대만어 등을 사용하는 사람은 목에 팻말을 걸고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렇게 시작된 계엄령은 무려 3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니, 대만인들의 사고에 아주 깊은 자국을 남긴 조치였다.





금서.


영화에서는 소위 ‘금서’를 읽는 비밀 동아리와 관련된 내용이 주가 된다. 그런데 그 금서라는 것이 무슨 정치서적이나 사회학서적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군을 동원해 시민들의 정신과 사고를 통제하려는 정부는 학생들의 문학적 상상력마저도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들의 상상력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의 몸은 가두고 묶어둘 수 있어도, 그의 영혼이 갖는 호기심마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에게 자유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무엇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정신의 자유로운 사유, 그리고 자신의 탐구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꿈을 꾸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그걸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어떤 정부도, 어떤 권력기관과 조직도, 어떤 법도 가지지 못한다.


이런 면에서 책은 권력자들에게 대단히 무서운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강하게 무장시키기도 하고, 권력자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비웃고, 그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비루한 부역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독재자가 나타나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





시대의 어둠.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단순한 편이다. 계엄령이 아직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던 당시, 펑루이신이라는 한 여학생이 장선생을 마음에 품게 된다. 하지만 장선생의 옆에는 역시 비밀독서회에 속한 인선생이 있었다. 펑루이신이 연적으로 여기는 인선생을 제거하기 위해, 독서회에 속한 후배 웨이중팅에게 받은 금서를 당국에 신고하면서 학교는 풍비박산이 난다.


영화는 펑루이신의 죄책감이 형상화된 현재의 음침하고 폐허로 변한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펑루이신은 학교에서 잠들었다가 후배인 웨이중팅과 함께 깨어나고, 이미 기괴하게 변해버린 학교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녀의 죄책감이 만든 원령과 귀신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는 것.


사실 그 나이 또래 선생님에게 짝사랑의 감정을 품고(영화 속 장선생의 마음은 없었을까?) 하는 것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그런 어린 학생의 마음을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기회로 삼은 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이 아니겠는가. 학생들마저 감시의 도구로 만든 사회는 건강할리 없다. 그건 영화 속 펑루이신의 깊은 죄책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어둠의 시대는 무엇보다 이런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 속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우리에게도 이런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꼭 계엄령이 지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군부의 독재가 수십 년이었고, 그 기간 수많은 시민들이 자유를 제한받았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가 남일 같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이제 우리도 대만도 민주화를 이루긴 했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권력자에 마음에 들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한 사람들은 연이어 고발을 당하고, 이제 국가기관이 시민들의 시력과 청력을, 그리고 사고마저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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