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 - A Chinese Fairy Tal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천년 묵은 나무 요괴에게 잡혀 요괴가 된 섭소천. 그런 요괴들을 없애는 것이 일이었지만 섭소천과 사랑에 빠지게 된 도사(퇴마사) 연적하. 연적하는 섭소천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알고 그녀의 기억을 지운 후 떠나 요괴들과의 싸움을 계속한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무 요괴가 사는 흑산 인근 마을에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게 되자, 관아에서 파견한 영채신이 물을 찾아 산으로 올라간다. 영채신은 그곳에서 만난 섭소천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고, 기억을 잃어버린 섭소천도 순수한 영채신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

     섭소천과 다시 만나게 된 연적하, 그리고 영채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삼각관계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2. 감상평 。。。。。。。                        

 

     60년대에 제작되었다는 ‘원작’은 딱히 본 사람이 별로 없어선지 다들 8, 90년대에 나왔던 몇 편의 ‘천녀유혼’과 이 영화를 비교하며 평가를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봤던 향수가 더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커버린 때문인지 원작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딱히 작품의 완성도도 더 높지 못해보인다.

 

     우선 인물들의 캐릭터나 비중이 충분히 완성되지 못했다.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 감독은 여주인공인 섭소천(유역비)을 전면에 내세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우리 나라 배우 신세경을 연상시키는 청순한 외모는 나무랄 수 없겠지만 그녀가 연기했던 섭소천은 딱히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모습은 전혀 없고(사실 그 이전에 현실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잘생긴 남자 만나서 이리저리 따라다닌 것 밖에 한 일이 없다. 여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욕을 먹는 캐릭터인 영채신은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어리바리한 인물인데, 요괴든 아니든 그저 얼굴만 예쁘면 그만이라는 건지 순진한 척은 다 하면서 한 번 만난 섭소천에 빠져 앞뒤를 못 가리고 사고만 친다. 민폐 캐릭터의 전형. 그나마 시종일관 정인(情人)에 대한 의리를 지키면서 묵묵히 욕을 먹으면서도 조용히 섭소천을 지켜주려는 연적하 정도가 공감이 가는 인물인데 이 정도라면 영화 자체가 잘 될 리 없지 않은가. 영채신 대신 연적하가 주인공이 되는 거야 뭐가 문제냐 싶은 마음이지만, 그걸 좀 멋지게 그려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와이어 액션이나 특수효과가 눈이 휘둥그레 질만한 정도는 아니다. 역시나 영화라면 스토리와 인물성격이 탄탄해야 충분히 몰입해서 특수효과도 보이고 액션도 보이고 하는 건데, 이건..

     곧 DVD 시장이나 케이블로 갈 것 같은 수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훨씬 더 슬프다.

 

- M.D. 라이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차르트 - 전4권 세트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천재 음악가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전설적인 인물인 모차르트는 그 엄청난 영감어린 작품들과 함께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함으로써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인물이다. 이 책은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들을 각 시기별로 작곡한(작가가 배열한 것으로 보이는) 음악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보려고 시도한 팩션이다.

 

     작가인 크리스티앙 자크는 여기에 ‘프리메이슨’이라는 소재를 더한다.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의 열렬한 단원이었고, 사실 그가 작곡한 오페라는 이 프리메이슨적 가치를 고양시키고 널리 퍼뜨리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이다. 그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서도 생각만큼 큰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일반적인 것처럼 그의 괴팍한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작곡활동이 개인적 성공보다는 프리메이슨을 위한 헌신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전제왕정이 일반적인 시대 이런 자유주의적 가치들은 당연히 국가권력자들로부터 견제와 의심을 받았고, 결국 그가 일찍 죽게 되는 원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 

 

 

 

2. 감상평 。。。。。。。               

 

     수년 간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 결말이 기다려졌던 책도 드물었던 것 같다. 스토리가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결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지루한 스토리라 뻔히 예상되는 그 결말에 언제쯤이면 이를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거의 순전히 뭔가 하나를 끝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작가가 일찍부터 이집트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은 『람세스』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쓴 모든 작품에 그 소재를 중요한 열쇠로 등장시키려는 의도는 이번 작품에서는 지나친 고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차르트를 도와주는 인물인 타모스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을 끊임없이 연금술로 금을 만들어 충당하는 것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이는 처음부터 모차르트를 프리메이슨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나타난 어쩔 수 없는 무리수였다. 경제적, 사회적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니, 그런 현실감각이 부족한 주인공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결과가 연금술이었다는 것.

 

     책 전체에 걸쳐서 지긋지긋하게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의 성격 자체가 무엇보다 불분명하다. 여전히 과장된 기사도적 허장성세가 남아 있던 근대 초기 귀족과 부유한 중상층들에게 있어서 프리메이슨은 ‘고대의 비의’니, ‘신비한 입문의식’이니 하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사교클럽에 불과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책 속에서도 그들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 목표와 비전이 무엇인지 등장하지도 않은 채, 시종일관 애매모호한 가치들만 주워섬기는 모습으로 제시될 뿐이다. 이래서는 독자의 짜증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책 어디에도 프리메이슨적 가치의 매력에 대해서 작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린 걸까. 그 결과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던 것으로 설정되는 모차르트의 인생이나 그의 작업도 매력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책 속에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여러 음악들을 찾아서 듣게 된 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책 자체는 영 수준 이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행성 밖에서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1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공경희 옮김 / 홍성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영국의 한 지방을 여행하던 언어학 교수 랜섬은 우연히 방문하게 된 한 집에서 두 남자에게 납치된다. 탐욕스러운 드바인과 명석한 물리학자 웨스턴은 랜섬을 우주선에 태워 태양계의 다른 행성으로 가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랜섬은 이제까지 춥고 어두운 황량한 불모지라는 우주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각종 아름다운 생명체들로 가득한 어느 행성에 도착한다. 자신을 ‘소른’에게 바치기 위해 납치한 것을 알게 된 랜섬은 틈을 타 탈출을 하고, 그 행성의 거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우주와 지구에 얽힌 비밀들을 알아가게 된다. 

 

 

 

2. 감상평 。。。。。。。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실제로 그러했든, 문학 속에서 그런 작업을 했든 말이다.(물론 후자가 좀 더 쉬울지 모르겠다. 아무튼 앞서 존재하는 것들을 참고할 수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 C. S. 루이스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톨킨과 절친한 관계이기도 했던 루이스는, 그의 친구와 함께 지금 존재하고 있는 세상과는 좀 다른 새로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고, 그 결과 나온 것들이 ‘나니아 연대기’나 이 작품과 같은 우주 3부작이다.

 

     이 작품에서 루이스는 화성에서 살아가는 서로 다른 모양의 지적 생명체들을 창조해냈다. 인간이라는 한 종이 지배하고 있는 지구와는 달리 그가 그리고 있는 화성은 서로 다른 종의 인격체들이 다른 존재들을 말살시키려하지 않고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한 채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오야르사, 말렐딜, 엘딜 등의 영적 존재들의 등장은 이 짧은 이야기가 단순히 심심풀이로 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들이다. 루이스는 여전히 이 책에서도 ‘신비’라는 주제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람들은 각각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오직 황금에만 집착하는 드바인은 물질중심주의를, 필요하다면 다른 생명체들을 모두 멸절시키고서라도 인간 종족의 영속성을 유지시키려는 웨스턴은 극단적인 과학지상주의를 상징한다. 작가는 화성인의 입장에서 본 두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이 두 가지 관점이 그 영향력과는 별개로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다. 구조 자체가 멋진 접근이다.

 

     ‘나는 이 책에 매료된 나머지 다 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던 톨킨의 감상이 이 책의 전체적인 인상을 잘 대변해준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외계인 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르지만, 루이스의 문학이 가지는 독특함을 알고 읽는다면 더 큰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바타보다 나은 주제인데다, 이 정도 배경에 스토리라면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께서 어제 죽으시고,
오늘 살아나셨고,
내일 다시 오시는 것처럼 살라.

- 테오도르  엡

 

Live as though Christ died yesterday,
rose from the grave today,
and is coming back tomorrow.
- Theodore Ep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