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것은

사는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모여 앉으면 누가 아파트 팔아서 돈 번 이야기나

주고받는 삶은 삶이 아니다.

자기가 찾은 작은 즐거움에 관해 가슴 벅차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진짜다.

 

-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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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최상의 대처 방법은

자신을 비하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깨닫고 치유를 소망하는 것이다.

…………

우리는 죄를 지었기에 저주의 대상이 아니고

죄를 용서하고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 필요한 대상이다.

 

- 마크 맥민, 채규만, 『심리학, 신학, 영성이 하나된 기독교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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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자체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주식회사인 ‘타마린(Tamerlane)’은 중동의 가상 국가 투라키스탄를 폭격해 초토화를 시킨 후, 재건을 명분으로 박람회를 열어 개발이권을 팔아넘기려 한다. 하지만 여기에 귀찮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오마 샤리프라는 이름의 석유재벌이 투라키스탄 전역에 송유 파이프관을 설치하고 있었기 때문. 재주는 자신들이 넘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가져가는 걸 막기 위해 파견된 전문 킬러 브랜드 하우저. 오마샤리프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하우저가 좌충우돌 벌이는 약간은 어설픈 활약기.

 

 

2. 감상평 。。。。。。。                  

 

     "악당을 없애기로 계약했는데 병원 노동조합원, 기자, 농업회사, 가톨릭 해방신학자, 몰락한 콜롬비아 커피 농부 이들이 야만인이고 타락한 문명 반대자들이라고? 우린 중앙아메리카를 묘지로 만들었어요."

 

     영화 속에서 브랜드 하우저가 했던 대사 가운데 한 부분인데,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주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기존의 가장 큰 준거집단이었던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점차 약화되면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기업이다. 다국적 기업이 확산되면서 더 이상 특정 국가에 소속되지 않게 된 그들은 오로지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조직으로, 당연히 정의나 평화와 같은 가치들은 안중에 없다. 이런 조직들이 권력을 잡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얼마든지 전쟁을 일으키고, 이익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암살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 개인의 자아실현의 기회는 사라지고 오로지 힘과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세상.

 

 

     다만 이 괜찮은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이렇게 밖에 만들 수 없었나 싶은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든다. 일단 영화의 장르 자체가 대단히 모호해져버렸는데, 영화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풍자와 조소(嘲笑)는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어설픈 코미디와 연출 + 연기로 인해 가벼워져버렸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볼 때 충분히 진지하게 만들어도 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잘 만든 영화라고는 하기 어려울 듯.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장르의 영화는 아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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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는
오직 순종의 정원에서만 자란다.


The fruit of the Spirit grows
only in the garden of obedience.
-Terry Ful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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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미래의 어느 세상.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 하나가 의사 앞에 앉아 있다. 자신의 이름을 네모 노바디(Nobody)라고 소개하는 그는, 이름 그대로 자신이 ‘아무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상한 것은 노인이 자신을 서른네 살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기술로 인해 누구도 죽지 않게 된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자연사를 앞두고 있던 그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 한 명이 병원으로 잠입을 하게 되고, 네모는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영화가 좀 어렵다. 노바디가 풀어 놓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가 내뱉은 말처럼,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모순되고 말이 되지 않는다. 동시에 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다시 저 사람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네모들은 어린 시절 동네에서 만난 애나, 앨리스, 진이라는 세 명의 친구들과 결혼을 하고 그에 맞는 삶들을 살아간다. 공교롭게도 각각의 이야기 속 네모들은 모두 삼십 대 중반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노인 네모는 누구인가?

 

 

 

     영화의 키워드는 역시 ‘선택’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결과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것. 어느 것이 과연 최선일까? 이럴 때 그 옛날 일밤에서 이휘재가 열연했던 ‘인생극장’처럼 두 선택지의 삶을 다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고 편할까.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그랬다. 그는 각각의 삶을 다 살아보았다(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비유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약간 달라질 수 있다). 영화 속 ‘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본 뒤에야 비로소 여기까지 왔다.’라는 구절은 바로 이걸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모든 삶들의 결론은 삼십 대를 채 다 살지도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영화 속에는 초끈이론이며 평행우주, 빅크런치 같은 물리학 이론들이 잔뜩 등장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현대물리학 속에서 찾으려고 시도하는 듯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답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다른 평행 우주, 혹은 다른 선택 속의 나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때문에 영화의 결론부에 가서 각각의 선택에 따른 결과들은 나름대로 가장 최선의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선문답 같은 대답이 주어지는 것도 나름 이해가 간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선택들의 결과로 있는 지금의 나일뿐이다. 모든 삶을 다 살아본다고 하더라도 어떤 하나의 길이 완전하고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좌우되지 말고(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반복되는 장면 중 하나인, 이혼하려는 부모 사이에서 누구를 따라갈까 고민하는 장면은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좀 더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게 최선일 뿐이다.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간만에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괜찮은 영화를 봤다. 어떤 것이 최선인가를 고민(만)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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