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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전쟁 - 생명 연구의 최전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윌리엄 F. 루미스 지음, 조은경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오랜 시간 동안 생물학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저자가, 이 분야에 관한 최신의 연구 경향들을 설명하고,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기원과 미래를 전망한다. 각종 유전자 연구로부터 시작해, 세포 복제 기술, 안락사나 낙태, 인위적인 산아조절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2. 감상평 。。。。。。。
책은 현대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생명공학에 관한 최신의 연구 경향과 경과들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아가 이런 연구들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회적인 함의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정하면서 좋은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유물론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저자답게, 이 책 안에서 자신이 다루고 있는 모든 주제들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적 자연주의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경향을 지닌 저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저자인 윌리엄 F. 루미스 역시 생명에 대해 매우 환원주의적 시각- 충분한(약 수억 년?) 시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생명은 자연발생 될 수 있다는 - 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낙태와 안락사, 강제적인 인구조절과 같은 자칫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도 효율성 중심의 시각을 보여준다. 마치 유산을 “자연적인 품질관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처럼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어떤 주제들에 대해서 단순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머물지 않고 있으며, 특정한 관점- 유물론적 자연주의 -을 주장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책 속에 강조되어 있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보는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자가 이 주제들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 여전히 제대로 생각해본 것이 없거나,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예컨대 저자는 종자 교배와 인위적인 유전자조작을 거의 같은 것으로 여긴다(104). 또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수정체와 그 이전 단계의 생식세포를 같은 부류로 놓고 있다(82). 당연히 GMO가 가질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이나 태아(혹은 배아, 근데 이 두 가지 용어가 구분될 수 있긴 한 걸까?)에 대한 외적인 제거(낙태)에 반대하는 것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무시되어버린다.(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작업한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다 고상해지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나아가 인간 진화(이 용어에는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다. 예컨대 치명적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는 것 또한 이 책에서는 일종의 진화의 한 단계로 본다)를 인간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대표적인 기술로 인간 세포 복제를 꼽고 있는데, 이건 (굳이 그들의 분류학적 기준에 따르자면) 특정한 종(種) 내의 다양한 형질 변화와 좀 더 큰 의미에서의 진화를 구분 없이 사용하며 일종의 혼동을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 이런 관점의 바닥에 깔려 있는 환원주의적 시각인데, 이 시각과 저자가 애써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인간에 대한 좀 더 고상한 관점은 애초부터 조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저자 자신은 부정할지도 모르나, 결국 책은 인간 종의 면역증강을 위해 인위적인 인종혼합결혼을 한 대안으로 여기고 있고, 과도한 인구 증가로 인한 지구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서 다시 인위적인(때로는 ‘제제조치’까지 포함하는, 344) 인구 억제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런 전체주의적 시각 안에 인간성이나 인간됨의 고유한 특성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경제학적인 측면에서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는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큰 공헌과 혜택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연구자들은 치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모든 문제를 그들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여기엔 다양한 사람들의 충분한 고민과 토론, 합의가 있어야 하는 건데, 요샌 특정한 사람들이 자신들만이 자격을 가진 양, 제멋대로 이 문제를 결정해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했던 말이 이 책을 읽은 감상을 맺는 데 알맞을 것 같다.
“당신들은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을 측정하고, 틀 안에 넣고, 분류하고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나눈다. 당신들은 모든 것을 잘게 자르면 자를수록 더욱 더 진리에 다가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매미를 잘게 자른다고 매미가 왜 노래하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난초 꽃잎의 세포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고 해서 난초 꽃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