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아들(안데르스)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온 안나.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그녀는 베이비 콜(일종의 무전기와 비슷한 기기)을 사기로 마음먹는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베이비 콜을 통해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잠을 깨 서둘러 달려갔지만, 다행히 아들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채널이 같아서 인근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섞여 들어온 것. 본능적인 불안감이 점점 안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아동보호국 직원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방문하고, 아들은 좀 수상한 친구와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안나와 안데르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갖가지 이상한 일들의 비밀이 점차 밝혀져가기 시직한다.

 

 

 

2. 감상평 。。。。。。。        

 

     익숙한 공식이었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아들과 함께 도망쳐 나온 안나라고 소개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이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여주인공인 안나 자신에게도 뭔가 편하지만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 전체를 통해서 남편은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안나에게 불안감을 주는 요소로만 그려지고, 안데르스에게 생긴 새 친구는 말 그대로 신출귀몰, 그리고 안나는 기억상실증을 호소하기까지.. 나름 긴장감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긴 했는데, 환각과 유령이라는 소재로 마무리를 한 건 약간 흐지부지 끝난 듯한 느낌도 준다.

 

     안나 역의 누미 라파스는 밀레니엄 시리즈 세 편을 통해서 낯이 익은 배우라 반가웠다. 앞서봤던 영화들과도 한편으로는 비슷하면서도, 이번에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라는 불안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 배우의 연기와는 별도로 극에서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건 조금은 밋밋한 연출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나.

 

 

 

 

     덧.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서도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봤던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밀레니엄에서는 자신이 담당하는 여자를 강간하는 보호관찰관이 있었는가 하면, 이 영화에서도 역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안나를 성희롱 하는 아동보호국 직원이 나온다. 높은 국민소득을 바탕으로 복지사회를 지향하던 북유럽 국가들의 정책이, 자칫 공권력의 비대화와 그로 인한 개인의 인권유린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들이(실제 어떤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담겨 있는 것 같다. 국가가 국민들의 일상 전반의 안전과 편의를 보호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건 역으로 그들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도 되니까. 복지사회를 지향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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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VS 프로이트 C.S. 루이스 연구서
아맨드 M. 니콜라이 지음, 홍승기 옮김 / 홍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와 회심 후 많은 강연과 책들을 통해서 영적 세계관을 설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C. S. 루이스의 책과 편지들을 바탕으로 두 세계관을 비교, 대조하는 작업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하버드에서 실제로도 같은 주제를 놓고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자답게 양측의 주장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2. 감상평 。。。。。。。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보통 이렇게 같은 책을 바로 반복해서 독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모두 다 2박 3일 동안 데려다 놓고는 딱히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가지고 간 책 밖에 볼 수 없도록 만든 예비군 훈련 때문이다.;; 아무튼 뭐 덕분에 아주 제대로 정독을 할 수 있었으니까.

 

 

     다양한 세계관들이 있지만, 역시 크게 나눈다면 유물론적 세계관과 유신론적 세계관이 있다. 유물론적 세계관 위에 과학주의적 세계관을 비롯한 다양한 증거주의적, 또는 환원주의적 세계관들이 있고, 유신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는 여러 종교들의 세계관들이 꽃피우고 있다.(물론 이 책에서 루이스는 유신론적 세계관 중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 서 있다) 문제를 늘 단순하게 해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쪽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으로, 다른 쪽은 그저 신앙적이거나 맹신적인 것으로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뭐 그건 자신들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음을(혹은 그럴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실제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프로이트는 퍽이나 솔직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신이 분명 어떤 입장을 ‘채택’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고,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 안에서 모든 것을 끝까지 해석하려고 애썼던 인물이니까. 분명 그는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맹점들과 한계들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어느 지점(예컨대 ‘죽음’과 같은)에 이르러서는 ‘체념’밖에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한편 C. S. 루이스야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기독교 세계관(그의 용어로는 ‘영적 세계관’)의 대표적인 옹호자이자 변증가다. 이 둘의 대결은 상상만으로도 상당한 지적 즐거움이 예상되는 논쟁인데, 이 책의 저자는 아쉽게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대화를 상당한 정도로 재구성해 낸다. 책은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입자에서 양쪽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분위기는 루이스 쪽으로 약간 기우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각자의 세계관에 충실하게 살았던 두 사람의 실제 삶의 모습이 한족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개인적인 성취감에 있어서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반면, 다른 쪽은 그가 가진 세계관으로 여러 고통과 아픔들을 이겨내고 삶은 점점 더 생기로 빛나며 주변사람들에게는 유익을, 자기 자신에게는 만족감을 주었으니까. 결국 가장 확실한 증거는 실제 삶의 모습 일 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C. S. 루이스의 책은 거의 다 읽어봤기에 익숙한 내용들이었고, 주제별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반면 프로이트의 책의 경우는 익숙하지 못했는데, 정신분석을 전공한 저자의 명쾌한 정리 덕분에 대략적인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세계관에 대한 논의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대조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관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고 나면 분명 얻는 바가 있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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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놀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유쾌함은

처음부터 서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누는 유쾌함이어야 합니다.

 

-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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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960년대의 파리.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로랑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걸었던 엄마 재클린. 7살이 된 로랑은 학교에서 자신과 같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소녀 베호를 만나 금새 푹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재클린.

 

     그리고 현대의 몬트리올. 열정적인 DJ인 앙투완과 결혼해 두 딸을 낳고 행복하고 살고 있던 로즈. 하지만 앙투완은 우연히 만난 캐롤이라는 여자를 잊을 수 없었고, 결국 로즈와 헤어지고 캐롤과 같이 살기로 한다. 오직 태어나서 한 남자만을 사랑하며 살았던 로즈는 도저히 앙투완과 두 사람을 용서할 수 없으면서도, 앙투완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며 여전히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복잡한 심경을 보인다.

 

     어느 날 한 영매술사를 통해 자신이 전생에 앙투완을 아들로 두었던 엄마였음을 알게 된 로즈는, 결국 전생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이 지금에 와서야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고 앙투완을 찾아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2. 감상평 。。。。。。。         

 

     영화 전체를 흐르는 몽환적 음악으로 잔뜩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하지만, 결국 영화가 전하고 있는 건, 전생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현생에서 가정을 파괴하는 불륜이라도 아름답게 성사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인연이니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어떻게든 유부남인 앙투완과 캐롤의 불륜을 포장하려 했지만, 정작 남편에게 충실하고 딱히 아무런 귀책사유도 없는 로즈의 불행은 또 다른 내생을 통해서 보상받을 거라고 할 텐가.

 

     결국 영화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충동을 섬기는 것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현대의 새로운 숭배현상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게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겠다는 태도랑 다른 건 또 뭔지. 뭔가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름답지 않은 걸 아름다운 척 꾸며대는 건 궤변이고 조작일 뿐이다. 영매를 통한 최면술 체험 한 번으로 불륜을 가정파탄의 주범인 남편을 찾아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4대강 공사가 전 국토의 녹색성장을 추진하는 동력이 될 거라는 말을 들은 것만큼 황당하다.

 

     분위기도, 메시지도 딱히 와 닿지 않았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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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며 놀기를 그만두는 것은 늙어가고 있다는 표지다.

 

 

- 루이스 알렉산드레 솔라누 로씨, 『길에서 만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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