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유진 피터슨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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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약 。。。。。。。     

 

     예레미야의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주는 책. 자신의 이름과 같은 책을 남기긴 했지만, 예레미야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을 성경에서 읽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음에도, 저자는 무리할 정도로 상상력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도 훌륭하게 이 일을 해냈다.

 

 

 

2. 감상평 。。。。。。。   

 

     먹고, 일하고, 잠시 여가를 즐기고, 쉬고, 또 다시 먹고 일하고가 반복되는 실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더 높은 차원의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질문의 형태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즐기는 것만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세속적 쾌락주의자들도, 엄숙한 계율 아래서 하루하루 조심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수도사들도 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유진 피터슨은 이 책을 통해 그런 ‘온전함을 향한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에 관해 이야기 한다. ‘우리를 개미집 수준으로 격하시켜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끌어 모으고 소비하는 일에 허둥거리도록 마드는 사회’(17)에 대해 반격을 취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고, ‘소망에 깊이 뿌리박은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그 미래에 참여’(210)하는 일이 그 결론 즈음에 있다. 물론 그 과정에는 그분이 늘 함께 하신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 세상을 포기하고 저기로 빠져나가기만을 바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그 온전함이 실현되는 것들을 미리 보고 경험하면서 완성될 그 나라를 기대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여기도, 거기도 모두 그분의 창조세계이니 말이다.

 

     전작인 다윗에 관한 책과는 약간 결이 다른데, 아마도 예레미야라는, 좀 더 혹독한 사회로부터 정면으로, 그리고 좀 더 오랫동안 고난을 겪어왔던 인물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갈수록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지금의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시의적절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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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을 먼저 터뜨리는 쪽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 파울루 프레이리, 『페다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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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 않은 정치인 안철수의 첫 번째 도전은 이렇게 일단 막을 내렸다.

언론을 통해 밝힌 바를 통해 추정하자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정치라는 쉽지 않은 분야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후보 사퇴 이후 당분간은 달아올랐던 자신을 냉각시킬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선이 끝나고 나면 어느 식으로든 활동을 재개해야 할 것이다.

그럼, 그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전문적인 정치평론가나, 정치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사실 요샌 이 단어가 그냥 '돈 받고 어떤 일을 하는'이란 뜻일 뿐이라..

나같은 보통 사람도 한 마디쯤 덧붙이는 게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난 30대 초반의, 경기도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아왔고,

종교는 기독교, 굳이 따지자면 야당쪽에 가까운 남성 유권자다.

  

 

정치인 안철수에게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단계는

'가치 중심의 정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가치'는 착한 가치여야 함은 당연하다.

특권의 확산을 막고,

사람을 물건이나 숫자가 아닌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진짜 사람을 위한 가치를 지향하는 공동체말이다.

 


정치에 있어서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 개입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지만,

정치란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지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그것을 절대적인 원리로 세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들을 위험스럽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력을 현재의 특권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도구로 보는

우리나라의 소위 보수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서로는 매우 다른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실은 거의 동일하게 전제적이고,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위험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인간을 사상의 도구로, 후자는 권력의 도구로 본다는 것 뿐.

 


단순히 양비론에 근거한 중도가 되라는 주문이 아니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낡은 이념적 전선(戰線)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좀 새로운 정치 결사체가 보고싶다는 것이다.

안철수 본인도 이번 도전을 통해 깊이 느꼈겠지만,

오늘날처럼 형식적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갖춰진 상황에서는

정치적 영웅 한 명이 나타나서 뭔가를 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좀 더 실제적이고 유효한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지금의 우리나라 정당구조는,

외적으로는 이념대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고,

내부적으로는 현재의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모두 그 비율의 차이만 있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근거한 사회구조를 옹호하는 건 마찬가지다.

한쪽이 좀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좀 더 많은 구성원들이 동조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반대쪽 역시 그 핵심부에는 만만찮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

현재로서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하는 건 최선의 방안은 아니다.

어쩌면 정당 내 개혁을 시도하다가 연달아 실패를 경험하고는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가 정말로 새로운 정치를 할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대선이 끝나고 나면 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단순히 세를 불리기 위해 어중이 떠중이를 다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빌붙으려는 '꾼'들을 배제하고,

앞서 말한 좋은 가치를 위해 뜻을 둔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아마도 이 작업 자체가 그가 대통령 감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시험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원래 직접 일을 하는 자리라기 보다는

사람을 모아 쓰는 자리이니 말이다.

 


올초 총선이 끝났기 때문에 다음 선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다.

이점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될수도 있지만,

당장 정국에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는 국회의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은

신생정당에 불리한 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기존 정당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하는 방안도 있지만,

자칫 참신성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퇴색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할 일이다.

시작은 조금 허둥대고, 미숙할 수도 있지만,

좀 다른 정치결사체를 만들어 볼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물론 이런 말들은 그가 정말로 선의를 가지고 있고,

그 의도를 실현시킬 의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할 때나 의미가 있을 터.

그가 이 나라 정치를 구해낼 구원자나,

도적적으로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가 지난 수십 일 동안 보여왔던 행보나 쏟아낸 말들을 보면

배신과 저열한 욕설, 얕은 수작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금의 정치판과는 좀 다른

새로운 정치에 대한 조그만 기대 정도는 가져봄직 할 것 같은데...

뭐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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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아내를 잃고 홀로 지내고 있는 노(老)교수 월터 베일. 학교에서는 20년 째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하며 하루하루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공동논문을 발표한 동료 교수를 대신해 뉴욕에 갔다가,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와 살고 있는 한 커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역시 속았던 시리아 출신의 타렉과 세네갈 출신의 자이납은 딱히 갈 곳이 없었고, 월터는 그들을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준다.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인 젬베를 연주하는 타렉은 그 고마움을 월터에게 젬베 연주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표현했고, 월터는 조금씩 타악기 특유의 리듬감에 빠져들며 삶의 리듬을 되찾기 시작한다.

 

     어느 날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타렉이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월터의 인생악보에 갑작스럽게 다시 불협화음이 발생했고, 월터는 30년의 나이차가 나는 친구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현대인들의 삶은 리듬을 잃어버렸다. 그저 한없이 조이고, 또 바짝 잡아 당겨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근본적으로는 끊임없이 성장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위기가 되어버리는 자본주의란 거대한 세계관 속에 갇혀버렸기 때문인데, 아무튼 이런 극심한 긴장감 속에 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현(絃)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하루하루의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나날들이 반복되는 상황은 다 그렇게 줄이 끊어진 결과다. 이 영화 속 월터의 모습이 딱 그렇다.

 

     어떤 것도 즐겁지 않고, 무엇보다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가던 월터의 인생에 변주를 준 것은 젬베를 매개로 하는 타렉 커플과의 만남이었다. 그저 대도시에서 자신의 연주를 하고 싶어 온 착한 젊은이에게서 월터는 좀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의 삶은 리듬을 되찾게 된다. 비록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났고,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해 오던 일들이 조금씩 엇나가게 되었지만, 어차피 아무 일 없는 평안이라는 건 관 속에 들어가면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내 삶에 리듬을 더해줄 악기는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젬베를 갖게 된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활기차고 밝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주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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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 혼돈의 숲에서 길을 찾다 종교 개혁 시리즈 (익투스)
김용주 지음 / 익투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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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한국인 신학자가 쓴 루터 평전이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을, 그가 남긴 저서들과 당시의 상황들에 초점을 맞춰 엮어 낸다.

 

 

2. 감상평 。。。。。。。   

 

     학부 때 루터에 관한 유명한 평전인 롤란드 베인톤의 ‘마르틴 루터의 생애’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통해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에 관한 전체적인 인상을 그릴 수 있었는데, 이번에 또 한 권의 루터 평전을 읽게 되었다. 앞서의 책을 읽은 게 워낙 오래 전이라 두 권의 책을 자세하기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의 장점을 몇 가지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정확한 문법에 익숙한 한국인 학자가 썼기 때문에 어색한 번역 투의 문장들이 별로 없고,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며, 일방적인 찬사나 터무니없는 깎아내리기가 보이지 않아 좋다. 여기에 신학적으로도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원래 의도했던 것도,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는 종교개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 일은 단순히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만 관련된 일이 아니었고, 그가 살던 지역과 국가, 나아가 한 대륙 전체를 금새 삼켜버린 엄청난 이슈였다. 뭐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그럴 수 있다고 칠 수도 있지만, 루터는 그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를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선 위치에서 버텨냈다는 데 그 특별함이 있다.

 

     그 치열한 전투와 같은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또 말로 쏟아내며 하나의 거대한 사상을 형성해 낸 한 인물의 삶을 읽는 것은 꽤 가치 있는 일이다. 신학적으로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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