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남편의 합의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수원. 그녀는 사실상의 가장으로, 간병인으로 일하는 동시에 환자들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요양소에 입원시켜주는 브로커 일에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비록 생계를 위해 돈을 받고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가족이 돌보지 않는 환자들을 위한 일이기도 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알콜중독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고등학교 사격부의 계약직 코치로 일하고 있는 수원의 남편 동식. 해고될 위기에 몰려 이사장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결국 피하던 술을 마시게 되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학교 사격부 학생 한 명을 치는 사고를 내고 만다. 합의를 위해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다니다가 결국 해서는 안 될 일에까지 손을 대고 만 수원. 여기에 두 사람의 딸인 주미는 웬 소년과 함께 갔다가 온 몸에 낙서가 된 채로 돌아오는 일까지 벌어진다.

 

 

 

 

2. 감상평 。。。。。。。   

 

     개봉 즈음 보려고 극장 예매를 하려다 우리 동네 롯데시네마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꼭 보고 싶었던 터라 좀 떨어져 있는 극장에라도 가볼까 생각하던 차에 금새 극장에서 내려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불공정한 상영행태에 반발해 감독이 스스로 상영중지 조치를 결정했다는 것. 결국 영화를 보기 위해선 좀 기다려서 다운로드 받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뭐라 한 마디로 정리하기가 좀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손길(Touch)을 보여주는 주인공 수원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주제가 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스토리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지 않고, 뭔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나중에 관련 기사를 보면서 알게 된 건데, 영화 시간을 100분 안쪽으로 맞추기 위해 몇몇 장면들을 과감하게 삭제했다던데, 그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주연을 맡은 김지영의 열연이 돋보인다. 배역을 위해 엄청난 감량까지 감행하는 프로 정신도 그렇고,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연기력만큼은 인정받아온 그녀니까. 누군가의 좀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세상을 살면서, 힘닿는 대로 그들을 어루만져 주려는 수원이라는 캐릭터를 잘 살려내지 않았나 싶다.

 

 

 

     세상은 발전해가고 있다는데, 기술도, 시스템도 진보한다고 하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외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도움은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손에 맡겨지고, 아이들은 직업적인 돌봄이들과 교사들에게 전적으로 위탁되어 있다. CCTV와 자동문, 늘 깨끗해 보이는 무균실과 금속성의 건물, 장치들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그 실체도 불분명한 경제성장률 몇 %나 GDP니 뭐니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니셜이 아니라, 정이 담긴 포옹 한 번, 따뜻한 말 한 마디와 함께 건네는 위로일 것이다.

 

    끊임없이 더 많은 부와 물질을 쌓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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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예산은 도덕적 문서다.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재의 연방 예산은 ‘비성경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종교인들이 분명하고 예언자적인 반응을 보여야 할 때다.

우리에겐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예산 우선순위에 반대하는

신앙 중심 구상이 필요하다.

 

- 짐 월리스, 『하나님의 정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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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는 IBM뿐만 아니라 독일이라고 하는 국가 전체가

컴퓨터처럼 착착 손발을 맞춰 작동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법률가는 법률가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철도원은 철도원대로,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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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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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어느 날 한 여자가 나뭇가지로 땅에 금을 그었다. 또 다른 남자는 엄청나게 무거운 돌을 들어 바다를 향해 던졌고, 또 다른 여자는 파란 양말의 털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남자의 주변에는 갑자기 수 천 마리의 찌르레기 떼가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자는 홀로 땅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 이후,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 사이를 가로지르던 피레네 산맥이 마치 칼로 자른 듯 잘라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이베리아 반도는 말 그대로 거대한 돌뗏목이 되어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이동하기 시작한다.

 

     혼란에 빠진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부와 국민들, 유럽과 아메리카의 정치인들의 모습이, 유럽의 일부분이면서도 이질적이고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베리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결합되면서 특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 와중에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남녀는 함께 어디론가 여행을 시작하고, 다시금 주제 사라마구만의 말의 향연이 펼쳐진다.

 

 

 

2. 감상평 。。。。。。。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뭐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일단 여행을 떠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서로 모이게 하는 이유도 불분명하고, 사실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어느 것 하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들도 없다. 더구나 반도가 통째로 떨어져 나와 대양을 건너다니.. 여기에 이야기 속 정치인들의 과장된 헛소리들은 또 어떻고. 그냥 보면 책 전체가 부조리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은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이유가 되곤 한다. 조금 더 무거웠던 작가의 전작들(‘눈먼 자들의 도시’와 그 후속작인 ‘눈뜬 자들의 도시’ 같은)에서 이런 혼란들은 늘 인간들의 잔혹함과 비열함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향할 목적지를 설정하고, 행동의 이유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관계를 설정하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이는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나머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저자의 눈이 조금 순해졌다고 할까.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땅이 떨어져 나와 마치 배처럼 바다 위를 떠다니고, 빙빙 돌다가 방향을 바꿔 이동하는 엄청난 격변 속에서도, 이야기 말미 이베리아 반도(이제 반도가 아닌 섬이라 불러야 하는)에 사는 거의 모든 여자들은 일제히 임신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 그렇지, 무슨 천지격변이 발생하고,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당장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는 건지도.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암시들과 인용들, 역사적 사건들을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조금 더 와 닿는 면이 많았을까.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확실히 문화적 장벽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한 번 볼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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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인 더 우즈
드류 고다드 감독, 크리스 헴스워스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2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1. 줄거리 。。。。。。。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외딴 오두막집으로 놀러간 다섯 명의 친구들. 모처럼 집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며 제대로 놀아보려고 했지만, 시작부터 그 집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지하실에서 오두막의 옛 주인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물건들을 발견하고, 그 중 한 일기장에 적힌 라틴어 문장을 읽자 집 주변에 숨어 있던 좀비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좀비들의 습격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었으니, 다섯 명의 친구들의 모습을 처음부터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었던 어떤 사람들이 바로 그것. 스스로 인류를 위해 대단한 봉사나 하고 있는 양 떠벌리는 그들은, 친구들을 차례차례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영화는 네임벨류가 그닥 높이 않은 젊은 배우들이 등장해, 멀리 놀러 갔다가 하나씩 괴물들에게 당한다는 ‘13일의 금요일’ 유의 B급 슬래셔 무비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모든 상황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의 존재를 보여주면서 뭔가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할만한 설정의 부재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인류를 위한 거대한 계획의 일원보다는, 그냥 집단 관음증에 빠져 있는 변태들로밖에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한편으로, 피해자들을 좁은 건물, 혹은 엄격히 제어되는 공간 안에 집어넣고, 실험으로 포장된 고통을 주며 관찰한다는 설정은 ‘큐브’ 시리즈나 ‘쏘우’를 살짝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 영화들과 비교하기에는 심리 묘사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인신공양. 전 인류를 살리기 위해 다섯 명의 젊은이들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용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 소수의 희생은 예부터 칭송받아온 일이긴 하지만, 집단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소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건 좀 다른 이야기다. 이 경우 대개 그 ‘소수의 희생자’는 힘도 빽도 없는 약자들이니까 비겁한 일이 되기도 한다.

 

     수천 년, 수백 년 전이나 있었을 것 같은 이런 희생 떠넘기기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보와 힘을 독점하고 있는 주류는 그렇지 못한 약자들의 희생 위에 자신들의 번영을 즐기고 있고, 공동체가 얻은 부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딱지를 붙이고는 분노와 증오를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그것이 좀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비틀린 채로 과장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인간성의 바닥을 보는 건 실제 현실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란 말씀. 기술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성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만큼은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사람들은 딱히 더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

 

 

     시작부터 뭔가 엄청나게 크고 심각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처럼 무게를 잡았지만, 약간 황당하게 끝나버린 영화. 특히 영화 말미에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딱히 특별한 것 없이 그냥 산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이너 쪽의 슬래셔 무비로 갈지, 메이저 쪽의 음모이론이나 환타지로 갈지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 한 게 아닌가 싶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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