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분야를 보면 리더들이 부족한 데서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정신적 독립과 정의감마저도 크게 쇠퇴했다.

시민들의 정신적 독립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인 의회제도가

많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으며,

독재정권이 탄생해 묵인을 받고 있다.

이는 독재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권리가 더 이상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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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엄격한 아버지 슬하에서 연애 한 번 못 해본 채 자란 말희(황우슬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후, 아버지의 각서(?)를 들고 집으로 찾아와 그 집을 갖겠다고 말하는 세영. 둘은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고, 세영은 때마침 나타난 후배 상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말희에게 연애하는 법에 대해 특별 교습을 해주기 시작한다.

 

 

 

 

2. 감상평    

 

     스토리상으로 딱히 특별한 건 없고, 영화 사이사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넣어주는 노출 장면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작품. 수위 높은 노출 연기는 잘 하지 않는 황우슬혜를 위해 뜬금없는 수영장 장면도 등장하고, 아직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베드신은 노골적으로 끼워 넣었다.

 

 

     물론 뭐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타고 다니는 차를 보고 마음에 들면 만난 첫 날이라도 모텔로 가는 걸 하나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세상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 꼬셔서 자러 가려는 말희와 세영의 작전이야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서 섹스가 지상목표인양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은 분명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세영에게 들이대는 변태 역의 김종석이 연기한 캐릭터와 그 지향점은 거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화가인 서희가 문화계의 뿌리 깊은 학벌주의로 인해 좌절하는 모습도 살짝 등장하지만 그다지 비중 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탁월한 관점 같은 건 보이지 않는, 뻔한 스토리와 진행, 뻔한 연기와 연출로 뒤범벅 된 킬링타임 용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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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어 좋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는다.

 

- 다나베 세이코, 『서른 넘어 함박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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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내연남을 잔인하게 살해하고는 아들 용호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는 주협(마동석). 어느 날 용호가 다니는 학교에 지수라는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된다. 그런데 지수는 우연찮게도 주협의 범행을 알고 있는 목격자였던 것.

 

     아들에게만은 자신의 과거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주협은 지수를 제거하기로 하고, 용호는 그 와중에 아버지의 정체를 알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용호와 그런 아들을 지키려는 주협이 벌이는 파국.

 

 

 

 

2. 감상평   

 

 

     그리 길지 않은 상영 시간에 뭔가를 담아내려고 시도했던 것 같으나 역부족이었다는 느낌. 스토리 자체도 무겁고, 주제 역시 쉽지 않았기에 배우들의 더욱 깊은 내면 연기가 필수적이었던 영화였지만, 주연을 맡은 마동석은 물론 두 명의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도 기대 이하였다.

 

     아역 배우들이야 아직 성숙한 연기력을 보이기 어려우니, 대사가 조금만 많아져도 금새 대본 읽는 게 눈에 보이는 거야 이해가 되지만,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진행시켜가야 했던 마동석의 경우는 상황이 좀 복잡하지 않은가. 이번 작품에서 그는 살인 충동을 애써 억제하는 복잡한 심경을 연기해야 했는데, 타고난 인상 말고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살인범을 주인공으로 부성애를 그려내려고 했던 시도 자체가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로부터는 한사코 도망치면서도 아들만큼은 제대로 키워내고 싶다는 건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욕심이었고, 이걸 일단 어떻게든 정상적인 무엇인 것처럼 그려내야 했는데 그게 썩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책임은 피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여기에 짧은 상영시간도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의 한계, 혹은 감독의 한계? 아니면 제작 여건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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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형태의 신학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경험과 문화로부터 생성된 규범을 따르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성경이 이러한 규범들을 지지하거나

이들과 조화를 이룰 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

자유주의에 내포된 문화적 적응주의는 기독교 신학을

단순히 지배적인 문화 이데올로기의 볼모로 만들 위험이 있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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