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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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나름 진보의 영역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활약해왔던 ‘논객들’의 책을 통해 그들의 사상과 인생을 평가해 보는 책. 논객들의 활동무대를 만들다시피 했던 강준만부터, 잘 알려진 진중권, 우석훈, 김어준, 유시민, 박노자 등과 같은 인물들이 저자 자신의 평가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2. 감상평 。。。。。。。   

 

    저자는 서문에서 ‘사기’의 열전편을 예로 들며 이 책의 성격을 설명하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대통령이나 거시지표와 같은 언급을 하지 않고 (좀 더 재미있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되, 그에 대한 자신의 평가까지 과감하게 덧붙이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책은 이에 걸맞게 거침없는 저자의 판단과 평가 비판이 실려 있다.

 

     저자의 평가는 상당히 까칠하다. 이 사람은 이런 부분이 한계고, 저 사람은 또 저런 부분이 문제다. 물론 위인전을 쓰는 게 아닌 이상 비판적 부분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또 어떤 인물을 지지하거나 반대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건,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선 안에서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읽다 보면 세상 참 팍팍하게 산다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 나 같이 무식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굳이 억지로 문장 사이에 우겨넣는다든지, 현학적 수사가 난무하는 문체라든지 하는 부분도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고.(물론 나 읽으라고 쓴 건 아니긴 하다)

 

 

     책에 등장하는 논객들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상당히 침울하다. 한때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주장했던 그들이었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결과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상황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일이 과연 의미가 있었는가 하는 자문을 하게 만들었나보다. 더러는 붓을 꺾었고, 더러는 고양이로 시선을 옮겼고, 또 더러는 현시정치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뉘앙스도 비슷하게 우울하다.(어쩌면 앞서 말했던 저자의 까칠함은 이런 영향 때문인지도)

 

     덕분에 책을 읽는 맛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읽어도 신나지 않고, 재밌지도 않다. 역사의 어느 한 지점을 이런 식으로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이긴 하지만, 동시대 인물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작업인지는 확실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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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천재 과학자인 윌(조니 뎁)은 컴퓨터에 의식을 갖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완성된다면 인류가 이제까지 이뤄온 모든 발전을 능가하는 새로운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과격단체에 의해 총상을 입고, 탄알에 묻어있던 방사능 물질에 중독되어 얼마 가지 못해 죽을 상황에 처하게 된다.

 

     윌의 아내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의 정신을 컴퓨터로 변환해 이식하기로 결심하고, 두 부부의 동료인 맥스의 도움을 받아 이를 진행한다. 마침내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고 윌은 컴퓨터 속에서 새로운 삶을 얻는다. 인터넷에 연결된 윌은 급속도로 정보와 지식을 늘려 좀 더 큰 영향력을 가지려 하고 있었고, 이런 움직임을 알게 된 정부와 과격단체의 공격을 받게 된다. 동료였던 맥스와 그들의 스승과도 같았던 조셉까지 이들에게 합류하자 에블린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가지 핵심적인 기술은 인간의 의식을 전기적 코드로 바꿔 컴퓨터에 이식하는 것과 나노 로봇에 관한 것이다.(대개는 전자 쪽에만 집중하는 듯) 불치병이나 심각한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혹은 기술)은 마술적인 힘이 아니라 나노로봇을 통한 치료이다.(물론 실제로는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것보다 회복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레이 커즈와일이 그의 책(‘특이점이 온다’)에서 그토록 강조하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던 기술이 바로 이 나노 로봇 공학이었다. 영화 속 윌은 자신의 천재적인 창의력에 컴퓨터 수준의 엄청난 연산능력이 더해져 이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기술이 제대로 작동만 한다면 개념상으로는 암이나 당뇨병, 그 외 각종 희귀병들을 포함한 현존하는 거의 모든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 꿈만 같은 기술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기술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나노로봇에 의해 재생된 사람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동안은 거의 윌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나 작아 눈으로 볼 수조차 없는, 혈관을 타고 이동한다던 이 신기술이 자칫 특정한 사람에게 악용될 수 있는 소지 또한 갖고 있다는 것. 물론 그건 단순한 도구일 뿐이고 사용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식의 반론이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원자폭탄이 단순한 도구라는 걸 누가 몰랐던가.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그런 식의 면피는 통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제목이기도 한 ‘트랜센던스’, 즉 ‘특이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점점 빨라져서 어느 순간이 이르면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점이 나타날 거라는 예측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실 이미 컴퓨터는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연산속도와 저장능력을 가지게 된지 오래되었다. 현재로선 그것에 부족한 유일한 요소는 ‘의식’인 것처럼 보이는데, 만약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실행에 옮기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땐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하기사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존재가 단번에 등장하는 셈이니).

 

 

 

 

     영화 자체의 구성도 꽤나 괜찮았다. 컴퓨터에 완전히 이식된 윌의 정신이 점점 변해 나중엔 세계정복이라도 꿈꾸는 악한이 되고, 이에 그의 아내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를 막을 것이라는 영화 초반의 내 예상은 빗나가버리고 말았다. 영화엔 절대악이 설정되지 않고, ‘다른 생각’과 ‘오해’와 ‘위험성’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분위기를 만든다. 다만 이 엄청난 계획을 막기 위해 고작 FBI 요원 한 명과 과학자 한 명, 그리고 작은 구경의 견인포 두 대를 비롯한 약간의 재래식 무기만 등장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상상력에 비해 규모가 좀 아쉬웠달까.

 

     인셉션에서 볼 수 있었던 엄청난 컴퓨터그래픽이나 특수효과는 볼 수 없었지만, 이 주제와 관련된 철학적 고민을 잠시 해 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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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전공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은 전공을 통해 일종의 쓸모 있는 기계가 될 수는 잇겠지만

조화롭게 발달한 인간 존재가 되지는 못한다.

학생들이 가치들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고

그 가치들의 느낌을 몸으로 익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이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체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문적 지식만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고,

따라서 조화롭게 발달한 인간이기보다는

훈련이 잘 된 개에 더 가까워 보일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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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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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판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깜짝 놀라고 만다. 그의 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로 변해버린 것. 그의 모습을 본 늙은 부모와 어린 여동생은 경악을 하고, 그날부터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생활하게 된다.

 

     몇 달이 지나도 그레고르의 몸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점차 가족들도 그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던 사람들 앞에 그레고리가 나타나는 일로 가족들은 그에게 분노하고, 그렇게 다시 자신의 방에 갇히게 된 그레고리는 얼마 후 죽은 채로 발견된다.

 

 

2. 감상평 。。。。。。。   

 

     카프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변신’을 비롯한 몇 개의 작은 작품들을 함께 모아 엮은 책.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소설의 무대는 거의 그레고르의 집 안을 벗어나지 않고, 또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부모와 여동생처럼 가족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인 가족은 대개 혈연을 매개로 구성되기에 무엇보다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법률에서도 가족의 다른 구성원에 대한 불리한 증언은 강요받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 작품 속 가족은 좀 다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유용성’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는 실용주의, 합리주의적 모습이다.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점차 그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이건 단지 그의 외향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장의 먹고 살 일이 더 큰 문제였고, 나아가 그레고르를 짐으로 여기기에 이른다. 그가 죽었을 때 가족들은 슬픔보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좀 과장된 설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그 자체로 인정받기 보다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생산할 수 있느냐로 등급이 매겨지는, 객체로 전락해버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노인이나 극빈자들, 장애인들처럼 생산력이 떨어지는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투자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왜? 그래봤자 돈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불행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일단 결국 모두가 늙게 될 테니까. 모든 것이 경제적인 가치로 재단되고, 그렇게 형성된 힘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 살기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소설 속 그레고르는 더 이상 인간이 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레고르 한 사람에겐 그게 비극의 끝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남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여전히 그 비극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좀 답답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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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우슬라 마이어, 질리언 앤더슨 외 / 그린나래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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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시몽은 윗마을에 있는 스키장을 드나들며 스키를 비롯한 각종 물건들을 훔쳐 팔는 것으로 살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 루이는 변변한 일자리 없이 동생이 장물 팔아 주는 돈 받아다 남자친구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한심한 상황이었고.

 

     어느 날 누나의 남친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시몽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힌다. 그동안 누나라고 불러왔던 루이가 사실은 자신의 엄마라는 것. 어린 시절 시몽을 낳은 루이는 그에게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던 것이다. 남친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루이와 시몽 사이도 함께 틀어지지만, 어쩌겠는가 핏줄인데.

 

     시몽과 함께 착실하게 살아보려는 노력을 하는 하는 루이. 하지만 옛 버릇은 쉽게 끊을 수 없었는지 루이가 청소해 주는 집에서 시몽은 시계를 훔치고, 결국 루이는 다시 일자리를 잃게 된다.

 

 

 

 

2. 감상평 。。。。。。。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고려도 없이 낳은 아들에 대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스스로 살 길을 찾은 것이 도둑질이었던 아들.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 엄마는 엄마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들은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 감독은 여기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두 주인공들의 삶을 따라가고만 있고, 덕분에 영화를 보는 사람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먼저 든다.

 

 

     루이와 시몽에게 일어난 이 일들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들은 피해자일 뿐일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인 시몽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루이는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거고, 열두 살이란 나이에 사실상 방치된 시몽의 처지는 안타깝지만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게 도둑질이라는 것 역시 간단히 인정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이런 경우 자주 사용되는 ‘사회적 피해자’, ‘우리 모두의 책임’ 같은 단어들은 무책임하다고 본다.

 

     보통은 문제를 만들어낸 사람이 그 책임까지 지는 게 옳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는 상황이라면 그게 쉽지 않다. 욕정만 동하면 아무렇지 않게 섹스부터 하는 성에 대한 무책임은 분명 문제의 원인이지만, 어찌 됐건 태어난 생명에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조건을 마련해 주는 건 동료 인간이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이런 약한 고리들부터 끊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슬들이 하나씩 끊어지면 그물은 더 이상 그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거고.

 

 

 

 

     도둑질을 하다 잡힌 뒤에도, 도리어 자신을 잡은 가게 점원에게 훔친 물건을 파는 시몽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증스럽다고나 할까. 목을 앞으로 쑥 빼고 건들거리며 걷는 모습 또한 실감이 난다. 어린 나이지만 제대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아역 배우 케이시 모텟 클레인. 여기에 루이 역의 레아 세이두도 나쁘지 않고. 다만 답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그저 답답함만 주는 연출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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