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프로 바둑기사인 태석(정우성)은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형에 의해 목숨을 건 바둑 도박에 끼어들게 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바둑에서 지고, 설상가상 살수(이범수)에 의해 형이 살해되고 태석은 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한 조직의 두목을 도와주고 그의 도움으로 싸움을 익히고 복수를 할 수 있는 돈까지 얻은 태석은 출소한 후 살수 일당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자신의 복수를 도울 멤버들을 하나씩 모아 살수의 일당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한 태성. 마침내 살수와 직접 대국을 하게 되지만, 살수의 뒤에는 천재적인 실력의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대국이 끝날 때 즈음 두 사람의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2. 감상평 。。。。。。。。  

 

    흔히 신선놀음이라고도 불리는 바둑과 도박을 결합시킨 소재가 흥미로웠다. 하기야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게임이 다 도박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만, 영화 속처럼 많은 돈이 오고가는 전문 바둑도박장이 운영되는 모습은 살짝 놀라웠다.

 

    하지만 게임이란 건 그 규칙을 알고 있을 때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문제는 바둑을 두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가였을 것이고. 그렇다고 영화를 진행하면서 바둑을 어떻게 두는 지 가르쳐주는 식이 될 수는 없으니 (그랬다가는 오락영화가 아니라 교양영화로..;;)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감독이 사용한 전략은 바둑의 대국은 그저 인물들을 만나게 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선에 머물고, 대신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강하게 표현해서,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것처럼 각 스테이지의 보스들을 이기고 최종보스에 이르도록 하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오락영화로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바둑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모되어 버리는 것 같아 약간 아쉽기도 하다.

 

 

 

 

    다만 중심 소재인 바둑이 시간이 갈수록 보조적인 위치로 밀려나고, 결국 주인공 정우성과 살수 이범수의 수하들 사이의 주먹다짐과 칼부림으로 끝나버리는 건 확실히 한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폭력의 과잉이란... 기본적으로 (그게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사람 때리거나 찔러 죽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에는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더구나 군대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복수하겠다고 총기를 난사하거나, 후임병을 때려죽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이걸 멋있다고 봐야 하는 건지..

 

    전반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 자체는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다. (사실 꽤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복수라는 주제에 집중했기 때문인지, 인물들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생각보다 약화된 느낌이다. 오락 영화로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지만, 딱 그 정도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정우성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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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알랭 레네 감독, 랑베르 윌슨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유명한 극작가 앙뜨완의 사망소식이, 생전에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연기했던 배우들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장례식에 참석해 앙뜨완이 남긴 유언을 공개하는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하나 둘 모인다.

 

     어두운 방 안에 모여, 앙뜨완의 집사가 보여주는 영상 유언장을 보던 그들. 영상 속에는 앙뜨완의 대표작이자, 그가 젊은 배우들과 새로운 느낌으로 각색한 에우리디스를 보게 된다. 연극이 어느 정도 진행될 즈음, 그곳에 모인 배우들은 하나둘 자신이 예전에 연기했던 캐릭터에 몰입했고, 함께 어울리며 즉흥연기를 시작한다.

 

     극을 보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질 무렵 연극은 끝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앙뜨완이 나타난다.

 

 

 

 

2. 감상평 。。。。。。。。   

 

    극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그 형식이 독특했던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영화 속에 또 다른 연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액자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속 인물들이 그들이 보고 있는 또 다른 영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형식의 내적 파괴가 일어난다. 여기에 물론 우리가 볼 때는 계산되고 준비된 것이겠지만, 영화 속 즉흥연기는 또 아주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형식상의 독특함을 넘어서는 무엇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즉흥연기라는 설정이 익숙해진 후에는 에우리디스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영화 속 연극의 내용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데, 이 고대 신화의 현대적 버전을 담고 있는 작품이 또 그다지 아주 매력적인 것 같지 않다는 게 약점. 심지어 저승에 잡혀 간 아내 에우리디스(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하세계에 내려갔다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억지로 적용하기 위해서 약간 뜬금없는 전개까지 이어진다.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딱히 흠 잡을만한 데가 없다. 많이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중견 배우들이었지만, 다들 내공을 의심할 수 없는 수준. 하지만 그 내용 자체가 생각 외로 매력적이거나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심지어 죽은 줄로 알았던 앙뜨완이 다시 살아왔다는데도 그닥 놀랍지 않은 분위기였으니.. 좀 아쉬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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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국가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추월하지 못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결국 시민 개개인이 각성하고 진보하는 만큼,

꼭 그만큼씩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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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네요..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애인 없는 분들은 애인생기시고,

 

학생분들은 대박 성적 나시고,

 

직장인이신 분들은 보너스 듬뿍 받으시길..

 

 

 

 

난....? ;;

 

그냥 집에서 책이나...

 

(도서관에서 책 네 권이나 빌려 놓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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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대만에서 친구와 함께 유학을 하고 있던 루시(스칼렛 요한슨)는 우연히 한국계 범죄조직과 결부되어 본의 아니게 뱃속에 새로 개발된 약물 파우치를 넣은 채 운반책이 되어버린다. 운반 도중 사고가 일어나 뱃속의 약물이 터지고, 루시는 엄청난 양의 약물을 흡수해버린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약물중독으로 사망했어야 하지만, 루시의 경우는 그 부작용(?)으로 뇌 사용량이 획기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다른 사람의 신체, 나아가 사물까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 루시. 한번 열린 뇌는 점점 더 가속도를 붙여가며 발달하기 시작했고, 여기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기에 루시는 나머지 운반책들이 운반하던 약물들까지 모두 손에 넣으려 한다. 한편 그런 루시에게 약물을 탈취 당한 미스터 장(최민식)은 수하들을 시켜 그녀를 쫓기 시작하고..

 

 

 

 

2. 감상평 。。。。。。。。  

 

    비슷한 소재의 영화로는 리미트리스라는 작품이 있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먹은 한 작가가 엄청난 히트를 연달아 터뜨리지만, 이를 위해서는 계속 약물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약물의 효과를 알게 된 범죄조직은 그런 주인공을 뒤쫓고 하는.. 기본적인 설정은 두 영화가 거의 유사한데, 루시의 감독 뤽 베송은 이야기를 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고 애를 쓴다. 바로 인간 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한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하는 부분이다.

 

    한 번쯤 해볼 만한 질문이었고, 루시의 뇌가 30%, 40% 개발되면서 생겨나는 능력들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다. 마지막에 가서 100%를 사용하게 된 루시는 이 되는데, 그녀의 마지막 대사인 나는 모든 곳에 있다는 말은 전통적인 신학에서 신의 편재(遍在)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사실 직접 대사로 내뱉어지지만 않았을 뿐이지, 그녀는 편재성 이에외도 전지(全知), 전능(全能)이라는 속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고, 마지막엔 초월(超越)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결국 감독은 인간이 그 자신의 능력으로도 신이 될 수 있다는 범신론, 혹은 뉴에이지적 교훈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감독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 식의 상상력이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가장 처음으로 떠올랐던 작가가 바로 베르나르였다.

 

 

 

 

    하지만 작품의 상상력과는 별개로 스토리와 설명, 캐릭터와 같은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가 그렇게 훌륭한가 싶은 의문이 든다.

 

    우선 루시를 쫓기 위해 사실상 자신의 부하들의 목숨까지 전부 던져 넣으면서까지 쫓는 미스터 장이라는 캐릭터는 그 정체와 목적 모두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고, 주인공 루시 역시 별다른 설명 없이 수많은 사고를 일으키고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내몬다. 인류의 진화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식인 건가.

 

    그 외에도 공간과 물질 등을 초월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철학적 성찰이나 주제상의 발전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외에도 영화에는 몇 가지 개념들이 살짝 등장했다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곤 한다. 감독 자신도 잘 정리가 안 됐던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뒤죽박죽..

 

 

    자칫 영화는 파란 약 먹고 앉아서 세계일주정도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있었다. 기발했지만 아주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이디어만 가지고서는 역시 무리. (최근의 베르나르에게서 자주 보이는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다) 지루하진 않게 봤지만, 대단한 뭔가까지는 아니었던.. 오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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