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너에게 - 노老철학자 손봉호가 10대에게 띄우는 인생 편지
손봉호.옥명호 지음 / 홍성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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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윤실, 경실련 등의 시민단체에서도 오랫동안 주도적으로 활동해 왔고, 철학교수와 총장 등으로 학계에서도 오래 일해 왔던 저자다. 이번 책은 그런 경력들을 자랑하기 보다는 한 명의 할아버지로서 손자 손녀들에게 조언하는 형식으로 엮은 내용이다.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서의 세 장은 인간관계와 공부, 꿈 등의 주제 아래 서너 개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다. 마지막 장은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이지는 않지만, 앞서 담아내지 못했던 몇 가지 질문들을 모아두었다.

 

 

2. 감상평 。。。。。。。

 

     꼭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텔레비전에도 종종 패널이나 인터뷰이로 자주 출연하시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직접 아는 분은 아니다. 사실 세대차 좀 나서, 나를 가르치셨던 분들이 이분에게 배우셨던 정도니까. 그 때문인지 일차적으로 10대를 대상으로 쓴 이 책이, 서른을 훌쩍 넘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 낸다.(그만큼 내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것일지도..)

 

 

      저자는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다. 평생을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기윤실, 경실련 등의 단체를 이끌어왔던 이력에서도 드러나듯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가치들인 정의나 윤리, 정직 등의 개념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오셨고. 이 책 전반에 걸쳐서 그런 저자의 삶에 대한 회고와 본인이 지켜왔던 신앙생활 등이 언급되는데, 이 부분 또한 강압적이나 전제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사실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해 왔던 경험이 있는 분이니까)

 

     무엇보다 그저 말만 많은 분이 아니라, 말한 대로 살아온 사람의 말에는 (그의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힘이 있다. 더구나 그 소신이 단지 강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자기 한 몸 부귀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고귀한 목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샬롬을 누리고자 하는 성경적 비전이기도 하다 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책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에 관한 부분이다. 흔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고, 아이들은 연예인이니, 의사니, 교사니 하는 직업명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저자는, 꿈이란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관한 것이고, 좀 더 높은 이상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이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이 꿈이라는 말.

 

     생각해 보면 나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도록 강요되었던 아이들이, 무슨 구체적인 일을 꿈꾸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질문 대신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고,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꿈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기성세대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서 반성도 해본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가치관과 지혜가 담겨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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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음 2015-07-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이 좀 되는가 봅니다ㅋ

노란가방 2015-07-13 14:53   좋아요 0 | URL
답은 아니고 조언이죠.
 

 

 

영적 관심사와 직업이 일치하면,

자기 직업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야망의 충족에 따른 즐거움을

영적 성장이나 영적 위로로 착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성직자들이 가끔 이 덫에 빠지는 듯합니다.

 

- C. S. 루이스, 당신의 벗,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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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중에 넘어졌다고 좌절하지 말 일이다.

우리의 결승점은 순서를 매기는 곳도 아니고 시간을 재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모두가 한 번은 반드시 통과를 해야 하는 곳일 뿐이다.

 

- 김재식,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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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되지 않을 자유
임태훈 지음 / 알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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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책머리에서, 완전한 디지털 세계가 구축된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 현재의 세계 이상을 떠올리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음을 지적한다. 마치 양계장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밖에 나가보지 못했기에 문이 열려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닭과 같다는 리얼한 비유와 함께.

 

     그렇게 사람들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이, 사람들은 점점 세계가 원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른바 호모 익스펙트롤(Homo Expectrol. expect + control). 그리고 이 상황의 중심에는 이른바 빅 데이터가 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디지털화가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빅 데이터를 이용한 사업은 번창하고, 이는 다시 또 인간들을 그 데이터에 맞는 삶을 살도록 만들기까지 한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빅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거대자본 세력이 미리 구축해 놓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 대안적 삶의 필요성과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있다.

 

 

 

2. 감상평 。。。。。。。

 

     책 제목이 흥미로웠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인터넷 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한 피해들을 고발하면서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그런 책인 줄 알았다. 물론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책은 그보다 훨씬 큰 철학적 주제를 말하고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세부 소재들만 해도, 의료(2), 생활유형에 관한 논의(3-4), 건축(5-6), 음악과 음향(7-8) 등 퍽 다채롭다. 확실히 이 문제는 우리 삶 전반을 다루는 것이니까.

 

     빅 데이터를 이용한 기술이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 주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특정한 유형에 맞춰 살도록 유도(혹은 강요)한다는 지적은 날카로웠다. 실제로 이미 우리는 비슷비슷한 아파트에 살면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는 모두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등, 갈수록 획일화되어 가는 세상을 목격하고 있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건 단지 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기획과 의도 때문이었다. 이른바 정보자본주의..

 

     문제는 단지 삶의 패턴이 일정해진다는 것에 있지 않다. 전형적인 삶은 전형적인, 그리고 예측하기 쉬운 생각을 만들어 내고, 이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기 쉬운 사회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민주사회는 사라지고 결국 메트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내다본 것과 같은 독재사회도 그리 먼 훗날의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책이 꽤나 다양한 분야의 (조금은)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몇 개의 장들에서는 흥미가 좀 떨어진다. 무엇보다 관련 분야에 어느 정도 사전지식이 있다고 전제하고서 그냥 내용을 진행해버리니, 나 같은 문외한은 좀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면, 충분히 책의 논지에 공감하고,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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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음 2015-07-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요?

노란가방 2015-07-08 18:31   좋아요 0 | URL
중간에 살짝 지루해지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를 놓고 보면 괜찮은 책입니다.
 
샴고로드의 재판
엘리 위젤 지음, 하진호.박옥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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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17세기 폴란드의 한 마을(샴고로드) 유대인 공동체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학살을 당한다.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베리쉬는 하녀인 마리아와 함께 주점을 운영하고 있고, 그에게는 당시 마을 주민들로부터 윤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변해버린 한나라는 딸이 있었다.

 

     어느 날 유대인들의 명절 중 하나인 부림절 즈음, 세 명의 손님(사실 그들은 명절을 맞아 공연을 하러 온 광대, 혹은 배우들이었다)이 그 주점을 방문했고, 그들은 여느 주인들과 다르게 까칠한 베리쉬 등과 대화를 하던 중 저간의 사정을 파악하게 된다.

 

     끔찍한 사건을 겪고 신을 부정하는 베리쉬를 보며 신을 피고로 세운 재판이라는 즉흥연극을 제안하는 세 명의 방문자들.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부림절의 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연극을 허용했지만, 여관 밖에는 또다시 폭도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실제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작가가 쓴, 인간의 잔혹함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소재는 신의 정의로움을 두고 벌어지는 재판이지만, 사실 이건 결국 인간들 속에 있는 온갖 거짓과 비겁함, 나약함, 그리고 악함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였다.(실제로 재판의 결과는 나오지도 않는다) 즉 작품은 신론이 아니라, 인간론을 다루고 있다.

 

     작품 속 폭도들은 신의 이름으로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건 나치, 히틀러와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가톨릭교회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어디 교회만 그렇던가. 자칭 무신론의 강력한 옹호자라는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들에서 발견되는 (종교인들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과 노골적인 증오, 저주는 뭐 그리 또 다른가. 결국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배제의식은 인간 내부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여기에 신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당하고 있고.

 

     물론 신은, 종교는 그런 행동과 마음을 교정하고 개선시켜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강력하고 타당하다. (혹은 종교나 교회)의 무능력은 공격자들의 좋은 무기이다. 하지만 (다른 신과 종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니) 적어도 교회는, 그 무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조직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신의 아들이 스스로 무능력을 감수한 채 세상에 와서, 고통 받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 죽었다는 것이 핵심교리인 기관이니까. 기독교는 그 희생이 다양한 양상과 방향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만든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신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강제하기보다는, 기꺼이 모욕과 고문을 당하는 분이다. 아마도 이 여인숙의 재판에 피고가 직접 참여했다면, 스스로 변론권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 우리 곁에는, 그분의 변호자를 자처하는 작품 속 샘과 같은 인물들이 지나치게 넘쳐난다.(문제는 그들이 대개 변변한 사유와 고민 없이 이 직분을 수행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샘이 그랬듯 그들은 유려한 논리와 말주변으로 신을 옹호하며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강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속 샘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자. 과연 그 끝이 무엇인지.

 

 

     작품을 읽으며 구약성경의 욥기가 계속 떠올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주인공(), 그를 찾아 온 세 명의 방문자들과의 입씨름(엘리바스, 빌닷, 소발), 그리고 갑자기 등장해 하나님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인물(엘리후)까지.. 큰 틀에서 보면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거의 그대로 매칭이 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욥기의 엘리후 역을 맡은 작품 속 샘이었다.

 

     시니컬한 캐릭터로 묘사되는 샘에게 처음부터 독자가 이입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가 하는 말에 딱히 논리적으로 대꾸할 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학살에서 살아남는 은혜를 입은 당신이, 그 은혜를 베푼 신을 공격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식). 어이없는 말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피해당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언사를 내뱉는 몰지각한 교계인사들을 자주 본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옹호자일 수 없다고 말한다.(마지막 페이지를 보라) 그들의 논리는 실제의 삶이나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갇힌 논리이다. 그것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그들이 옹호하는 것은 인간의 논리 속에 갇힌 신, 철학자들의 신, 죽은 자들의 신일 뿐,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 강한 무신론자들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들었을 때, 욥과 세 방문자들 모두를 논박하던 엘리후의 성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는 법이다.(특히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직 대화로만 구성된, 희곡이라는 형식의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이 사실을 강하게 증명한다. 작품 속 주점 주인 베리쉬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백 마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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