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신앙이 평일로 이어질 때
톰 넬슨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신앙과 일상의 직업(여기에서는 교회나 교회병행단체에서 일하는 것 이외의 직업을 가리킨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실천적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1장에서 3장까지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설명한 저자는, 4장에서 우리의 현재 일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 조망한다.

 

    5장은 소위 일상적인 일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는 장이고, 이어서 어떻게 하면 일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성취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내용이 이어진다(6). 저자는 우리의 일이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일차적으로 그것은 공동선을 성취하는 모습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7).

 

    8장에서는 어떻게 우리에게 맞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지 하는 방법이 실려 있고, 9장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유혹들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장은 지역 교회를 통해 이 책에서 살핀 일의 신학을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를, 저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사례를 예로 들어 제시한다.

 

 

2. 감상평 。。。。。。。  

 

     중세교회는 거룩함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보인 나머지 성속이원론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버렸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하고 속된 것을 나눴고, 교회와 그 안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은 근본적으로 거룩하지만 그 밖의 영역은 거룩함에서 삐져나가버렸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이 벽을 허물고, 온 세계를 하나님의 것으로 회복시켰다는 점이다. 마틴 루터는 교회 안에서 설교를 하는 성직자와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사람은 모두 똑같이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교회는 다시 이전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돌아간 듯하다. 교회는 성전으로 불리고, 목사만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일상적인 직업들은 2등 직업, 혹은 하나님의 일을 섬기기 위한 보조적 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니 은혜 받으면 신학을 공부해야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 = 교회 전임 사역과 같은 공식 아닌 공식이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런 잘못된 성속 이원론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쓰였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우리의 일상적인 일들이 얼마나 거룩한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설명한다. 설명들 사이에는 적절한 사례들이 더해져 있어서 이해를 돕는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건, 교회 안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거리와 가정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예배당 안이 아니라 밖에서 하는 거니까. 이 부분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린 결과가 오늘날 기독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물론 문제는 단지 이것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하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시작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에서부터 한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시기에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물론 섣부른 예단이나 기대부터 하는 건 금물이다)

 

 

     상당히 짜임새 있게 잘 쓰인 책이다. 창조, 타락, 구속의 원리에 따라 차분하게 정리된 일의 신학 위에, 실제로 어떻게 일을 통해 소명을 실천할 수 있을지를 제시하고, 이 과정에 필요한 실제적인 지침들까지 잘 담아내고 있다. 그리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딱딱한 이론서도 아니고,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적절한 분량이라 주변에 추천해주기도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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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종교사회학적 대책을 강구할 때 필히 숙고해야 할 과제는,

먼저 한국 사회 안에 만연한 사회경제적 부정의를 철폐하고

사회 전반에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일이다.

 

- 곽혜원,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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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제일 F&B라는 이름의 식품유통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미례(고아성). 벌써 반 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지만, 회사에는 언제까지라고도 확실히 말해주지도 않은 채 막연히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만 그녀를 달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부서의 과장으로 일하던 김병국(배성우)이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잠적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광수대 형사인 종훈(박성웅)이 사건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모두 한결같이 김 과장에게 그런 조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며 도리어 그를 두둔하던 동료들은, 사실 만년 과장이면서 그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꾸역꾸역 하기만 하는 그를 은근히 비웃으며 따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김 과장이 범행 당일 밤 다시 회사로 들어오는 장면이 찍힌 CCTV. 하지만 다시 나가는 장면은 없었다. 곧 동료들이 한 명씩 죽어가기 시작하고, 영화는 급격히 공포 분위기로 변해간다.

 

 

 

 

2. 감상평 。。。。。。。  

 

     영화 초반까지는 배우 배성우의 인생작품이구나 싶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영화는 고아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영화 초반, 그 굉장히 복잡한 심경을 표정 하나로 보여주는 연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꽤나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고아성의 연기력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갈 만한 힘까지 느껴지지는 않는다. 적잖이 연기 내공을 쌓은 배우들 옆에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고..

 

     영화 자체는 상당히 몰입감 있게 진행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무실(오피스)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게 단조롭게 느껴질 겨를이 없다. 감독은 계단 층계, 화장실, 칸막이로 나뉘어 있는 사무실 공간과 책상 아래 등, 이 제한된 공간 안의 다양한 장소들을 카메라로 비추면서 잔뜩 긴장감을 부여하며 이끌어 나간다.

 

     영화 속에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인 심령현상이나 기괴한 모습의 분장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별 고민 없이 제작되는 영화의 특징인 과도한 폭력이나 잔혹한 장면들도 최대한 절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강력한 공포감은 그래서 철저하게 심리적인 부분에 기인하는데, 이런 심리적인 공포는 아주 익숙한 환경과 대상으로부터 나올 때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오피스룸, 사무실은 인간보다는 일을 위해 디자인되고 운영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공간의 특성은 사람들의 사고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기에,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조직의 목표(실적)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철저하게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직급 구조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의식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포용보다는 배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영화 속 공포는 어쩌면 이런 회사라는 조직의 비정함을 극화시킨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무시하고 배제한 존재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는 상황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오니까.

 

     하지만 현실 속에는 김 과장이 회사에 나와 있다는 말보다 훨씬 더 무서운 소리들이 넘쳐난다는 게 함정. 부하직원들에게는 실적 압박하는 부장의 막말이, 인턴들에게는 정직원 채용에 실패했다는 통보가, 대리점 점주들에게는 물량 떠넘기는 본사 영업직원들의 강요가 아마 훨씬 더 공포감을 일으킬 것이다. 우린 참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꽤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무거운 영화가 될 수도 있었지만, 감독은 지나치게 그런 식으로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는 실제 있었던 일들과 인물들의 착각 등이 뒤섞이면서 상업영화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다만 이 와중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은 잘 만들어 놓은 분위기를 흩트려 놓지 않았나 싶기도..)

 

 

     간만에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잘 만들어진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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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 조지 맥도널드, C. S. 루이스 엮음, 조지 맥도널드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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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 부지런함이 숨긴 게으름의 역사
이옥순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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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우리 사회의 게으름에 대한 시선이 다분히 문화적으로 조장된(혹은 조직된) 것이라고 말한다.(1) 2장과 3장에서는 게으름에 대한 서양의 관점(비난)과 동양의 관점(용인적 수용)은 의도적으로 대조시키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근면을 강조하던 서양이 여유를 중시하던 동양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게으름에 대한 비난이 강력해졌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4)

 

     사실 책은 여기서 내용상 완결되어야 했는데, 저자는 굳이 5장을 덧붙인다. 뭐 넓게 보면 게으름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니까. 이 장의 주제는 현대인들의 소비주의가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쉼 없는 노동을 유발시킨다는 것. 결과적으로 게으름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또 하나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2. 감상평 。。。。。。。

 

     내가 매기는 평점은 10점 만점에 6점에서 시작한다. 원래는 5점 부터여야 하지만 작가나 저자,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노력을 감안해 1점을 더 주고 본다. 그러니까 일단 6점이라면 딱 기본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중반을 넘길 때부터 2점이나 떨어졌다.(4) 이 정도면 문제의식이 생기는 경우다. (사실 1점을 더 깎을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결론에 담긴 통찰에 나름 일리가 있기에 참았다.)

 

     책의 문제는 결론이 아니다. 사실 결론부만 가지고 본다면 나름 괜찮은 책이다.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종에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음을 밝히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흥미로운 결론을 내 놓고 앞부분을 덧댄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애써서 모은 여러 정보의 조각들이 충분히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설명했듯, 이 책의 중심축은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서양과 이에 대해 관대한 입장에 서 있는 동양 사이의 갈등이고, 이 차이를 힘의 우위로 눌러버린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문제는 저자가 열심히 모아 놓은 동서양의 문헌들이 서로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 서양의 문헌에도 게으름, 혹은 쉼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꽤나 자주 보이고, 반대로 동양에서도 근면과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이 비교적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저자의 핵심 주장의 근거가 흔들린다.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동양 사람들이 어느새 서양의 관점에 종속되어버렸다는 식이다. 예컨대 조선 말 밤마다 잔치를 벌이느라 하루일과를 오후부터 시작하던 고종과 대신들에 대한 한 유학자의 비판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근대 서구의 시간개념을 내면화한 일본의 영향이 이미 조선 사회에 퍼졌다는 것도 알 수 있(135)고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이젠 부지런 하라는 권면마다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186, 191) 이쯤 되면 좀 무리다.

 

     게다가 저자는 첫 번째 문제는 아예 제대로 다루지도 않는다. 저자 자신도 언급하고 있듯이 서양 사상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날을 따로 정해둘 중도로 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42). 물론 성경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금언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인간생활의 터전이 망가지고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교훈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이런 점들을 앞에 써두었으면서 동양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그러나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지나친 게으름과 심한 노동을 함께 비난합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버린다(106).

 

 

     여기에 인도 현지에서 인도사를 전공했던 저자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인도에 대한 서양의 비난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면서, 서양에 철학과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오류도 제법 보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부채를 면제해주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날이 아니었고(아마도 50년 마다 돌아오는 희년과 혼동한 듯. 42), 성경에 나태하거나 게으른 사람을 염소에 비유하는 장면이 아예 없다(굳이 비슷한 부분은 마태복음 25장의 비유인데, 여기서 양과 염소의 나누는 기준은 게으름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다. 50).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강하지 않던 독일이라는 표현(55)도 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독일이야말로 종교개혁의 발상지이자, 종교전쟁의 핵심지역이었고, 그 결과로 가장 일찍 개신교(루터파 교회)가 공인되었던 곳이니까.

 

 

     큰 맥락은 새겨들을만한 책이지만, 세부사항들을 기억해뒀다가 다른 데서 써먹으려고 했다가는,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을 법하다. 일에 대한 과도한 몰입이 가져오는 폐해들을 한 번쯤 조금 떨어져 관찰하게 만드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긴 하다. 다만 지나친 옥시덴탈리즘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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