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패권과 과학민주주의 서강학술총서 13
김웅진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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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오늘날 과학계가 강한 과학이 헤게모니를 쥔 채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이설(異說)를 허용하지 않는 닫힌 과학이 되어버렸다고 진단한다. 이는 과학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정밀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늘날 과학계의 누구도, 모든 변수를 고려해 해답을 찾을 만큼 충분한 시간과 자금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여기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내내 사용하는 유리스틱(휴리스틱, heuristic)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저자는 이를 특정한 과학 체계 내에서 과학적 적실성과 정당성을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는 이론적, 방법론적 협약과 절차”(14)라고 설명하는데, 쉽게 말해 다들 이건 이런 거야하고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합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어떤 유리스틱이 형성될 때는 일련의 실험과 검증이 있었겠지만, 일단 한 번 그것이 형성되어 버리면 이후 그것을 벗어나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것을 억제하게 되는 부작용까지 일어나버린다. 이는 그 유리스틱의 추종자들에 의해 더욱 강해지는데, 책에서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단과 그 추종자들의 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학연구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인정받고 과학계에서 명성을 쌓기 위해, 기존 과학계의 논리와 주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려고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강력하게 유도하는 도구가 소위 권위 있는 학술지나 정부출연 연구기금 등이고. 심지어 저자는 어떤 연구 전통의 과학적 적실성, 보다 근원적으로 과학성 그 자체는 패권의 배분 구조에 따른 정치적 상황종속성을 반영한다”(30)고까지 주장한다.

 

     저자는 연구자들의 창의성을 죽이지 않고, 보다 활발한 연구를 위해서는 이런 과학 패권주의가 타파되어야 하며, 진정한 의미의 과학 민주주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 감상평 。。。。。。。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고, 오늘날 과학계가 완전히 정치권력(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꼭 여의도나 청와대를 가리키는 건 아니다)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말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오늘날 가장 정밀하고, 그래서 가장 사실에 가까워서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과학이라는 분야가, 생각보다 훨씬 더 통념과 외부적 영향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정도면 일단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실제적인 적용 단계에 이르면, 이 문제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오늘날 과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면, (예컨대 어떤 것이 과학적이다 라는 말은 곧 어떤 것이 사실이다 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소위 강한 과학의 문제는 단지 과학계 안에서만 논의되면 될 문제는 아니다. 특정한 정치세력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과학을 도구로 삼아 자신들의 목적달성에 동원할 가능성이 늘 충분하고, 그럴 경우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다. 핵발전소 건설의 당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근거를 가져다 대고 있고, 반만 년 역사 가운데 가장 대규모의 파괴적인 환경재앙이었던 4대강 사업 역시 그런 과학자들의 미친 춤이 톡톡히 효과를 발휘했고.(적어도 여론조사에 응한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찬성하도록 만든 것을 보면)

 

     과학(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모두를 포함해)은 언제나 조작가능하다. 정확히 말하면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철학이나 종교, 예술은 가치를 다룬다는 식의 설명은 거짓이다. 사실과 가치의 영역은 처음부터 분리된 적도 없었고, 분리될 수도 없다.

 

 

     덧. 문장이 지독하게 어렵다. 학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이런 식으로 써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종일관 어법에도 잘 맞지 않는 번역 투의 문장들과 충분히 좀 더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내용들을 어렵게 써 놓은 게 거슬린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황우석 연구진은 그들이 견지하고 있던 유리스틱의 적실성에 관계없이 연구진에의 소속이 보장해주는 실익에 대한 합목적적 계측을 통해 연구 전통에 대한 과학적 충성심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29)

 

     그냥 황우석 연구진들이 그 팀에 머물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보고,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는 내용인데, 이 말도 안 되는 현란한 비문의 남발은 무엇이란 말인가. 덕분에 이 얇고, 내용도 그닥 많지 않은 책을 읽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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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진다면,

바로 그 대상이 남은 인생의 행복을 좌우할 만한 존재인 것이 확실하다.

이럴 땐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이든 장소든.

 

- 김재식,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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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생각인데...

 

이 나라가 망해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박근혜씨가 더이상 아무 일도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특히 이 정권이 급하게 뭔가 해야 한다고 하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할 것 같은 느낌.

 

 

누가 어디 좋은 데다 여행시켜주면서

 

하루에 1억씩 쓰게 해 주더라도(이편이 싸게 먹힐 듯)

 

제발 이 나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만 해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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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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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일주일에 두세 차례 방문하고 있는 작가 유이치.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 덕에 페코로스(작은 양파 품종 중 하나)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갈수록 심해져 가는 어머니의 건망증을 소재로 지방지의 한 귀퉁이에 네 컷짜리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기억들(좋은 기억들만이 아니라 나쁜 기억들도)을 잊어가는 어머니 앞에,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뭐 귀신이 나왔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치매 때문에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받아들이고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만화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2. 감상평 。。。。。。。

 

     물론 치매라는 병이 단순히 기억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기억력이란 것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작가는 어머니의 치매라는, 자칫 충격적일 수 있는 소재 속에서 건망증이라는 측면을 포착해 소소한 웃음을 담아내는 만화를 그렸다. 여기엔 어떤 조롱이나 자학 같은 정서는 찾아볼 수 없고, 전반적으로 (실제로는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의 정서도 절제되어 있다. 덕분에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큰 심리적 부담 없이 작가의 따뜻한 관점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여기에는 만화가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 중 하나인 작화능력과 완성도 높은 그림체도 한 몫을 한다. 캐릭터를 잘 살린 올망졸망한 인물들이 보는 맛을 더하고, 유머와 감동이 적당하게 버무려진 글과 그림은 쑥 빨려 들어가게 된다.

 

 

     확실히 부모라는 존재는 공기처럼 함께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했고 필요했는지를 느끼지 못하다가, 사라지는(혹은 사라져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적게는 십 수 년, 보통은 2, 30년을 함께 보내는 부모와 자식이지만, 자식은 부모가 그러는 만큼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모의 젊은 시절은 어땠고, 그분들의 꿈은 무엇이었고, 지금의 마음속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하는 것들은 거의 미지의 세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난 요즘 시간이 될 때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어린 시절에 관해 여쭙곤 한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회사생활 이야기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 등은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알수 없었을 내용들이고. 남들에게야 별 필요가 없는 정보들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소중한 개인의 역사니까. 책을 보면서 이런 시간들을 좀 더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 시간 개념이 아주 인상적이다. 현재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의 방문을 받고, 과거의 나는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다가 오늘의 나를 지나친다. 물론 모두 어머니의 엉켜버린 기억 속의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낸 것이지만,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림은 훨씬 더 뭉클한 정서를 자아낸다.

 

     시간 내서 차분하게 볼만한 좋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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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의중과 목적을 다 알고 있는 대리자인 척 함부로 나서지 말자.

 

- 박영식,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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