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수업
조정로 지음, 연광석 옮김 / 나름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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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젊은 시절을 문화대혁명의 한 가운데서 보낸 화자는 당시 T(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도시다)라는 퇴락한 광산도시에 파견 나와 있던 좌파지지부대의 말단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그 때의 기억을 거의 다 어느 날, 예전에 죽은 줄 알았던 당시 같은 부대 소속의 엽삼호를 우연히 만나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소명이라는 이름의 홍위병 소녀와의 애틋한 첫사랑, 지극히 고지식했던 엽삼호와의 일화, 그리고 T시를 사실상 지배하던 정치위원 강유 등 주인공 주변의 인상적인 인물과 함께했던 그 시대의 이야기가, 소명의 일기와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풀려나온다. 문화대혁명이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지방도시와 시골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었었는지, 직접 그 시대, 그 상황을 경험했던 작가가 소설로 풀어낸 작품.

 

 

 

2. 감상평 。。。。。。。

 

     문화대혁명은 자신이 주도한 대약진운동의 실패로(3천 만 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아사했다고 한다) 정치적 입지가 줄어든 모택동이 이를 회복하기 위해 일으킨 과격한 정치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어린 학생들로 구성된 자발적인 좌파지지 부대인 홍위병들이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홍위병은 광기에 휘둘리는 폭력집단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뭐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공식입장 조차 문화대혁명을 부정하는 지경이니까.) 모택동에 대한 광신적인 숭배, 전통유산에 대한 노이로제적 반감과 적극적인 파괴, 폭력성 등이 그 주된 이유고. 하지만 작가는 이 책에서 T시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활동했던 소명이라는 이름의 소녀 홍위병의 이야기를 통해 홍위병과 문화대혁명에 대한 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옳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작품 전체를 통해 두드러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혁명은 누가, 어느 정도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소수의 혁명이론을 잘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만이 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두 번의 짧은 시기 동안 일어나는 단회적인 사건인가? 그리고 그것은 이론을 발표하고 사람들을 설득해 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반대자들에 대한 제재까지 포함할 수 있는가?

 

     작품의 주인공 격인 소명은 십대의 소녀다. 그런 그녀는 시 당국에 의해 우파지지자로 몰려 한동안 고난을 겪게 된다. 그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인 류사리가 오래 전 국민당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미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의 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이 일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추종에 열을 올리게 되었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서 모주석을 위한 찬양집회에 참여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T시에도 자생적 홍위병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전문적으로 이론을 배우지 못했다. 그녀가 가진 것은 모주석의 어록과 그의 사상을 담은 몇 권의 책과 여기저기에서 전해지는 혁명의 정신을 담은 짧은 어구들이 전부였다. 그는 진심으로 혁명의 사상에 동의했고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인민들의 자유와 평등, 다 같이 잘 살자는데! -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에 힘입어 이를 자신의 삶으로 구체화 시키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일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혁명이란 필연적으로 자기를 부정하게 되는 속성을 지니게 되는 게 아닐까.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 기운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운동인 혁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부터 참여했던 사람들을 다시 타파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어느 순간 질서는 만들어지게 되고,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어떤 질서도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문화대혁명 후반으로 넘어가면 홍위병들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니 뭐 말 다했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혁명, 개혁되는 개혁이 답인가 싶지만, 사실 이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 여기엔 안정감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차원의 에너지의 원천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헌신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 일종의 신앙이 필요한데, 그 때문인지 문화대혁명은 결국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로 넘어가버린다.(그리고 이 점은 여타의 혁명을 천명했던 정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고.. 이를 테면 북한의 김일성 숭배 같은..) 그런데 숭배의 대상은 오류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이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 사람들은 힘을 동원한다. 이건 거의 정확히 그들이 이전에 타파하려고 했던 낡은 질서의 모습을 빼다 박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모든 혁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좀 우울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꼭 그렇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혁명은 혁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나은 삶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데 목적이 있는 거니까. 혁명은 실패해도 그것이 잉태한 열매를 얻는다면, 그리고 힘을 얻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의미는 있는 것일 테니까.(물론 그렇다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이런 기능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

 

 

     간만에 좀 묵직한 역사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 등장하는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 찾아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덕분에 거의 아는 게 없었던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평가가 흥미로웠는데.. 공산당의 역사해석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중국과 국정교과서로 정확히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칭우파들은 뭐가 이렇게 닮은 건지. (공산당의 우클릭인가, 우파정당의 좌큭릭인가, 아니면 독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정당들 사이의 공통점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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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사명은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이미지,

즉 인위적으로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빚어진 이미지를 세상에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도이며 선교다.

 

- 박영돈,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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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에서 만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 방안.

 

아주 차근차근, 잘근잘근 여론전 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네요.

 

대부분의 정부 관련 위원회가 청와대, 여당에게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 때마다 힘으로 밀고 나가더니

 

이번엔 숫자로 안 되니까 입장이 많이 달라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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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1-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해도 되는가??? ㅠ.ㅠ 생때같은 아이들 300이나 죽어도,,,,이렇게 할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노란가방 2015-11-19 14:21   좋아요 1 | URL
그놈의 BH 보호가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나 봅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성공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실업에 대한 공포!

보이지 않는 손이 휘두르는 실업이라는 채찍이 두려워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닐까?

 

- 김태권, 어린왕자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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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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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모든 사람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 앞에,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청년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철학자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논박하기 위해 나왔고,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시작된다. 철학자는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인 융)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심리학과는 좀 다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기초해 자신의 주장을 변호해나간다.

 

     아들러의 심리학에 따르면, 현재의 모든 것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는 프로이트적 해석은 사실상 결정론이자 허무주의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46). 하지만 이런 관점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개념을 도저히 설명해 낼 수 없다. 때문에 아들러 심리학은 지금 나의 선택(혹은 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제는 지금 내가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확정되는 것이며, 반대로 말하면 내 생각만 바뀌면 세상도 바뀌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철학자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세계관의 문제로 해석한다. 심지어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제시되는 해결책은 과제의 분리, 인정욕구의 포기, 그리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일원으로서의 자각 등이다.

 

 

2. 감상평 。。。。。。。

 

    ‘아들러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디선가 문득문득 들어봤던 이야기들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는 설명은 처음 들을 때에도 기발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일견 지나치게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면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이론이라는 게 일단은 단순해야 하는 법이니까.(심지어 자연과학에서도 온갖 복잡한 상수들을 알파벳 하나로 표시하고 넘어가지 않던가)

 

     물론 이런 단순함이 이론화의 단순함을 넘어 상황 자체에 대한 단순한 판단이 되어 버리면 그 때는 문제가 된다. 우선은 허점이 많은 현실판단은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현실의 문제를 적절히 풀 수 없는 무능력한 이론, 그저 말을 만들 뿐인 이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철저하게 나 자신으로부터 이끌어내려고 한다. 사이가 나빠진 부부의 예(136)를 들면서, 상대에 대해 미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상황을 조금만 바꿔서, 일제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는 모습을 과거에 매였다든지, 과제분리에 실패했다던지 하는 식으로 해석해도 좋은 걸까?

 

     여기에 모든 것을 선택의 문제, 나아가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태도는, 자칫 도덕적 판단이나 옳고 그름의 구분 자체를 모호하게 할 여지가 있어도 보인다. 실제로 책에는 그런 부분이 등장하기도 한다(139). 과제의 분리라는 영역은 실제 생활로 들어가면 방임과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 같기도 하고. 공부는 자녀가 할 일이니 공부하라는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데(231) 더 이상 말 해 무엇할까.

 

 

     확실히 이 이론은 일종의 안티테제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책 자체에서도 이 부분을 언뜻 언급하고 가긴 하는데(177), 딱 그 말이 맞다. ,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세계 이해에 이 이론을 문득문득 덧붙이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긴 하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라든지, 남과의 비교 대신 이상적인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라든지 하는 조언들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하지만 온전히 이 이론만을 가지고서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확립해 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 이론은 이 세상에 가득한 실제적 악의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아마 이 점이 책을 읽는 내내 뭔가 답답하게 느껴지던 주요인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이상론적인 면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이상론은 모두가 다 선하게(혹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이 있을 때에야 진정한 효과가 있을 텐데, 현실엔 이런 사람들이 좋은 효과를 일으키기 전에 도태되거나 제거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나는 괜찮다는 자기암시 이상의 특별하고 더 강한 힘이 필요할 텐데, 이 정도로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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