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기독교 - 미국 최고의 변호사,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다
마크 러니어 지음, 이지혜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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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현직 변호사로, 미국에서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법정에서 하는 변론 형식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신 존재에 관한 논증에 이어, 성경에 설명되는 하나님의 속성과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법정 증거로서 받아들일 만한가 하는 측면에 관한 진술들이 이어진다.

 

 

2. 감상평 。。。。。。。

 

     일단 기본적으로 기독교 변증서의 성격을 지니는 책이다. 변호사라는 저자의 직업은 물론, 책 제목인 법정에 선 기독교, 이 책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 내지는 그것이 가지는 지적 진실성을 변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이런 내용을 법정 변론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것은 신선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과연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혹은 독창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이건 법정변론이 아니라 책이니까) 하는 측면에서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C. S. 루이스의 영향이 많이 보이는데, 신 존재에 관한 논증에서 저자가 사용하는 건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제시했던 도덕율의 재탕이고, 기적에 관한 설명 역시 기적에서 등장했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책의 내용 중 일부가 다른 저자들에게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이 큰 문제는 아니다.(표절의 형식도 아니고, 사실 책 자체에서도 C. S. 루이스가 자주 언급되니까.) 더 큰 문제는 초반과 후반의 몇 장()을 제외하고는, 법정 진술이 갖는 특징인 증명, 설득과 같은 시도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 대신 책의 상당부분은 그저 설명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내용은 개인적으로 딱히 문제의식이 느껴지진 않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굳이 이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으니까.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서보다는 기독교 진리를 차분하게 정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더 맞을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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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983년과 2015, 정확히 32년의 차이를 두고 같은 날 비슷한 부위에 상처를 입고 입원하게 된 지환(조정석)과 건우(이진욱). 그 날부터 둘은 꿈속에서 서로의 삶을 보게 된다. 고등학교 교사인 지환과 형사인 건우 사이의 공통점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윤정/소은(임수정의 12).

 

     서로 직접 의사소통은 할 수 없지만, 곧 시간을 넘어 서로의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은 두 사람은, 현재와 과거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바뀌는 역사.

 

 

 

 

2. 감상평 。。。。。。。

 

     정통적인 의미의 타임슬립, 시간이동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살짝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그리 드문 장르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흥미로운 소재인데다, 이 영화처럼 적절하게 스릴러가 가미되면 일단 지루하지는 않은 아이템이니까. 여기에 조정석, 이진욱이라는 핸섬한 배우들에, 요새 다양한 연기를 보이는 임수정이 더해지니 배우 쪽 라인업으로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진욱 연기력은 왜 이렇게 늘지 않는 걸까 싶은 생각이 문득..)

 

     하지만 이런 영화가 겨우 관람객 120만 명밖에 들지 못한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을 터. 우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디테일의 부족이다. 타임슬립 영화의 포인트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과거에 대한 묘사다. 단순한 역사물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만나면서 이뤄내는 부조화, 어색함이 이런 종류의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 가운데 하나. 그런데 그러려면 확실히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경우 그저 배경이 과거일 뿐, 과거의 느낌이 강하게 들지는 않는다.

 

 

 

     당연히 여기엔 각본의 문제가 크다.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며 서로 얽혀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진행이라면, 그만큼 탄탄하게 이야기가 짜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 새로움 보다는 이전에 어디선가 봤던 설정과 장면들만이 잔뜩 등장한다. 특히나 모든 걸 되돌리기 위해 목숨을 끊는 인물은 이제 좀 식상하지 않나..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소재만 믿고 디테일에 충분히 고민을 하지 못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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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기여하는 종교적 관심사는 지지하는 반면,

체제를 위협하는 종교적 확신을 억압하는 것은 오늘만의 비극이 아니다

체제 순응적 종교는 혜택을 받고, 그 종교의 지도자는 등용되어 활동을 보장받는 반면

체제 비판적 종교는 정치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복음에서 정치적 의미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거하고

불법과 억압에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으며

예언자적 선포와는 거리가 먼 개인주의적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 지도자들과 복음전도자들에게

국가는 종종 종교의 자유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 짐 월리스, 부러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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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
김명균 감독, 여진구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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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한 때 잘 나가던 천재 골퍼(일명 백프로)였던 백세진(윤시윤, 거꾸로 해도 윤시윤). 하지만 자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점차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매니저이자 친한 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골프계를 은퇴하게 된다.

 

    1년 후 세진은 외딴 섬에 있는 분교 교장을 맡고 있던 옛 선생님(이경영)으로부터 폐교 위기를 맞은 분교의 임시 선생님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처음에는 닫힌 마음으로 거절하던 세진이었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결국 남기로 결심. 당면 과제는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주니어 골프대회에 최소 입상하는 아이를 키워 폐교를 막는 것이었다.

 

     과연 백프로는 이 과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골프라는 소재를 중심에 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수백 편의 영화를 봤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시도 자체로만 보면 신선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작품. 하지만 스포츠 영화는 흥행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그대로 증명해 낸, 아니 너무 잘 증명한 영화.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 진짜 드라마보다 더 극적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스포츠만이 갖는 역동성과 극적 분위기를 잘 살려낼 수 있었다면, 어느 정도 볼만한 영화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골프라는 운동이 워낙에 조용한 스포츠다보니 경기 자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게 그닥 없다는 게 문제. 결국 남은 건 운동보다는 드라마’,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 이야기였는데, 아쉽게도 이 부분에서도 딱히 두드러진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뻔히 예측되는 위기와 극복이 의미없이 나열되는데, 그나마 별로 설득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게 대부분..

 

 

 

     얼마 전 전역한 윤시윤이 입대 전 마지막으로 찍었던 작품이고, 지금은 확실히 대세 중 하나로 뜬 여진구의 조금은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이경영, 천호진, 박상면 같은 연기파 중견배우들에, 이원종, 이병준 같은 베테랑 조연들까지 가세했지만, 스토리의 부실함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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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와 금융의 실질적인 투명성

그리고 정보의 공유 없이는 경제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실질적인 권리

(이사회에 노동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포함하여)가 없는 한

투명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

정보는 민주적 제도를 뒷받침해주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목적인 아니다.

언젠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획득하려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구현한 구체적인 제도들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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