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타고난 불운 중 하나는

바로 지적인 능력마저도 언젠가 늙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기도 하고

다른 길로 엇나가면서 삐뚤어진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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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번 당 공천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 공식 선거 유세를 시작한 날 중학생 딸이 실종되어버렸다. 사라진 딸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기 사작하는 연홍과 선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종찬 사이의 틈은 조금씩 벌어지고, 그 사이에 딸에 관해 부모들이 알지 못했던 사실들도 함께 밝혀지기 시작한다.

 

     점차 진실의 조각들이 맞춰져 가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처음 예상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분위기로 치닫고, 결국에는 대파국을 맞는다.

 

 

 

2. 감상평 。。。。。。。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이야기라면 대충 그려지는 설정들이 몇 가지 있다. 일이나 사회적 지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남편과의 갈등, 그리고 수사기관은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억울한 심정을 어디다 풀 데가 없는 무력한 엄마는 끝없이 침체에 빠지는 뭐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연홍 역의 손예진은 그런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그저 처음 얼마 동안 애를 쓰다가 지쳐버리는 일반적인 인물들과는 달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도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추적하고,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 그리고 손예진은 이런 캐릭터에 맞게 아주 열연을 펼친다.

 

 

 

 

     사실 이렇게 계속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엄마의 시선으로 영화를 끌고 갔어도 딱히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악한 인물, 혹은 세력을 응징하거나 복수하는 데 집중했다면 차라리 영화는 보기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의 흐름을 그렇게 명확하게 만들지 않고, 좀 더 복잡하게 끌고 간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카메라의 시점 변화다. 감독은 대체로 연홍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듯하지만(연홍의 독백 등) 어느 시점에서는 연홍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넘어 그녀의 딸의 시선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남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질서, 혹은 세력에 응징하는 구조랄까. 그런데 그 결과가 딱히 희망차지는 않은.. (이런 차원에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살짝 떠오른다.)

 

 

 

 

     뭐 일단 구조는 이런 식인데, 그 방식이나 그려나가는 그림이 좀 기괴하달까. 중간중간 연홍을 묘사하는 모습도 그렇고, 사실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모두 그냥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만을 따라서 움직이는데, 세상이 어디 그렇던가? 오히려 이런 점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찬욱 식의 복수극의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즈음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각본에 이정미 감독과 함께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두 번째로 나왔던 것.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정미 감독의 전작인 미쓰 홍당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 영화 속 그로테스크함의 근원은 어쩌면 박찬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론 박 감독의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포인트.

 

 

     영화가 개봉한 뒤 주말 흥행성적이 영 신통치 못하다고 한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 복수는 성공했으나 통쾌함이 없고, 벌려놓은 일들은 충분히 수습되지도 못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찜찜함을 느낀다면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엔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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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형질에 대해 가상의 선택 환경적합할 경우 나타나는 가상의 결과를 제시하는

끼워 맞추기식 사후 설명의 악습이

진화 이론에서부터 철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및 심지어 미학과 신학이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전통적인 학문들에까지 확산되었다.

 

- C. 레녹스, 최초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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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전편에서 시카고의 분파사회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제닌을 물리친 트리스(쉐일린 우들리) 일행. 제닌을 대신해 도시의 최고권력자가 된 에블리(나오미 왓츠)는 도시의 장벽을 폐쇄하고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태생적으로 통제를 싫어하는 트리스가 이런 상황을 견딜 리 만무. 그는 애인인 포(테오 제임스)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장벽을 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새로운 세계. 최첨단의 기술로 완벽하게 외부의 오염을 차단한 채 살아가고 있는 도시는, 데이비드(제프 다니엘스)라는 이름의 지배자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는 트리스를 환영하며, 그녀가 가진 완벽한 유전자가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계획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인류를 위한다는데 기꺼이 참여할 수밖에.

 

     하지만 곧 데이비드의 진짜 계획이 점점 밝혀지는데, 그는 사실 시카고에 사는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것. 사실을 안 트리스와 동료들은 당연히 그곳을 빠져나와 시카고에 남은 사람들을 구하러 돌아간다.

 

 

 

2. 감상평 。。。。。。。

 

     일 년에 한 편씩 나오고 있는 시리즈.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해 갈수록 임팩트는 줄어드는 느낌이다. 특히 이 세 번째 작품은 시리즈 중 가장 덜 흥미로웠던 영화인데, 우선은 전편부터 문제로 여겨졌던 주인공 트리스의 성격(지나치게 감정적) 자체의 문제에, 다른 캐릭터들도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 총알(은 아니고 레이저였던가)이 날아오는 가운데서도 시도 때도 없이 둘이 입을 맞추는 식의 어이없는 연출도 한 문제고. 영화 전체에 컴퓨터 그래픽을 잔뜩 들이 부었는데, 일부 장면은 특수효과인 게 좀 뻔히 보일 정도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도 있고.

 

     물론 이야기의 내용 자체가 흥미로우면 이런 약점들은 충분히 덮어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이 부분에도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다. 첫 번째 편에서는 사회 제도의 억압성이라는 문제를, 두 번째 편에서는 체제 자체를 비정상적으로 고수하려는 수구적 태도를 통렬하게 비판했었다. 즉 전반적으로 주인공과 함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초반이긴 하나 그렇게 자유를 얻은 이들이 함께 모여 이뤄낸 것이 결국은 충동적인 대중 영합주의나 또 다른 독재라거나 하는 식의 메시지를 담아 전편의 메시지들과 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유전자를 통한 인류 지배에 대항해 싸운다는 식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는 식으로 포장되긴 하지만, 이번엔 너무 자주 다뤄졌던 소재라는 점에서 새로울 게 없다는 한계..

 

 

 

     전체적으로 영화가 어정쩡하게 끝난 느낌이다. 또 다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나머지 이야기는 내년에나 풀어낼 생각인가 보다. 영화는 갈수록 20대의 젊은이들만 사는 세계로 치닫고 있는데, 그 때문인가 깊은 생각보다는 일단 뭔가 행동만 하는 군상들만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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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정치, 경제, 교육, 각종 사회문제의 대부분에 도덕의 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예들을 통해 보여준다. 2부는 본격적으로 정치철학을 다루는 부분으로, 특별히 미국 정치의 역사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고수해 온 정치철학이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와 함께 설명한다. 3부는 이 책의 주장이 담겨 있는 부분으로, 공공의 영역에 공동체의 덕성을 함양시킬 수 있는 도덕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제안이 담겨 있다.

 

 

2. 감상평 。。。。。。。

     한때 도덕이 철저하게 사회적 산물 정도로만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계몽주의의 오래된 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은 여전히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고, 도덕조차도 단지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진화는 철저히 우연적이다) 발생한 것으로, 따라서 임의적이고 잠재적인 무엇으로 여기는 것이 고상한 견해인 양 세뇌시키려 애를 썼다.

     이 책의 저자인 샌델은 이런 태도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립성에 대한 신화적 사고에 기인한 그런 태도는, 보수와 진보 양편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공동체의 해체, 심각한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조정할 수 있는 논리 자체가 없으니까) 공적 권력들, 그리고 무엇보다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틈을 타 세력을 넓힌 무제한적 경제 권력들이라는 것.(개인적으론 도덕의 상실과 경제적 힘의 부상을 연결 짓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샌델만큼 과감하게 도덕과 종교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는 학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가 말하는 도덕의 가치가 그 자체의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위한 방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도덕의 실제적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제시하는 방식은 꽤나 설득력 있다. 게다가 옳음좋음에 관한 저자의 판단(좋음이 옳음에 우선한다)을 통해 유추해 보면, 샌델 역시 도덕이 가지는 좀 더 높은 수준의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치에 있어서, 그리고 공동체에 있어서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센댈의 입장은, 인의도, 신의도, 최소한의 정직에 대한 의지조차 없는 최고통수권자와 그 패거리들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시의적절한 메시지다. 도덕이 무시되고 밀려난 자리에는 철저하게 돈의 논리만 들어와 있음은, 최근의 홍만표 사건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의 현실은 좀 더 암담한 것 같다. 어디를 둘러봐도 도덕이나 윤리가 가진 당위성을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잔혹한 현실에 당황하고 있지만, 문제가 되는 상황 자체를 해결할 근본적인 노력에는 쉽게 뛰어들지 않는다. 자신이 현실로부터 탈락할까 두려운 탓이다. 그러는 새 서서히 공동체는 와해되고 있고, 지역에 따라,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고 찢어진다.

     해법은 쉽지 않다. 사실 센댈 자신도 도덕의 유용성, 나아가 도덕의 가치를 주장할 뿐 어떻게 그것을 활성화시키고 강화할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 다만 커다란 눈덩이도 시작은 조막만한 덩어리에서 시작하는 법이니, 우선은 분명한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또 다른 파벌이 되지 않도록 지향을 분명히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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