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될 사람들이 자식에게 미안해서 못 낳겠어요라고 말하는 게 
세습 자본주의로 전환해가는 한국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경제 엘리트들과 정치적 지도자들이 
공공연하게 세습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많은 청년이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자식에게 세습시켜주지 않으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합리적이며 정당하면서도 인간적인 결정이 아닐까?

 

우석훈, 솔로계급의 경제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줄거리 。。。。。。。

 

     한 때는 광산으로 유명했던 무진의 한 야산. 큰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은 이후 폐광이 된 그 지역에서 금이 발견된다. 정보를 입수한 박동근(조진웅)은 각지에서 모여든 엽사들과 함께(? 굳이? 엽사들인가? 그냥 조용히 보고와도 되는데?) 금맥을 확인하러 나갔다가 사람(아마도 그 땅의 주인이었을 할머니)을 죽이고 만다.

 

     광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그 날의 기억으로 인해 아직까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기성(안성기)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고, 죽은 할머니의 손녀인 양순(한예리)과 함께 산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하지만, 앞서의 그 나쁜 놈들이 가만히 놔줄 리 없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밤낮동안 벌어지는 추격전.

 

  

 

 

2. 감상평 。。。。。。。

 

     사방에서 총을 쏴대며 밤새 산을 뛰어다니는 영화. 처음부터 그걸 목표로 만든 영화니, 관건은 얼마나 스릴 있게 추격 장면을 연출해 낼 수 있는가였다. 그냥 걸어 다니기에도 숨차 보이는 산을 안성기를 비롯한 배우들이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중간 중간 총성까지 더해지니,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52년생이니 올해로 예순넷인 안성기의 탄탄한 몸매와 체력이 가장 두드러진다. 영화 아저씨의 할배판이라고나 할까. 영화의 원톱으로써 러닝타임 내내 말 그대로 뛰어다닌다. 악역을 맡은 조진웅은 연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캐릭터 자체가 가진 필연성, 정당성이 딱히 보이지 않아 아쉬웠고, 그 외 일당으로 출연한 배우들은 생각만큼 임팩트를 주는 인물이 없었다. 정신지체를 안고 있는 역할로 나온 한예리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출연한 배우들이 다들 연기력은 어느 수준 이상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 딱히 깊은 인상을 주는 장면은 별로 없다. ‘최종병기 활의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홍보문구가 무색할 정도. ‘에서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통 받는 조선 민초들의 아픔과 서자 출신인 주인공의 설움 등이 적절하게 더해져서 캐릭터에 강한 몰입을 이끌어 냈지만, 이번 영화에선 바로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영화 속에는 과거 탄광사고와 그 가운데 있었던 카니발리즘으로 인한 부채의식, 그리고 양순의 출생과 관련된 진실 등의 소재가 동원되면서 기성(안성기)의 행동에 이유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하지만 이런 소재들이 딱히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 약점.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사적 (그것도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 좀 작위적인) 사건들이고, 앞서의 병자호란과 같은 좀 더 큰 고통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좀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의 총기규제가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죽이며 쾌락을 느끼는 인간들은 가능하면 영화 속에서도 보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넥스트 아프리카 - 뜨겁게 부상하는 기회의 대륙, 왜 지금 아프리카에 주목해야 하는가
제이크 브라이트.오브리 흐루비 지음, 이영래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은 늘 기근에 시달리며 만성적인 가난과 비위생적인 삶, 끊임없는 내전과 독재의 땅이라는 이미지다. 실제로 언론들에서 보도되는 모습이 그러하니까. 하지만 이 책을 쓴 두 명의 공저자는 오랫동안 아프리카와 관련된 일을 해 오면서, 오늘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얼마나 급속히 발전중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물론 여전히 아프리카 국가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여러 장애물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특히 집고 있는 것은 부족한 기반 시설(전력, 도로, 철도, 통신 등) 문제다. (의외로 부패나 내전과 같은 치안상황은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 듯) 하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쓰인 책답게, 이런 문제들도 가까운 시일 안에 곧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2. 감상평 。。。。。。。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는 아니고,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아프리카가 꽤나 유망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물론 나한테 아프리카와 관련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새로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자금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고, 내 경우엔 그저 이 지역에 관한 최신의 정보를 상식선에서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들었다.

 

 

     책 초반부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아프리카국가들의 발전상은 아프리카가 이 정도였어?’ 하는 놀람의 연속이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2015GDP 성장률 예측치(이 책은 2015년 출판된 책)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무려 8.49%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위인 에티오피아(8.46), 3위인 모잠비크(8.16%)8%대의 높은 성장률이 예측되고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저개발국가라 가능한 성장률 수치이긴 하지만, 1년에 8%13년이면 경제규모가 두 배로 성장한다는 말이다. 쉽게 볼 수치는 아니다.

 

 

 

 

     또, UN2020년까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인구 백 만이 넘는 도시가 57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유럽과 동일한 숫자라고 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는 곧 엄청난 수의 소비자 증가를 의미하고, 이런 탄탄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산업들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온전히 경제적인 부분에만, 그것도 긍정적인 비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부정의와 부패, 그리고 여전히 심각한 빈곤 등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 아프리카에 관한 기존의 편견을 보완해 주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또 한 편으로 다른 편견을 심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히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해 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정신에서 나오는 중요한 물음이나

마음의 열망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무신론은

실존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얄팍하고 피상적이고 시시한 것은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 곧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종교적이든

인간이 기대고 살아가는 실재는 이런 식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C.S.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부르그만, 김기철 / 복있는사람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저자는 이 책에서 성경 속 예언자들이 과연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 답을 한다. 그들은 단순히 미래에 일어난 일을 점치는 점쟁이가 아니라, 당대의 지배적인 문화(왕권 중심의 보수적이고 현세지향적 문화)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모순을 고발하면서 일종의 대안적 비전을 선포하는 이들이라는 것.

 

    저자는 몇 명의 선지자들을 예로 들며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우선 파라오로 상징되는 당대의 전제적 문화에 도전했던 모세로, 그는 선지자적 사역의 원형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선지자적 사역의 핵심 주제로서의 애통함의 대표자 예레미야와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회복을 전해주는 인물로서의 이사야(책에서는 이사야서 후반부를 가리키는 특정한 신학적 입장인 2 이사야로 언급)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삶과 사역으로 종합했던 예수와 그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룬다.

 

     책 말미에는 선지자적 상상력에 기초한 교회들의 사역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2. 감상평 。。。。。。。

 

    선지자들을 체제 비판자를 넘어 체제에 도전하는 이들로 묘사하는 저자의 서술은 흥미롭다. 확실히 이렇게 선명하고 약간은 과격해 보이는 도전자들은, 현대인들에게 영웅의 자질을 갖춘 이들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물론 이런 모습이 단지 현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모세나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당대의 최고 권력자들에 대항하는 아이콘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으니까.

 

    저자는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왕권과 선지자직을 강렬하게 대조시킨다. 이 깔끔한 구도에 따르면 전제적 왕권은 거의 악 그 자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당연히 신의 뜻을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은 그런 권력자들과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구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모든 선지자들이 그렇게 왕권에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저자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이사야 전반부에는 왕궁을 자유롭게 출입하며 왕의 외교전략과 전쟁의 전술에 관해 조언하는 선지자의 모습이 실려 있다. , 선지자 사무엘은 왕권에 상당히 비판적이긴 했지만, 직접 두 명의 왕을 옹립하는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의 왕들과 심각하게 대립했던 엘리야와는 달리, 그의 제자인 엘리사는 예후 왕조의 왕들로부터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실 과거의 왕권 전통을 모두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보려는 시각은 지나치게 현대적인 감이 있기도 하다. 물론 권력의 탐욕스러운 성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모든 권력에 덧씌운다면, 이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갈 곳은 아무 데도 없어져버린다.

 

    책 속에도 이미 저자의 지나치게 이상적인 견해의 부작용이 살짝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가 그리는 선지자들의 사역의 효과는 실제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고 현학적인 효과처럼 보인다. 예컨대 선지자는 애통하는 이들이다. 그러면 예레미야의 애통은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을 움직여 깊은 정서적 공감을 일으켰는가? , 물론 그것이 그의 사역의 한 모습인 것은 분명하나, 그 자체가 그의 사역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감하게 먼저 나간 것은 아닐까?

 

    물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단지 이론적이거나 이상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책 후반에 실린 실천 후기. 자신이 알고 있는 예언자적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을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인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 소개들과 본문 사이에 긴밀한 연결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교회와 공동체들의 사역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한참 비판을 쏟아내 놓고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 같지만, 위의 비판은 저자의 논지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흐르고 있는 데에 관한 것이지,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 자체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성경에 기초해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 예언자적 상상력을 품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특히 전 지구적인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들지구적, 또 지역적 빈부격차의 심화, 소비지향적 문화, 탐욕에 의해 망가져 가는 인간의 품성들 등이 심화되고 있는 이즈음, 저자의 목소리는 유효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선지자의 목소리와는 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선지자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는 책. 다만 조금 더 종합적이고 현실적(실제적)인 관점이 더해진다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