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중에서...

 

서울 시내 학교에 설치할 MS 오피스를

왜 서울교육청이 나서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만 일괄구매를 했느냐며 따지는

새누리당 의원 클래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64662.html?_ns=t0

 

연봉이 최소 1억은 넘을 텐데..

공부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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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0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의원 정책보좌관 상판때기나 한번 보고 싶더군요.ㅎㅎㅎㅎ어떻게 저런 무지한 질의서를 의원에게 건냈으며,,의원은 얼마나 검토가 없이 지껄인건지...저런 수준의 인간이 국정을 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노란가방 2016-10-08 07:26   좋아요 1 | URL
갈수록 국회의원들의 질적 저하가 빨라지는 느낌입니다.. 이러라고 선배들이 민주화 투쟁을 목숨 걸고 했던 게 아닐 텐데.. 죽 쒀서 개 준 꼴이랄까요..
 
아빠에게 말을 걸다 - 외롭고 서툴고 고단한
신현림.신동환 지음 / MY(흐름출판)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시인인 작가가 아버지라는 주제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내려 간다. 주요 소재는 작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전 국회의원 신하철씨다)이지만, 주변의 선후배, 혹은 어디선가 전해들은 이야기 속 아버지에 관한 내용도 일부 담겨 있다. 여기에 작가의 남동생인 정신과 의사 신동환의 칼럼이 각 챕터 말미에 네 편 실려 있다.

 

 

2. 감상평 。。。。。。。

 

     크게 네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식하면서 읽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하며 겪은 일화가 담긴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야기 등 비슷한 콘셉트라, 챕터가 나뉘어 있긴 하지만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역시 자연스럽게 부모님에 관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 후회가 되었던 건, 내가 아버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아버지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는 거의 알지 못했다.

 

     집에서 그다지 말씀을 많이 하시는 분도 아니셨다. 어린 시절에는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가계셨고, 사업이 망한 뒤로 몇 년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셨다. 돌아오신 뒤에는 말수가 더욱 줄어드셨고(아마도 깊은 좌절감이 더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짐작될 뿐), 이런저런 일에 손을 대셨지만 제대로 된 소득이 없으셨고, 마지막 몇 년은 병원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우리 아버지는 많이 배우신 분도 아니었고, 책을 읽으시는 분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아버지는 다 아시는 것처럼 생각했었지만, 좀 더 자라면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묻는 횟수나 빈도도 줄어갔다. 그런데 그게 참 후회가 된다. 무슨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물을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꿈, 아버지가 살아오셨던 이야기에 대해 나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책 속에 소파가 가장 편하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집에 들어와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저 의례적인 대화들만 오고갈 뿐. 집 안 어디에도 아버지의 자리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냉장고 속 주전부리를 챙겨 소파에 비스듬히 눕는 아버지. 그는 소파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은 정말로 소파가 편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디 다른 곳에 몸을 누일 자리가 없어서 그런 건지 묻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굉장히 슬펐다. 어쩌면 내 아버지도 집 안 어디에도 누울 자리가 없으셨던 건 아닐까.

 

 

     ​책의 마지막 칼럼은 우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내용이다. 어쩌면 나처럼 아버지와 더 이상 좋은 추억이나 기억을 만들 수 없어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또 다른 아들에겐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일단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야 아버지도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끔은 이런 책도 한 번씩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나치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편안하게 읽히는 글이 보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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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컴퍼니 스토리콜렉터 3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은퇴 후 하루하루 하릴 없이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소일하고 있던 스고우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자신처럼 은퇴한 기리미네를 만나면서 극락 컴퍼니가 시작된다. 말하자면 일종의 회사놀이. 오직 회사밖에 모르며 살았던 그들로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을 보낸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기에, 일종의 가상의 회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양식미를 즐기는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실사판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어설픈 계획이 놀랍게도 인근의 수많은 퇴직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된다. 곧 놀이는 하나 둘 지사까지 내며 확장되기 시작했고, 전국적인 신드롬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조금씩 이 놀이에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중 한 명은 스고우치의 아들 신페이였다.

 

 

2. 감상평 。。。。。。。

 

     일단 재미있다. 이런 종류의 가벼운 소설을 손에 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제대로 충족시켰으니, 뭐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장난처럼 시작한 은퇴자들의 놀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대되어 전국적인 유행으로 발전해 가는 장면은, 마치 내가 그 놀이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신이 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몇 가지 더 흥미를 끌만한 코드를 집어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 ‘회사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아가 회사’, 혹은 사업이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제법 무게감 있는 질문이 이야기 속에 적절히 섞여있다.

 

 

     ​이 질문들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담긴 대답까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인생의 지혜가 담긴 몇몇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야기 초반 스고우치와 기리미네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사의 이념을 정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스고우치는 현역 때와는 달리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회의를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건설적인 시간보내고 있음을 깨닫고는 기뻐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줄을 잘 타서 승진을 할까, 어떻게 하면 경쟁자들을 누르고 더 많은 성공을 거둘까 하는 회의에 매몰되어 버리면, 어느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를 묻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다. 회사가 감옥이 되고, 내 책상과 동료의 책상을 나누는 파티션이 창살이 되어버리는 건 이즈음일 것이다.

 

     하지만 스고우치와 기리미네는 회사생활에서 승진’, ‘성공을 버리고, 회사 자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두고 고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오랜만에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될 수 있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회사란 밖에 있을 때는 들어가고 있고, 정작 들어온 후에는 나가고 싶은 그런 곳이라고. 여기에는 이런 조금은 이상적인 가치에 대한 추구가 사라지는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지만, 전개가 살짝 헐거운 부분도 보인다. 기리미네가 왜 그렇게 갑자기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또 사기사건이 발생한 후 회사놀이에 가해지는 언론의 비난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장돼 보인다. 작가가 좀 얼버무린 듯한 느낌.

 

     ​회사생활도 회사생활이지만, 그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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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을 찾는 손님은 절대 신이 아니다.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당연히 돈을 낸 만큼이다.

 

- 히노 에이타로, ,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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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저자는 삶이 끝난 이후에도 삶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사후의 삶이라는 것이 모순적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죽음이란 삶이 끝난 상태인데, 어떻게 또 이 가능 하느냐는 논리다. 이어 몇 개의 장에 걸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한 두 주장오직 육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일원론과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론에 관한 논의를 하는데, 여기에서 저자의 논지는 분명하다.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가 없으므로, (자신에게는) 일원론을 따르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생각된다는 것.

 

     인간의 본질에 관한 논의에 이어 본격적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해 살피는 장들로 넘어간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앞서와 같은 사고실험들을 끊임없이 계속하는데, 예컨대 죽음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놓고서는, 우리의 삶이 지속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상태라면 그것이 중단된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나쁜 것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임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식의 결론을 제시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삶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그렇게 지속되는 기간 동안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아는 한 어떤 일도, 100, 1000년 계속되어도 즐거운 것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가치는 행복’(혹은 쾌락)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전제는 자연스럽게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것을 누군가 허락할 것인가(다양한 유형의 자살에 관한 논의) 하는 질문에, 만약 어떤 사람의 삶이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하다면, 그 생명을 어느 순간 중단시키는 것도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식으로까지 이어진다.

 

 

2. 감상평 。。。。。。。

 

     우선 책 뒷표지에 실린 홍보문구를 집고 넘어가자. “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학생이 끝까지 들으려던 강의인가?”라는 도발적인 문구인데, 사실 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래, 그 정도로 깊은 감동과 교훈, 가치를 지닌 강의란 말인가? 그런데 책 속에 간략히 소개된 이야기에 따르면, 그 학생이 정말로 꼭 이 강의를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 학생은 졸업 전에 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그 과정에서 이 강좌를 수강했다는 것이 팩트.

 

     꼭 이 강의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 속에는 딱히 설명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다면 어쩌면 이 강의가 학점을 잘 줬거나, 과제가 적거나, 병원치료와 시간이 맞았거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좀 싱거운 사실.

 

     ​물론 이 강의의 내용이 그 학생에게 위로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그저 기계일 뿐이고, 영혼은 없으며(정확히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물리적인 증거가 없으며), 따라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며, 즐거움이 다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용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강의를 듣고 그 학생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삶을 정리하는 데 일정부분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고.

 

 

     사실 저자의 철학적 논리 전개 방식이 썩 인상적이거나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책 초반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원론적 입장에 대한 공격에서 저자가 사용하는 것은 플라톤의 저작 속에 나오는 영혼의 불멸 사상인데, 사실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플라톤 식의 이유를 들어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런 전략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저자는 영혼의 존재에 관해서 아직까지 그걸 인정해야만 하는 증거가 없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물론 여기에서 증거는 물리적인 증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영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본 개념상 물리적인 육체와는 다른 질적 양상을 지닌 무엇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물리적이지 않은 무엇을 물리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만 한다는 요구가 과연 적절한 걸까?

 

     ​나아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저자의 또 다른 유력한 주장인, ‘영혼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저자 자신도 인정하는,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기 때문. 이 부분은 얼마 전 읽었던 C. S. 루이스의 위험한 생각에서도 다루고 있는 문제와도 비슷하다. 어떻게 우연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게 된 인간의 육체가 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나아가 논리이성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 역시 아직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67)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입장(오직 육체만 존재한다)은 철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언젠가 그 원리가 자연주의에 입각한 방식으로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영원히 살아가고픈 인생을 여러분은 과연 상상할 수 있겠는가?(339)라고 물으며 영생에 대한 소망을 비웃는 부분 역시 딱히 논리적으로 일관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몇 페이지 앞에서(271)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

 

 

     ​철저하게 논리를 기반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가 죽음에 관해 물리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건 죽어 있는 육체일 뿐이니까. 매미의 사체를 해부한다고 해서 매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고, 꽃잎을 샅샅이 조각낸다고 해서 꽃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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