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 이 땅에서 그분의 교회로 살아가는 길
윌리엄 윌리몬.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지음,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미국 사회의 세속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미국교회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세속주의 신학(여기에는 콘스탄틴주의라고 불리는 신앙과 세속권력 사이의 혼합 신학과, 신앙과 이성의 분열을 초래한 계몽주의 신학이 있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분명 이건 교회로서는 위기다. 하지만 이건 정확히 말하면 잘못된 신학에 기초했던 교회들의 위기다. 오히려 저자들은 이 상황을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교회 본래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본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교회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 세상의 일정 영역에 세운 개척지(이 책에서는 식민지라고 번역한다). 교회와 세상은 서로 다른 주인을 섬기며, 교회는 카이사르가 아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그 존재 자체로 선포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것. 당연히 교회로 산다는 것은, 세상 주류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일종의 모험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저자들은 교회 자체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가 지닌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라고 말하는 듯하다.(“우리가 제시해야 할 가장 창조적인 사회 전략은 바로 교회다.” 125) 교회는 세속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어느 한쪽 편에 서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가장 교회다운 일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교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실제로 살아내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유익한지를 보여주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줌으로써 그러한 삶이 지속적으로 전수되도록 공헌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탈진해버린 많은 목회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다. 내용은 앞서 서술한 것들과 비슷해서, 우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공동체인지를 바로 세운 후,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

 

 

2. 감상평 。。。。。。。

     미국의(그리고 서구의) 교회들이 오랫동안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정작 중요한 자신들의 고유한 것들을 스스로 잃어버렸음을 지적하는 저자들의 진단은 날카롭다. 또 교회와 더불어 힘이 소진되어버린 목회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대처방안(문제는 목회자의 심리적인 문제이며, 휴일을 요구하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하는 식으로 해결하라는)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도 아주 분명하게 긁어준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교회의 본질과 고유한 가치에 집중하려는 저자들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교회는 뭔가를 열심히 해왔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 온 결과로 교회는 점점 힘과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잘못된 열심을 내 온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고)

     사실 이런 문제들은 저자들이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작업을 하기 이전에도, 이미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인식해왔던 것들이니까... 신학교와 교단들부터 돈과 권력에 매달리는 인사들이 잔뜩 달라붙어 전횡을 일삼은 지 오래되었고, 강단은 준비되지 않고 자격 없는 이들의 세속적 강론으로 깊이 오염되었다.

 

 

      저자들의 대안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가 이해하기에 이 주장에 담긴 첫 번째 의미는 지나치게 확장되어왔던 교회의 사역들을 좀 정리하고, 이것이 정말 교회의 일인가를 확인하는 성찰의 때를 가지라는 뜻으로 들렸다. 정말로 한동안 교회는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만 골몰했었다. 이제 잠시 그런 확장을 멈추고 이것이 정말 본질적인 사역인가를 고민해봐야 하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주장이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들은 정말로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모험이 필요함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렇지 않은가. 주류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고, 수천 년 전 갑자기 나타난 작은 공동체의 행동방식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만저만한 모험적 결단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모든 것은 우리가 자신을, 그리고 이 세상을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들의 말처럼, 우리가 좀 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이 세상은 일종의 무대이며 진짜 세상이 따로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나그네가 아닌 거주민으로 살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독특함은 나그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붙잡는데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은 나그네가 아닌 (성공한) 거주민으로서 인정받고자 애쓰는 것 같다. 저 높은 분의 인정을 위해 기꺼이 세상의 인정을 포기할 수 있고, 한없이 확장하는 대신 본질에 집중하고, 성공을 위한 지혜 대신 옳은 삶을 위한 지혜를 구하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교회는 다시 교회다워지고, 교회에 약속된 복들을 누릴만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이 약간 퍼져 있어서 핵심 논지를 따라잡는 게 살짝 어려울 수 있지만, 언제라도 교회다움이 흐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한 번 펴봐야 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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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는 것이 유전적인 요소로 결정된다면

아름다움은 행동에서 배어 나오는 고상함과 우아함 같은

후천적인 요소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 왕하이링, 중국식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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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어느 날 현기증이 느껴져 찾아간 병원에서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은 주인공(사토 타케루). 착잡한 마음으로 돌아온 집에 그를 반겨주는 건 고양이 한 마리, 아니 그 날엔 자신과 너무나 똑같이 생긴 또 한 사람이 집에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악마라고 불러도 좋다는 녀석은, 주인공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주인공의 수명을 하루 늘려주는 대신, 세상에서 한 가지를 없애버리자는 것.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버려야 한단다.

 

     일단 살고보자는 마음으로 계약에 동의한 주인공. 첫 번째로 없어질 것은 전화기였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라는 녀석의 말에, 하필 헤어진 여자친구(미야자키 아오이)에게 전화를 건 주인공.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재회를 마치자, 다시 녀석이 나타나 온 세상의 전화를 없애버린다. 그리고 동시에 전화와 관련되어 있던 주인공의 옛 사랑과의 모든 기억도 사라져버리고... 그렇다. 이건 뇌종양에 걸린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었던 것.

 

     그렇게 전화, 영화, 시계가 하루에 한 가지씩 사라져버리고, 드디어 녀석은 고양이를 없애자고 제안한다. 고양이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2. 감상평 。。。。。。。

     재미있는 발상이다. 세상에 있는 것을 한 가지씩 없애면서까지 자신의 수명을 하루씩 늘릴 수 있다면, 무엇부터 없애버려야 할까. , 그것이 없어져도 정말 괜찮은 걸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내 생명을 위해 포기해도 되는 것이 있는 걸까? 뇌종양 환자의 마지막 며칠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 감독은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퍼붓는다.

 

     ​언뜻 처음에는 저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집 안에 남아있는 것이 없게 되는 그림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집착 때문에 놓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우리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되는, 그런 수순을 따를 것이라는 예상도 했었다. (요새 물건 버리는 운동도 있다지 않던가.)

 

    ​하지만 이렇게 갔다면 영화는 좀 더 조용해지거나, 설명적으로 되어버렸을지도.. 그래서 감독은 처음부터 좀 더 강하게 몰아친다. ‘전화’. 단지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주인공의 추억과 지난 기억, 수많은 경험들이 관련되어 있는 도구였다. 전화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는가. 제 때 받지 못해서, 혹은 절묘하게 알맞은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떠올려 보면, 사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것들 어느 하나도 가볍게 버리기는 어려워진다.(물론 충동적으로 구입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물건들은 빼고)

 

 

 

      하나를 버리면서(또는 잃어버리면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통해, 남아 있는 것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도 된다. 그 모든 것들은 더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서 우리를 구성하고,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것들이니까. 당장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없애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머릿속에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이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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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도

사실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모른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서나

어차피 똑같이 죽음에 더 다가가는 것임을 모른다.


- 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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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힐러리를 꺾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전 각종 예측과는 사뭇 다른 의외의 결과.

뭐 왜 트럼프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이제 각종 언론에서

신나게 뒷북 치며 분석할 테니 됐고..



뭐 샌더스와 트럼프의 대결에서 트럼프가 이긴 거라면

안타까운 마음이 좀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건 이명박과 박근혜 놓고서 선거 치르는 느낌이어서..;

(물론 박근혜가 힐러리 급이라는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속보를 보면서 퍼뜩 든 생각은..

트럼프는 시민들의 추대로 후보가 되었고,

힐러리는 민주당 지도부의 추대를 받은 그림이었다는 것.

미국 유권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전한 길만 찾던 ​민주당 지도부의 자충수가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건 이 심상치 않은 시국의 우리나라 민주당도 비슷한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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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가방 2016-11-09 22:32   좋아요 0 | URL
근데 재밌는 구경일수록 티켓 값이 비싸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