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 그들은 왜 세상 모든 게 버거운 어른이 되었나
미하엘 빈터호프 지음, 송소민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오늘을 우리는 주변에서 온갖 나이 값을 못하는(미성숙한) 사람들을 보고 있다. 바로 눈앞의 일을 보지도 못하고, 간단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과도한 요구에 쩔쩔매고,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등등. (.. 절대 우리나라의 어떤 높은 분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책에 나온 말이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이런 문제적 태도의 원인은 잘못된 교육 방식이다. 아이를 성인의 파트너 자리에 두고 교육해야 한다는 교육이론, 그리고 아이가 약간의 어려움이라도 느끼면 모든 문제를 대신 나서 해결해주려는 태도가 그것. 이런 태도들이 모여 결국 아이는 작은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미루거나, 말 그대로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

 

     ​당연히 이런 문제들의 해법은 직접 어려움을 대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어린 아이들부터, 이미 미성숙한 상태로 나이를 먹어버린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아이를 지금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것.

 

 

2. 감상평 。。。。。。。

     교육에 관한 이론이 참 많다. 얼마 전 읽었던 살아갈 힘이라는 책에서는, “착한 아이가 되도록 아이를 가르치려는 것이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 무엇인가를 강제하려 하지 말라고 단언한다.(심지어 훈육 자체를 포기하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정 반대로 말한다. 아이가 어떤 벽도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교육방식이야말로, 아이들로 하여금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게 만드는 좋은(?) 방식이라고.

 

     ​물론 양쪽 다 나름 일리가 있다. 문제는 교육이론이라는 게 소위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실험과 검증이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것. 일단 다루는 대상 자체가 기계나 사물이 아닌 사람이지 않은가. 기본적인 성격과 특성이 다르고, 똑같은 것을 가르쳐도 다르게 대답하는, 다른 말로 하면 선택의 자유를 가진 존재를 하나의 이론으로 바르게 이끄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굳이 분류하자면 이 책은 좀 더 고전적인 이론을 담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훈육 따위는 집어 치우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는 쪽이 좌파 쪽이라면, 이쪽은 우파 쪽이랄까.

 

     그런데 이쯤 되면 사실상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좀 더 자유스러워져야 하는가, 아니면 조금 더 엄격해져야 하는가. 이쪽에도 동서양의 차이가 있는 걸까?(살아갈 힘은 일본인이, 이 책은 독일인이 썼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드는 걸 고르게 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제시된 해결책에 대체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종종 지나치게 외골수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이런 책들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도 유용한 경우가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라서, 내 안에 있는 미성숙한 부분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제대로 성숙하지 못하고, 그저 나이를 먹었을 뿐인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맡았을 때,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요즘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론들이 있지만, 양쪽 다 동의하는 것은 그런 미성숙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인 것 같다. 특히나 국가의 대사는 연습시키고 교육시키는 유치원이나 훈련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좋은 결과와 성과를 내야 하는 실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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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정의기억재단.

 

여기에서 올해 말까지(12월 28일) 후원금 1억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랍니다.

프로젝트 마감일이 12월 28일인 이유는

이 날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불가역적인' 합의를 한 부끄러운 날이기 때문이죠.

 

후원금액은 2만 5천원부터 시작하는데요,

2만 5천원을 후원하면 작은 소녀상을 선물로 주기까지 합니다!

 


물론 더 많은 금액을 후원하는 것도 가능하구요

후원 금액에 따라서 보내주는 기념품도 달라진다네요.

(저는 소심하게 2만 5천원 후원했습니다.)

 

이제 60% 정도 목표금액에 도달했다고 하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참여하시면 어떨까요.

(아래 링크를 누르세요)

 

https://www.tumblbug.com/justice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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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1-2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 좋은 후원에 동참할 수 있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란가방 2016-11-20 22:07   좋아요 1 | URL
시민들의 작은 힘이 모이면 얼마나 큰지 제대로 보여주어야 할 것 같은 요즈음이에요. 함께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6-11-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일정부가 지켜주지 않으니 국민들이 직접 모셔야겠지요. 그후에 정부에 대한 심판도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모두의 할머니고 어머니신 분들입니다. 당연히 함께 해야지요^^

노란가방 2016-11-20 22:13   좋아요 1 | URL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ㅠㅠ
 
철원기행
김대환 감독, 이영란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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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줄거리 。。。。。。。

     평생을 철원에서 교사로 보내고 정년퇴임을 맞게 된 아버지. 행사를 위해 원래는 떨어져 살던 아내와 큰 아들 내외, 그리고 조금 늦게 둘째 아들이 도착한다. 시종일관 별 말이 없는 아버지, 사사건건 불평과 트집을 쏟아내는 어머니, 어떻게 보면 아버지를 닮은 것 같은 큰 아들, 어떻게는 분위기를 녹여보려고 애쓰는 며느리, 딱 철없는 막내아들..

 

     그리고 점심 식사 자리에서 간만에 입을 연 아버지의 선언. 이혼을 하겠다.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 아내는 당장에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나가지만, 때맞춰 내리는 폭설로 차가 끊긴다. 철원 좁은 바닥에 마땅히 갈 곳도 없던 가족은, 아버지의 관사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이혼을 선언한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의 23일간의 동거가 시작된다.

 

 

  

 

2. 감상평 。。。。。。。

 

     이 가족은 왜 깨어졌을까. 사실 모르겠다. 도무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과묵한 아버지는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사사건건 삐딱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태도는 또 무엇 때문인 걸까? 영화 속 드러난 사흘간만 보면, 어머니의 등쌀을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의 이혼결심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아버지의 저 답답함이 차가움으로 느껴진 아내의 폭발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독은 이유를 파고들어가지는 않는다. 대신 이 깨어진 가족이 한 자리에 억지로 모였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를 그린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어떤 증오도 보이지 않고, 시종일관 불평을 쏟아내던 어머니도 결혼을 앞둔 둘째 아들과는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며느리와는 같은 여성으로서 통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시종일관 사근사근 시부모의 분위기를 맞추고 있던 며느리는 사실 자신을 별 내켜하지 않는 시어머니 때문에 받은 상처를 쏟아낸다.

 

 

 

      모든 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모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알아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통하고, 이해되고 하는 게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하느라 한 자리에 모이기조차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대화할 기회를 놓치고, 시간을 잃어버리면서 서로의 마음에는 거리가 생기고, 결국은 어느 순간 오래된 고무줄이 삭아 끊어져버리듯 가족 사이의 느슨한 관계도 해체되어 버린다.

     그렇게 틈이 벌어져 버린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억지로 함께 모이는 기회가 만들어 졌을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 비로소 사람들은 진심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말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공기든 물이든 통하지 않으면 자연히 탁해지고 썩어지듯,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은 부패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불통 대통령은 임기초부터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고, 반론이나 질문은 원천 봉쇄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즈음 보는 것 같은 희대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것. 만약 그가 조금 더 일찍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의 자리에 나왔더라면, 어쩌면 이 정도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늦은 것 같다. 사흘간의 만남과 대화로 영화 속 가족이 다시 회복되지 못한 것은,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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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서

자유란 압제자가 자발적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피압제자들

요구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 왜 우리는 기다릴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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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 이 땅에서 그분의 교회로 살아가는 길
윌리엄 윌리몬.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지음,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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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미국 사회의 세속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미국교회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세속주의 신학(여기에는 콘스탄틴주의라고 불리는 신앙과 세속권력 사이의 혼합 신학과, 신앙과 이성의 분열을 초래한 계몽주의 신학이 있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분명 이건 교회로서는 위기다. 하지만 이건 정확히 말하면 잘못된 신학에 기초했던 교회들의 위기다. 오히려 저자들은 이 상황을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교회 본래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본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교회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 세상의 일정 영역에 세운 개척지(이 책에서는 식민지라고 번역한다). 교회와 세상은 서로 다른 주인을 섬기며, 교회는 카이사르가 아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그 존재 자체로 선포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것. 당연히 교회로 산다는 것은, 세상 주류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일종의 모험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저자들은 교회 자체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가 지닌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라고 말하는 듯하다.(“우리가 제시해야 할 가장 창조적인 사회 전략은 바로 교회다.” 125) 교회는 세속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어느 한쪽 편에 서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가장 교회다운 일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교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실제로 살아내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유익한지를 보여주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줌으로써 그러한 삶이 지속적으로 전수되도록 공헌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탈진해버린 많은 목회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다. 내용은 앞서 서술한 것들과 비슷해서, 우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공동체인지를 바로 세운 후,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

 

 

2. 감상평 。。。。。。。

     미국의(그리고 서구의) 교회들이 오랫동안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정작 중요한 자신들의 고유한 것들을 스스로 잃어버렸음을 지적하는 저자들의 진단은 날카롭다. 또 교회와 더불어 힘이 소진되어버린 목회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대처방안(문제는 목회자의 심리적인 문제이며, 휴일을 요구하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하는 식으로 해결하라는)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도 아주 분명하게 긁어준다.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교회의 본질과 고유한 가치에 집중하려는 저자들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교회는 뭔가를 열심히 해왔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 온 결과로 교회는 점점 힘과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잘못된 열심을 내 온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고)

     사실 이런 문제들은 저자들이 학문적으로 입증하는 작업을 하기 이전에도, 이미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인식해왔던 것들이니까... 신학교와 교단들부터 돈과 권력에 매달리는 인사들이 잔뜩 달라붙어 전횡을 일삼은 지 오래되었고, 강단은 준비되지 않고 자격 없는 이들의 세속적 강론으로 깊이 오염되었다.

 

 

      저자들의 대안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내가 이해하기에 이 주장에 담긴 첫 번째 의미는 지나치게 확장되어왔던 교회의 사역들을 좀 정리하고, 이것이 정말 교회의 일인가를 확인하는 성찰의 때를 가지라는 뜻으로 들렸다. 정말로 한동안 교회는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만 골몰했었다. 이제 잠시 그런 확장을 멈추고 이것이 정말 본질적인 사역인가를 고민해봐야 하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주장이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들은 정말로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모험이 필요함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렇지 않은가. 주류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고, 수천 년 전 갑자기 나타난 작은 공동체의 행동방식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만저만한 모험적 결단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모든 것은 우리가 자신을, 그리고 이 세상을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들의 말처럼, 우리가 좀 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이 세상은 일종의 무대이며 진짜 세상이 따로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나그네가 아닌 거주민으로 살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독특함은 나그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붙잡는데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은 나그네가 아닌 (성공한) 거주민으로서 인정받고자 애쓰는 것 같다. 저 높은 분의 인정을 위해 기꺼이 세상의 인정을 포기할 수 있고, 한없이 확장하는 대신 본질에 집중하고, 성공을 위한 지혜 대신 옳은 삶을 위한 지혜를 구하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교회는 다시 교회다워지고, 교회에 약속된 복들을 누릴만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이 약간 퍼져 있어서 핵심 논지를 따라잡는 게 살짝 어려울 수 있지만, 언제라도 교회다움이 흐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한 번 펴봐야 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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