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사장 - 지시만 받다 지시하는 날이 왔다. 이제 어떻게 하지?
린지 폴락 지음, 한유선 옮김 / 부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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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단순히 부여된 과제를 수행하면 되는 지위에서, 책임을 갖고 부하직원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 담긴 책. 직장생활과 경력관리에 관한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답게, 리더로서 배워야 할 것, 다른 사람들을 리딩하는 방법, 그리고 리더로서 탁월해지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내용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2. 감상평 。。。。。。。

     강연을 책으로 옮겨놓으면 읽기가 편하다. 강연은 사람들의 귀에 대고 하는 말이니까 주술호응이 꼬이는 긴 문장보다는 요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짧은 문장이 유리하다. 그런데 이건 눈으로 읽어갈 때도 마찬가지인지라, 강연으로 단련된 저자들의 글은 일단 잘 들어온다. 좋은 글은 말하듯이 쓰는 글이라는 말은 옳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조언들이 잠시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이 책을 너무 빨리 읽어버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고, 책을 좀 더 차분하게 읽어나갔다면 별로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다양한 부분에서 차근차근 조언들을 정리해 놓았다는 의미일 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지만, 그 역할을 어떻게 해야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그런 자리에 있게 됐고, 그래서 자신이 따르는 입장이었을 때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경우가 대다수다.

     사실 우리 삶의 모든 중요한 일에는 일정 수준의 검증된 조건(학위라든지, 자격증이라든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름의 전문적인 기회를 찾아 배우려고 하는데, 사람을 이끄는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서 제대로 그 일을 하지 못해 사람들을 낙심시키는 나쁜 리더들을 주위에서 수없이 보고 있고.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이 나라의 대통령만 봐도 이보다 리더의 자질이 없는 형편없는 인물이 최근에 어디 있었는가 싶지 않던가)

 

     책 표지에 실린 그림은 요새 유행하는 그림체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한 번 보고 넘어가면 모를까 계속 보고 싶은 형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번역도 깔끔하지만, 116쪽과 117쪽에 걸쳐 있는 이야기에서 같은 사람을 다른 발음으로 표기해 놓은 게(미핸, 미한) 살짝 눈에 띈다. 그 외에는 특별히 문제 삼을 만한 것은 없고.(일단 문장들이 간단하고 짧으니까.)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네 싶은 부분도 꽤 있을 거고, 어떤 부분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배워둘 만한 조언들이다. 리더가 되기 전에 여기에 있는 조언들을 먼저 제대로 배웠더라면,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나의 일부로 만드는 연습을 해왔더라면 훨씬 떠 나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야에 관한 책을 좀 더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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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몬스터
조디 포스터 감독, 줄리아 로버츠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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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주식 투자 관련 텔레비전 쇼 머니 몬스터를 진행하는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 사건이 일어나던 날에도 평소처럼 정신없이 방송을 시작했지만,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온 의문의 남자 때문에 순식간의 방송사고가 일어난다. 카일 버드웰(잭 오코넬)이라는 사내는 총을 꺼내들고, 리에게 폭탄이 장치된 조끼를 입힌 것.

     카일은 리가 지난 번 방송을 통해서 강력하게 추천했던 투기회사의 주식을 샀다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잃은 상황이었다. 그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그토록 완벽하다고 찬사를 바치던 최신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토록 거액의 손실을 낼 수 있는지, 책임 있는 대답을 듣고 싶다는 것.

 

     그렇게 시작된 인질극은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중계되면서, 마침내 사건을 일으킨 기업의 사기꾼 회장 앞까지 이르게 된다.

 

 

 

 

2. 감상평 。。。。。。。

     지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월 스트리트의 부도덕한 행태를 고발하는 영화가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처럼 광고했던 최첨단 기술이라는 것이, 사실은 폭탄 돌리기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임이 드러났으니, 이 막장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도 당연. 이 작품도 그런 노선 위에 서 있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관계자들은 모두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자신의 입으로 방송에서 이 회사의 주식은 은행 예금보다 안전하다고 목소리 높여 외쳤던 리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다 쇼였을 뿐이라고 발뺌을 한다. 엄청난 사기를 친 기업의 CEO는 사람들이 추적할 수 없는 곳으로 잠적하고, 회사의 관계자는 그저 모든 것이 알고리즘 상의 결함이었다며 프로그램에 책임을 돌린다.

 

     이런 상황에서 논리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인질범의 요구는 너무나 정상적인 것이라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이런 요구가, 과연 총을 들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요구인가? 재벌들에게는 푼돈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소시민들에게는 평생을 모든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린 마당에, 그 이유를 묻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게 아닌가.

 

     카일은 처음부터 누구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고(실은 조끼에 들어 있는 것은 폭탄이 아니라 찰흙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잃어버린 돈을 돌려내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대답’, 프로그램의 결함이라는 어쭙잖은 변명 따위가 아닌, 진짜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는 결국 전 세계로 송출되는 방송 앞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밝혀낼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었다. 거대 자산가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잔인한 진리..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그렇게 힘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했다는 말을 이끌어 내면서 역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금수저들은 자신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며, 그래도 된다고 처음부터 확고하게 믿고 있는 확신범인 경우가 많아서, 어지간한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잘못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물론 금수저가 아니라도 권력에 오랫동안 취해 있다 보면 그런 식으로 사고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총을 들고 그 일을 하는 것이 100% 칭찬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법조차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상대를 대상으로, 소시민들은 무엇으로 자신의 뜻을 표시할 수 있을까?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몇 년마다 하루씩 작동하는 체제가 아니지 않던가? 물론 규정과 절차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들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보다 더 우월한 어떤 것을 지켜내기 위한 상대적이고 도구적인 중요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나라는 카일과 같은 사람들이 굳이 총을 들고 스튜디오에 난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고, 또한 그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당하는 억울한 일의 원인이 투명하게 밝혀지는 사회일 것이다. (어디 은밀한 곳에서 자기들끼리의 거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나눠 갖는 건 조직폭력배들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원리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투명성은 천국의 주요 원리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조폭의 원리를 몰아내고, 천국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한 발씩만 앞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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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그것으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저 세상 이치나 배우고 이해하면서 사는 게 인생은 아니다.

모호함과 혼란을 극복하고

방향과 의미를 주는 가치 있는 것을 찾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C. 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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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비가 쏟아지는 밤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왔다가 자신의 카페 근처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본다. 여자를 카페로 데리고 들어와 따뜻한 차를 주면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자. 그건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였다.

 

 

      한 학교에 같이 다니는 관민록(동자건)과 소백지(임백굉). 둘은 절친이다. 비록 성적은 변변찮고, 장난도 심하지만 어두운 구석은 없는 그런 캐릭터. 관민록은 같은 반인 심예(안탁령)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심예 역시 관민록이 딱히 싫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쉽게 승낙을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심예는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수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관민록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관민록의 헌신적인 모습은 결국 심예의 마음을 움직인다. 커플 탄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국 서로 다른 대학에 들어가게 된 심예와 관민록.(소백지는 역시 관민록과 함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고, 관민록은 심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직 연애를 위해 사는 것처럼 생활한다. 하지만 아무리 관민록이 헌신적으로 자신을 쏟아 부어도, 섬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엄연한 현실. 그렇게 조금씩 심예의 마음에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관민록은 너무 어렸던 건지 이 변화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2. 감상평 。。。。。。。

     요 몇 년 새 자주 보이는 대만식 청춘 로맨스 영화다. 90년대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더 강하게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여러 소재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건데, 확실히 이즈음 3, 40대가 문화소비의 선두주자라는 걸 보여주는 현상인 듯. 덕분에 그 세대의 가장자리에 아주 살짝 걸치는 나도 꽤나 즐겁게 이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요즘 나오는 대만 청춘영화들의 공통점이라면 우선 교복차림의 등장인물들이 향수를 자아내는 소재들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는 점.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특징이 있었으니.. 학창 시절 만난 그 커플들은 한결같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못한다는 점. 첫 사랑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걸까. 어쩌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일지도.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는 그 결말이 좀 더 비참하고, 충격적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노을이 지는 바닷가라는 낭만적인 장면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이 결말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이 많이 갈리기도 하는 것 같고. 어떤 리뷰에서는 모든 게 심예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과연 그럴까.

 

 

 

      둘은 나이가 같았지만 생각하는 지점이 달랐다. 진관록이 지금 당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못지않게, 심예는 늘 미래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이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대화가 되지 않는 때가 늘어난다. 좀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얼마나 함께 갈 수 있을까? 이래서는 함께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장거리 연애에서 장거리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은 옳았다.

 

    ​진관록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그렇게 착한 남자를 차버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다반사고, 특히나 상대가 자신과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드는 상황에서는... 물론 그래도 진관록을 응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만..(왠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 ㅠㅠ)

 

     그리고 진관록의 극단적 선택은 꼭 심예 때문만은 아니지 않았나. 거기에는 (젊은이들이 자주하는 실수인) 실연의 상처에 빠져서 어머니의 심각한 상황에 제대로 관심을 두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들이 한꺼번에 닥쳐왔고, 진관록은 그 문제를 헤쳐 나가기엔 너무 약한 로맨티스트였다.

 

 

 

     ​거리보다 중요한 건 같은 꿈을 꿀 수 있느냐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랑의 감정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충분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거니까. 보다 단단하고 성숙한 사랑의 의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어릴 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젊음의 열병엔 경험이 약이다.(약인지 마취제인지..)

 

      약간은 충격적인 결말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큰일을 벌여놓은지라 감점은 어쩔 수가..) 우리와 비슷한 정서에, 앞서 말한 것 같은 향수의 정서까지 더해지니... 비슷한 영화가 다시 나와도 또 보게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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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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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한국 초기 기독교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저자가, 이 시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잘못된 통설들을 바로잡고, 당시 기독교회의 실체적 성격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책은 크게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백낙준과 민경배의 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2부에서는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에 관한 여러 오해들을, 3부에서는 초기 한국 교회들에 관한 오해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담아낸다. 4부 당시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여러 예배(송구영신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등)의 모습들의 기원과 모습에 관해, 마지가 5부에서는 당시 한국 기독교계 안에서 이뤄졌던 몇 가지 논쟁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물론 그 뿌리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우리에게 기독교는 서양에서 전래되어 온 종교이다. 최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경교(네스토리우스교)를 한반도 기독교 전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보이지만, 일단 그건 현재의 한국 교회와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흔히 교회사하면 유럽 중심의 서양교회사가 주류다. 그러나 한국에 교회가 정착한지 100년이 넘은 상황에서 여전히 서양의 이야기만 줄줄 외우고 읊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지난 100년 간 참 다양한 일들이 한국 교회 안에 있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내용들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산들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종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비신자들은 별 관심이 없고, 신자들의 경우 일종의 헌정된 역사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종종 충분한 증거 없이 미화되는 측면이 많았던 게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오류들을 증거에 입각해 교정하고,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좋은 시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13장에서 다루는 남대문 교회의 기원은 현재 남대문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1885년이 아니라 1909년이라는 주장은,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기분이 꽤나 상하는 내용일 것이다. 흔히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기도문이 실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작가의 상상물일 뿐이라는 설명(8), 사무엘 마페트 선교사의 턱에 큰 상처를 냈던 깡패 이기풍이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약간의 윤색이 있었음을(이기풍은 깡패가 아니라 조선 관원이었던 듯하고, 직접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지적하는 내용(10) 역시 김이 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에 기초해 은혜 받는 일이 어디 제대로 된 일일까?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해가는 한국 초기 기독교사의 이야기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리는 대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화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공부에 전념했었는지, 조선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그들이 교리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특히 선천 지역의 기독교 성장은 한국 기독교가 서양 선교사 중심의 타율적 조직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성장과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다만 책 초반에 실려 있는 두 초기 한국기독교회사가(백낙준, 민경배)에 대한 비판은 좀 더 상세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스승의 성과물을 비판하는 것이 거의 드문 한국의 학계 분위기에서, 이들의 초기 선구자적 연구결과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일단 너무 적고,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거기에 중심을 둔 게 아니긴 하지만, 그러면 굳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부분을 맨 앞에 배치해 둘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과 관련한 연구서가 따로 출판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일단 사관(史觀)’이 중요한 법이니까.

 

 

     무작정 미화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함으로써 후세에게 교훈과 경계를 남기는 것. 역사 서술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초기에 국한된 연구이긴 하지만, 한국 교회사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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