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그것으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저 세상 이치나 배우고 이해하면서 사는 게 인생은 아니다.

모호함과 혼란을 극복하고

방향과 의미를 주는 가치 있는 것을 찾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C. 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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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비가 쏟아지는 밤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왔다가 자신의 카페 근처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본다. 여자를 카페로 데리고 들어와 따뜻한 차를 주면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자. 그건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였다.

 

 

      한 학교에 같이 다니는 관민록(동자건)과 소백지(임백굉). 둘은 절친이다. 비록 성적은 변변찮고, 장난도 심하지만 어두운 구석은 없는 그런 캐릭터. 관민록은 같은 반인 심예(안탁령)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심예 역시 관민록이 딱히 싫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쉽게 승낙을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심예는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수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관민록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관민록의 헌신적인 모습은 결국 심예의 마음을 움직인다. 커플 탄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국 서로 다른 대학에 들어가게 된 심예와 관민록.(소백지는 역시 관민록과 함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고, 관민록은 심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직 연애를 위해 사는 것처럼 생활한다. 하지만 아무리 관민록이 헌신적으로 자신을 쏟아 부어도, 섬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엄연한 현실. 그렇게 조금씩 심예의 마음에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관민록은 너무 어렸던 건지 이 변화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2. 감상평 。。。。。。。

     요 몇 년 새 자주 보이는 대만식 청춘 로맨스 영화다. 90년대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더 강하게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여러 소재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건데, 확실히 이즈음 3, 40대가 문화소비의 선두주자라는 걸 보여주는 현상인 듯. 덕분에 그 세대의 가장자리에 아주 살짝 걸치는 나도 꽤나 즐겁게 이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요즘 나오는 대만 청춘영화들의 공통점이라면 우선 교복차림의 등장인물들이 향수를 자아내는 소재들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는 점.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특징이 있었으니.. 학창 시절 만난 그 커플들은 한결같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못한다는 점. 첫 사랑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걸까. 어쩌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일지도.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는 그 결말이 좀 더 비참하고, 충격적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노을이 지는 바닷가라는 낭만적인 장면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이 결말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이 많이 갈리기도 하는 것 같고. 어떤 리뷰에서는 모든 게 심예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과연 그럴까.

 

 

 

      둘은 나이가 같았지만 생각하는 지점이 달랐다. 진관록이 지금 당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못지않게, 심예는 늘 미래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이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대화가 되지 않는 때가 늘어난다. 좀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얼마나 함께 갈 수 있을까? 이래서는 함께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장거리 연애에서 장거리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은 옳았다.

 

    ​진관록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그렇게 착한 남자를 차버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다반사고, 특히나 상대가 자신과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드는 상황에서는... 물론 그래도 진관록을 응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만..(왠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 ㅠㅠ)

 

     그리고 진관록의 극단적 선택은 꼭 심예 때문만은 아니지 않았나. 거기에는 (젊은이들이 자주하는 실수인) 실연의 상처에 빠져서 어머니의 심각한 상황에 제대로 관심을 두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들이 한꺼번에 닥쳐왔고, 진관록은 그 문제를 헤쳐 나가기엔 너무 약한 로맨티스트였다.

 

 

 

     ​거리보다 중요한 건 같은 꿈을 꿀 수 있느냐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랑의 감정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충분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거니까. 보다 단단하고 성숙한 사랑의 의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어릴 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젊음의 열병엔 경험이 약이다.(약인지 마취제인지..)

 

      약간은 충격적인 결말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큰일을 벌여놓은지라 감점은 어쩔 수가..) 우리와 비슷한 정서에, 앞서 말한 것 같은 향수의 정서까지 더해지니... 비슷한 영화가 다시 나와도 또 보게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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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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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한국 초기 기독교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저자가, 이 시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잘못된 통설들을 바로잡고, 당시 기독교회의 실체적 성격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책은 크게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백낙준과 민경배의 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2부에서는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에 관한 여러 오해들을, 3부에서는 초기 한국 교회들에 관한 오해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담아낸다. 4부 당시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여러 예배(송구영신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등)의 모습들의 기원과 모습에 관해, 마지가 5부에서는 당시 한국 기독교계 안에서 이뤄졌던 몇 가지 논쟁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물론 그 뿌리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우리에게 기독교는 서양에서 전래되어 온 종교이다. 최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경교(네스토리우스교)를 한반도 기독교 전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보이지만, 일단 그건 현재의 한국 교회와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흔히 교회사하면 유럽 중심의 서양교회사가 주류다. 그러나 한국에 교회가 정착한지 100년이 넘은 상황에서 여전히 서양의 이야기만 줄줄 외우고 읊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지난 100년 간 참 다양한 일들이 한국 교회 안에 있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내용들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산들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종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비신자들은 별 관심이 없고, 신자들의 경우 일종의 헌정된 역사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종종 충분한 증거 없이 미화되는 측면이 많았던 게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오류들을 증거에 입각해 교정하고,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좋은 시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13장에서 다루는 남대문 교회의 기원은 현재 남대문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1885년이 아니라 1909년이라는 주장은,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기분이 꽤나 상하는 내용일 것이다. 흔히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기도문이 실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작가의 상상물일 뿐이라는 설명(8), 사무엘 마페트 선교사의 턱에 큰 상처를 냈던 깡패 이기풍이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약간의 윤색이 있었음을(이기풍은 깡패가 아니라 조선 관원이었던 듯하고, 직접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지적하는 내용(10) 역시 김이 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에 기초해 은혜 받는 일이 어디 제대로 된 일일까?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해가는 한국 초기 기독교사의 이야기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리는 대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화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공부에 전념했었는지, 조선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그들이 교리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특히 선천 지역의 기독교 성장은 한국 기독교가 서양 선교사 중심의 타율적 조직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성장과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다만 책 초반에 실려 있는 두 초기 한국기독교회사가(백낙준, 민경배)에 대한 비판은 좀 더 상세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스승의 성과물을 비판하는 것이 거의 드문 한국의 학계 분위기에서, 이들의 초기 선구자적 연구결과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일단 너무 적고,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거기에 중심을 둔 게 아니긴 하지만, 그러면 굳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부분을 맨 앞에 배치해 둘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과 관련한 연구서가 따로 출판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일단 사관(史觀)’이 중요한 법이니까.

 

 

     무작정 미화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함으로써 후세에게 교훈과 경계를 남기는 것. 역사 서술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초기에 국한된 연구이긴 하지만, 한국 교회사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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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당성의 근거라 믿고 있는

다수의 이익을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는가? 꼭 희생이 있어야만 할까?

다수가 조금 불편하게, 조금 천천히 가는 방식은 어떤가?

소수가 떠안아야 할 부담을 다수가 조금씩 나누어 가지면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소수의 희생을 발판 삼아

다수가 이익을 취해온 방식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표창원,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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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동남권 강진으로 사고가 발생한 핵발전소. 그러나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장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노후 발전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소를 만든 현장 소장은 좌천된 상황에서 책임자들은 사건을 무마하기 급급했다.

     그러는 동안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갔고, 마침내 폭발해버린 발전소. 혼란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더 큰 혼란을 막겠다며 상황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총리, 더 치명적인 사고를 막기 위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러 무너지고 있는 발전소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


 

 

 

2. 감상평 。。。。。。。

     세계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차례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해왔다. 그러나 이 나라의 다른 여러 문제들처럼,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그저 수학적 확률에 근거해 안전하다라는 말만 되뇌는 건, 핵마피아들이 에너지산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한 번쯤 끄집어 내 드러내야 했고, 그 도구로서 영화는 아주 좋은 선택이다. 물론 상업영화의 한 장르로서 재난영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영리한 판단이었고.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이 핵발전소의 문제점에 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면, 그걸로 이 영화가 가지는 의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올해 초 KBS에서 원전도시라는 이름의 2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한 적이 있다. 핵발전소를 해체하는 데 드는 비용이 한 기당 1조원이 넘고, 실제로 사고라도 나면 얼마나 큰 피해가 예상되는지(부산지역에 사고가 난다는 가정에서 피해액이 400조가 넘는단다)에 관해 아주 잘 정리한 프로그램이었다.(관심이 있다면 찾아보자) 하지만 그걸 몇 명이나 봤을까. 오히려 이런 영화가 좀 단순화된 면이 있긴 하지만 훨씬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그다지 새로운 게 발견되지는 않는다. 익숙한 재난영화의 스텝을 밟아가며 진행되어서 대략 다음 수순이 예측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대사! 그렇게 급한 상황에서 누가 영화처럼 일일이 용어풀이며, 상황해설을 길게 내뱉는단 말인가! 특히 정진영이 연기한 현장 소장의 대사에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감독이 각본을 쓰면서 설명하고 싶었던 게 있었겠지만, 좀 아쉬운 부분.

 

     ​익숙한 느낌의 진행 중에 있는 고조 장면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 말미에 김남길이 엄아 엄마 보고 싶어라고 오열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심지어 이들은 발전소 정직원도 아니고 하청협력업체 직원들로 나온다), 그들이라고 무슨 엄청난 국가적 사명감으로 일하는 거였을까.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그 험한 곳으로 들어가서 일했고, 역시 같은 목적을 위해 마지막 작업을 하러 갔던 거다. 오히려 그들이 지나치게 영웅처럼 묘사되었다면 더 아쉬웠을 뻔. 그래서 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엄마를 부르는 게 제일 와 닿는다.

    

 

 

     한 번쯤은 만들어졌어야 하는 영화인 듯.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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