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
조지 클루니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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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2차 세계대전이 후반부로 치닫는 동안, 히틀러는 유럽 각처의 미술품들을 약탈해 자신만의 미술관을 세우려는 야욕을 품는다. 나치의 계획을 막고 약탈된 예술품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전격적으로 결성된 연합군의 모뉴먼츠 맨.

 

     그런데 팀의 구성원들이 연령이 적지 않다. 제임스 그레인저 역의 맷 데이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5, 60대는 되어 보이는 듯한 얼굴. 그도 그럴 것이, 팀의 특성상 건축, 조각 등 예술 각 분야의 현직 전문가들을 동원했기 때문.(그런데 다들 계급은 일병, 상병, 잘 해야 중위..;)

 

     인류의 유산으로 남길 예술품들을 지키기 위한 특수부대의 활약을 그린 영화.

 

  

 

2. 감상평 。。。。。。。

 

     여전히 적들이 사방에서 총을 날리고 있는 시기, 인류의 예술과 기억을 지키기 위해 나선 특수부대원들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소재 자체가 지닌 특성 상, 아직 적의 점령 아래 있던 지역에 잠입하는 첩보물의 느낌을 낼 수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적을 위해 일했던 일종의 부역자인 여배우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케미스트리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좋지 않은 과거를 만회하기 위한 열정적 동참은 휴먼스토리로 꾸밀 수도 있었고, 그래 희생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을 맡은 조지 클루니는 이 중에서 영화를 어떤 식으로 이끌고 가려고 했던 건지 잘 보이지 않는다. 너무 여러 가지를 담아내려고 했다가 실패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드러나는 게 없다는 점. 전반적으로 긴장감 고조에 실패해서 밋밋하다. 심지어 대원 중 한 명이 죽는 장면도 너무 느슨한 느낌이랄까. (영화니까 좀 분위기를 고조시켜도 좋지 않았을까) 가끔 이게 다큐멘터리였나 싶을 정도니.

  

 

 

     영화 속 대원들의 활약으로 인류는 오늘날까지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예술들을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접해야 했을 테니 분명 감사해야 할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생명은 마땅히 기려져야 하고. 그러면서 영화는 짧은 인생보다 더 중요한 가치, 좀 더 길고 (어쩌면 영원이라고 불리기에 합당한) 무엇이 있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사는 것이야 말로 값어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작품들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보다 심오한 가치가 담겨 있다는 관점을 대표한다. 반명 영화 말미의 (트루먼 대통령처럼 보이는) 어둠 속 사내가 묻는 질문(작품을 지키려고 목숨을 잃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은 일종의 유물론적 질문이고. 감독이면서 그 자리에 서서 대답을 하는 역할을 맡았던 조지 클루니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인간은 그냥 배만 채워주면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한정된 인생 넘어서의 좀 더 고결한 무엇을 바라는 존재다.

  

 

 

     여전히 박정희 신화를 붙들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마치 저 북쪽의 어떤 사람처럼,) 위대한 대통령 한 명이 온 백성들을 먹여 살려 주셨는데 이제와 그 은혜도 모르고 비난을 하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 위대한 영도자에게 못 다 한 보답이라도 하듯, 그의 딸을 대통령에 올려놓고서는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국가적 재앙.

 

     보다 더 나은 가치들 자유와 평등, 인간다운 대우와 같은 을 보지 못하는 일차원적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공동체는 위기로 치닫는다. 마치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피카소의 그림을 불태우는 나치와 같은 일도 서슴지 않고 벌이니까.(이미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피곤할 지경이다)

 

     뭐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모뉴먼츠 맨이 되어 무지한 이들의 파괴로부터 소중한 것을 지키러 나가야 하는 게 인류의 숙명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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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 C.S. 루이스 연구서
콜린 듀리에즈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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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판타지 문학의 두 대가인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의 삶을 비교, 대조하는 책. 1892년 태어난 톨킨과 1898년 태어난 루이스는 거의 동년배였지만, 태생적인 차이가 있었다. 아일랜드의 개신교 중산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와는 달리, 톨킨은 일자리를 위해 남아프리카로 갔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사람은 모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고, 이후 1926년 루이스가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면서 처음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약간 낯을 가리는 감이 있었지만, 둘은 곧 공통의 관심사(영원한 진리를 담아내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쓰는 일)를 고리로 친해졌고, 루이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소모임 잉클링즈의 핵심 멤버로 십 수 년 동안 활동한다. 둘은 서로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보고 끊임없이 격려를 해주었고, 이 우정을 바탕으로 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성격도(톨킨은 꽤나 내성적이었던 모양이고, 루이스는 호인이었다), 종교도(톨킨은 가톨릭, 루이스는 성공회신자), 외모도(톨킨은 전반적으로 마른 체형이었고, 루이스는 체형이 제법 컸다) 달랐지만, 서로의 빛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는 참된 우정을 나눈 두 위대한 작가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병렬 배열한 책.

 

 

2. 감상평 。。。。。。。

     우선 책 자체가 두 사람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데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감동적인 일화를 강조(혹은 과장)하거나 하는 부분은 볼 수 없다. 비유하자면 드라마보다는 다큐 쪽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덕분에 재미는 좀 떨어져서, 나 같은 경우야 C. S. 루이스에 대한 팬심으로 이 책을 골라들었지만, 또 다른 동기로 이런 책을 볼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20세기 판타지 문학의 두 대가가 친분이 있고, 아니 그것을 넘어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였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고 두 사람이 비슷한 길을 걸으며, 비슷한 작품을 쓴 것도 아니고(만약 그랬다면 옥스퍼드파 소설같은 게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다른 관점과 시야를 가진 소설들을 써 낸 것을 보면 둘 다 자존심은 꽤나 셌다. 이쪽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져볼 만도 한 책.

 

 

      개인적으로 루이스의 소설들에 대한 톨킨의 비판(지나치게 알레고리적이라는)에는 꽤 공감이 간다. “나니아 연대기그 가공할 힘같은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좀 세다 싶은 장면들이 있으니까. 같은 것을 말하려 하지만, 좀 더 은밀하게 위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톨킨으로서는 좀 불만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건 두 사람의 글쓰는 목적의 차이에서도 일부 기인하는 문제가 아닌가도 싶다. 톨킨의 경우 거의 평생 반지의 제왕이라는 한 작품에 매달리면서, 단순히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성인을 위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의식으로 썼지만, 루이스는 좀 더 실용적인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경향이 강했고, 덕분에 훨씬 더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나니아 연대기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 쓴 글이니까.(물론 성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책을 보며 비단 두 사람을 넘어, 그 둘이 함께 참여했던 잉클링즈같은 모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멋지지 않은가.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친밀한 모임. 매주 모여 자신이 써 온 작품을 낭독하고, 서로 애정 어린 비평을 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동료들. 이런 이들이 있었기에 반지의 제왕같은 대작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다. (슬슬 뭔가를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나에게도 이런 모임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위대한 문학적 영감은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불리는 애정보다는, 사랑의 또 다른 종류로서의 우정으로부터 더 크게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루이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랑은 서로에 집중하며 탐닉하기에 바쁘지만, 우정은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거니까. 하루아침에 끝내버릴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면, 친구란 그 일을 제대로 마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단순히 두 사람에 관한 일화를 배열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신중하게 연구해 일종의 해석들도 덧붙이는데, 루이스나 톨킨이라는 인물연구를 위해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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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산업은 몸을 성적 대상으로 만들고,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몸을 착취한다.

소비와 섹시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성적인 매력을 근거로 하는 자아는 소비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소비문화는 미를 점점 더 자극과 흥분의 도식에 종속시킨다.

미의 이상은 소비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의 추가적 가치는 모조리 제거된다.

미는 매끄러워지고, 소비에 종속된다.


-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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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전규환 감독, 조재현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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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정씨라고 불리는 주인공(조재현)은 척추장애인(일명 꼽추)이다. 음침해 보이는, 아마도 공영 영안소의 한 귀퉁이에 살며 일하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겨우 몇 사람만 아는 척을 해 줄 뿐. 그 중 한 명이 배다른 형제인 동배(박지아)인데, 그는 타고난 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깊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두 사람은, 마침내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2. 감상평 。。。。。。。

 

     ​영화에는 사는 것 자체가 괴로움인 사람들이, 아니 그런 사람들만 등장하는 것 같다. 낡은 영안실이라는 음침한 배경에, 하늘은 늘 흐리고, 단 한 사람도 명랑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우울한 기운.

 

     ​우울함은 생각보다 무거워서, 그것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든다. 그들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 인물들은 좀처럼 뛰지 않는다. 느릿느릿 걷거나 움직일 뿐. 어쩌면 영화 제목인 무게는 그런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달리고 싶었다. 정씨의 상상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벌판을 달리는 자전거 장면은 이런 심리를 반영한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햇살을 맞으며 시원하게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는 그럴 수 없다. 아마도 피와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을, 그만의 공간인 어두침침한 시설 안을 제외하면.

 


      영화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사건도 별다른 게 없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리 넓지 않은 시체안치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배우들도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마치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모든 것이시간까지도 느려진 것처럼.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고립된 상황에서,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기 쉬운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어지간히 무거운데, 그걸 함께 들어줄 사람마저 없다면 시간이 갈수록 (사람은 늙는다) 점점 더 무거워지지 않겠는가.

 

 

     ​크리스마스 저녁에 보기엔, 좀 지나치게 우울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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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혁명적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살벌한 적자생존의 세상 속에서

소수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통 교회를 타락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하나님 나라를 세속적 실재로 변질시켜 그 나라를 욕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인된, 전통적인, 다수라는 꼬리표를 단 기독교다.


- 짐 월리스, 부러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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