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천국 가는 法 -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불평등에 관한 논쟁
폴 크루그먼 외 지음, 양상모 옮김 / 오래된생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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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한 유명한 토론회(멍크 디베이트)에서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책으로 엮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전 그리스 총리인 파판드레우는 과세찬성 쪽에, 공화당 출신의 전 미국 하원의장인 뉴트 깅리치, 그리고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인물이었던 아서 래퍼가 반대쪽에 섰다.


     폴 크루그먼은 증세를 통해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돈으로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해야 하며, 부유층 증세정책이 경제에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파판드레우의 경우는 도덕이나 윤리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공정, 정의, 신뢰 같은 원칙을 훼손시킨다는 것.


     이에 반해 깅리치는 기본적으로 세금을 국가에서 개인의 부를 뺏어가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고집한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늘리려고 하면 누가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겠느냐는 단순한 논리. 래퍼는 역사적으로 감세정책을 펼 때 경제가 성장했다는 논리를 반복하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2. 감상평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이 좀 든다. 폴 크루그먼이나 깅리치 같은 유명한 논객들의 토론이라지만,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운 주장은 보이지 않는데다가,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도 충분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형식의 제한을 어느 정도 받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고 의견도 꽤나 반복되는 느낌이라서, 짧은 책이 더 짧게 느껴진다.


     (부유층 증세) 반대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세금을 올리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크루그먼의 주장처럼 큰 영향을 받지 않는가? 사실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논의가 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명목세율을 높이는 것보다는 실효세율을 높이는 쪽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아서 래퍼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그는 워렌 버핏의 예를 제시하는데, 17.4%의 세율에 따라 700만 달러의 세금을 낸 그는 세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의 소득의 대부분은 자본이득이었고, 이 부분은 최소 100억 달러가 증가했다는 것. 그러나 이 부분은 과세가 되지 않았고, 이것이 문제라는 것. 래퍼는 세법을 고쳐 세율은 낮추되 모든 종류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면 (그리고 각종 면세해택을 줄인다면) 더 많은 세금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명목세율보다는 실질세율을 높이자는 주장인데, 결과적으로 더 많은 세금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라면 이 역시 생각해 볼 부분은 아닐까? 증세론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까 살짝 궁금했는데, 책에서는 바로 이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않고 넘어간다. 전반적으로 서로의 칼이 맞부딪히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대련을 보는 듯.

  

 

      다시 선거철이 가까워지면서, 이 문제도 크게 대두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여전히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색깔론, 진영공세로 점철시킬 악성 정치인들과 그 근처를 기웃거리는 자칭 논객들인데... 뭐 그런 얼토당토 않은 인간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니, 그런 이들이 돌아다니는 거겠지.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이다.


     제목 하나는 잘 지었다. 나도 제목 덕분에 이 책을 뽑아 들었으니까. 하지만 제목을 충분히 설명해 내지는 못했던 듯하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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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기꺼이 용서한다.

리더의 잘못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은

절대 좋아하지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다.

리더라면 비록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늘 솔직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할 수 있다.

 

- 린지 폴락, 난생처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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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본 책과 영화.

제대로 읽은 책이 별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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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무려 스물세 개의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그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은 플래처 박사(베티 버클리) 뿐이었지만, 그나마 그녀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케빈의 안에 있는 변태스럽고 폭력적인 자아인 데니스가 여성 자아인 페트리샤, 그리고 9세 소년의 자아인 헤드윅 등과 의기투합해 케빈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폭주가 시작된다. 그는 쇼핑몰에서 세 명의 소녀를 납치해 감금해 놓고 괴롭히기 시작했고, 나머지 인격들은 플래처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데니스에 의해 막히고 만다.

     ‘데니스 패거리가 나머지 인격들을 억압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비스트라는 존재를 알게 된 플래처 박사.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짐작한 플래처 박사는 비스트가 그저 폭력적 인격들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지하 깊은 곳에서 패거리들의 음모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 파국이 일어나고..


 

 

2. 감상평 。。。。。。。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 계속해서 변하는 다양한 인격들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특히 후반으로 가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극도로 달라지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의 모습은 그냥 멍하니 쳐다보게 만든다.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제임스 맥어보이라는 인물 자체였으니까.

 

     ​영화가 가진 나머지 하나의 매력은 다중인격이라는 소재에서 나오는데, 이 소재를 표현해 내는데도 맥어보이의 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까 뭐 말 다했다.(특히 구두에 롱스커트를 입고 나오는 장면은 압권.)

     물론 단순히 연기자만의 힘만 보이는 건 아니다. 감독은 자주 인물들의 얼굴을 매우 가까이서 비추는데, 그럴 때마다 화면은 불안감으로 가득 찬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상황과 캐릭터, 그리고 암시로 이런 긴장감을 불러올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주인공의 다중인격과 세 소녀의 납치, 감금이 아주 매끄럽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데니스 패거리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 설정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꼭 이런 식으로 그려져야 했을까? 힘없는 소녀들을 납치한 이유도 별 공감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들을 괴롭히는 모습은 끝까지 좀 불편했다.

     여기에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이 부분이 좀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고통에 대한 뜬금없는 찬사부터 재빠른 포기와 수긍이나, 어렸을 때 읽었던 괴기소설에나 나올법한 열린 마감도 그렇고. 이건 뭐 나쁜 놈이 처벌받지 않고 도망간다는 내용이 너무 현실적인 결론이 되어버린 시대인지라.. 이쪽이 너무 익숙해 보인다. (난 권선징악적 결론을 원한다고!)

 

      소재 자체로 충분히 충격적이었던 영화

.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이런 다중인격자들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이미 보고 있다. 청문회에 나와서는 자기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거짓말로 끝까지 버티는 이들, 특히 자신은 단 한 번도 부정한 재물을 모으거나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는 어떤 분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 사람의 이 인격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근데 정말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인격 분열을 가진 양반을 그 자리에 계속 놔두는 건 위험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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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이같이 되어야 한다.

대개의 아이들은 일상의 경험들을 싫증내지 않는다.

톨킨과 루이스는 아이들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사물을 보는 참된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들도 이야기의 세계에 잠김으로써

세계에 대한 참신한 느낌과 경이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콜린 듀리에즈, 루이스와 톨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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