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
2029년,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 능력을 잃어가는 로건은 멕시코 국경 인근에서 리무진 기사로 일하면서 이제는 퇴행성 질병(아마도 치매?)에 걸린 자비에와 함께 살고 있다. 발작이 시작되면 주변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마비(와 질식)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자비에를 위해 돈을 모아 배를 사려고 하는 로건에게, 한 여자가 거액의 사례를 약속하면서 그녀가 데리고 있는 어린 아이(로라)를 노스다코타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다.
고민 끝에 다시 찾아간 장소에서 여자는 이미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죽어버렸고, 얼떨결에 로라만 데리고 돌아온 로건. 그러나 악당들은 이미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로라와 함께 여행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로건을 끊임없이 따라오는 놈들. 그들은 무기화 할 수 있는 뮤턴트들을 실험실에서 태어나게 했고, 그 중 하나가 로라였던 것. 로라의 능력은 로건의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여행의 끝에서 만나게 된 로건의 마지막..

2. 감상평 。。。。。。。
엑스맨 시리즈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제법 극장을 들락거리다 보니 여러 편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뭐 이쪽 계보를 꿰고 있거나, 소위 ‘마블 세계관’ 같은 걸 이해하려고 애쓴 적이 없기에, 그냥 나올 때마다 전에 봤던 것과 대충 이어지는구나 하는 수준이다. 사실 이 영화도 시간대에 맞춰서 고른 거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여운이 짙게 남는다. 슈퍼 영웅도 늙어가고, 힘이 약해지고, 퇴행성 질병을 앓는다라... 이런 설정을 갖는 영화가 있었던가? 영화는 그렇게 ‘노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물론 영웅(적인) 주인공의 마지막을 그리는 작품들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원인이 이렇게 ‘늙음’에 있다면 그건 또 다른 느낌이다. 갑작스런 죽음은 (여러 가지 의미로) 충격을 주지만, 이쪽은 애잔함, 안타까움의 정서가 훨씬 더 강하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여느 휴머니즘을 담은 감동적인 장르와도 비슷해 보인다. 물론 기본적으로 액션 영화답게, 쉴 새 없는 육탄전이 영화 내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액션의 그림이 하드코어 수준인지라, 내 앞에 앉아 있던 관객 두 명은 영화 시작부터 일찌감치 일어나 나가버리더라.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는 액션이라기보다는 폭력이 가득 차 있었다고 본다.
영화가 성인들만 관람할 수 있다는 등급을 받은 원인은 이런 폭력성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인, 그러니까 특정한 나이가 넘으면 이렇게 과도한 폭력에 노출되어도 상관없는 걸까. 감독은 이런 폭력을 앞서 말했던 정서적 코드로 덮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쉽게 덮이지 않는다.

영화는 죽어가는 어른과 위기에 빠진 아이를 한 번에 담아냄으로써,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관계에도 주목하게 만든다. 아무리 튼튼하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삶이란 건 언젠가 끝이 난다. 그러면 그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영화 속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로건은 로라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데 남은 생을 바친다. 그의 노력은 그렇게 뮤턴트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새로운 뮤턴트 세대를 이어가는데 일조한다.(막판에는 아주 유치원을 차린 듯.) 이게 기성세대의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
하지만 현실 속 기성세대, 기득권층들은 이 책무를 충분히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삶의 여러 요소들을 한 없이 포기해가고 있고, 어린 아이들이 수백 명씩 죽어가고(비단 어느 한 사건만이 아니다), 수 백 만의 사람들이 못 살겠다고 나서는데도,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며 언제까지나 인정받는 자리에, 중심에 서려고 버둥거린다. 그런 공동체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태어나는 모습과 상황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멋지게 퇴장하는 것만큼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로건의 멋진 퇴장을 응원하면서, 현실 속에서도 멋진 어른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