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당신도 건설적인 비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전혀 없는 동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건설적 비판을 몰상식한 일로 이해한다.

이제 당신은 그 원인을 안다.

그들은 과도한 요구에 눌려 직관을 쓸 수 없기에

항상 정말 잘했네! 훌륭해! 계속 이렇게 해!”라는 반영만 준

부모의 손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들이 성인답게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 미하엘 빈터호프,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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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1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가 긍정적인 덕담이 많이 나오고, 자주 듣게 되는 공간입니다. 그렇다 보니 비판하거나 비판 받는 것을 피하게 됩니다.

qualia 2017-04-01 22:45   좋아요 3 | URL
비판은 어차피 “적을 만드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어요. (비판의 궁극적 본의는 그 반대입니다만요.) 해서 내가 상대방의 적이 될까봐, 또 상대방이 나를 적으로 받아들일까봐 감히 비판을 못합니다. 남들한테 미움받게 될까봐 되게 겁냅니다. 그러니 미워하고 싶어도(비판하고 싶어도) 진짜 미워하지는 못해요. 그냥 짜증내고 피곤해하고 피할 뿐이죠. 적을 만듭시다. 그러면 나중에 친구를 얻게 됩니다.

노란가방 2017-04-01 22:50   좋아요 2 | URL
알라딘 서재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그런 면이 있지요..
점점 조금만 심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나 사람도 못 참아 하고...

서로 조언, 비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란가방 2017-04-01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qualia 미움받을까봐 미워하지도 못한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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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쓰나미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그 지역에 있었던 핵발전소가 파괴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되었고, 인근 주민들은 모두 이주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어찌 피했는지 모르나, 그 곳에 살던 수많은 동물들은 별다른 조치도 없이 그대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지역의 동물들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들과 함께 버려진 가축들과 반려동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구조하는 일을 하며, 그들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사진들을 중심으로 엮은 에세이다.

 

 

 

2. 감상평 。。。。。。。

     표지에 실려 있는 고양이 두 마리의 표정 때문에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들었다. 바로 앞에 놓인 고양이 먹이 캔에 입을 가까이 대면서도 눈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작가를 경계하듯 바라보는 모습이, 이 즈음 그 지역에 남은 동물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반려견, 반려묘로 살아왔기에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사실 지역 전체가 폐허가 되다보니 나가도 별다른 것을 찾기 어렵다) 굶주리는 녀석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지만, 또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집에 살던 가족 모두가 떠난 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집을 지키며 굶주림과 싸우고 있는 반려견들, 축사에 갇혀 동료의 시체들 사이에서 버텨내고 있는 소와 돼지, 말들..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각종 질명들은 방치된 채 폐허가 된 거리와 마을들 사이를 떠돌고 있는 녀석들을 괴롭힌다.

     책은 주로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장 한 장에 오랫동안 눈이 머문다. 오랫동안 사람의 돌봄을 받지 못했는데도, 지나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눈을 돌리지 못하는 강아지의 사진을 보고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온몸에 상처가 나면서도 야생화된 개들의 침입으로부터 집을 지켜내는 녀석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비쩍 마른 고양이들은 또 어떻고...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농수로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죽어버린 젖소들의 이야기는 비참하기까지 하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결국 사람의 죄다. 사람 때문에 온 자연과 동물과 식물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세상, 우리는 이 구절의 실제 예를 후쿠시마에서, 서울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 어디에서라도 쉽게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동물성 전염병을 이유로 멀쩡한 가축들까지도 대량으로 살육하는 일이 거의 매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다들 매뉴얼에 따라서, 또 사정이 있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대량살육이, 그것을 일선에서 담당하는 사람들과 그 소식을 반복적으로 듣는 사람들에게-그들의 마음과 성품에-정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걸까?


      어쩌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이런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학대가 점점 서로를 대하는 사람들의 심성마저 망가뜨리고 메마르게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C. S. 루이스는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를 정당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자신도 동물의 수준으로 내려놓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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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4-01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간디의 명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다른 회원님의 서재에서 만난 책이었는데, 다시 봐도 마음이 짠한 책이네요.

노란가방 2017-04-01 17:28   좋아요 0 | URL
네 마음이 참.... 안타까운 책이에요.

2017-04-01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2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2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2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공간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지만,

품격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서로 보완한다.

-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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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밤만 되면 교도소 밖으로 나와 돈이 될 만한 사건들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당. 그들의 맨 위에는 교도소의 제왕 정익호(한석규)가 있었다. 막강한 카리스마로 교도소장까지도 마음대로 주무르는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깡으로 뭉친 전직 경찰 송유건(김래원)이 같은 교도소로 들어오고, 곧 그의 능력을 인정한 익호의 패거리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모든 이들을 제거해 버리고 무섭게 앞으로 나가는 익호. 그런 그를 막아선 것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또 다른 주연인) 유건이었다. 모두가 모르는 그의 비밀스러운 정체..

 

 

 

2. 감상평 。。。。。。。

     ‘2017년 가장 짜릿한 범죄 액션이라는 카피를 내세워 홍보하고 있는 영화. 이 문구가 흥미롭다. 어떤 게 짜릿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하다는 걸까? 극 중 정익호(한석규)가 저지르는 범죄가 짜릿하다는 말인 건지, 아니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 짜릿하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만든 이 영화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기뻐하라는 걸까.

     영화 전반에 걸쳐서 폭력의 과잉이 가장 눈에 띤다.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쉴 새 없이 때리고,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내용이 별로 없다. 이쯤 되면 폭력에서 무슨 미학 같은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건가 싶은데, 그 딴 게 있기는 한 건가?

 

 

 

      이런 종류의 영화는 결국 어떻게 초반 등장한 범죄자가 응징을 당할 것인가이고, 이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리고 실감나게 묘사되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익호의 설계 못지않게, 바로 이 응징의 설계 또한 흥미의 포인트였다. 그런데 영화는 이 부분에서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엔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결말이..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가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 사건을 일으킨다는 설정 자체는 제이미 폭스 주연의 모범시민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다만 그쪽은 주인공이 겪은 사건으로 인해 그의 행동에 묘한 몰입/동조가 되는 면이 있어서 색다른 흥미를 주었다면, 이 영화 프리즌은 처음부터 선악 캐릭터가 너무 분명해 주인공에게 쉽사리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소재를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큰 그림을 놓쳐버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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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소련과 미국이 우주경쟁을 하던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전산원으로 일하던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있었다.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메리 잭슨(자넬 모네)가 그들. 전산원이란, 아직 컴퓨터에 의한 계산이 일반화되기 이전 계산기를 들고 이를 수작업으로 하던 이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캐서린에게 곧 기회가 주어진다. 새로운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 필요한 인원을 찾던 중 그녀가 합류하게 된 것. 유색인 전산실의 리더였던 도로시는 얼마 후 IBM의 컴퓨터가 들어와 전산원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새로운 도구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익히기 시작했고, 메리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유색인종의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에 대항해 소송을 벌였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그 시대, 온갖 편견과 차별을 딛고 조금씩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던 그녀들의 이야기.

 

 

 

2. 감상평 。。。。。。。

 

     ​여전히 인종차별이라는 미개한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던 미국의 60년대. 공공도서관에서조차 흑인들은 백인들과 다른 문으로 들어가 다른 서가를 이용해야만 했고, 버스에 타서는 뒷자리로 가야했으며(앞 쪽에 자리가 남아도 앉을 수 없었다), 학교 입학에 제한을 받았고, 심지어 화장실도 구분되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당시 거리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인권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그리고 그런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테러와 공격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차별을 극복해 낸 영웅적 인물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슨 전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백인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나사 안에서, 순수하게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인정받았다.

 

 

 

 

      감독은 자극적인 영상이나 전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들이 겪었던 억압의 무거움을 잘 표현해 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주인공이 성취한 업적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오죽하면 미국이 로켓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모습을 긴장하며 지켜보았을까. 심지어 그건 인류애도, 순수한 과학적 발전도 아닌,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프로젝트였는데도 말이다.

      당시 미국의 로켓 개발은 다분히 과장된 정치적 수사의 결과물이었다. 소련이 우주인을 배출했다는 소식은 바다 건너 미국에는 당장에 인공위성으로 미국을 샅샅이 감시하거나, 우주에서 핵을 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시켰는데, 당시의 기술수준을 보면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책상 아래로 대피하는 공습대비 훈련까지 시킬 정도로 당시는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기서 오늘날 사드 배치 옹호론의 향기가 느껴지는 건...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특별한 것도 아닌)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영화의 감동으로 그냥 넘어가기엔 무거운 주제다. 인종에 따라, 직업에 따라, 성별이나 신념, 종교에 따라서 차별받는 문화는 틀렸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구별을 인위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식의 전체주의로 치닫자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이런 차별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식으로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대개 도덕적으로나 실력으로도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건데.. 자기들은 극구 사실을 부인하니.. 언젠가 이런 영화가 정말 과거 한 때의 역사로만 남게 되는 날이 올까.

 

      올해 봤던 영화들 중에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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