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
배경은 가까운 미래. 인간의 몸 대부분을 의체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 주인공 메이저(스칼렛 요한슨)는 테러로 큰 상처를 입고, 뇌만 새로운 육체에 이식되어 깨어난다. 정부기관인 섹션9의 일원으로,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한카 로보틱스’라는 기업에 잇따라 공격을 가하고 있는 ‘쿠제’라는 인물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자꾸만 떠오르는 이상한 이미지들. 그녀를 살려낸 박사는 단순한 ‘오작동’이라고 말하며 기억에서 이미지를 삭제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대한 ‘기억’인 것만 같다. 그리고 쿠제와의 만남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당연히) 그녀가 이제까지 들어왔던 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2. 감상평 。。。。。。。
음.. 이 영화는 소재가 가진 다양한 철학적 함의와 영화 자체의 진행에 대해 별도로 평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어디인가 하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고유함은 무엇에 기초하는가로 이어진다. 영화처럼 인간의 뇌를 그대로 로봇에 이식해서,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억과 정서, 감정을 그대로 지닌 존재가 탄생한다면, 그 존재는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사실 이런 질문은 영화사에서 일찌감치 나왔던 것들이고, (내가 기억하는) 영화로서는 아주 어렸을 때 봤던 로보캅 시리즈의 첫 편에서도 강력하게 물었던 내용이다.
이런 영화들의 주인공은 대부분 자신이 인간인지 로봇인지를 고민하는데, (주인공 버프 때문인지) 대개는 그들도 인간임이 분명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린다. (사실 그들은 대개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우기에, 이 점을 부정하는 게 그들의 행위도 부정하는 것처럼 되어버리니..) 여기서 자연스럽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떠오른다.
영화 속에 ‘기억이 아닌 행동’이 우리를 정의한다는 식의 대사가 등장한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 채로 임무를 수행하는 메이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일종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 때 해 주는 말이다. 언뜻 굉장히 단순명쾌한 대답처럼 보이는데, 생각해 보면 사실 별로 해결된 건 없다. 네가 인간처럼 행동하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 걸까?(예컨대 식물인간 상태인 존재는?) 또, ‘인간처럼’은 어떻게 사는 걸 가리키는 걸까.
사실 영화는 행동보다는 기억,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험에 대한 기억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에 의해 길러지고, 누구와 친구와 되고, 어떤 일을 함께 했는지를 비로소 떠올렸을 때, 주인공 메이저는 비로소 고민을 끝내고 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었다. ‘기억’이란, ‘나’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영화의 부제인 ‘고스트 인 더 쉘’의 ‘고스트’는 우리가 잘 아는 말로 번역하면 ‘영(혹은 ‘영혼’, 靈)’이다. C. S. 루이스의 명작 판타지 소설인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주인공이 만난 천국의 존재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Ghost’이다. 요샌 이 단어가 ‘유령’ 같은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단어로 전락해버렸지만, 영문학 교수였던 루이스가 사용했던 그 단어는 좀 더 단단하고, 실체적인, 하지만 비육체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고스트 인 더 쉘’, 즉 ‘껍데기를 입고 있는 영혼’이라고 칭하면서 역시 (좀 더) 중요한 건 영(혼)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결론을 내릴 것을 예고하고 있고, 역시 그랬다. 다만 영화 속의 고민은 딱 여기까지고, 나머지는 주인공인 스칼렛 요한슨의 전신 타이즈 몸매와 액션 같은 볼꺼리로만 채워져 있다. 다만 볼꺼리라도 좀 더 새로운 뭔가가 아니라,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게 아쉬운 부분.

중요한 건 영이기에 육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영화 속에서 인체는 수없이 절단되고 파편화되어 사방에 널려 있고, 주인공 역시 부상을 입으면 얼마든지 몸 정도는 교체하고 금방 일어난다. 약한 육체를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그 육체가 더욱 천대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뭐든지 흔해지면 귀하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경제학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걸까.(더 많이 술을 마시기 위해 인공 간을 이식하는 시술을 했다는 영화 속 한 인물의 대사만 봐도...)
우린 기술의 무질서한 발전이 가져올 철학적인 무질서에 대처할 준비가 되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갔는데, 앞에 낭떠러지가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