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
아프리카의 최빈국 와칸다 왕국. 하지만 그 왕국엔 비밀이 있었으니.. 비브라늄이라는 강도도 높고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광물이 잔뜩 매장되어 있었던 것. 오래 전부터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놀라운 수준의 과학문명을 건설했지만, 외부세계와 차단한 채 최빈국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런 앙큼한..)
시리즈 전편의 테러로 유엔 연설 중이었던 와칸다의 왕이 사망하면서 그 아들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동시에 검은 영웅 블랙 팬서의 자리도 이어받게 된다. 비브라늄을 훔쳐낸 범죄자를 쫓다가 부산까지 왔다 간 와찰라의 뒤를 따라, 그의 왕위를 위협하는 경쟁자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나타난다.
와칸다의 왕위를 두고 벌이는 양측의 대립.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블랙 팬서와 그의 나라 이야기. (아래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일부 담겨 있으니 주의)

2. 감상평 。。。。。。。
우리나라에서 꽤나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마블사의 영웅 시리즈의 최신판. 경쟁사라 할 수 있는 DC가 요새 좀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전하고 있다면, 마블 쪽은 전반적으로 가벼운 터치에, 시시껄렁한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캐릭터들이 포진되어 있는 오락성 강한 작품들을 내놓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오히려 DC 쪽에 가까운 분위기랄까 뭐 그런 게 느껴진다. 사실 영화 속에 다른 히어로들도 나오지 않아서 그냥 배트맨, 슈퍼맨과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와칸다의 새 왕이자 블랙 팬서가 된 티찰라는 영화 내내 혼자 고민에 빠져 있다. 그 주요 원인은 티찰라의 아버지이자 선왕이 급진적 흑인해방운동에 빠져 비브라늄을 빼돌려 흑인들을 무장시키려고 했던 동생을 죽이고, 그의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남겨졌던 어린 아이가 자라서, 이제 티찰라의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돌아오게 된 것. 분명 왕위의 경쟁자이지만, 쉽게 그를 내치지 못하는 건 이런 충격과 그에 따른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티찰라가 충격을 받은 포인트가, 살인(혹은 처형)이 아니라 아동유기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삼촌을 죽인 행위가 아닌 사촌을 버려두고 온 부분을 따지고 항의하며, 자신의 책임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아프리카적 사고라기보다는 미국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헛웃음이 났다.(물론 아동유기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식 개인주의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히 아동을 방치한 것은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성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아프리카-아시아적 사고에서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희생은 어느 정도 감수되어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극중 와칸다 왕국은 전형적인 아프리카 국가이고, 티찰라 역시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하는 고민은 미국인으로서 하는 고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어색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겉모습과 속 내용 사이의 괴리는 비단 이런 부분만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흥미 포인트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정말 영화 속 부산 시장의 모습은 정말 꼭 우리나라의 어느 동네의 모습인 것처럼 실감이 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촬영한 건 아니고, 세트였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전국 그 어느 지방 못지않게 농익은 사투리를 쓰는 게 어울릴 것 같은 그 장면에서, 티찰라 일행을 만난 상인 아주머니의 대사는 우리말을 겨우 읽어내는 외국인의 발음이었다는 점은 얼마나 아쉬운가. 교포 2, 3세나 배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난 그 장면에서 얼굴은 사람 같은데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만 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공들여 쌓은 세트가 대사처리로 무너진 달까.

인종차별, 흑인해방이라는 의미를 영화 속에 넣으려고 했던 것 자체는 좋다. 다만 그게 적절한 설정 속에서 나오는 의미였는가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블랙 팬서의 첫 단독 영화에서, 티찰라의 성장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면, 배경인 아프리카의 정서를 좀 더 연구해야 했지 않을까.
난 아직도 티찰라가 정당한 대결에서 패배하고도 승복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무장봉기를 통해 왕위를 빼앗은 이야기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가 싶다. 산 속에 사는 늑대부족의 족장에게 찾아서가 티찰라의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외부자에게 왕위가 빼앗겼으니 차라리 네가 가서 왕이 되어라’. 이건 외부인 혐오는 아닐까? 심지어 그 ‘외부인’의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와칸다 사람인데. (티찰라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다 발생한 논리적 모순이다)
여러 모로 부족한 설정이 눈에 많이 띄었던 영화. 그냥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게 이 시리즈엔 더 잘 어울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