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아내는 내 등에 붙은 파리를 보며 파리는 업어주고 자기는 업어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다. 연애시절엔 아내를 많이도 업어주었다. 그때는 아내도 지금처럼 무겁지 않았다. 삶이 힘겨운 만큼 아내도 조금씩 무거워지며 나는 등에서 자꾸 아내를 내려놓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 주용일,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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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연이은 가뭄에 모두가 어쩔 줄 모르던 조선시대.(영화의 첫 장면에 영조시대라는 배경이 나온다) 나라에 음양의 조화가 깨져서 그런 것이라며 혼기가 찬 사람들을 결혼시켜야 한다고, 왕실에서 모범을 보이도록 아직 미혼인 송화옹주(심은경)부터 시집을 보내자고 주청하는 신하들. 왕은 전격적으로 간택을 시행해 부마감을 찾기로 한다.

 

     땅과 관직까지 내건 간택에 몰려든 사람들.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결혼 절차에 불만이 있었던 옹주. 후보자들의 사주를 적은 단자를 훔쳐 직접 얼굴을 확인하러 나서고, 졸지에 맡고 있던 사주를 도난당한 관리 서도윤(이승기)은 그런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예측 불가능한 옹주가 벌이는 남편감 찾기 대소동.

 

 

 

 

2. 감상평 。。。。 。。。

 

     영화의 설정을 조선시대로, 그것도 왕실의 결혼으로 잡으면서 확실히 시각적인 면에 있어서는 즐거움을 준다. 왕실 예복들을 비롯해 조선시대 관복의 아름다운 색감 등은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난다. 특히 관복 부분은 그냥 빨갛고 파랗고 하는 수준을 넘어, 은은한 핑크빛, 옥색이 인상적이다. 빨간 색도 좀 더 깊이가 있는 느낌이랄까. 영화 마지막 느리게 흩날리는 꽃잎신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지만 나름 그림 같은 장면이었고.

 

     ​하지만 이런 시각적인 부분을 넘어서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허술함이 군데군데 보인다. 왕실의 일원이 신분을 감추고 평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이야 왕자와 거지에서부터 꽤나 자주 사용되었던 소재다. 다만 마크 트웨인의 작품은 그런 역전된 상황 속에서 사회에 대한 비평적 요소와 인간의 깊은 정서를 더하면서 감동을 주었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역전과 같은 개념은 보이지 않고, 그냥 변장놀이 정도로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뿐. 사실 이건 역학 3부작이라는 콘셉트의 전작이었던 관상과 비교해도 훨씬 가볍다.

 

     애초의 접근 태도가 다르니 분위기가 다른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강조점, 무게감 수준이 아니라 기본적인 설정을 구축하는 데도 허점이 보이니 문제. 예를 들면 부마가 되기 위해 궁합결과를 조작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걸 담당하는 인물들에 대한 신변보호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쉽게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면 거기에 그렇게 가중치를 높이 둘 이유가 있는 건지.

 

'

 

 

     영화 속 옹주는 무슨 자유연애의 선구자처럼 그려진다. 사랑 말고 중요한 게 뭐가 있느냐고 왕 앞에서 항변하고, 그걸 위해서 용기를 내 밖으로 나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런 외침이 공감을 얻으려면 그 과정에서의 희생이 필수다. 개인적으론 옹주의 항변 앞에 왕이 했던 말이 더 인상적이었다. 왕과 왕실 사람들이 수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하느냐는

 

     사실 그녀가 궁 밖에서 벌인 소동의 배경엔 왕실사람이라는 출신과 (아마도) 재물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밖에 나와서도 그녀는 자신을 윗전으로 대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까.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어려움들보단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고는, 이렇게 평생을 떠받들어지며 살아온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랑 말고도(물론 여기에선 연애로서의 사랑이다) 중요한 가치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용기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용기인지 객기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냥 아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딱히 기억에 남을 건 없을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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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에 본 책과 영화


영화 몇 편 본 걸 빼면 딱히 본 게 없는..

3월엔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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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아프리카의 최빈국 와칸다 왕국. 하지만 그 왕국엔 비밀이 있었으니.. 비브라늄이라는 강도도 높고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광물이 잔뜩 매장되어 있었던 것. 오래 전부터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놀라운 수준의 과학문명을 건설했지만, 외부세계와 차단한 채 최빈국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런 앙큼한..)

 

      시리즈 전편의 테러로 유엔 연설 중이었던 와칸다의 왕이 사망하면서 그 아들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동시에 검은 영웅 블랙 팬서의 자리도 이어받게 된다. 비브라늄을 훔쳐낸 범죄자를 쫓다가 부산까지 왔다 간 와찰라의 뒤를 따라, 그의 왕위를 위협하는 경쟁자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나타난다.

 

     와칸다의 왕위를 두고 벌이는 양측의 대립.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블랙 팬서와 그의 나라 이야기. (아래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일부 담겨 있으니 주의)

 

 

 

 

2. 감상평 。。。。。。。

 

     우리나라에서 꽤나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마블사의 영웅 시리즈의 최신판. 경쟁사라 할 수 있는 DC가 요새 좀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전하고 있다면, 마블 쪽은 전반적으로 가벼운 터치에, 시시껄렁한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캐릭터들이 포진되어 있는 오락성 강한 작품들을 내놓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오히려 DC 쪽에 가까운 분위기랄까 뭐 그런 게 느껴진다. 사실 영화 속에 다른 히어로들도 나오지 않아서 그냥 배트맨, 슈퍼맨과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와칸다의 새 왕이자 블랙 팬서가 된 티찰라는 영화 내내 혼자 고민에 빠져 있다. 그 주요 원인은 티찰라의 아버지이자 선왕이 급진적 흑인해방운동에 빠져 비브라늄을 빼돌려 흑인들을 무장시키려고 했던 동생을 죽이고, 그의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남겨졌던 어린 아이가 자라서, 이제 티찰라의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돌아오게 된 것. 분명 왕위의 경쟁자이지만, 쉽게 그를 내치지 못하는 건 이런 충격과 그에 따른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티찰라가 충격을 받은 포인트가, 살인(혹은 처형)이 아니라 아동유기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삼촌을 죽인 행위가 아닌 사촌을 버려두고 온 부분을 따지고 항의하며, 자신의 책임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아프리카적 사고라기보다는 미국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헛웃음이 났다.(물론 아동유기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식 개인주의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히 아동을 방치한 것은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성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아프리카-아시아적 사고에서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희생은 어느 정도 감수되어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극중 와칸다 왕국은 전형적인 아프리카 국가이고, 티찰라 역시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하는 고민은 미국인으로서 하는 고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어색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겉모습과 속 내용 사이의 괴리는 비단 이런 부분만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또 다른 흥미 포인트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정말 영화 속 부산 시장의 모습은 정말 꼭 우리나라의 어느 동네의 모습인 것처럼 실감이 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촬영한 건 아니고, 세트였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전국 그 어느 지방 못지않게 농익은 사투리를 쓰는 게 어울릴 것 같은 그 장면에서, 티찰라 일행을 만난 상인 아주머니의 대사는 우리말을 겨우 읽어내는 외국인의 발음이었다는 점은 얼마나 아쉬운가. 교포 2, 3세나 배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난 그 장면에서 얼굴은 사람 같은데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만 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공들여 쌓은 세트가 대사처리로 무너진 달까.

 

 

 

 

     인종차별, 흑인해방이라는 의미를 영화 속에 넣으려고 했던 것 자체는 좋다. 다만 그게 적절한 설정 속에서 나오는 의미였는가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블랙 팬서의 첫 단독 영화에서, 티찰라의 성장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면, 배경인 아프리카의 정서를 좀 더 연구해야 했지 않을까.

 

     ​난 아직도 티찰라가 정당한 대결에서 패배하고도 승복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무장봉기를 통해 왕위를 빼앗은 이야기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가 싶다. 산 속에 사는 늑대부족의 족장에게 찾아서가 티찰라의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외부자에게 왕위가 빼앗겼으니 차라리 네가 가서 왕이 되어라’. 이건 외부인 혐오는 아닐까? 심지어 그 외부인의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와칸다 사람인데. (티찰라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다 발생한 논리적 모순이다)

 

 

     여러 모로 부족한 설정이 눈에 많이 띄었던 영화. 그냥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게 이 시리즈엔 더 잘 어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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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
존 D. 커리드 지음, 이옥용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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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고고학의 발전으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 이야기들과 유사한 인근 문명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의 기록이 그런 인근 지역의 신화들에서 파생된, 혹은 표절된 아류기록이라고 본다는 것. (이 책에 의하면 심지어 후대에 기록된 인근 기록이 이전에 기록된 성서의 기록의 원조라고까지..)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본다. 물론 성서의 기록자들이 인근의 신화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들의 기록에 인근 문화의 요소들이 일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그건 성서 기록자들의 기록들과 인근 기록들의 차이점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성서의 기록자들이 의도적으로 외부의 이야기와 표현들을 가져왔으며, 이는 성서의 하나님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 안에서 이방의 신들은 의도적으로 약화되어 있고, 인근 문화에서 그들의 신에게 돌려지던 능력과 영광은 성경 속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논쟁신학적 목적이라는 것.

 

     책의 주요 내용의 대부분은 이른바 창조 이야기부터 홍수 기사, 요셉,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 등 다양한 이야기 등을 통해 논쟁신학이 어떤 식으로 실제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2. 감상평 。。。。。。。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서와 인근 고대 문명의 신화, 기록들 사이의 유사성을 두고 주로 성경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던 논의에, 일종의 전환지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양측의 공통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점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하고 있고, 이는 막연히 사상의 진화론적 전제를 고수하면서 별다른 증거도 없이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했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좀 더 학문적으로 보인다.

 

     다만 책이 뭘 말하려는지 주제 파악은 일찌감치 끝났는데, 정작 본문에 들어가서도 앞서의 설명했던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물론 앞서의 주장을 실제 본문들 가운데서 입증하기 위해 예를 제시하는 부분이기에, 주제의 반복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주제의 발전을 보여주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 만한 내용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꼭 완성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방의 신화가 이스라엘의 사실이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덧. 번역은 대체로 괜찮게 되었는데 88페이지 표의 가장 마지막 단의 표현이 거슬린다. “야웨가 노아를 축복한다는 문장인데, ‘축복복을 빈다는 뜻이다. 비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소원을 듣고 복을 내려주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야웨가 그보다 더 높은 존재에게 복을 빌어서 노아에게 내리도록 한다는 뜻인데, 이건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영어의 bless를 번역할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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