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
전편에서 큰 사고로 폐쇄된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 완전히 봉쇄된 섬에 화산 폭발이 시작되면서, 그곳에 갇힌 공룡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청문회 끝에 의회에서는 자연 그대로 두기로 결정을 하지만, 전편의 사건 후 공룡보호단체를 만든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이를 격렬히 반대한다.
그런 클레어에게 공룡들을 구출하는 일을 도와 줄 것을 요청하는 밀스(라프 스팰). 화산 폭발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일에 뛰어든 클레어는, 전편에서 공룡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던 오웬(크리스 프랫)을 설득해 섬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왠지 일이 너무 쉽게 풀려나간다 싶었다. 실은 밀스는 섬에 있는 공룡들을 반출해 경매로 팔아넘길 궁리를 하고 있었고, 덕분에 클레어와 오웬 일행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가까스로 섬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밀스의 계획을 막기 위해 나서지만, 그게 어디 쉬울까. 맨주먹으로 무장된 저택을 향해 무작정 뛰어간 그들 앞에는 엄청난 위기가...
2. 감상평 。。。。 。。。
좀처럼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 공감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공휴일을 맞아 극장을 가득 채운 어린아이들의 소란스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실은 애 어른 가리지 않고 시끄럽긴 마찬가지... 그래도 다시 한 번 공휴일엔 영화관에 가면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겼다) 영화의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주인공, 혹은 감독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인간에 의해 복제되어 태어난 공룡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질문이 영화 시작부터 던져진다. 의회 청문회에 선 ‘쥬라기 공원’의 핵심 멤버 말콤 박사는 공룡들을 (화산이 터지고 있는) 섬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클레어는 이런 결정에 분노한다. ‘공룡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런데 섬의 공룡들은 무슨 ‘권리’를 지니고 있는 걸까? 물론 영화 중반까지 그녀가 말하고 있는 ‘공룡의 권리’란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룡의 생존권을 위해서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당연하게 감수해야 하느냐는 지점에 이르면, 의견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 속 클레어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룡에게 희생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소리만 빽빽 지를 뿐, 어떤 윤리적 고민도 하지 않는 듯하다. 그냥 무조건 우리 ‘애기들’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뿐인 건가.
사실 그녀의 생각은 매우 낭만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공룡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주도권이나 결정권이 애초부터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저 ‘공룡=죽어가는 불쌍한 동물들’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끊임 없이 반복할 뿐.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결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더라도 공룡을 살리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 결정으로만 보인다. 이러니 영화가 시작된 직후부터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을 수밖에.
사실 이 영화가 좀 더 불편했던 것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유전공학, 복제기술 같은 것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매우 가까운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만간 복제된 동물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복제 인간과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윤리적, 기술적, 그리고 생태적 문제가 대두될 텐데, 단순히 감상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해 보이기만 한다.
정치적 감상주의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종종 매우 억지스러운 주장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동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태아의 생존권에는 놀랄 만큼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무분별한 감상주의는 사안의 크고 작음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거나, 선후를 혼동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의 행태가 꼭 그런 모습이다.
영화를 보러 온 애들이야, 그냥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공룡들을 보며 자지러지게 소리 지르다 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원초적 방식으로 죽어가는 이 영화에 왜 이렇게 애들을 많이 들여보내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단순히 편리나, 더 많은 풍요가 아니라)보다 공룡의 생존을 더 앞세우는 답 없는 감상주의가,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간의(반대자들이라면 특히 더) 희생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와 연결되는 이 영화에서 그 아이들은 뭘 읽게 될까. 이 영화는 휴머니즘도, 생태주의도, 뭣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