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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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것 때문에 내 기도가 산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 내 기도를 방해합니다.

기도가 끝나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는 것이나

기도가 끝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내 기도를 방해합니다.

 

- 페리 브램릿, 작은 그리스도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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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회식 후 새벽의 귀가길, 새로 장만한 집에 들어온 상훈(이성민)은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가운데서 살인을 저지르는 놈의 얼굴을 보게 된다. 본능적으로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놈이 자신의 집이 몇 층인지를 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멈칫한다. 상훈에게는 지켜야 할 아내와 아이가 있었으니까.

     자신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데도 잠잠히 있었던 상훈. 그러나 놈은 조금씩 상훈의 주변을 조여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위기감은 점점 더해간다.

 

 

   

 

 

2. 감상평 。。。。。。。

     한 때 아파트 단지에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전국적인 동향까지는 모르겠지만, 분당 쪽엔 그런 아파트 단지가 제법 많았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탑 속에서 살면서도 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 연대감 같은 걸 느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계획이 얼마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얘기하면 일단 철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든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 않던가.

     영화의 포스터는 그런 아파트의 불안감, 고립감을 잘 보여준다. 좁은 아파트 복도 끝 현관을 붙들고 반대쪽을 바라보는 이성민의 모습. 분명 카메라와 이성민 사이에는 많은 문들이 있고, 그 문 안쪽에는 또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만, 그들은 아예 카메라 앵글에서 잘려 있다.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고, 그런 이웃은 옆에 있긴 하지만 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단지 가운데 오직 나만 있다는 자각, 이건 금세 일종의 공황을 일으킨다.

 

 

 

 

     감독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그런 의도적인 고독, 외로움, 소외감 같은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도 누구도 나와 보지 않는 상황, 나아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을 방해하면서 그냥 어서 사건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라는 부녀회장과 그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표하는 주민들, 심지어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전단을 붙이는 남편을 비난하며 추방하려고 하기까지...

     흥미로운 건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이익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고) 주인공을 비롯한 주민들은 내 가족, 내 돈을 지키기 위해 침묵의 카르텔을 구축했다. 아파트를 마을로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그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이익을 위해 모여 있는 무리가 되어버렸다. 언제라도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일단 흩어져버리면 다음은 각개격파가 남을 뿐.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위해했던 침묵과 외면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비로소 변한다. 주민들이 마치 위험에 처한 타조가 땅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적이 자신을 보지 못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사건에 눈을 감고 쉬쉬하는 동안 살인범은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었다. 당연하다. 눈을 감고 있는 상대를 다루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고, (심지어 어린 아이가) 그냥 소리쳤을 뿐인데도 놈은 도망가 버린다.

 

 

 

     공동체와 연대는 흩어진 개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기심에 기초한 사회계약이 아니라, 이타심에 기초한 사회 연대가 공동체를 안정되게 만들 것이다. 이기심은 세우기보다는 파괴하고 흩을 뿐이다. 자유방임의 가치를 추종한 체제는 진작 무너져버렸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연대의 가치를 도입하지 않고 유지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즈음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종주의(혹은 민족주의), 보호(무역)주의, 또 다양한 종류의 혐오는 우리가 사는 이곳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전 지구적으로. 우리는 눈을 뜨고 함께 나서게 될까, 아니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깨져 나가게 될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좀 부정적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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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전 세계를 파괴할 뻔한 큰 전쟁이 끝나고 10년 후. 세계는 광자력 에너지를 기반으로 급격히 재건된다. 이제는 광자력 연구소의 소장이 된 유미(카야노 아이 목소리)와 현역 마징가 파일럿에서 은퇴하고 연구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코우지(모리쿠보 쇼타로 목소리) 앞에, 리사(우에사카 스미레 목소리)라는 신비한 소녀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어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악당 닥터 헬(이시즈카 운쇼 목소리)의 등장. 그는 잠들어 있던 마징가 인피니티라는 가공할 크기의 로봇을 깨워내고, 인간이 계속 이 세계에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를 물으며 거침없이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현역으로 복귀한 코우지와 그를 돕는 리사. 평행우주설과 전 세계의 광자력 에너지를 한 데 모아 복잡한 설정으로 닥터 헬과 맞서 싸우고 있지만, 로봇과 함께 인상과 고함으로 격투를 벌이는 건 그 때 그 시절의 모습.

 

 

 

 

2. 감상평 。。。。。。。

     마징가 탄생 45주년 특별판으로 향상된 그래픽과 텔레비전 판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다만 앞선 텔레비전 판을 보지 못한 나 같은 경우에는 이 부분이 딱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는 못할 듯하다. 물론 그냥 마징가라는 이름만 겨우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조건에서라면 아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니 나름 장점일 수도.. 

 

     ​어린 시절 로봇을 좋아하지 않았던 친구들은 드물었던 것 같다. 자라면서 점점 공부나 성적, 진로 같은 좀 더 재미없는 것들로 관심이 옮겨지게 됐지만, 향수라는 게 이렇게 문득 문득 떠올라서 잠시 동안 우리를 기쁘게 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다만 추억은 추억이고, 작품은 어느 정도 완성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애써 시간을 내서 보고 있는 사람에게라도 그게 예의.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은 오늘날 눈높이에는 좀 못 미치지 않나 싶다. (마치 사람이 들어가 탈을 쓰고 움직이던 특촬물의 그것을 보는 것처럼) 로봇이라기엔 지나치게 유연한 움직임이라든지, 위에도 언급 했듯, 무기보다는 조종사의 표정과 고함으로 싸우는 방식이라든지...(싸움은 로봇이 하는데, 조종사 목이 쉴 것 같은 느낌)

     개인적으론 주인공 마징가의 멋있음보다,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악당 로봇의 다양한 콘셉트가 좀 더 재미있었다. 다만 딱 그 정도이고, 진지하게 가려면 좀 더 깊이까지 들어갔어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락성을 좀 더 높여야 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일부러 찾아보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을 것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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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8-2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45년전 만화다보니 세계관등이 요즘과 많이 다른데다가 이 만화를 본 주 시청자가 지금은 50대가 되다보니 아무래도 마징가 z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감흥이 좀 약하지 않을까 싶어요.

노란가방 2018-08-21 21:3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완전 동감이네요.
 
불평등의 이유 -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 원리
노엄 촘스키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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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의 원제목이 Requiem for the American Dream”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조가(弔歌)’라는 의미. 레퀴엠은 장송곡을 의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는 것. 그러면 아메리칸 드림이란 무엇인가?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저마다 꿈을 품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를 말한다. 저자인 촘스키는 그런 기대가 깨져버렸다고 말하는 것.

 

      원인은 과도한 불평등이다. 초고소득자들과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 사이에는 이제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벌어졌다. 저자는 이것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다양한 측면에서 준비되어 온 조치들의 필연적인 결론이라고 단정 짓는다

 

      멀리는 1787년 미국의 헌법제정회의의 회의록이나 1850년 목화의 독점을 위해 멕시코로부터 강제로 텍사스를 빼앗은 존 타일로 대통령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부터, 가깝게는 2000년 대 이후 나온 각종 보고서나 칼럼 등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열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2. 감상평 。。。。。。。

     열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에 포함되어 있는 글의 양이 그리 많지 않다. 자연히 요건만 간단히, 그리고 명료하게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학술서적보다는 대중강연이나 연설에 맞는 방식의 글. 덕분에 이해하기엔 그리 어렵지 않다.

 

     ​책에 실린 저자의 주장은 일종의 해석, 혹은 설명이다. 각 챕터의 말미에 그 장에서 다룬 내용의 근거가 되는 기록들이 붙어 있는데, 본문은 이 내용들을 풀어 쓰거나 약간의 해석을 덧붙인 정도. 때문에 길고 자세한 논증이 따로 필요가 없고(있는 걸 설명하는 수준) 쉬우면서도 강한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 혹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주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 이제는 실질적인 박탈까지 초래하고 있으니까. 산업의 구조는 근대에 비해 수백 수천 배 더 커지고, 각종 기술은 세상을 바꿀 정도로 발전했지만, 최저임금에 허덕이고, 굶어 죽고, 산업재해로,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도 함께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런 체제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또 어떤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1700년대의 어떤 인물과 21세기의 경제 엘리트들이 서로 직접 공모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분히 같은 목적을 위해 애쓰다보니 전체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그림이 나왔다고 보는 게 현실적.

 

     ​하지만 뭐 그들이 공모를 했든 안 했든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문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다 한 데 모여 거대한 그림자 카르텔이 형성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카르텔은 이제 한 개별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공조까지도 이루고 있다는 의심이 될 정도고. (이러다 프리메이슨이니 일루미나티니 하는 음모론이 꽤나 실감나게 다가오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

 

 

     ​촘스키는 책 이곳저곳에서 반복적으로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단지 선거 날 투표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촘스키는 투표에는 10분 이상 투자하지 말라고 말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행동, 권력자들에게 순응하는 대신 이의를 제기하고, 대중에게 불리한 정책들을 좀 더 적극적인 의사표시(시위?)를 통해 막아내고 해야 한다는 것. (다만 이 책은 뭘 어떻게 하다는 내용보다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데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역사는 꼭 유명하고 힘이 있는 영웅들의 힘만으로 진행되어 온 것은 아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소위 평범한사람들의 힘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일을 바꾸는 일들도 드물지 않다. 그러니 당장 눈앞에 변하는 것이 없다고 해서, 일이 잘 되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해서 너무 빨리 포기하거나 불만을 터뜨리지 말고, 좀 더 멀리 보며 인내심을 가지고 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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