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몇 개의 단편들이 지나고 나면 묘하게 서로 연결되는 소설.

 

     자신을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고양이 요시오와 녀석을 돌보는 40대 인간 여성 사오리. 우연한 기회에 물에 빠져 떠내려가게 된 요시오는 비로소 자신이 고양이임을 깨닫는다. 한편 요시오가 떠내려 온 다리에서 만난 또 다른 고양이 키이로도 사연이 있었다. 고흐라는 이름의 화가와 함께 살던 키이로는 사고로 고흐가 죽으면서 큰 충격에 빠진다.

     작품은 이 두 고양이와 두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주변 캐릭터들까지 각각 맡고 있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점점 더 복잡해져 간다. 마치 잘 짜인 직물처럼, 하나의 실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실과 만나고, 최종적으로는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다.

 

 

2. 감상평 。。。。。。。

 

     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 소개된 오야마 준코의 책 세 권을 모두 읽게 되었다. 고양이 변호사하루 100엔 보관가게, 그리고 이 책까지.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의 구성은 세 편의 작품이 다 다르지만,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따뜻함,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그것. 더구나 이 작품에는 무려 말하고 생각하는 고양이들마저 등장해 버린다. 이런 쏟아지는 귀여움을 어찌할꼬.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각각의 이야기는 또 한 곳에서 서로 만난다. 고양이를 버리는 다리인 네코스테 다리에서. 작가는 때로는 고양이가 되어, 또 때로는 그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풀어나간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띄워지는 작품.

     가끔은 이런 행복한 이야기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사방이 행복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10-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정말 열심히 읽으시네요.
작가의 작품을 벌써 여러 편 읽으셨군요.
책 두께도 결코 얉지 않은데요?
저도 이런 책도 읽고 그래야 할 텐데...ㅋ

노란가방 2018-10-24 12:36   좋아요 1 | URL
요런 책은 기분전환으로 즐겁게 볼 만한 것들이라...ㅎㅎ
스텔라님은 가벼운 소설은 잘 안 보시나요?
 
맥주, 타이타닉, 그리스도인 -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중문화 읽기
윌리엄 로마노프스키 지음, 정혁현 옮김 / IVP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이 책은 기독교계의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평하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일반적인 관점은, 그것을 소위 반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혹은 적어도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는) 입장이다. 책에서는 미국의 예를 주로 인용하고 있지만, 일종의 검열을 거친 작품만을 허용한다든지, 애초에 특정한 주제들만을 다룬 작품을 만든다던가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예술은 고급문화에 비해 하위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대중예술 자체로도 삶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에(20), “그리스도인들이 주류 대중 예술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43)하다고 말한다. “교양 있는 예술과 교양 없는 예술의 구별은 예술 자체보다는 계급과 관련 있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10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대중예술/문화에 대해 진지한 접근 자세로 공부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세계관이 적절한 지를 비판/분석할 능력을 길러 적절하게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를 창조하는 일은 창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직을 수행하는 우리의 수많은 방식 중 하나”(123)이기도 하니까. 물론 이 과정은 단지 교리를 반복해서 외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그랬다간 대화의 여지자체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대중문화를 대할 때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먼저는 엄밀한 분석적 도구를 마련해 작품의 주제, 사상, 경향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기독교적으로 의도된 작품들을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능력을 갖춰야 하며, 나아가 기독교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비평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210-211)

     그리고 실제로 장르에 대한 분석, 또 개별 작품(이 책에서는 주로 영화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을 어떤 식으로 분석해야 할지 실제 예를 보여준다. 

 

 

2. 감상평 。。。。。。。

     책은 미국적의 상황을 바탕으로 했지만, 우리의 현실과도 깊이 겹쳐져 있는 게 느껴진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에서는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제한적이다. 물론 이제는 아주 적대적인 입장까지는 취하지는 않지만, 문화를 분석하는 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특정한 연예인이 기독교인이라는 데서 감동을 받거나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정말로 중요한 건 그래서 그 연예 관계자의 작품에 어떤 식으로 기독교적 시각을 녹여냈는지, 기독교인이 참여한 대중예술이 어떤 부분에서 차이점을 보이는지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또 한 편으로는 아예 그런 부분에 대한 관심이 없는 기독교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즐기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기독교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베스트셀러는 교회 안이나 밖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팔리고, 문제 또한 안과 밖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요컨대 우리는 문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시각을 잃어버렸고, 그렇게 눈을 뜨지 못한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고 있다.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대개 그런 곳들은 접근하기가 어렵다. 모두가 눈을 감은 채로 데려가고 데려가지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기독교적 문화접근이 무엇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지까지(책을 어느 정도 읽다 보면 바로 이 부분이 궁금해진다)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물론 그 분석이 아주 쉽지는 않다. 충분한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일부 보여주었던 대중예술 읽기의 실제적인 예를 제시하는 책이나 자리가 좀 더 많이 나타난다면 유익할 듯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지만 세상의 사람들은 생각만큼 나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제 자신보다 더 크게 보이려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더 잘나고 우수한 것처럼 자신을 보이려는 시도가

우리를 불안으로 초대합니다.

 

- 한기연,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줄거리 。。。。。。。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을 받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백상아(한지민). 학창시절 성폭행을 피하려다 도리어 전과자까지 되어버린 그녀는 어느 샌가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을 한쪽에서 애타게 바라보는 장섭(이희준)에게도.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가끔 만나던 소녀 지은(김시아)이 얇은 옷 한 겹만 입은 채 나타난다. 상아는 애써 무시하려고 하지만 계속 시야에 나타나는 지은의 몸에 난 상처가 자꾸 눈에 밟힌다. 결국 지은에게 손을 내미는 상아. 하지만 현실의 벽은 결코 낮지 않았다.

 

 

 

2. 감상평 。。。。。。。

     여성감독이 만들고, 두 여성이 주인공을 맡은, 여성적 영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도 주인공의 성과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인공 상아는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성폭행을 피하려다 옥살이를 했다. 그녀가 지은을 향해 보여주는 감정은 분명 모성애에 가깝고, 영화 속 지은은 모성에 대한 결핍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묵직하게 던져지는 주제는 아동학대에 관한 것. 감독은 이 주제를 주인공 상아의 모성을 일깨우는 사건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자체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현실감 있게 드러낸다. 게임중독에 빠진 친부와 지은을 볼 때마다 폭력을 가하는 친부의 애인 사이에서 아이는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우리 사회에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감독은 이런 아이들을 보호할 시설이 부족한 게 말이 되느냐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서 사회적 대책의 부재를 강력하게 질타한다.

 

 

 

 

     주인공들이 처한 환경은 무척이나 적대적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장섭과 그의 누나를 제외하고) 그들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고,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겠다고 하는 상아의 초기 태도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은 그녀를 또 다른 선택으로 밀어 넣는다. 모두가 나를 위해서 산다면,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는 약자들은 어떻게 될까.

 

     ​상처를 입은 상아가, 또 다른 상처를 입은 지은을 안아줌으로써 일종의 영화적 구원이 일어난다. 지은의 상처는 상아의 상처로 대체되고, 지은의 팔 안에서 상아는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단지 지은만 상아에게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고, 상아 역시 그런 지은을 품어냄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풀어나갈 열쇠를 발견한다.

     그런데 일종의 조연이라고 할 수 있는 장섭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영화 속 상아는 좌충우돌하면서 감상적으로 돌진할 줄만 알지, 주변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다.(혼자 자라온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런 상아를 보호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이 경찰인 장섭인데,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영화는 훨씬 일찍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을 테니까. 수렁에 빠졌을 때는 도움의 손길이 필수적이다.

 

 

     ​한지민의 캐릭터 변신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봤던 70여 편의 영화 중 가장 묵직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줄거리 。。。。。。。

     작은 마을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여학생의 시신이 발견된다. 수사를 맡은 형사 조(폴 베타니)와 크리시(스티븐 그레이엄)는 같은 경찰서에서 함께 일하는 형제였다. 좀처럼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 동안, 살해된 소녀에게 접근했던 전과자 제이슨 벌리(벤 크롬턴)를 체포한다. 하지만 좀처럼 죄를 자백하지 않는 제이슨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될 상황에 처하자 분노한 조는 술에 잔뜩 취한 채 아버지(아버지도 경찰이었다) 시절에 통했던 방식을 써보기로 한다.

     한 밤중 제이슨을 잡아 물이 빠진 해안으로 끌고 간 조와 크리시. 위협과 협박으로 마침내 자백을 받아내지만, 흥분한 나머지 제이슨를 죽이고 만다. 나쁜 놈이 대가를 받은 거라고 자위하고 있을 무렵, 사건의 진범이 나타나고 제이슨의 어머니가 아들이 실종되었다며 찾아나서기 시작하면서 둘은 점점 초조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동료형사였던 로버스(마크 스트롱)가 제이슨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살인사건과 추적, 은폐 같은 제법 센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아주 잔잔하게 진행된다.(사실 뭐 인물들이 소리도 치고, 싸우기도 하고 하지만 조용하게 느껴진다) 우선은 불필요한 대사들을 남발하지 않고, 과도한 음향도 자제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잔잔해지면 자연히 인물들의 작은 감정/심리변화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아주 격렬한 심리적 갈등을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영화의 후반은 그렇게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그날 밤 조가 일으킨 사건은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다. 늦은 수사진청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와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그리고 (아마도)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책망(일을 망치치 말라는)이 섞이면서 분노를 일으켰고, 의심스럽게 보이는 용의자는 그 와중에 확실한 범인으로 바뀌었다.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어느 때보다 강한 상황. 의심과 분노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기저기서 몰아가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의혹을 제기하면, 곧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호응하면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고, 말이 곧 증거가 되어 버린다. 문제는 확실한 증거 없이 여론의 몰아가기로 이루어진 인민재판은 엉뚱한 피해자를 종종 낳는다는 것. 때문에 법률은 보통 무죄를 증명하기보다는 유죄를 증명해야 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일명 무죄추정의 원칙’) 하지만 이게 일반인들에게는 강제성이 없는지라.. 오늘도 마녀사냥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생각해 보면 이건 애초부터 굳이 종교와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더 큰 문제는, 그런 심증으로 인한 사고를 무려 경찰이 일으켰다는 점. 무슨 일이 있어도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는 기관인 경찰마저, 개인적인 감정과 충동에 의해 일을 처리한다면, 그렇게 확립된 정의는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나아가 그런 경찰이 지키는 도시는 안전한 걸까.(최근 이슈 중 하나인 이른바 사법 농단에 사람들이 큰 분노를 표하는 이유도 이런 것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고 하다보면 일은 눈덩이처럼 점점 더 커질 뿐. 회복은 솔직한 인정과 돌이킴이라는 계단을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는 지점이다. 첫 걸음을 제대로 디디지 못했다면, 서둘러 다시 그 계단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