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정지혜 지음 / 유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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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홍대입구역에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서점이 있다. 별다른 간판도 없어서, 바로 앞 입구를 두고 한참을 헤매도록 만들었던 그런 곳이었다. 이 책의 작가는 바로 그 서점의 주인인 정지혜씨다.

     서점이라지만 그리 많지 않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고, 예약을 해야만 방문할 수 있는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곳이었다.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내 귀에도 소문이 들어와 한 번 방문했었던 곳.

     서점을 열기 전 작가의 다양한 경험부터, 실제로 서점의 문을 열고 2년 여 간 운영하며 느꼈던 내용들을 글로 엮은 책.

 

  

2. 감상평 。。。。。。。

 

     위에 쓴 대로 서점이 문을 열고 몇 달 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은 언제나 있었기에, 그 독특한 콘셉트를 듣고서는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차를 마시며 서점주인과 대화를 하고 나면, 미리 적어둔 주소로 서점주인이 고른 책이 배송된다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당시 대화를 마칠 때 즈음에, 이 책의 작가가 내게 해 준 말이 있었다. “OO님은 사적인 서점의 기독교 버전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리뷰를 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는 일이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떠올랐나보다. 그리고 1년이 좀 더 지난 지금, 그 때 그 제안과도 관련이 된 일을 준비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방문해서 이런저런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책을 보니 바로 얼마 전에 일단 문을 닫고 쉬기로 했나보다. 아쉬운 일.

 

     ​작은 서점을 실제로 운영하는데 생길 수 있는 어려움들이 이젠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많은 호응이 있어서 금세 임대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니 부러운 일이다. 확실히 서점을 운영하기 전 다양한 일들로 쌓은 인맥과 신뢰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쉼을 마친 후, 작가의 새로운 도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어떤 모양이든지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꼭 한 번 찾아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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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더니

가을도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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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에 불이 붙듯 - 말씀으로 형성된 하나님의 길에 관한 대화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복있는사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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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약 。。。。。。。

 

     유진 피터슨이 그가 시무하던 그리스도 우리 왕 장로교회에서 29년 간 강론했던 내용들 중 마흔아홉 편의 원고를 책으로 엮었다. 책은 저자(혹은 헌정 대상자)에 따라 일곱 개의 그룹으로 묶여 있는데, 각각 모세, 다윗, 이사야, 솔로몬, 베드로, 바울, 요한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오경,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복음서, 서신서 등의 각 장르를 모두 섭렵하면서, 다양한 주제와 방식의 강론을 보여준다.

 

  

2. 감상평 。。。。。。。

 

     강론집, 소위 설교집은 보통 때라면 잘 보지 않는다. 일단 굳이 책으로 읽어야 할 만큼 탁월한 설교집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설교의 특성상 적시성과 현장성이 생명인데,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접하게 되는 설교집을 통해서는 그 부분이 많이 깎여 나간 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깎여 나가고 남은 것으로도 충분히 탁월함을 보일 수 있다면, 그 땐 좀 계산이 달라질 수밖에. 수십 년 동안 한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설교사역을 해 왔던 내공에다가, 성경 본문과 현실의 접합점을 찾아내는 독보적인 능력, 그리고 저술가로서의 재능이 더해지면 어지간히 파도에 쓸려 나가도 여전히 반짝이는 금빛 모래가 넉넉히 남아 있게 된다.

 

     물론 마흔 아홉 편의 원고 모두가 그런 탁월함을 경험할 수 있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어떤 부분은 익숙함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지고,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해서 여전히 남아 있는 모호함도 보인다. 하지만 밀려왔다 물러가기를 반복하는 파도처럼, 잠시 지루해질라 치면 금세 또 깊은 데로 들어가게 만드는 장들이 나타난다. 적지 않은 페이지지만(대충 640페이지) 끝까지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유진 피터슨은 독자를 수천 년 전 성경이 기록될 자리로 데려가는 데 능숙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피터슨이 서 있던 자리를 한 번 지나야만 한다는 점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은 오늘 우리의 그것과는 또 차이가 나기 때문에) 먼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선 조금 불편한 휴게소를 몇 번 거치는 게 그리 큰일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를 따라 모세의 옆에, 다윗의 뒤에, 베드로와 요한의 앞에 서 보는 경험은 (약간 과장을 더하면) 황홀할 지경이다.

 

 

     두께가 좀 겁을 내게 만들지만, 좋은 책은 달려들지 말고 여유롭게 감상하면서 즐겨야 하는 법. 한편 씩 끝까지 읽어보면 만족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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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노트
마미 스나다 감독, 도모아키 스나다 출연, 마미 스나다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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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줄거리 。。。。。。。

 

     회사원으로 평생 일해왔던 스나다 도모아키. 드디어 은퇴를 하고 그동안 제대로 챙기지 못한 가족들과 인생을 보내려던 찰나, 덜컥 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4.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도모아키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엔딩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가고 있으니 버킷 리스트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는 그에게 히말라야나 스카이다이빙 같은 건 어불성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계획들을 해 나가던 차, 그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입원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스나다의 막내딸이 직접 촬영과 내레이션, 감독을 맡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러니까 영화 속 스나다씨는 실제로 병을 앓고, 죽어가고 있었다.

 

 

 

2. 감상평 。。。。。。。

     자신의 아버지가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죽음에 다가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했던 딸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참고로 딸은 각본 등으로 계속 영화계에 머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철이 없다고 뭐라 할지도 모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래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나왔다고 인정할지도 모른다.

 

     ​사실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많은 작품들의 소재였으니까 아주 새로운 면은 찾기 어렵다. 보통 그런 영상들은 밝음과 어둠 중간의 어디선가에 서서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스스로 혼란을 겪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이 영상 속 스나다씨는 꽤나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해 나간다. 감정의 과잉(물론 때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1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3년여의 투병생활을 거치셨기에, 조금씩 쇠약해져 가시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꼭 영화 속처럼 점차 살이 빠지고, 기운이 사라지고, 그러다 스스로는 팔 하나도 가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몇 번인가 의식을 잃어버리고, 때로 환각에 빠지기도 하고,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날을 보내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모두 마칠 때까지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장남이기도 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누군가는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도 여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과정을 마치고, 몇 년이나 흐른 뒤에 문득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펑펑 울었다. 사실 아버지는 그 나이 대의 세대들이 대개 그렇든 딱히 살가운 편도 아니셨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분도 아니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한은 아버지와 10분 이상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깊은 슬픔의 이유였다. 나는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가장 가까운 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분의 개인사에 대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떻게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타향에 정착해 일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즐거워했고, 무엇을 무서워했는지, 정말 아는 게 없었다. 무슨 위대한 일을 하신 분은 아니었더라도, 나름의 찬란한 한 세월을 보내셨던 분이 그렇게 완전히 잊힌 버린 것이다. 그래서 꿈속에서 겨우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분에 관한 아무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한 채 내 기억 속의 그분의 모습만이 재구성되었을 때, 가슴이 찌릿해졌다.

 

 

 

     모든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멋진 작품일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늘 그렇듯 기적적인 일이고, 그런 세월이 오랫동안 쌓였다면, 누구의 이야기에나 한 가닥 명장면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꼭 대중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래서 스나다씨의 남은 삶을, 그리고 지난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그의 딸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옳았다. 비록 황금처럼 번쩍이지는 않더라도, 경제성이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만 두고 보면, 반짝이는 작은 조약돌들도 모이면 그 못지않게 아름답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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