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들어온 책들.

한 권은 선물로 받고,
나머지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3만 4천원에 구입.
싸지만, 책 상태가 깔끔하진 않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처음 읽어 본 건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4학년 쯤? 당시 출석하던 교회당 한쪽 구석에 있던 책장인가 책상위에서 아주 낡은 문고판 형태의 책자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읽던 시절이라, 식탁 위 치킨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입으로 가져가는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손에 잡고 읽기 시작했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에(.. 나이가 드러난다. 그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컴퓨터 수업시간에는 이른바 286 시절인지라 부팅 한 번을 하려면 디스켓을 넣었다 뺐다 해야했다) 어떤 책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존 번연이 누군지도, 이 책이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읽기 시작한 책은 너무 뻔하다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모험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는 강한 예상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사실 그런 건 다른 책들에서도 대체로 예측되는 부분이니까. 문제는 인물들의 이름이었다. 이름에 그 사람의 성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버리니,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가 예측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정직씨가 정직하지 않으면 또 누가 정직하겠는가

 

     ​물론 지금은 애초에 원작이 단지 아이들을 위해쓰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알레고리라고 여기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여전히 책의 문학성을 더하기 위해서는 이름을 좀 더 평범하게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있다.(그랬다가는 캐릭터에 괴상한 해석이야말로 수준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의 비평가들에 의해 작품이 망가질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용을 얼마나 잘 표현해 냈을까도 그 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보다 큰 우려는 어느 정도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느냐였다. 성경 속 지문을 그대로(문어체로) 대사화 해서 어색하기 그지없던 오래 전 텔레비전용(혹 비디오용) 성경드라마처럼 오글거림을 느끼게 만들지는 않을지, 메시지 전달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정작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 영상쪽이 형편없지는 않은지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생각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기독교 창작물의 수준도 (적어도 미국의 경우에는) 꽤나 발전했다는 안도감(?). 최근에 나온 라이온 킹 정도의 실사 애니메이션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3D 방식의 여느 극장 애니메이션에 비해 특별히 떨어지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기에 대사처리도 몇 군데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진리가 “~라는 것은 다음과 같아요.”라는 부분은 매우 어색), 또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비유적 표현들(‘눈물을 닦지 말고 눈물을 통해서 보라는 말과 율법의 산을 스스로의 힘으로 오르는 것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좀 더 명시적으로 주제를 드러내기를 원할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문학적으로, 그리고 시적으로 그려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듯하다. 새로운 세계를 단순히 알레고리로서가 아니라 풍성한 상징을 담아내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충분한(‘완전한이 아니다) 내적 개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내용면에서도, 비주얼적인 부분에서도.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제법 괜찮은 작품이다.

 

     ​다만 애초에 원작 자체가 아이들 수준으로 쓰인 것은 아니기에, (당시 청교도들의 글이 대체로 그렇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독교에 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는 건 기억해야 할 점.

 

 

 

 

      천로역정을 번역하면, ‘하늘로 향하는 길을 걷는 여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The Pilgrim's Progress라는 원제를 이렇게 맛깔나게 우리말로 번역할 수도 있는 건지..(사실 당시에는 이렇게 사자성어처럼 번역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ex. 이신칭의, 가상칠언 등등) 기독교인들은 지금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더 큰 세상이 있음을 믿는 이들이다. 물론 그 더 큰 세상이 이 세상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혹은 지금 누릴 수 있는지, 후에나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여행자, 나그네다.

 

     초기 핍박의 시기에는 이런 나그네 의식이 썩 잘 와 닿았다. 그건 너무나 분명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사 이래로 매순간 기독교인들은 여정을 포기하고 정착하려는 유혹에 시달려 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한 정착에의 유혹과 요구 아래 서 있는 것 같다

 

     정착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큰 성을, 도시를 세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이들이 쉽게 넘어오지 못하는 높고 튼튼한 벽도 쌓게 된다. 그게 완성되면, 이제 주변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나선다. 이게 딱 오늘 주류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영화 속 크리스천이 그 도시에 이르기 전 어디에서도 (심지어 매우 우호적인 장소에서도) 머물면 안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정착에의 유혹을 떨쳐내야 할 것이다. 그분을 생각하며 기꺼이 불안정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가장 주요한 모습 중 하나일 테니까.


※ 영화 속 전도자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는 '반지의 제왕'에서 김리 역을 연기했던 그 배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시작하며 등장하는 주제는 (세포)의 가소성이다. 가소성이란 일정한 힘으로 형태를 바꾼 대상이 일단 힘이 사라진 후에도 변형된 그 대로를 유지하는 성질이다. 찰흙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든 후에도 그 모양이 그대로 굳어지는 걸 생각하면 쉽다. 저자는 우리의 뇌도 그와 같은 성질이 있어서, 한 번 어떤 형태로 길이 나버리면 계속 그 길을 따라서 가게 된다고, 다른 길로 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읽기는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말은 좀 더 기본적인 기능에 해당하기에 최소한의 도움만으로도 말하고 이야기하며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인가를 읽기 위해서는 배워서 자신만의 읽기 회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다. 평소 주변 사람들과 만나면 대개 책 얘기를 한다. 사실 대화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주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던가.(소개팅 자리에서도 자꾸 그래서 문제긴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딜 갈 때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으면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책이라는 이야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누구나 연습하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건 내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거라면.(이제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저자는 종이책과 디지털 기반의 읽기 사이의 차이를디지털 방식이 얼마나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깊은 통찰을 얻는 것을 방해하며, 공감능력을 퇴화시키는지길게 설명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권장하기 위한 책이다.

 

     책 읽기를 멀리하고 디지털 매체를 통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편파적으로 접한 이들이 어떻게 괴물처럼 변하는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빠져 사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통해 실감나게 목격된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며 단식하는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이거나, 보모로 돌보던 남자 아이를 강간했다고 자랑스럽게 글을 올리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도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독서를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만들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책 속에는 지난 20년 동안 젊은이들의 공감능력(이런 건 어떻게 측정하지?)40% 가량 줄었다는 연구 자료가 실려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지만, 그 현실에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도 하다. 책 속에는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접하는 정보의 양이 약 34기가바이트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다. 엄청난 양이다. 이미 충분히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얻고 있으니 책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주의를 쪼개가며, 발작적으로, 단속적인 정보들을 접함으로써 우리의 읽기 능력은 향상되기는커녕 쇠퇴하고 있다. 저자는 상호교류식 전자기기들도 더 깊은 읽기능력을 기르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최신의 전자기기 사주거나 종일 유튜브를 틀어주는 부모들은 기대했던 유익은 쉽게 거두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를 통한 지식의 습득은, 진짜 나의 지식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술에 접속되어 있는 상태와 지식을 가진 상태는 다른 법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영화 마션의 주인공이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책 후반부로 가면서 초반의 논지가 살짝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종이책 읽기에 비해 문제가 많은 디지털 읽기방식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해 놓고는, 어쩌면 다가오는 미래에는 두 가지 읽기의 길을 발달시키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깊은 읽기도 하면서 때에 따라 가벼운 접속도 해 낼 수 있는 세대들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그런 경우에라도 디지털 기기가 제1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구축해 놓은 논리의 나사들이 꽤나 헐거워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 물론 저자가 교육 쪽에 몸을 담고 있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한동안 우석훈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책은 대체로 장차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한 우울한 전망으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 자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우석훈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미래에는 저축하는 사람이 능력이라는 말.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의 지출을 조정해 지속적으로 저축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귀하게 사용될 거라는 의미다.

 

     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곤 한다. 미래에는 책을 읽어갈 수 있는 것이 큰 능력이 될 거라는 말. 책을 한 달에 몇 권씩 읽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좀 수준 있는 어렵고 두꺼운 책들을 봐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능력에 맞게 꾸준히 읽어나가는 게 능력이라는 뜻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그 위에 얹힌 문자들을 인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을 쓴 사람과 교감을 하고, 그 안에 묘사된 세상을 체험해 보고, 나름의 반응을 보이는 작업이 책을 읽을 때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뭔가 특별한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이 작업은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간략한 요약본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무슨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는 분명 유익을 줄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AI가 인간이 하는 많은 일들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이 사랍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란 얼마나 중요해질까. 때문에 어찌되었든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물론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 사람은 안 듣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식비와 시간을 아낄 겸 아침을 편의점 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자료를 찾던 중 알라딘 중고샵에서 책 구입..

배송료 아껴보겠다고 3만원 어치 책을 이것 저것 고르다보니

 시간이 순삭...;;


확실히 싸긴 싸다..

34,000원에 책이 여덟 권이면... (응?)

덕분에 그 중고샵에 올라와 있는 책 2천 권을 훑긴 했지만....;;

암튼 일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나는 돈을 아낀 것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9-07-2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미시적으로 봤을 때 아낀 거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글쎄요...
그래서 저는 적립금으로만 책을 사죠. 내 돈 들이는 건 좀 아깝더라구요.ㅋ

노란가방 2019-07-24 23: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런... 적립금이 많으신가 봅니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상황을 꿰뚫는 한마디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이영표,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